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마지막 날) 설교 2021년 12월 31일
요한 1:1-18. 1요한 2:18-21
우리가 받은 유산
요한복음은 그 첫머리에 아주 장엄한 어조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혜를 받고 또 받았다.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라고 전합니다.
전통, 혈연, 관습....
우리 모두는 대를 거슬러 올라가 무엇인가를 유산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대의 유산이 어찌되었든 우리 안에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오래된 전통과 습관을 그저 낡고 고루한 사고방식으로 치부하고
무조건 무시하려는 행위는 성급한 마음일 것입니다.
반대로 분명히 변해야 하는 것들조차도 지키려고만 하는 행위 역시
공감을 얻어내기에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받은 유산을 어떻게 지키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며 혁신해 나가야 하는지는
아주 오랫동안 교회 안에 있었던 고민거리이고 논쟁거리였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사막에서의 고난의 행군 기간에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너희가 내가 내린 계명을 지킨다면,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인 최소한의 지침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지극한 신뢰는 지금 여기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심을 진심으로 믿기에
우리 사람 역시 하느님에 대한 신뢰의 행위를 마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과 나, 나와 우리 간에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하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율법의 기본 정신은 완전히 없어지고
드러나는 행위만 남은 것이죠.
예수님 시대로 오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다 지킬 수 없을 만큼의 조항들로
가득 찬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의인과 죄인을 나누는 기준점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신 것이고요.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죽임까지 당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묵상합니다.
율법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고 억지로 해석한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음을
요한은 선포합니다.
그것은 ‘진리와 은총’입니다.
기본이 튼실해야만 창의적인 상상과 인식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은총과 진리 이전에 율법이 있듯이,
우리 신앙의 기본과 의무가 있어야 은총과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올 한해 우리 가운데 있었고 지금도 우리를 받쳐주는 은총과 진리가 무엇이었는지 묵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성찰해 봅니다.
다시 새해가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안정적인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기운을 누리기를 소망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이때, 진심을 담아 인사를 드리는 것이 현명할 것 같네요.
참으로 힘들었던 올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