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김홍도 풍속도 재현부터 호피장막도까지… 제천시민회관서 생애 첫 개인전 ㅣ도록 디자인부터 전시 공간 구성까지 작가의 남다른 열정 담아 ㅣ 전통 바림 기법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독창적 민화 세계
탁선희 작가
탁선희 작가가 20년 민화 화업을 집대성한 생애 첫 개인전 ‘SUNNY DAY’를 충북 제천시 의림대로 125, 제천문화원(중앙로2가) 제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7월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다져온 정통 기법에 작가만의 시각과 상상력을 덧입힌 20여 점의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다. 도록 디자인과 전시실 공간 배치까지 작가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남다른 열의를 쏟아부었다.
■ 예순에 낸 용기, 결실을 맺다
전시회 ‘Sunny Day’ 포스터
민화를 시작한 지 20년째를 맞이한 탁선희 작가는 그동안 단체전에 꾸준히 참여해 왔으나 개인전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담감으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예순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며 이제는 나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는 용기를 얻어 지난해부터 차분히 개인전을 준비했다.
전시장에는 초창기 작품부터 10년 이내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최근작까지 총 20여 점이 걸려 작가의 궤적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 6개월간 매달려 완성한 생동감 넘치는 풍속도
김홍도 풍속도(사람 사는 풍경)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역작은 김홍도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8폭 병풍 ‘사람 사는 풍경(풍속도)’이다.
완성에만 6개월 이상이 소요된 이 작품은 인물 하나하나의 생생한 표정 묘사와 굵기를 달리한 정교한 선 처리가 단연 돋보인다.
작가는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올리고 바림 작업 역시 서너 번씩 반복하는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색과 세밀한 명암 표현으로 인물들의 생동감을 극대화했다.
기존 지역 내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김홍도 풍속도의 깊은 색감을 완성도 높게 재현해 내며 관람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 바림 기법으로 살려낸 입체감과 생동감의 화법
탁 작가 화풍의 핵심은 먹과 색의 농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바림’ 기법에 있다. 바림은 색을 점차 진하거나 옅게 변화시키며 칠해 대상에 입체감과 생동감을 더하는 전통 채색 기법이다. 꽃잎의 부드러운 결이나 잎사귀의 음양, 동물 털의 사실적인 질감과 자연스러운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연꽃이 피는 시간 꽃을 담는 날
이러한 기법이 잘 드러난 대표작은 ‘연꽃이 피는 시간’이다. 이 작품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맑은 색의 바림으로 연꽃이 부드럽게 피어난 듯한 깊이감을 표현해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번째 대표작인 ‘꽃을 담은 날’ 역시 나비의 배치를 새롭게 구상하고, 다양한 색을 조색해 단계별로 미세한 색감 차이를 부여하며 정교한 바림의 멋을 보여준다.
■ 전통의 틀을 깬 스토리텔링과 상상력 넘치는 새로운 시도
전통의 기본을 엄격히 고수하면서도 화폭 속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미한 스토리텔링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호피장막도(호랑이와 책방)
책거리 지역 작가들이 쉽게 시도하지 않던 난이도 높은 제재인 ‘호피장막도(호랑이와 책방)’는 작가의 정성과집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원본에서 희미하거나 구도가 흐릿했던 부분들을 작가만의 감각으로 다듬어 선의 굵기와 기물 배치를 균형 있게 재구성하고, 전체적인 색조 톤을 섬세하게 조율해 작품의 격조를 완성했다.
‘책거리’ 역시 전통을 유지하며 작가만의 독창적인 시도가 집약된 작품이다. 기존 밑그림에는 서찰과 봉투의 형태만 남아 있어 관습적으로 여백 처리되곤 했으나, 작가는 캘리그래피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정성 어린 한글 글씨를 기입하며 작품에 생생한 서사성을 불어넣었다. 아울러 무늬가 없던 전통 복식과 기물에 섬세한 문양을 직접 새겨 넣고 금분과 은분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화려함과 완성도를 극대화했다.
미인도(외출) 금강산 호랑이 화접도
‘미인도(외출)’에서는 여백을 강조하던 전통적 틀에서 벗어나 새를 추가해 외출의 설렘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금강산 호랑이’는 원본의 정적인 구도를 재해석해 호랑이들이 뛰노는 화사한 봄날의 풍경을 담았으며, ‘화접도’는 종이 대신 모시천에 나비를 그린 뒤 비로드 천을 덧대 바람에 날아가는 듯한 입체감을 더했다.
이외에도 왕권의 영원함과 나라의 번영, 우주의 조화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 부귀영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모란도>, 사랑과 부부화합,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화접도>, 장수와 강인한 생명력, 이상향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금강산도>, 청정함과 고결함, 다산과 출세를 상징하는 <연화도>, 장수와 건강, 평안과 절개를 기원하는 <송학도> 등 길상의 의미를 담은 다양한 민화를 통해 작가의 정성과 예술적 감성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들에게 감상 포인트를 직접 설명하며 소통해 온 작가는, 앞으로도 민화지도사로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전통을 고수하면서 작가만의 생각을 화폭에 넣는 상상력 넘치는 시도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 민화로 기록한 삶의 소회
탁선희 작가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전시명 ‘Sunny Day’는 예명 sunny로 살아온 저에게 이번 개인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지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는 작은 잔치이자 민화와 함께 걸어온 스무 해의 시간을 나누는 자리”라고 밝혔다.
이어 “민화를 처음 만난 이후 옛사람들이 꿈꾸었던 길상과 행복의 이야기를 그림 속에 담아 왔다”며 “그렇게 한 장 한 장 쌓인 그림들은 어느새 제 삶의 기록이 됐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전시작에 대해 “호피장막도, 연화도, 금강산 호랑이를 비롯한 스무 점의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지나온 계절과 마음, 그리고 소중한 시간의 흔적”이라며 “때로는 설렘으로, 때로는 인내로 완성된 그림들은 인생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돌이켜본 60년 세월에 대해서는 “참으로 눈부신 햇살 같은 날들이었다”며 “기쁜 날도 있었고 힘든 날도 있었지만, 민화는 언제나 제 곁에서 삶을 따뜻하게 비추어 주었다”고 회상했다.
끝으로 작가는 “‘Sunny Day’는 오늘의 좋은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날들을 향한 소망이기도 하다”며 “화려한 민화의 색채처럼 밝고 따뜻하게, 꽃이 피어나듯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 작가 약력
탁선희 작가는 한국민화교육협회 민화지도사 1급 자격을 취득하고 사단법인 한국민화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26년까지 제천·단양 민예총 전통미술위원회 회원전과 지역문화예술단체 육성화 지원사업 민화전(2023~2026)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월간미술 세계창간 31주년 신년 특집 특별기획전 및 한국민화뮤지엄 개관기념 특별전(2015)에 작품을 출품했다.
또한 2025년 충북민예총 제천단양지부 교토·오사카 국제교류전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