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2000)에 제이드 폭스란 신비한 악당으로 출연했던 중국 상하이 출신 배우 청페이페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유족은 그가 2019년부터 파킨슨병과 유사한 신경 퇴행성 뇌질환과 남몰래 싸우고 있었으며 지난 17일 세상을 떠났다고 뒤늦게 알렸다. "우리 엄마는 무술영화의 전설적인 여왕, 60년 넘게 커리어를 이으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상을 수상한 영화와 텔레비전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 했다."
5년 전 난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도 청은 자신의 상태를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대신 네 자녀, 손주들과 여생을 보내고 싶어했다. 유족은 고인이 조화를 보내는 대신, 자신의 뇌를 기증받는 Brain Support Network(BSN)에 기부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남겼다고 전했다.
'와호장룡'의 공동 주연 미셸 여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우리는 당신의 친절함과 빛나는 재능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무술을 할 줄 아는 여배우로 선구자였던 청은 호금전 감독의 '대취협'(Come Drink with Me, 1966)에 주인공으로 나와 평단의 주목과 함께 국제적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청룽(성룡)이 조연으로 나오며, 국내에서는 '방랑의 결투'로 소개됐다. 청페이페이는 '정패패'로 소개됐다. 이 영화의 객잔 장면은 최근 이정재가 출연했다고 해 화제가 된 디즈니의 '애콜라이트'에도 오마주로 나와 화제가 됐다. 청은 1970년대 초반 미국으로 이주한 뒤 동아시아 출신 새로운 세대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을 북돋고 여성이 주인공인 검술 영화를 만들도록 부추겼다.
1946년생인 고인은 1962년 홍콩으로 이주하자마자 호금전의 '대취협'에 출연해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무술인들을 찬양하는 무협 장르의 가장 빼어난 예로 지금도 거론된다. 이 영화에 청이 출연했을 때 열아홉 살이었다. 그녀의 배역은 Golden Swallow, 악당들에게 납치된 중요한 지도자의 누이인데 오빠를 구하기 위해 시련에 몸을 던지는 캐릭터다. 이 작품은 홍콩 당국의 추천을 거쳐 제39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진출했다.
1968년 속편 'Golden Swallow'도 큰 인기를 누려 청에게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검객으로 출연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외톨이 여성 암살자란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흥행작 '킬 빌' 두 편의 모티브가 됐고, 하나의 장르가 되다시피했다.
'와호장룡'은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고,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상(BAFTA)도 물론이었다. 북미 박스오피스 흥행 1억 2800만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대단한 성적을 거뒀다. 외국어 영화가 전 세계 흥행 1억 달러를 넘어선 것도 이 작품이 처음이다.
고인의 마지막 출연작은 실사 디즈니 영화 '뮬란'(2020)인데 여주인공의 중매쟁이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