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전봉건(全鳳健)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들었다.
(시집 『전봉건시선』, 1985)
[작품해설]
이 시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실험적 기법과 참신한 이미지 구사를 중시한 전봉건의 대표작이다. 이 시는 피아노 치는 여자와 그 소리를 듣는 화자의 모습을 독특한 이미지의 전개에 의해 구성한다. 과감한 비유와 공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생기 있는 피아노 소리에 대한 감동을 보여 주고 있으나, 그 이미지들이 강렬하고도 돌발적으로 표현된 탓으로 다소 난해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시는 감각적 시어를 수사하여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비약하는 연상 작용이 두드러진다. 연상 작용이란 하나의 관념에서 그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이 시에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비약을 보여 준다.
화자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여인의 손에서 ‘신선한 물고기’를, 피어노의 선율에서 ‘튀는 빛’을 떠올린다. 이러한 연상이 바다로 확산되어 ‘파도의 칼날’을 발견함으로써 피아노 연주를 단순히 감상하던 입장에 있던 화자는 마침내 피아노 선율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보여 준다.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피아노’ - ‘물고기’ - ‘바다’ - ‘파도’로 펼쳐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창조되는 순간, ㅎ하자는 벌써 피아노와 함께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가 눈부신 ‘파도의 칼날’을 꺼내들고 있다.
[작가소개]
전봉건(全鳳健)
1928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평양 숭인중학교 졸업
1950년 『문예』에 시 「원(願)」, 「4월」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57년 김종삼, 김광림과 함께 3인 공동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발간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69년 『현대시학』 창간
1980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84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88년 사망
시집 : 『소월시화첩(素月詩畫帖)』(1958), 『신풍토(新風土)』(1959),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9), 『춘향연가』(1967), 『별 하나의 영원을』(1968), 『속의 바다』(1970), 『파리』(1980), 『북(北)의 고향』(1982), 『새들에게』(1983), 『돌』(1984), 『전봉건시선』(1985), 『사랑을 위한 되풀이』(1985), 『트럼펫 천사』(1986), 『기다리기』(1987), 『아지랭이 그리고 아픔』(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