김문수·전광훈의 홍범도 비난 논리, 윤 정부가 이어받았다
등록 2023-09-03 15:24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06892.html?_ns=c1
2021년 8월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외벽에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육사)는 지난달 31일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한다”며 반대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교정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1년 8월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고, 같은해 8월18일 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여야 대표와 국방부 장관, 각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홍범도함장이 참석해 ‘최고의 예우’를 한지 2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국방부와 육사가 흉상 이전을 추진하며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이력 등을 문제 삼았는데 결국 2년 만에 스스로를 부정한 셈이 됐습니다.
특별수송기를 통해 2021년 8월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하기 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전 유해 봉환 당시 소련 공산당 이력을 부각하며 비난했던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뉴라이트 인사들과 일부 개신교 단체, 보수·극우 성향의 언론매체들이었고 당시에는 이러한 주장들이 공론장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국방부와 육사의 ‘홍범도 지우기’는 이들의 발언에 다시 권위를 실어줬습니다. 당연히 앞으로도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 유해봉환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갈무리
김문수, 강규형…현 정부 인사들의 2년 전 발언2년 전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이력을 부각하며 유해 봉환을 비난했던 이들은 현 정부에서 주요 자리를 맡은 인사들입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2021년 8월 18일·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범도. 자유시 참변 때 독립군 수백 명을 학살한 소련군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다고 레닌으로부터 권총·군복·상금까지 받고, 소련 공산당원이 됐습니다. 광복절·건국절에 이승만은 지워버리고, 소련공산당원 홍범도만 띄우는 문재인의 목적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가요” 등의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체제에서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로 임명된 강규형 명지대 교수(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은 2021년 8월20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칼럼에서 “홍범도의 자유시 참변 참가는 ‘반민족 행위’였고 그 이후 무장 항일운동의 씨를 말린 직접적 이유가 됐다. 그는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았지만 사실 그는 대한민국건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는 소련 공산당 당원이자 소련군 대위로서 공적 생활을 마친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자였고 그의 고향은 평안도이니 차라리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두 사람의 발언 모두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 당시 무장해제·진압 간여 안 했고, 소련 공산당 입당도 독립운동을 위한 방편이었다는 역사학계 대부분의 시각과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021년 8월22일 유튜브 ‘LGs -TV’ 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전광훈 “독립군 탄압하고 죽인 범인”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 극단적인 주장을 폈던 이들도 2년 전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유해 봉환을 주도한 문재인 정부에 ‘색깔론’을 들이댔습니다. 2021년 8월22일 전광훈 목사는 유튜브 LGs-TV의 ‘전광훈 목사의 홍범도 공산사상을 밣히다(밝히다의 오타로 추정)’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의 장교 출신이다. 러시아 군대 소속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오히려 독립군을 수도 없이 탄압하고 죽인 범인 중의 하나다”며 “자기 나름대로 일본군하고 싸웠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 편에 서서 오히려 애국지사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을 이장을 시켜서, 세상에 유골을 한국에 가져와 대전 국립묘지에 재운다고 하면서 문재인이가 이 사람 앞에서 경례를 하면서 울었다. 공산주의자다 이 사람(문재인 전 대통령)”이라고 했습니다.당시 일부 개신교 단체와 극우성향의 매체들도 비슷한 논리를 폈습니다. 한 개신교 단체는 2021년 8월 “홍범도가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소련 공산주의 편에 서서 같은 독립군을 학살했다. 우리 정부는 어찌 공산주의자들만 특별 대접하는 것처럼 보이는가”라는 입장이 담긴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국방홍보원은 2018년 8월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란 제목의 28분 짜리 영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흉상 이전 설치와 함께 비공개로 전환됐다. 유튜브 갈무리
뉴라이트, 극우세력 주장 더 힘받나이들의 발언은 모두 지난달 28일 국방부가 발표한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 내세운 논리와 닮았습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이력 가운데 △자유시 참변에 연루됐다는 의혹 △봉오동·청산리 전투 때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사실 등을 근거로 홍범도의 흉상 이전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역사학계 등에서 대체로 근거가 없다고 반박해온 내용을 이번에 국방부가 나서서 대변해준 셈이 됐습니다. 유해 봉환을 계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 홍범도 장군에 대한 평가도 뒤집어버렸습니다.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인데 국방부는 흉상 이전 논의에 역사학계와 협의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문제는 흉상 이전이 ‘끝’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김문수 위원장이나 강규형 교수 등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깎아내리고, 건국절을 주장하며,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의 재평가 등을 주도해온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로 꼽힙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이동관 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의 뉴라이트 인사들도 현 정부에서 중용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지우기, 백선엽 장군 재평가, 건국절 부각 등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뉴라이트 인사들 중심으로 시도됐고, 매번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켰습니다.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계기로 건국절, 백선엽 장군, 역사교과서 등과 관련한 이들의 주장이 다시 힘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홍범도 흉상은 국군 정체성 직결된 문제…이리 단칼에 내치나”
등록 2023-08-3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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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가 교정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을 학교 밖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앞에 흉상 철거를 반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국방부라는 정부 주요 부처가 이렇게 수준 낮은, 천박한 해명을 하는지….”독립군 역사 연구의 권위자인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사학과)가 육군사관학교(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추진 중인 국방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홍범도 vs 백선엽’ 토론회에서다. 반 명예교수는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연구해온 학자다. 그는 “하나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엄청난 고민을 하고, 필요한 자료를 교차검증하는데, 홍범도라는 인물을 이렇게(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문제 삼으며) 단칼에 매장할 수가 있는가”라고 한탄했다.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역사학자들은 ‘홍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국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군의 뿌리를 두고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사회적 합의를 윤석열 정부가 깬 것이라는 취지다. 반 명예교수는 “(이번 논란은) 간단하게 흉상 철거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한만국의 정체성과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쌓아 올려온 제도·관습·규정이 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것은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묘를 만들고 이장할 때처럼, (흉상) 설치와 철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도 “(이번 논란은) 한국군의 족보를 어떻게 잡느냐의 문제”라며 “문재인 정부 때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삼는 작업으로 (군 쪽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침해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흉상 이전 논란을 “친일 반민족 세력과 독립운동·민주화운동 세력의 오랜 역사전쟁(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군정 아래의 조선국방경비대를 국군의 모체로 삼는 시각에서는 독립군·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보는 상징물인 홍범도 장군 흉상이 눈엣가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이날 토론회에서는 보수 진영이 영웅시하는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최태욱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백선엽 장군이 해방 전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항일 독립세력 토벌에 앞장섰던 이력을 상세히 설명하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백선엽 친일 행적 삭제 주장은 사회적 합의를 깨는 행위”라며 “적어도 일본군·만주국군이 되어 우리 국민에게 총을 겨누었던 군인이 구국의 영웅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앞서 박민식 장관은 최근 국립현충원 누리집에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한 바 있다.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 전쟁 배경에는 국정 실패를 가리려는 정치적 요인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국민이 원하는 민생경제 안정에 자신이 없으니까, 정부가 이를 덮어보려는 정치적 의도로 역사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서면 축사에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고 비판한다면,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도 같은 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며 “(정부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몰역사적이고 반헌법적인 폭거를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