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38) - 2018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 참가기(1)
1. 20년 만에 다시 찾은 블라디보스토크
2018년 7월 6일(금), 오전 9시에 러시아의 극동거점이자 관광휴양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목적은 7월 7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국제걷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것, 간단한 출국절차를 밟고 탑승 게이트에 이르니 출발 2시간 전이다. 스마트폰을 켜니 한국대표단장인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에게서 온 메시지, ‘먼저 출발합니다. 조심해서 오세요.’ 다른 일행(한국 23명, 일본 15명)들은 두 시간 빠른 비행기, 뒤늦게 합류하면서 따로 가게 되었다.
낮 12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30분 연발, 오후 1시에 이륙하여 서해 항로를 거쳐 중국 땅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오후 4시 반(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에 착륙한다. 20여 년 전에는 반도를 가로질러 동해로 향하였는데 그간 항로가 바뀐 듯. 비행기는 빈자리 없이 만석, 휴가철이 아닌데도 찾는 이들이 많은 가보다. 옆 좌석의 젊은 낭자에게 물으니 자매간의 자유여행, 즐거운 시간 되라고 덕담하였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지난 봄 제주올레길 일주 국제걷기에 참가했던 블라디미르 러시아대표와 노익장 바딤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을 환영한 후 혼자인 나를 두 시간 여 기다려 맞아준 호의가 너무나 고맙다. 청사 밖으로 나오니 제법 선선한 날씨, 한반도를 덮친 더운 공기가 아직 이곳까지는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나보다. 숙소까지 한 시간여 여, 20여 년 전의 기억은 전혀 없는 낯선 경관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년이니 오죽하랴.(오는 길에 기아 모터스 판매점, 큰길 양편에 나부끼는 LG 깃발을 살피노라니 20년 전 현대, 삼성 등의 선전판을 접한 기억이 떠오른다.)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6시, 일행은 벌써 저녁 식사하러 나갔다. 가방만 내려놓고 식당으로 안내, 가는 길목에 큰 동상을 지난다. 1904~5년의 러일전쟁을 지휘한 마카로프 장군의 동상이라고. 오자마자 조선의 운명을 가른 전쟁의 당사자를 대면하는 감정이 미묘하다. 식당에 도착하니 코스요리의 첫 메뉴가 나온다. 소고기와 빵, 감자, 전병, 닭고기, 도수가 높은 러시아 전통술(보드카는 아니란다)과 맥주, 여러 종류의 차 등 푸짐한 만찬에 첫날부터 과식하겠다. 식사 후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날씨에도 놀이공원을 찾는 인파들로 북적인다. 중⸱러 집경지역이어서인지 중국인들이 많이 보이고,

숙소 인근의 블라디보스토크 야경
한국체육진흥회가 준비한 자료에는 블라디보스토크가 여행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아태지역 여러 나라에 가장 가까운 유럽문화도시로서 극동관광발전 프로젝트 ‘동방의 반지’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면적은 남북 약 30km, 동서 약 10km에 걸쳐 있고 인구는 63만여명.) 멀리서 찾아온 동호인 여러분, 푹 쉬고 내일부터 ‘동방의 반지’를 두루 살피며 건보 합시다.
*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찾은 것은 1997년 9월, 연해주일대에 살던 카레이스키(러시아 거주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낯설고 물 설은 중앙아시아로 화물열차 타고 이주(1937년 가을)했던 고난의 행로를 더듬어 가는 회상의 열차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카레이스키(고려인)의 삶을 껴안으며’라는 제목으로 쓴 회상의 열차 탑승기의 첫 부분을 간추려 소개한다.
‘지금은 9월 9일, 서울을 출발하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있다. 구소련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60주년 행사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러시아 고려인협회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공동주관하는 회상의 열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24일까지 비교적 긴 일정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약 세 시간 비행한다. 직선거리로 한 시간이면 충분할 텐데 북한영공을 피하여 일본 근해까지 동쪽으로 비행한 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우회항로라 실제 거리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오늘(9월 9일)은 북한정권이 탄생한 정부수립기념일인데 어느덧 남북이 분단된 지 52년, 그 분단의 여파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도 멀리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오후 2시 10분, 예정된 시간에 비행기는 블라디보스토크 공랑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공항에서 고려인협회장, 연해주지사를 대리한 고급관리(여성), 소수민족 출신인 카자흐지역 군사령관, 고려이 4세로 코카서스 지역사령부 부사령관의 직함을 가진 차 모 장군 등이 환영의 인사말을 하고 교민들이 들고 온 꽃다발 증정, 기념촬영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군향으로 해군시설의 30%가 집결되어 있는 보안구역이어서 소련에서는 가장 늦게 개방된 도시라고 하는데 지금은 군사적인 중요성 외에도 어시아의 극동 경제거점으로 활기 있게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준공행사를 가진 현대호텔이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공항의 에어컨에는 LG상표가 붙어 있고 대우, 삼성의 광고 입간판도 크게 세워져 있어 한국기업의 세계적 진출상황을 이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 한⸱러⸱일이 어우러진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
7월 7일(토),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공기가 차다. 기상예보로는 아침 최저 11도, 낮 최고 17도라니 걷기에는 적절할 듯. 오전 7시 45분, 숙소에서 가까운 해변광장으로 내려가니 전통복식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여성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모여드는 행사참가자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흥겨운 춤판이 한 동안 펼쳐진다. 몸매가 큰 여성이 팔을 끌어당겨 어설픈 몸놀림을 하기도.

출발에 앞서 춤추는 여인들과 함께
한 시간여 흥을 돋운 후 제5회 블라디보스토크 걷기축제 개회식이 열린다. 블라디미르 불라디보스토크 걷기회장의 개회사, '한국, 일본, 러시아의 걷기동호인들이 함께 걷게 되어 기쁘다. 모두들 즐거운 시간되기 바란다.'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의 인사, '제5회 블라디보스토크 걷기해사를 축하하며 개인에게는 건전한 심신의 단련, 국제간에는 우호증진의 좋은 기회가 되기 바란다.' 작년에 3명이 처음으로 참석하였다가 금년에 두 팀으로 40여 명이 함께 한 일본 시민스포츠연맹 가와우치 회장의 인사, '뜻깊은 개막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 많은 일본인과 함께 한⸱일⸱러 우호증진에 힘쓰겠다.'
손명곤 한국체육진흥회 부회장이 한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유려하게 통역하여 화목한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조하고 홍순언 한국 걷기 왕이 2021년 국제시민스포츠 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하였음을 알리며 많은 참가를 권유하였다. 제주걷기에도 참가한 줄리아 러시아 걷기회원은 반가운 손님맞이의 뜻을 담아 손수 만든 빵을 함께 나누는 이벤트를 연출하여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해안 길을 걷고 있는 선두그룹
오전 9시 넘어 준비체조로 몸을 풀고 수백 명의 동호인들이 일제히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일원을 돌아보는 걷기에 나섰다. 첫 코스는 해안 길, 한 시간여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체크포인트에 이른다. 준비된 음료를 들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좁은 반도의 끝 지점에서 역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30여분 걸으니 브라디보스토크 역, 역사 안의 천정화가 유명하다며 검색대를 통과하여 이를 잠시 바라보기도. 철길로 내려서니 9288km라고 새긴 표지판 앞에 이른다. 모스크바까지의 철길 거리 표시, 그 부근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등 부산하게 움직인다. 역사 안팎을 돌아보노라니 1997년 이곳에서 회상의 열차에 올라 중아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8박9일간 8천여km를 달리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때의 기록을 간략히 소개한다.
‘9월 11일 저녁 8시, 열차출발에 앞서 역 광장에서 사물 패를 앞세운 길놀이 행사로 노래와 춤판을 벌려 열차 탑승자는 물론 구경 나온 러시아인들까지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역 땅에서 ’고향의 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며 겨레의 한과 소망, 염원을 한목소릴 담아낸 것이다. 9시부터는 열차 출발에 즈음한 기념식을 가졌는데 강제이주 당시 열세 살의 나이로 이주행렬에 끼었던 박표도르(73세) 노인이 당시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스스로 목이 메어 잘 표현하지 못하였지만 바로 밑의 동생이 병으로 죽었는데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체 그대로 열차를 타고 떠나야 했던 그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하였겠는가.’
역 뒤의 큰 건물을 돌아가니 국제여객선 등이 입출항하는 항구가 나타난다. 속초~블라디보스토크를 운항하는 국제항로도 이곳으로 입출항. 20년 전 걷기 때는 역과 항구가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줄도 몰랐다. 걸으면서 역사, 지리, 문화를 살피는 것이 큰 자산임을 깨치는 좋은 사례라 여겨진다.
항구를 지나서 이른 곳은 해군기지 앞에 있는 박물관과 그 옆의 정교회, 비들기가 떼를 지어 퍼덕이는 정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잠시 걸으니 가파른 언덕길이 나타난다. 급경사의 언덕을 20여명이 탑승하는 산악(?)열차로 오르니 두 번째 체크포인트, 그곳에서 구시가지 중 가장 높은 지대(199미터)인 오를리노에 그네즈도(독수리 둥지)로 향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 눈 아래로 펼쳐지는 경관이 한 폭의 그림이다. 언뜻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진 리우 데 자네이로를 살필 수 있는 명소에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에 못지않은 풍광이라 여겨진다.
구시가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
어느새 12시가 지났다. 이곳에서부터 내리막길, 발걸음이 가볍다. 번화가를 거쳐 한 시간 반가량 걸으니 낯익은 동네에 이른다. 숙소 인근의 계단 길, 곧바로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반이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걷기를 종료, 이내 인근의 식당으로 옮겨 맥주를 곁들인 점심을 들며 홀가분한 기분이다. 이후는 저녁식사 때까지 자유시간, 더러는 시장을 둘러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저녁식사는 환영만찬, 장소는 숙소에서 10분 거리의 해변 레스토랑이다. 한국과 일본 참가자 60여명을 포함한 1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우정과 친목을 다지는 유익한 시간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세 시간여 진행된 만찬은 주최 측의 환영사와 각국 대표의 감사인사, 선물증정에 이어 노래와 춤이 이어지고 만남, 후루사토, 러시아민요 등 다채로운 레파토리가 등장한다. 러시아와 한국, 일본의 공식적인 국제관계는 매끄럽지 않은 편, 그런데도 민간부문에서 건강과 취미를 다지며 나아가 우정과 친선을 도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관계자와 참가자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