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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조치원(鳥致院)을 지나며/ 송유미
은하수 추천 0 조회 11 18.09.19 23: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치원(鳥致院)을 지나며/ 송유미

 

밤열차는 지금 조치원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조치원이 어딘가, 수첩 속의 지도를 펼쳐보니

지도 속의 도계와 시계, 함부로 그어 내린 경계선이

조치원을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둬놓고 있다

나는 문득 등짝을 후려치던 채찍자국을 지고

평생을 떠돌던 땅속으로 들어가서

한 점 흙이 되어 누운 대동여지도 고산자를 생각한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사나이, 그가

살아서 꿈 꾼 지도 속의 세상과

죽어서 꿈 꾼 지도 밖의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몇 달째 가뭄 끝에 지금은 밤비가 내리고

논바닥처럼 갈라진 모든 경계선을 핥으며

비에 젖은 풀잎들이 스적스적 일어서고

나는 불우했던 한 사내의 비애와

상처를 품고 앓아 누운 땅들을 생각한다

대숲이나 참억새의 군락처럼, 그어질 때마다 거듭

지워지면서 출렁이는 경계선을 생각한다

납탄처럼 조치원 역에 박힌 열차는 지금

빗물에 말갛게 씻긴 새울음 소리 하나를 듣고 있는 중이다

 

-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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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치원은 충청지역의 중앙에 위치하여 각 지역과 국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변을 경부고속도로가 지나 예나 지금이나 교통의 요지이다. 조치원이란 지명은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기 시작한 조선 초기 역원제도에서 비롯하였다. 주요 도로를 따라서 숙박과 교통기능 중심으로 형성된 취락을 말하며, ‘원’에서는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 전달, 지방 파견, 출장 등을 위해 길 떠난 관리와 상인들에게 주로 숙식을 제공하였다. 조선전기에 원은 주요도로상에서 약 30리 간격으로 분포하였으나 지형 조건에 따라 평지에서는 간격이 조금 길고, 험한 산지에서는 짧았다. 파발제가 생기면서 임진왜란 이후 원은 거의 폐지되었고 사리원(현재 황해북도의 도청 소재지), 장호원, 이태원 같은 몇몇 지명만 그 흔적으로 남았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세기 이래로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른 군사적인 목적과 지방통치를 위한 행정적인 요구로 다양한 형태의 지도들이 제작되었고, 제작기술 또한 크게 발전하였다. 대항해시대 때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지도제작 붐이 제작기술과 함께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도 전해졌던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김정호는 꼼꼼한 실사와 정밀한 검증을 거쳐 철종 때인 1861년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씩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별 동서 80리 간격의 총 22첩으로 구성된 목판본 지도이다. 이를 펼치면 세로 6.7m 가로 3.8m 크기의 초대형 전국지도가 된다. 다양한 인문지리 정보와 함께 11,500개의 지명이 수록된 이 지도는 명실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완전체 지도라 하겠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로 준비해간 대동여지도(가로 420㎝ × 세로 930㎝)는 그 영인본이다. 22책으로 이어진 지도를 하나로 연결해 완성한 것으로 오동나무 보관함과 함께 북한에 건네졌다. 이어진 길을 따라 자유로운 왕래를 통해 교류 협력을 증진하고, 번영과 평화를 이루자는 의미를 담아 휴전선이 그어져있지 않은 완전체 지도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고산자가 그랬듯이 산 넘고 물 건너 백두에서 한라까지 험한 길 마다않고 부르튼 발로 지도를 완성해내고 싶은 것이다. 가다가 정 힘들면 조치원 같은 ‘원’에서 잠시 쉬어는 갈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사나이’ 고산자는 ‘살아서 꿈 꾼 지도 속의 세상과 죽어서 꿈 꾼 지도 밖의 세상’이 다를지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 속 세상은 살아서 다르지 않으며 달라져서도 안 된다.


남북 정상 간의 깜짝 놀랄만한 합의내용들로 미뤄보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대동여지도를 보면서 우리 국토의 동맥 속으로 흐르는 민족의 뜨거운 피를 다시금 느낀다. 12년 전 금강산 말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북녘의 땅들이 꿈틀거린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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