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야유회 산행 – 도봉산 오봉
도봉계곡
골이 안옥하매
해도 별양 다스하다
새로 드는
丹楓닢마다 밝안하고
바위도 히기도 히고
물은 몹시 프르다
―― 가람 이병기(嘉藍 李秉岐 金長好, 1891~1968), 「萬瀑洞」 3수 중 제1수
▶ 산행일시 : 2023년 8월 13일(일), 맑음
▶ 참석인원 : 15명(칼바위, 킬문, 덩달이, 더산, 표산, 수영, 캐이, 뭉실, 악수, 토요일, 히든피크, 술끊, 아사비,
바람부리, 축석령)
▶ 산행코스 : 도봉산역,구봉사,마당바위,관음암,도봉주릉,오봉능선,오봉,오봉샘,계곡,우이령길,우이령,우이동
※ 우이동, 교현리, 도봉산역 등 세 곳에서 출발하여 오봉 아래 계곡 모처에 모였다.
▶ 산행거리 : 도상 12.4km
▶ 산행시간 : 12시간
▶ 교 통 편 : 전철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6 : 30 – 도봉산역, 산행시작
06 : 55 – 광륜사
07 : 25 – 구봉사
08 : 15 – 마당바위
08 : 54 – 관음암
09 : 35 – 도봉주릉, 칼바위 아래
09 : 43 – 오봉능선
10 : 12 – 오봉
10 : 34 - 오봉샘
11 : 15 – 야유회 장소 도착, 물놀이( ~ 15 : 55)
17 : 48 – 우이령
18 : 30 – 우이동, 저녁, 해산
2. 도봉계곡
6. 구봉사 주변 계곡
매년 이맘때면 홀로산방에서 하계 야유회 산행을 간다. 무더운 여름날 하루 날 잡아 서울 근교의 물 좋은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자는 것이다. 제백사하고 동참한다. 주력부대는 우이동에 모여 우이암을 넘어가고, 나는 도봉산역에
서 오봉을 들렀다 가기로 한다. 산 욕심이라기보다는 술맛이 나려면 한바탕 산행으로 땀 좀 쏟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다. 새벽부터 서둔다. 05시 34분 우리 동네 첫 전철을 탄다.
도봉산 입구 가게들은 아침 일찍 문을 열었다. 편의점에 들러 내 먹을 술이려니 탁주를 평소보다 많은 세 병을 산다.
도봉산탐방지원센터 지나고 도봉계곡은 포말 이는 큰물이 흐른다. 계류 기웃거려 물 구경하며 간다. 녹야원 갈림길
지나고 고산앙지(高山仰止) 팻말을 들여다본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을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의
미라고 한다.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조광조(趙光祖)의 덕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으로 계곡 바위에 새겼다
는 글씨가 지금도 뚜렷하다.
시경에는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로 이어진다. 높은 산을 우러러 큰 길을 간다는 뜻이다.
끝에 붙은 두 개의 지(止)는 뜻이 없는 어조사다.
┫자 갈림길. 이정표에는 왼쪽은 구봉사, 송락사, 우이암으로 가고, 직진은 천축사, 자운봉으로 간다. 양쪽 다 마당
바위를 들를 수 있다. 이런 갈림길에 서면 망설여진다. 매월당 김시습의 「가현(椵峴)」에서처럼.
十年南北去 십 년 세월 남북으로 떠다녔건만
歧路正銷魂 갈림길에만 서면 애가 타네
서원교 건너 구봉사 쪽으로 간다. 그쪽 계류가 더 볼만할 것 같다. 서원교를 건너자마자 왼쪽 파고라 쉼터에 커피
자판기가 있다. 아이스커피도 나온다. 500원. 나로서는 뜻밖에 횡재한 셈이다. 아주 달콤하니 맛있다.
금강암 지나고 산모롱이 돌면서부터 계류는 여울 와폭의 연속이다. 장관이다. 등로에서 멀찍이 보다가 계류로 내려
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기도 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구봉사 주변이다. 이른 아침이라 물놀이 나온 사람도 없다.
구봉사 지나고 오른쪽 능선에 붙는다. 숲속에 드니 후덥지근하다. 세미클라이밍 바윗길 다 놔두고 잘난 등로로만 간
다. 마당바위 가기 전에 선인봉을 가장 잘 바라볼 수 있는 전망바위에 들른다. 능선 너머로 2단의 내리막에 자리 잡
은 너른 암반이다. 그런데 안개가 원경은 물론 지척도 가렸다. 오늘 새벽부터 서둔 뜻은 고지에 오르면 혹시 만경창
파 운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완전 글렀다. 햇살 비추면 스러질 안개가 아니다.
건너편 다락능선 은석봉(455m)이 그나마 실루엣으로 보인다. 예전 한때 짜릿한 손맛 보러 으레 냉골로 가서 은석암
을 지나 은석봉을 오르곤 했다. 그때 연만한 홀로 등산객을 만났다. 바윗길을 오르내리는 나에게 몇 가지 요령을
가르쳐주고 자기는 우회하였다. 퍽 재미있지요.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다오. 그런데 지금 남는 건 미끄러지고 떨어
지고 하여 골병뿐이라오. 내가 그 짝이 될까 경계한다.
암반에 앉아 안개가 조금이라도 걷히기 기다리며 탁주로 목 축이는데 모기떼가 몰려든다. 불과 한 잔 마시는 동안
대여섯 방은 물렸다. 마당바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앉자 있지 못하고 서성여야 한다. ┣자 갈림길.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오른쪽 신선봉과 자운봉으로 간다. 나는 직진하여 관음암 쪽으로 간다. 관음암 너머에 도봉산 암봉군을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바위가 있어서다. 산허리 돌아 실폭 흐르는 산모롱이 지나고 돌계단을 길게 오르면 관음
암이다.
9. 구봉사 주변 계곡
16. 은석봉
17. 선인봉
18. 은석봉
관음암 극락보전에서 읊는 독경소리가 낭랑하여 듣기 좋다. 마당 앞쪽 화단 비비추 꽃봉오리에 줄줄이 맺힌 물방울
을 본다. 문득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2023.3)가 생각났다. 그는 어릴 적 감나무에 맺혀 빛나는 물방울을
보고 “내 자신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해버릴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무심코 나무 끝에
달린 물방울을 자세히 보았더니 물방울 안에 나도 들어 있더라, 이 세계는 엄청난 세계로구나! 그렇게 느꼈다고 한
다. 아래 시는 그가 열 살 무렵에 생애 처음으로 쓴 시라고 한다.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빗방울 속에
다른 세상이 있다
雨のしずくに
景色が映っている
しずくのなかに
別の世界がある
그런가 하고 비비추에 맺힌 물방울을 찬찬히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겠다. 천불전 지나 바윗길
을 오르내린다. 쇠줄 달린 가파른 슬랩 오르면 그 왼쪽에 노송 드리운 너른 암반이 경점이다. 오늘은 무망이다. 에덴
동산도 안개에 가렸다. 안개가 점점 더 짙어진다. 그래도 칼바위능선은 실루엣이라도 볼 수 있을 것. 도봉주릉을 향
한다. 길게 돌아 가파른 사면 한 피치 오르면 칼바위 아래다. 추락위험지역 출입제한 안내판이 있다.
출입허용기준도 아울러 밝히고 있다.
1) 최소한 2인 이상의 일행으로 구성될 것.
2)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자일과 하강기를 휴대하며, 해당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것.
손맛만 다시고 칼바위 왼쪽 옆 등로로 간다. 데크계단 오르막 옆으로도 우회로가 있다.
올라선 오봉능선이 칼바위능선 전망바위에 너무 비켜나 있다. 철난간 붙잡고 슬랩 오른다. 등로를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난 되똑한 바위가 조금은 아슬아슬한 경점이다. 칼바위능선은 실루엣도 아름답다.
이제 당분간 사방 둘러 볼 것이 없다. 안개 덕분에 발품 던다. 오봉을 향하여 줄달음한다. 오봉샘 가는 ┫자 갈림길
지나 계단 오르고, 헬기장 지나 슬랩 밑을 돌아 오르면 오봉이다. 발아래 지척인 오봉 연봉도 안개로 흐릿하다.
야유회 목적지에 모이는 시간을 10시 30분에서 11시로 예정했다. 주력부대가 우이동에서 9시에 출발하여 우이암
남릉을 오르려면 그 시간쯤 걸린다. 오봉 앞으로 돌아 능선 따라 내리면서 오봉의 다른 모습들을 본다. 출입제한지
역에서 왼쪽으로 가파른 사면을 길게 내리면 오봉샘이다. 샘물이 넘쳐흐른다. 울퉁불퉁한 돌길 내리고 사면을 돌 때
부터는 오룩스 맵에 눈 박고 간다. 도봉주릉 오봉고개 가기 전에 지능선을 잡는다.
19.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우이암
20 관음암 가기 전 실폭포
21. 에덴동산은 안개에 가렸다.
22. 관음암 화단의 비비추
23. 도봉주릉 가는 길
24. 자주꿩의다리
25. 칼바위
27. 오봉
28. 오봉 앞모습
29. 오봉 3,4,5봉
머리 숙여 울창한 잡목 숲을 뚫는다. 인적은 물론 수적(獸跡)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을
걷어내기가 무척 성가시다. 성긴 잡목 숲 찾느라 온 산을 훑는다. 계곡 물소리에 이끌려 내린다. 이윽고 계곡에 다다
르고 계류 따라 내린다. 너덜이다. 절벽이 나오면 오른쪽 사면을 올라가서 돌아내리곤 한다. 목적지 도착시간 11시
15분이다. 아무도 없다. 일행들이 어디쯤 오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려고 해도 전화불통지역이니 속수무책이다.
10여분 기다리다(이런 때는 긴 시간이다) 내가 혹시 엉뚱한 데 있지나 않은지 내려가 본다. 일행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발걸음 멈추고 귀 기울려보면 여울 휘도는 물소리다. 목적지에서 상당히 내려왔다. 내게
야유회는 그른 일, 그냥 산이나 더 가자 하고 우이암 쪽 능선을 향하여 계곡을 벗어나려는데 더산 님이 뒤쪽에서
나를 부른다. 칼바위 님, 표산 님과 함께 교현리에서 오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중이었다.
작년에 놀았던 장소라며 깊은 소 곁의 암반에 자리를 잡고 짐을 푼다. 우선 물속에 들어 열기를 식히고 나서 둘러앉
아 대작한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는지 술이 몇 순배 돌아도 일행들은 오지 않는다. 오늘 행사의 주무인 칼바위 님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지도에 표시된 지점인 위쪽에 올라가 보고, 아래쪽 전화통화 가능지역까지 내려가 보기도 했
다. 여전히 일행들과 전화는 불통이고, 그들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 얼추 배도 부르고 얼근하게 취기도 오르고,
이번에는 더산 님이 계곡 위쪽을 더 수색하기로 하고, 30분이 지나도 자기가 오지 않으면 일행들과 함께 있는 줄 알
고 짐 싸서 올라오란다.
아무래도 우리가 장소를 잘못 안 것 같다. 위쪽으로 다 함께 가기로 한다. 다리 힘이 풀려 계곡의 너덜을 오르기가
무척 힘들다. 허방 디뎌 물에 첨벙 빠지고 나니 술기운이 다 달아나고 다시 땀을 쏟기 시작한다. Y자 계곡에서 왼쪽
을 한참 오르자 즐거운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리고,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말을 다 할까. 인사가 권주고
대작이다. 장진주사(將進酒辭)가 바로 우리의 노래다. 구운 고기는 라면 수프를 찍어 먹어야 맛있네, 대구 뽈찜은
와사비 간장을 찍어 먹어야 맛있네 하던 안주는 이미 동났지만, 분위기가 더 건 안주다.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기기에는 물살이 너무 세다. 그 대신 옥수 훑는 암반에 드러누우니 천연 물침대다. 모텔방
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두고두고 생각날 물침대다. 멀리 상장봉 능선이 유유하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롭
다. 4시간이 짧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골짜기를 벗어나자 하고 일어난다. 물속에 앉아있거나 누워 있을 때는 멀쩡하
더니만 일어나니 어지럽다. 계곡 너덜 지나고 잡목 숲 헤치고 가파른 사면 올라 우이령길 가는 길이 대단한 험로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넘어지고 기어간다.
우이령 길에 올라서니 환속한 느낌이다. 우이동 가는 길이 멀기도 하다. 주변 둘러 아무 볼 것이 없고, 그저 땀나는
임도를 올랐다가 내릴 뿐이다. 방금 전의 일이 벌써 그립다.
30. 오봉의 제5봉
31. 오봉 3봉과 4봉, 티롤리안 브리지(tyrolean bridge) 연습장소다.
32. 물놀이 장소 바로 위쪽
33. 즐거운 한때
37. 우이령 길에서 바라본 오봉
38. 우이령 길에서 바라본 상장능선 왕관봉
첫댓글 비 내리는 아침 도봉계곡의 장노출 물줄기를 보느라니 시원합니다. 송추폭포 위쪽 계곡에서 한여름 더위를 식히던 때가 그립네요.
송추폭포도 명소이지요.
그러고 보니 송추폭포도 보고 싶네요.^^
와~~~ 시원한 물놀이였네요...모처럼 많은 분들이 반갑습니다^^
예전에는 이따금 합동산행을 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는데,
어찌 된 일이지 시들어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