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산행 세미르포 | 진도 여귀산] 바다 위에 쌓은 자연 성곽을 걷는 듯
월간산 기사 입력일 : 2018.04.12.
여귀산 주차장~작은여귀산~여귀산~안부~사슴목장 5km 원점회귀 코스
남도의 섬 산은 봄이 일찌감치 찾아오는 근사한 산행지다.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온몸에 봄기운이 흠뻑 배도록 걷고 싶다면, 전남 진도의 여귀산女貴山(457m)이 안성맞춤이다.
진도珍島는 보배 진珍자를 쓴 섬답게 많은 귀한 것들을 품은 섬이다. 진돗개, 진도아리랑, 신비의 바닷길, 홍주 등 진도만이 가진 보배가 섬 곳곳에 널렸다. 여귀산이나 첨찰산, 동석산 또한 진도의 보물로 꼽을 수 있는 멋진 봉우리들이다. 산이 지닌 수려한 자태와 더불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풍광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귀산은 진도군이 첨찰산과 더불어 진도의 2대 명산으로 꼽는 산이다. 계집 여女자에 귀할 귀貴자를 쓴 산명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단순히 풀어서 보면 ‘귀한 여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산 이름이 그래서인지 이 산을 남쪽이나 북쪽에서 올려다 볼 때 정상과 작은여귀산으로 불리는 뾰족한 봉우리가 마치 여인의 젖무덤처럼 보인다. 한국지명사전에 따르면 ‘이 산은 조선조 때 봉수대가 있어서 해남 관두산 봉수를 받아 첨찰산 봉수에 응하였다’고 한다.
여귀산은 규모가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산행을 끝낼 수 있다. 남녘의 봄바람을 맞으며 한나절 가볍게 몸을 풀 만한 산행지다. 그러나 정상부가 돌출된 암봉으로 형성되어 있어 결코 만만치 않다. 정상 암봉을 오르는 계단길은 경사가 급해 체력이 약한 이들은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산정에 올라 조망하는 바다 풍광만큼은 최고다.
동백림과 암릉이 조화로운 산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읍까지 4차선 도로를 힘껏 달려온 뒤, 의신면 방면의 구불거리는 옛길을 통해 여귀산으로 접근했다. 아담한 섬 접도가 보이는 금갑해변을 거쳐 작은 고개를 넘어서니 ‘여귀산’이라쓴 갈색 팻말이 선 공용주차장이 보였다. 이곳에 차를 세운 뒤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를 따라 탑립관광농원의 사슴목장 동쪽 끝으로 이동하니 등산로 입구가 보였다.
여귀산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과 정상 1.9km라 쓰인 산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지만 눈앞에 솟은 거친 암봉의 위세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등산로 초입은 의외로 유순했다.
여귀산 산행에 동행한 목포의 해양레포츠 전문가 조원기씨는 “예전에 이곳은 사슴 배설물 때문에 냄새가 나서 코를 막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이제 목장이 문을 닫아 악취나 수질오염 문제가 해소됐다”고 말했다.
조씨와 함께 지금은 텅 빈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사슴목장 울타리 옆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산길은 짙은 동백림 사이로 파고들며 세상과 격리됐다. 하늘까지 가리는 빽빽한 난대상록수림으로 둘러싸인 등산로는 한낮에도 어둑어둑했다. 그래도 바닥에 깔린 붉은 동백꽃들이 안내등처럼 우리를 여귀산으로 이끌었다.
완만한 산길은 지능선 상 안부의 헬리포트로 이어졌다가 산비탈을 치고 올랐다. 15분 뒤 주능선의 작은 암부에 올라섰다. 여기서부터 줄곧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구경하며 산행할 수 있었다. 북서쪽으로 천천히 300m쯤 오르면 이윽고 암릉이 시작됐다. 별로 위험할 것 없는 순한 암릉이지만, 양쪽으로 아무 가린 것이 없어 조망이 탁월했다. 오른쪽은 진도의 산과 들이 펼쳐지고 왼쪽은 새파란 바다였다.
조씨는 “확실히 여귀산이 진도의 산 중에 바다 조망이 제일 좋은 것 같다”면서 “능선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암릉과 멀리 바다 풍경이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정상부의 거대한 암봉이 다가갈수록 점점 커졌다. 정상부 주변, 특히 남사면은 동백이 뒤덮다시피 하여 이른 봄이지만 푸른 기운이 산에 가득했다.
처음 올라서는 암봉은 작은여귀산이라고도 불리는 408m봉. 정상부가 널찍한 암반을 이루고 있어 쉬어가기 그만인 장소였다. 정상을 향해 암릉을 타고 가다보면 중간에 내려서기 다소 까다로운 곳도 나온다. 하지만 웬만한 구간은 계단이 설치되어 큰 어려움 없이 산행이 가능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소 급한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 암부 바로 밑에 도착했다.
10m쯤 되는 수직 절벽에 가파른 계단이 놓여 있었다. 마지막의 쇠사슬을 잡고 올라서면 평평한 정상 암부에 도착했다. 그 바로 위에 정상임을 알리는 작은 돌탑과 산불감시 시설물이 세워져 있었다. 남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진 평평한 바위지대에서 바람을 피하며 숨을 돌렸다. 정상 주변은 대나무가 무성하고, 그 너머 산기슭엔 남도국립국악원 건물이 내려다보였다.
조원기씨는 “이곳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더 이상 매력적인 봉우리가 없다”면서 “긴 산행을 원하면 상만리까지 능선을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거의가 여기서 되돌아선다”고 말했다.
그의 말 대로 정상에서 다시 주차장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계단을 타고 작은여귀산 직전의 안부로 내려선 다음 남쪽 계곡길로 탔다. 울창한 동백림 속으로 바윗돌이 드러난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간혹 숲이 터지며 시원스레 바다가 보이기도 했다. 계곡길은 탑립관광농원 서쪽 바로 옆의 공터로 이어지며 산행이 끝났다. 이렇게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는 5km 남짓에 3시간 정도 걸렸다.
명소
나절로 미술관 : 여귀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나절로 미술관은 한국화가 이상은씨가 폐교된 (구)상만초교를 개조해서 만든 미술관이다. 나절로는 “스스로 흥에 겨워 즐거움”이란 뜻으로 쓰는 전라도 사투리로 미술관을 지은 이상은 화가의 호이자 자유분방한 내면적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곳이란 뜻을 함유하고 있다.
5,000여 평의 대지 위에 마가렛 꽃 가득한 향기와 아름다운 정원, 전통 흙집으로 단장된 쉼터휴게실 등이 만들어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미술관에는 한국화 서양화, 조각 등 한국의 중진·중견 작가들의 작품과 나절로미술관장의 작품 등 2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미술품 구매도 가능하다. 이용시간 10:00~18:00. 입장료 성인 2000원, 초중고생 1,000원.
주소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대로 3886.
문의 061-543-8841.
교통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4회(07:55, 09:00, 15:30, 17:35) 운행하는 진도행 버스 이용. 요금 우등 3만4,600원. 4시간 40분 소요.
광주종합터미널에서 1일 11회(05:50~20:00) 운행하는 진도행 버스 이용. 요금 1만5,900원. 2시간 소요.
여귀산 산행기점인 여귀산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없다. 인근 국립남도국악원이나 탑립마을까지 버스가 다닌다. 진도공용터미널에서 1일 5회(06:40, 08:50, 11:50, 16:30, 18:40) 운행하는 탑립, 강계행 농어촌 버스 이용. 1시간 10분 소요. 요금 2400원.
승용차의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종점인 목포나들목에서 나와 시내를 통과한 뒤 영산호 하구둑과 영암방조제, 금호방조제를 지난다. 이후 77번국도를 타고 우수영을 지나 진도대교를 건넌다. 진도읍 입구의 남동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의신면을 거쳐 여귀산 주차장까지 약 17km 거리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숙식(지역번호 061)
진도읍내에 남강모텔(544-6300), 태평모텔(542-7000), 프린스모텔(542-2251), 대동모텔(543-5188) 등이 있다.
식사는 진도읍내에 있는 업소를 이용한다. 문화횟집(544-2649)은 진도 별미로 이름난 간재미(노랑가오리의 전라도 방언) 찜과 무침이 별미다.
진도군 여귀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