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오후반 이 현 자
입춘에 비가 내려 촉촉한 대지는 보이지 않는 태동으로 꿈틀거린다. 해마다 이맘때면 처음인 것처럼 새싹은 움트며, 단물이 흐르는 나무의 줄기는 통통해지고 뿌리는 생명을 지탱하려고 땅을 더욱 깊이 움켜잡는다. 발길을 디딜 때마다 저 땅속 기운이 전해져 오는 것 같은데 그녀의 손은 한겨울처럼 차기만 하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지고, 뭉툭한 엄지손가락과 도톰한 손은 부지런히 일할 운명이라고, 여고 시절부터 나는 그녀를 어지간히도 놀렸었다. 종달새처럼 목소리가 명랑한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도 여전하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는 이제 내겐 예전처럼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웃음 끝에는 일상과 몸의 변화를 끌어안으려는 몸부림이 섞인 듯하다. 그녀는 조금씩 엄습해오던 병마를 진통제로 버티며 집 안팎으로 맑고 명랑한 기운을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던 사람이었다.
봄빛 가득한 어느 날, 일하다가 주변 동료들의 이름과 사무실에 왜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나 어떡하지”를 연신 해대며 내가 일하는 의원으로 진료받으러 오겠다고 알려 왔다. 그런 그녀의 전화 목소리는 평소 냉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히 와서는 이것저것 검사받았지만, 다시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그녀는 의사의 의뢰서와 CT 영상물을 챙겨서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직장에서 두 시간 외출을 받고 나왔다는 그녀에게, 큰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더디 가는 나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몇 시간이 흘러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침은 바짝 마르고 온갖 상상으로 마음이 불안해져 왔다.
꼬박 이틀이 지나서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제야 일반병실로 옮겼다며 그동안의 일을 들려주었다. 그간 겪었던 두통과 어지러움, 급작스레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은 뇌경색 전조 증상이었다. 다행히도 빨리 내원해 응급조치했던 바람에 좋지 않은 상황은 피해 갔단다. 신장에 이상이 생겨서 온 증상이라 보름 동안 재입원해서 힘겨운 정밀 검사를 받다가, 또다시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신장이식을 해야 하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 잠깐 진료 받으러 나왔던 시간이,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될 줄 짐작이나 했던가! 집 안팎으로 잘하려고 애쓰던 시간에서 얻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약으로 달래던 것이 신장을 상하게 했으리라.
생기 가득한 봄날에 받아들여야 하는 진단은, 아침이면 단장하고 출근하며 주말에는 운동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던 평범한 일상 대신 생명 줄처럼 뱃속으로 통하는 관을 삽입하게 되었다. 신장이식 대신 집에서 밤새도록 해야 하는 복막 투석을 선택했다. 가족들 신장도 내 것도 받지 않겠다고, 살아있는 생명의 것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아무도 꺾지 못했다. 몸속으로 들어가는 맑은 수액만이 그녀의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방편이 되었다. 투석 액에 섞여 나오는 수분과 노폐물 속에는 지쳤던 마음과 새 삶에 대한 갈망, 주변의 모든 생명을 지키려는 그녀의 고집이 진하게 섞여 있을 것이다.
절기에 다다라 봄이 되면 마치 처음인 듯 만물이 소생하는데, 그녀의 몸과 마음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가볍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 욕심일까? 한 사람 살리기 위해서 살아있는 남의 몸을 건드릴 수 없다고 의연하게 하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만해(萬海)는 시에서 ‘꽃은 떨어지는 향기가 아름답고, 해는 지는 빛이 아름답다’고 했다. 이렇듯 꽃은 화려함을 다하고 나면 소멸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열매가 되고 빛이 기울면 깊은 밤 달빛은 온 세상을 가만히 채운다. 이처럼 그녀는 생의 끈을 꼭 잡고 더욱 단단해 지리라. 차디찬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이 기어코 꽃을 피우고 잎을 내는 것처럼 뱃속으로 연결한 관과 수액 주머니는 그녀의 생명을 희망의 봄처럼 지켜주고 있다.
봄은 어김없이 와서 대지의 생명을 틔우고 가버리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놓고 새 삶을 찾아 나섰다. 이 계절과 더불어 미뤄둔 공부에 도전한 그녀는 그 동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내 옆에 와서는 꽃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