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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날은 7시에 일어난다고 하여 여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고 아침 공양을 하러 해인사 공양간에 갔죠.
해인사 공양간의 아침 공양시간은 6시입니다.
떡국이 나왔더라구요... 떡국을 매우 좋아하긴 하나 밥을 먹고 싶어서 밥을 먹었습니다.
먹고나오니 지묵스님이 있더군요,.
지묵스님은 저의 사제스님입니다.
보름 전부터 해인사에서 재무소임을 맡고 있답니다.
재무실에가서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해인사는 신도관리를 전혀 안하는것 같더군요..
모르는 사람들은 해인사가 큰 부자절이라고 하지만 실상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부자절만은 아닙니다..
해인사의 가장 큰 수입원은 역시 문화재 관람료입니다...문화재 관람료를 추측해 보면 일년에 15억정도 되리라 예상합니다.
그 다음의 수입원은 정부에서 보조하는 문화재 관리 보수비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다른 곳으로 바꿔 쓸수 없으니 살림에 도움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불전일텐데요,,,,과연 불전이 얼마나 나올지는 저도 궁금합니다.
해인사는 월급받는 직원이 60명이랍니다.
그중에 스님들을 빼면 40명정도 된다네요..
월보시로만 매월 1억 5천만원이 지출된답니다...
전기세나 식재료비, 기름값 같은 운영자금,,,100명정도되는 스님들복리후생비까지 생각한다면.....
하여간 비용의 문제보다도 부처님 말씀을 전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누히 강조 했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부처님 말씀같은 이치에 합당에고 자비로우며 평등한 가르침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합니다.
개인의 행복도 부처님 말씀을 알기전과 후의 행복도가 훨씬큽니다.
실생활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처님 말씀을 전법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는 해인사에세 포교에 신경쓰고 있다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마음 같아선 해인사의 총무나 재무는 안시켜 줄꺼고 포교국장이라도 해서 포교의 새로운 장을 열까하는 욕망도 생깁니다만 황룡사에 매인 몸이다보니 황룡사에 집중해야죠.,.
여기서도 포교하기 쉽지 않으니 해인사에 가도 아직은 힘을 못쓸 것입니다.
또 생각해보면 해인사도 포교의 최적지라고 할수 있지만 황룡사도 시내 한가운데에 있으니 포교의 최적지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기 나름대로 포교를 해야겠죠..
하여간 해인사는 무척 안타깝습니다.
스님들도 많고 땅도 넓고 세계문화유산도 있고...
천혜의 장소지만 현재와같은 운영체제라면 앞으로도 변하기 어렵겠죠..
보통 조계종 절들은 4년에 한번씩 주지가 바뀝니다.
개인 사설사암은 창건주가 평생을 주지를 할수 있지만 공찰은 4년마다 임명장을 받아야합니다.
전통사찰은 재임과 3임까지는 힘을 많이 써서 할수 있지만 그이상은 어렵고 대체로 4년인 한만기만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큰절은 거의 4년만하고 다른 스님으로 바통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지가 바뀌면 주지이하 모든 사람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무소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다시피 4년은 금방갑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4년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공심으로 잘하는 경우에는 10여년동안 지속적으로 한다면 엄청난 이익이 있겠죠./.
하지만 그런 제도가 될때는 그런 나름대로의 부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하여간 그와같은 풍토때문에 포교엔 무관심하고 어떤일도 안하려고하는 풍조가 생기고, 사설사암을 만들려고 합니다.
스님들 복지는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고요...
해인사도 마찬가지여서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럴때 다른 종교와 다른 종단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천태종의 절들은 신도들이 절을 다 운영한다고 하더군요...
우리 황룡사도 신도들이 운영한다면 좀 다를까요?
하여간 해인사는 좀 거시기하니까 저는 그냥 황룡사에서 포교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지묵스님과 이야기하다보니 8시가 다되가서 우리 학생들이 자고 있는 해인초등학교에 돌아갔습니다..
학생들은 이미 일어나서 밥한다고 밖에 나와서 분주히 준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빗줄기가 한방을 두방을 떨어지더니 점점 양이 많이 집니다.
가만보니 금방 그칠비가 아닙니다.
학생들을 모두 불러내려 빨리 텐트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중엔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뺀질한 학생도 있네요.
열심히 한다해도 동작이 빠르거나 야무지지 못합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거 같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틍해 일에대한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법을 익혀야 성인이 되서도 일할줄 알게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절에 아무것도 안하고 공부만 한다면 성인이되서 형광등도 갈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이 되기 쉽니다....
아~~11 이 텐트는 비를 맞히면 나중에 다시 꺼내서 씻어 말리고 다시 넣야느네...11동이나 되는 엄청난 양을 어떻게 하죠?
옷을 다 적셔가며 겨우겨우 텐트를 다 걷었습다..
이동립거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렇게 빨리 텐틀를 걷지 못했을 것입니다.
텐트를 다 걷고 아침을 먹고는 학생들과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본래는 매화산엘 가려 했으나 비가오는 바람에 매화산은 포기하고 가야산 둘레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박물관으로 해서 금선암 원당암 홍제암, 장경각을 거쳐 운동장, 돛대, 지족암 백련암으로 해서 해인초등학교에 이르는 길로 선회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계획은 다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
극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우리가 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지원해주시더군요..
아이들에게 빵과 우유도 지급해 주셨습니다.
박물관 앞에서 빵과 우유를 받고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직원들은 본래 매화산엘 같이 오르면서 우리를 보이콧 해주기로 하였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일정이 변경되어서 일부구간만 보이콧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금선암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보통 관광객은 다니지 않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길도 좋고 경치도 아름답습니다...
금선암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그야말로 신선이 사는 듯한 경지입니다.
그래서 금선(金仙)암이라고 했나봅니다.
과거에 비해서 금선암도 많이 달라 졌더군요..
불사를 깨끗하게 잘 해놓았더라구요....
금선암에서 원당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당암은 김수로 왕의 부인 허황옥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김수로왕과 허황옥과의 인연을 살펴볼까요?
김수로왕과 허황후 로맨스.
허황후는 인도 공주로서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는 훗날, 칠불사에서 성불한 7 왕자의 어머니이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첫 만남에 관한 전설이 참 흥미롭다.
가락 기원 7년(서기48년) 7월 27일. 9간 대표들이 왕께 조알
"대왕께서 강림하신 이래로 아직 좋은 배필을 구하시지 못하였으니
신들의 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처녀를 간택하여 왕비로 삼으소서"
"짐이 이곳에 온 것은 하늘의 명령 이거니와
짐에게 짝을 짓는 것 역시 하늘이 명할 것인즉
경들은 염려마오." 그런 어느날 왕이 유천간에게 命.
작은 배와 말을 끌고 망산도에가서 망을 보게하시고
신귀간에게는 승점으로 나아가 기다리도록 이르셨을 때
마침 가락국 앞 서남쪽 바다에 배 한척이 달려오고 있었다.
망산도의 유천간이 횃불로 신호를 올리자
그 배는 미끄러지듯 부인당으로 들어왔다.
경남 창원군 웅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
그 항구로 들어와서 배가 정박하였다고 한다.
그 배에는 공주 (公主) 한 분과 시종 20 인이 타고 있었다.
신귀간이 이 광경을 보고 대궐로 달려가 대왕께 아뢰었다.
대왕은 흡족히 여기고 그 일행을 대궐로 모셔오도록 했다.
9간 대표들이 대궐로 모시려 할때 공주께서 말씀하시길
"나와 그대들은 초면인데 어찌 경솔히 따라가리오"
천간이 돌아와서 공주의 말씀을 아뢰니
대왕께서도 옳게 여기시고 유사를 데리고
대궐에서 서남쪽 6십리쯤 산기슭에 나아가
임금의 임시거처인 장막을 치고 몸소 영접했다.
공주는 별포나루에 배를 대고 언덕에 올라
비단 치마를 벗어 산신에게 예물로 바쳤다.
공주를 시종해 온 신하와 노비는 20 여 명
비단과 의상 금은주옥 패물 등등이 많았다.
공주는 대왕이 계신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대왕은 정중히 맞아 함께 장막궁전으로 드시었다.
공주를 시종해온 사람들은 대왕을 뵙고 곧 물러갔다.
대왕은 공주의 시종들에게 방 하나 씩 주도록 명령했다.
그 이하 노비들에게는 한 방에 5, 6명씩 들게하고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로 만든 술을 나눠주고
무늬와 채색이 감도는 잠자리에서 잘 수 있게 했다.
그뿐 아니라 비단과 보화까지 주고 군졸들로 하여금 보호.
그리고 나서 함께 침전에 드시니 공주께서 말문을 여셨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皇玉), 나이는 16세."
"제가 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말씀하시길"
"어젯밤 꿈에 황천상제를 뵈었는데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에서 내리신 왕.
성스러운 사람이니 공주와 짝을 짓도록 하라"
"그런 말씀을 남기고 다시 하늘로 오르셨다 합니다.
꿈에서 깬 뒤에도 생생하니 그곳으로 떠나라는 말씀.
하여, 배 타고 신선이 사는 곳에 있는 좋은 과일를 갖고
이곳에 찾아 오느라 이제야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왕에게 '3천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를 선물로 내놓았다.
대왕 또한 공주의 말을 듣고 나서 조용히 응답하여 말씀 하시기를
"나는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알고 있었다오.
그래서, 지금까지 왕비를 맞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 현숙산 공주가 스스로 오셨으니 행복하오"
두 사람은 장막에서 두 밤 하루 낮을 함께 지냈다.
그리고는 왕후가 타고온 배의 15 사공에게 각각 선물.
쌀 10석과 비단 30필을 주어 그 노고를 치하한 연후에
아와타국으로 돌려 보내셨으니 8 월 1일 아침의 일이었다.
대왕과 왕후는 그제서야 신하를 좌우에 거느리시고
수레를 타고 본궁으로 돌아와서 두분이 힘을 합하여
금관가야의 정사를 펴게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셨다.
가락 기원 148년(서기189년) 3월1일
왕후께서 붕어하시니 향년 157세였다.
온나라 백성들은 어머니를 잃은 듯 슬퍼했으며
금관성 서북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 지내고
능의 이름을 후능 (后陵)이라 칭했다고 전해온다.
그리고, 왕후가 가락국에 처음 상륙한 나루.. '주포촌'
바단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예물로 받친 언덕.. 능현,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들어온 바닷가.. '기출변'(旗出邊)
왕후를 따라온 신하 천부경 (泉府卿) 신보(申輔)
종정감(宗正監) 조광(趙匡). 30 년을 살다가 죽고
나머지 노비들도 고향을 그리워하다 모두 죽으니
그들이 살던 빈관(賓館)은 텅 빈채 아무도 없었다.
대왕은 왕후가 죽자 외로움을 달래며 슬퍼하다가
그로부터 10년 후 가락기원 158년에 붕어하셨다.
서기199 년 3월 23일로 재왕위 121년
재태왕위 (在太王位)38년 수(壽) 158년.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부모를 여윈 듯이,
왕후가 붕어했을 때보다 더욱 비통해 했다.
대궐 동북방 평지에 빈궁을 축조.. 수로왕묘.
아드님 거등왕에서부터 9대 손양왕에 이르기까지
이묘(廟)에 제향을 올렸는데 매년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에 제물로 제사를 올렸다.
김수로왕과 허왕후(許王后)는 10남 2녀를 낳았다.
맏아들은 제 2 대 임금이신 거등왕,
차남은 거칠군으로서 3남과 같이 허씨.
어머니 성씨를 받았고, 7 왕자는 칠불사.
장녀 영안공주는 태사 배열문에게 출가했고
둘째 공주는 신라의 석 태자비가 되었다 한다.
- 김해 김씨 족보에서 발췌 -
이 원당에서 7명의 왕자들이 수행을 하였답니다.
그리고 허황옥은 아들들이 그리워 한번씩 찾아 왔는데 수행에 방해될까봐 아들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해인사 일주문 옆에 있는 영지에서 아들들이 좌선하고 있는 모습이 비친것만 보고 갔다고합니다..
원당암은 해인사에서도 도량좋기로 유명합니다.
뒷쪽의 주령은 가야산으로부터 용처럼 굽이치며 둘레치며 내려와 꼿힌 자리이며 정면에는 장경판전과 선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정상과 해인사 뒷 능선들이 이어진 장관을 볼수 있습니다..
팀별 사진입니다....
팀별사진중에 엘티이 팀이 젤 이뿌죠?
법당앞 탑앞에서 합장 반배하는 엘티이 팀입니다..
이렇게 하면 점수 엄청 올라가죠잉~~ㅋㅋㅋ
모든 청소년들을 모아놓고 법당앞에서 선배들의 수능고득점합격과 자신들의 학업성취를 위해 잠깐 기도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하였죠..ㅋㅋ
홍제암 법당앞에서도 삼귀의를 하였습니다...ㅋㅋ
참으로 아름답죠? 해인사를 가도 이곳을 오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아는 사람만 가는 곳입니다...ㅋㅋㅋ
원당암을 거쳐 홍제암으로해서 큰절에 갔습니다.
큰절 마당에는 법성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법성도를 돌면 업장이 소멸되고 소원이 성취된다하니 우리 학생들도 함께 돌았습니다.
돌기전에 앞면에는 법성게, 뒷면에는 소원성취 쓰는 종이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것을 하나씩 사주고는 모두 소원을 적게 했습니다.
하나에 천원인데 제가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사주었던 것입니다..
더 큰 이유는 소원지에 법성게가 쓰여져 있으니 법성도를 돌대 법성게를 외우면서 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학생들에게 소원을 쓰게한후 함께 법성게를 외우며 돌았습니다.
열심히 따라 읽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두리번두리번대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학생들이 미래에 항상 부처님 가피받으며 살길 축원합니다...
법성도를 돌고 대웅전엘 참배하였습니다.
먼저 삼배를 드리고는 10분동안 명상을 하였습니다..
23명의 아이들이지만 해인사 대적광전의 반쪽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적광전에서 이렇게 명상을 하도록 인연을 짓게하니 감개무량하더군요...
이번 캠프에서 가장 뜻깊은 일입니다..
10분간 명상을 하고는 21배 절을 했습니다.
108배를 했다간 그 원성을 감당하기 힘들것 같아서 많이 줄여서 21배를 했던 것입니다.
처음엔 이렇게 하다가 다음캠프 때는 108배를 시킬 것입니다.,..ㅋㅋ
팔만대장경을 참배하고는 내려가다가 지묵스님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피자사달라고 말했는데 잊지 않고 30만원을 주면서 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 먹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환호의 박수를 쳤습니다...
이번 켐프동안 학생들은 정말 잘먹었습니다..비록 식사의 반찬은 부실했지만 피자와 치킨, 아이스크림, 수박, 유부초밥 등등
나중에 절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힘들었냐고 물어보니 크게 대답하는 학생은 없고 재미있었야고 물으니 다들 엄청 큰 소리라 재미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방학이 끝나기전 또다시 1박2일을 갔다오자는데요....
108배를 시킬것을 그랬나?....그랬다면?
걷는거 빼고는 다 재미있었답니다..
학생들에게 말하는 스님이 지묵스님입니다...
해인사 운동장에가서 점심도시락을 까먹었습니다.
점심도시락은 학생들이 직접싼 주먹밥입니다...
자기들끼리 먹으면서 맛없다고 말하네요..
전쟁때는 이렇게 주먹밥을 해먹었을거라고 말하고요.
학생들이 수다떠는 것을 들으면 참 재미 있습니다..
재치있는 말도 많이하고 새롭바뀐 신종어들도 많이합니다..
남학생들은 축구를 정말 좋아하더군요..
걸을때는 죽겠다고 난리더니 공을 따라다닐때는 날렵하게 잘 뜁니다.
좀전까지만 해도 힘이 없다고 하던아이들입니다.
공차다가 부딫혀서 엄청뒹굴었는데도 즉시에 툭툭 털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서 공을 쫓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등산하다 뒹굴면 죽는시늉을 다하면서요.....ㅠㅠ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그런가봅니다...
어느덧 시간이 되서 다시 초등학교로 갈 시간입니다...
이제는 짐정리를 해서 울산으로 돌아와야죠..
4시쯤에부터 짐 정리를 해서 1시간정도 했습니다.
3일동안 강당과 화장실을 정말 더럽게 쓰면서 이것을 어떻게 청소할까 엄둑 안났는데 막상하니까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의 모습으로 변하더군요...
보살님들의 도움이 컷습니다...
쓰레기도 엄청났는데 부지런하고 성품좋은 학생들이 쓰레기를 멀리까지 운반해서 버려주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너무도 착한거 같아요....
마지막 정리를 다하고 나는 봉고차를 운전하고 봉고차는 학생네명과 보살님 두분이 타고 나중엔 저기보이는 저 버스에 다 탓습니다..
5시반 정도에 출발하였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군요..
울산에 도착하니 9시입니다.. 중간에 차가 좀 막혔습니다.
그야말로 3일 꽉채워서 활동하였습니다...
울산에 돌아와 저학년학생은 바로 보내고 고학년학생들은 남아서 짐정리를하고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기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지도교사에게 강의도 받고요...
열시가 다되서 헤어지는데 아 이놈들이 집에 안가려합니다.
서로 껴안고 헤어질줄 모릅니다..
일주일 후엔 또 볼놈들인데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운지 떨어질줄 모르더군요.
3일잠낮을 합숙하며 많이 친해졌나봅니다...
낮에는 힘들게 걷고 밥에는 밤새는줄 모르게 수다떨게 게임하더니......ㅋㅋ
뭐 저는 외롭던걸요..
아이들과 섞일수도, 봉사자들과도 섞일수도 없습니다., 저렇게 재미있었어도 스님과는 다르니까요..
하지만 그런 것과는 또다른 것이 있으니 고독함보다는 잔잔한 감동으로 삼일간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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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훌륭하시고 대단하신 주지스님과 다보행샘입니다~~!!
오늘따라 대적광전이 더 거룩해 보이네요.
알진프로그램으로 학생들 힐링이 잘 됐으리라 의심치 않습니당^^
결코 쉽지 않은 캠프인데...님들의 원력에 힘입어서~~!!
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 _()_
ㅎ 참고로 원찰스님의 출가본사가 금선암인지라 덕분에 그 청아한 길도 거닐어보았습니다~~^^
스님,
거듭 수고가 많으십니다.
황룡사 아이들은 분명 축복받은 아이들입니다.
스님의 글은 어떤땐 국사 교과서, 어떤땐 수필집, 어떤땐 논평을 해 놓아
읽으면 정말 재밌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
스님...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부터 큰 가르침 까지 글을 읽으면서 스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네요.
우리 아이들 평생을 담고 갈 뜻깊은 3일 이었을 거 같습니다. 제게도 간접적으로 이런 벅찬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