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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2/4
이런 일이 있은지 2,3일 뒤, 바틀비는 네 통의 긴 기록을 베꼈는데 그것은 내 형평법원에서 행해진 1주일 동안의 증언들로 반드시 서류 대조를 해야했다. 중요한 소송인만큼 기록이 정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나는 네 통의 복사본을 네명의 필경사에게 각각 나누어주고 내가 원본을 읽으면서 대조해갈수 있도록 옆방의 칠면조와 펜치, 생강 비스킷을 불러왔다. 그들이 각기 손에 서류를 들고 일렬로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이 흥미로운 그룹에 바틀비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오게. 자네만 오면 다 되네."
카펫을 깔지 않은 마룻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독방 입구에 그가 모습을 나타냈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바틀비가 조용히 말했다.
"복사본 말일세. 복사본" 하고 나는 서둘러 말했다.
"복사본을 대조하려는 거야. 이것은 자네 것일세" 네번째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바틀비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더니 칸막이 뒤로 점잖게 사라져버렸다.
얼마동안 나는 '소금기둥'처럼 필경사들이 앉아 있는 줄의 선두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는 칸막이로 다가가, 그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한 이유를 따지고 들었다.
"왜 거절을 하는거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불같은 격정에 휩싸여 울화통을 터뜨리며 마구 욕지거리를 퍼붓고 사무실에서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이상하게도 나의 적의를 가라앉히며,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다시 이치를 따져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조하려고 하는 것은 자네가 필경한 서류들이네. 이것은 자네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야. 단 한번으로 자네가 베낀 4통의 서류를 모두 대조할 수가 있으니 말일세. 이것은 어디서나 모두들 하는 일일세. 필경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베긴 것을 대조한다네. 그렇지 않은가? 말도 하고 싶지 않나? 어디 대답을 좀 해보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역시 피리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그에게 연설하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음미하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필연적인 결론을 반박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그에게 그렇게 대답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내 지시에 응하지 않기로 결심했단 말인가? 일반적인 관습과 상식에 준해 이루어진 요구에도 말이지?"
그는 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간단히 몸짓으로 이해시켰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결정은 결코 번복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전례가 전혀 없고 또 전혀 말도 안되는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요구를 거절당하면 그때까지 가장 명백하고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신념까지도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실로 이상한 일이지만 모든 정의와 타당성은 상대방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그곳에 만일 공평한 제3자가 있다면 동요되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것이다.
"칠면조" 하고 나는 말했다
"이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잘못하나요?"
"실례입니다만..." 하고 칠면조는 더할 수 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펜치." 하고 나는 물었다.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제 생각에는 사무실에서 쫓아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총명한 독자라면 여기서 칠면조의 대답은 공손하고 점잖은 말투인 반면에 신경질적인 펜치의 대답으로 미루어 볼때 지금이 오전 중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험악한 분위기의 당번은 펜치이고 칠면조는 비번이었던 것이다.
"생강 비스킷"
나는 가장 어린 한표라도 얻어 보려고 그에게 물었다.
"넌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니?"
"제 생각에는 저 아저씨 머리가 돈 것 같습니다"
생강 비스킷이 히죽히죽 읏으며 대답했다.
'자네도 직원들이 하는 말을 들었겠지?
나는 칸막이 쪽으로 돌아서면서 말했다.
"자아. 이리 나와서 일을 하게
그러나 바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한순간 깊은 상념에 잠겼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일의 다급함이 나의 등을 떠밀었다. 또다시 나는 이 딜레마에 대한 고찰을 뒷날의 한가한 시간까지 미루기로 결심했다.
어지간히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바틀비를 빼놓고 서류 대조를 시작했다. 칠면조는 한 페이지마다 혹은 두 페이지마다 이런 일은 정말로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았다. 한편에서는 펜치가 소화불량에서 오는 짜증스러움으로 의자 위에서 몸을 비틀고 이빨을 부드득 갈며 이따금 칸막이 뒤의 고집센 저능아에 대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펜치로서는 한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남의 일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한편 바틀비는 자신의 은신처에 들어앉아서 자기 자신의 기묘한 일 외에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있는 듯했다.
며칠인가가 지났다. 필경사들은 또 다른 긴 서류에 매달려 있었다. 전날의 놀라운 소행 때문에 나는 바틀비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가 전혀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전혀 아무데도 나가지를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오늘날까지 바틀비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는 우리 사무실의 교대없는 보초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매일 오전 11시경 생강비스킷이 바틀비의 칸막이 공간 쪽으로 다가가곤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바틀비는 내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조용히 손짓으로 소년을 불러들이는 것 같았다. 소년은 이내 몇 페니인가를 짤랑거리면서 사무실을 나가더니 얼마 뒤에 한줌의 생강 비스킷을 들고 다시 칸막이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심부름 값으로 두개의 과자를 받아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바틀비가 생강 비스킷으로 연명해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점심 식사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그는 야채조차 먹지 않았다. 바틀비는 생강 비스킷 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인간이 생강 비스킷만 먹고 생활한다면 과연 그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공상에 젖어들게 되었다. 생강 비스킷이라는 것은 그 독특한 성분의 하나로 생강이 들어가서 결정적으로 그 향을 내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강은? 얼얼하고 매운 식물이다. 그러면 바틀비라는 인간이 얼얼하고 매운 타입인가?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저항의 저항만큼 성실한 인간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만일 저항을 당하는 인간이 비인간적인 기질이 아니고 또 저항하는 인간이 그의 수동성에 전혀 악의가 없다면, 대개 저항을 당하는 인간은 자신의 판단력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지라도 기어이 상상력으로 짜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 틀림없다.
대체로 그런 식으로 나는 바틀비와 그의 행동을 주시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불쌍한 친구로군' 하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것이다. 무례한 행동을 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명백했다. 그의 태도로 보아 그의 기벽은 본의가 아님을 확실히 알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크게 쓸모가 있었고 그와 얼마든지 함께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만일 그를 쫓아낸다면 아마 나보다 관대하지 못한 고용주를 만나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쫓겨날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비참하게 굶어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자기 만족에 빠진 인간을 값싸게 사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바틀비와 친구가 되어 그의 기괴한 고집을 너그럽게 보아 넘긴다 해도 내가 손해 보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언젠가는 양심의 달콤한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을 내 영혼 속에 저축해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무드가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바틀비의 수동적인 태도가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의 새로운 반대에 부딪쳐보고 싶다는, 내 자신의 분노에 걸맞은 노여움의 불꽃을 그에게서도 이끌어 내 보고 싶다는 기묘한 자극을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하얀 화장비누 조각에다 주먹을 비벼대 불을 켜 보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나는 악한 충동의 꾐에 빠져 어처구니 없는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바틀비," 하고 나는 그를 불렀다.
"그 서류들을 모두 필경하고 나면 나하고 함께 대조를 해보세"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 말도 안되는 황소 고집을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두 칸막이를 열어 젖히고 칠면조 쪽으로 돌아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바틀비가 벌써 두번씩이나 자신의 서류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칠면조씨?"
지금이 오후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칠면조는 놋쇠 주전자처럼 달아올라서 앉아 있었다. 그의 벗겨진 머리에서는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양손은 얼룩진 서류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굽쇼?" 칠면조가 고함을 질렀다.
"당장 칸막이 뒤로 달려가서 눈에 시퍼런 멍을 만들어주겠어요"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을 들어 권투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에 한 말을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기세였다. 순간 나는 칠면조의 점심 식사 뒤의 호전성을 경솔하게 자극하게 된 결과에 경계심을 느끼고 급히 그를 제지했다.
"자리에 그만 앉아요 칠면조씨"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펜치의 얘기를 좀 들어봅시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펜치? 이 정도면 내가 즉각 바틀비를 해고 시켜도 정당한 것 아니겠나?"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장님. 제 생각으로는 그의 행동은 전적으로 비정상적입니다. 사실 칠면조씨나 저와 비교해 보더라도 정당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일시적 변덕일지도 모릅니다. "
"아, 그래?" 하고 이번에는 내가 소리쳤다.
"이상하게 자네는 또 마음을 바꾸었군 그래. 전과는 달리 그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으로 말하는데..."
"모두가 맥주 때문입니다" 하고 칠면조가 악을 썼다.
"관대한 것은 맥주 때문이죠. 저는 오늘 펜치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거든요. 제가 얼마나 관대한지 알수 있겠죠. 법원장님. 제가 들어가서 눈등이라도 한대 갈겨줄까요?"
"바틀비에 대해 말하는 모양인데 안됩니다. 오늘은 안돼요. 칠면조씨." 하고 나는 황급히 말했다.
"제발 주먹을 좀 치워요"
나는 두 짝문을 닫고 바틀비 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번 자신의 운명에 도전해 보고 싶은, 또 다시 반항을 당해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그때 바틀비가 한번도 사무실 밖을 나간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틀비" 하고 나는 말했다.
"생강 비스킷이 외출을 해서 그러네. 자네가 우체국에 잠시 갔다 와 주지 않겠나? (우체국은 걸어서 겨우 3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내게 온 우편물이 있는지 알아봐 주고..."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안 가겠다는 말인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가까스로 내 책상으로 돌아와 그곳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맹목적인 집념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이 말라빠진, 땡전한푼 없는 인간에게 내 자신이 굴욕적으로 거절 당할 만한 일은 또 없을까? 내가 고용한 필경사 녀석에게... 완전히 합리적인 일인데도 이 녀석이 거절할 게 뻔한 일은 또 없을까? '
"바틀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바틀비" 이번에는 좀 더 큰 소리로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하고 나는 악을 썼다.
진짜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법의 주문에라도 응답하듯 세번째 부름에 그는 간신히 은신처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옆방에 가서 펜치에게 나한테 오라고 전하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예의 바르게 천천히 대답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래 좋아. 바틀비" 하고 나는 조용하고 담담하며 매우 침착한 어조로 말함으로써 가까운 장래에 어떤 무시무시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단호한 결의를 넌지시 암시했다.
그 순간에는 절반쯤 그런 종류의 보복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혹감과 우울함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일단 모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내가 시인해야만 할까? 내 사무실 안에서 하나의 기정 사실이 되어버린 이 모든 소동의 결과를... 바틀비라는 이름을 가진 창백한 얼굴의 젊은 필경사는 사무실 안에 한 개의 책상을 갖고 있고 1백 단어당 보통 4센트 정도 돈을 받고 나를 위해 필경을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그 자신이 베껴 쓴 문서를 검토하는 일에서는 제외되고 있다. 그 의무는 칠면조와 펜치에게 돌아가는데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두 사람의 빼어난 정확성에 경의를 표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절대로 바틀비를 심부름 보내지 않고 설사 그에게 그러한 일을 해달라고 간청하더라도 그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 즉 정면으로 대놓고 거절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모두 양해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는 바틀비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착실함, 낭비라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겸손함. 쉬지 않는 근면성 (단, 칸막이 뒤에서 끝없는 공상에 잠겨 있을 때만을 제외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조용함. 어떤 상황 하에서도 변함이 없는 행동 등, 모든 것이 그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일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강조할 만한 것은, 그는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하루종일 자리를 비우지 않으며 저녁에는 제일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정직성에 이상하리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서류도 그에게 맡기면 제일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따금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갑자기 그에게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바틀비가 우리 사무실에서 누리고 있는 암묵적인 조건, 즉 온갖 기묘한 특례, 특권들,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예외조항들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급한 용건을 처리하기 위해 나는 다급하게 바틀비를 불러서 묶으려고 하는 서류 끈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달라고 한다.
물론 칸막이 뒤에서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되돌아올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인간인 이상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약점이지만 ) 이처럼 외고집에다 물지각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받은 이런 종류의 거절이 거듭될수록 내 쪽에서 그를 찾는 일도 차츰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많은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있는 법률 사무실 빌딩에는 여러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다른 곳처럼 우리 사무실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열쇠가 여러개라는 것이다. 하나는 매주 한번씩 사무실을 물로 닦고 매일 청소하는 옥탑방의 청소부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는 편의상 칠면조가 보관하고 있었다. 세번째 열쇠는 내가 이따금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녔으며 네번째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지 나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려고 우연히 트리니티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서잠시 사무실까지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열쇠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실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넣는 순간, 무엇인가가 안쪽에 꽂혀 있어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몹시 놀라서 큰 소리로 안에 누가 있느냐고 불러보았다. 그러자 안에서 열쇠를 돌리며 문틈으로 내다보는 깡마른 얼굴은 놀랍게도 다름아닌 바틀비였다. 그는 그대로 문을 꽉 고정시킨 채 서 있었다. 그는 외출복도 아닌 셔츠 바람에 남루한 파자마를 걸치고 있었다.
바틀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지금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 들어오게 할수가 없으며 간략하게, 이 블록을 두세바퀴 가량 돌고 오면 그때까지는 아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뜻하지 않은 바틀비의 출현과 일요일 아침의 내 법률 사무실을 셋방 사고 있는, 시체와 같은 창백하면서도 신사처럼 태연자약한, 게다가 확신과 침착성까지 갖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이상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는 나답지 않게 내 사무실 문을 떠나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필경사의 점잖으면서도 파렴치한 행동에 무력한 반항심이 온갖 형태로 쿡쿡 가슴을 쑤셔댔다
사실 그의 놀라울 정도로 점잖은 태도가 주로 나를 무장 해제시켰지만 그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의 사내다움까지 빼앗아갔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서기가 주인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기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지시를 할 경우, 그 사람은 그 순간 이미 사내다움을 잃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바틀비가 셔츠와 꾀죄죄한 파자마 차림으로 나의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무슨 범죄가 꾸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된다. 바틀비가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것은 잠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필경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아무리 괴짜라고 해도 바틀비는 품행이 빼어나고 단정한 인물이다. 벌거숭이에 가까운 꼴로 자기 책상 앞에 앉다니, 그것은 말도 안된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아닌가. 더구나 바틀비에게는 신성한 일요일을 어떤 세속적인 직업으로도 더럽히지 않을 거라 추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한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한채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는 열쇠를 꽂고 문을 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틀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불안스럽게 방안을 둘러보고 칸막이 뒤까지도 들여다 보았지만 그림자 하나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사무실을 나간 것이 명백했다.
사무실 안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바틀비가 내 법률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생활했으리라는 것, 그것도 접시며 거울이며 침대도 없이 그렇게 지냈으리라고 추측했다. 사무실 구석에 있는 부서져 가는 낡은 소파의 쿠션 위에 여읜 몸을 뉘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의 책상 밑에서 똘똘 말아놓은 담요 한장도 발견했다. 벽난로 받침대 밑에서는 검정 구두약과 구둣솔이, 의자 위에서는 비누와 누더기 타월이 담긴 양철 세숫대야가, 그리고 신문지 사이에서는 생강 비스킷 부스러기와 치즈 조각이 있었다.
그렇다. 바틀비가 이곳을 집으로 삼고 독신생활을 영위해 온 것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 얼마나 비참한 외로움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가난했다. 그의 고독은 얼마나 소름끼치듯 끔찍할지.
일요일이면 월스트리트는 페트라처럼 폐허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매일 밤이면 온 거리가 텅 비어 버린다. 이 빌딩 역시 평일의 낮 동안은 부지런함과 활기로 시끌시끌하지만 밤이 되면 철저한 공동이 메아리칠 뿐이고, 일요일은 온종일 버림받은 땅이다.
그런데 바틀비는 이곳을 집으로 삼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낮의 광경을 보아온 그가 그 처절한 고독의 외로운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카르타고의 폐허에서 명상하는 무고한 마리우스의 전락한 모습 같다고 할까.
난생 처음으로 쿡쿡 가슴을 찌르는 듯 압도해 오는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지금까지 나는 달콤한 슬픔 같은 것 이외에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다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암울함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형제로서 느껴지는 우울함. 어쨌든 나와 바틀비는 모두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목격했던 브로드웨이의 미시시피 강을 헤엄쳐 가는 백조처럼 축제의상으로 차려입은 군중의 찬란한 비단 옷과 반짝이는 얼굴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들과 시체처럼 창백한 필경사를 비교해보며 혼자 생각했다.
아아, 행복은 빛을 발하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즐거운 것으로 보지만 비참함은 어둠 속에 숨기에 이 세상에 비참함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글픈 생각들은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어리석은 머리에서 나오는 망상이겠지만 ) 바틀비의 기행에 관한 한 또 다른, 좀 더 특별한 생각으로 이어져갔다. 기괴한 발견들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필경사의 창백한 몸이 무관심한 이방인들 속에서 수의에 싸여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바틀비의 닫혀진 책상이 눈에 띄었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가 꽂힌 채로 있지 않은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엇다. 비정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책상은 내것이고 내용물 또한 내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담하게 책상 서랍 속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고 필경 용지도 단정하게 쌓여있었다.
작은 서랍들은 좀 깊어, 서류철을 옆으로 치우고 후미진 곳을 손으로 더듬었다.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낡은 대형 손수건이었다. 그것은 무언가를 싸매고 있었는데 그것을 풀어보니 저금통이었다.
이제 나는 바틀비에 대해서 품고 있던 조용한 수수께끼들을 모두 기억해냈다. 즉, 그는 특유의 대답 외에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이따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하여간 신문조차 읽지 않았다 )
그는 칸막이 뒤의 어둠침침한 창가에 서서 꽤 오랫동안 죽음과 같은 벽돌 벽을 응시하곤 했다. 나는 그가 단 한번도 큰 식당이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간 적이 없었으리라고 분명 확신한다.
또한 창백한 얼굴이 명백히 말해주듯, 그는 칠면조처럼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홍차나 커피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는 일도 없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는 일도 없었다 (지금 산책을 나갔다면 그것은 예외지만 )
그리고 바틀비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 세상에 친척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해왔다. 또한 몸이 야위고 안색은 창백하지만, 건강이 나쁘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것은 창백한 죽음의...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 창백한 죽음의 오만함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가 지닌 준엄한 자제력이라고 할까. 그런 어떤 무의식적인 태도가 나를 두렵게 만들고 그의 기행에 순순히 영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그가 오래전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칸막이 뒤에서 벽을 보며 공상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아주 사소한 일도 그에게 시키는 걸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고 또 그가 내 사무소를 영속적인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었다는 (방금 발견한 ) 그 사실을 결부시켜 (특히 그의 병적인 우울한 태도를 잊지 않는다면 ) 이같은 모든 사실들을 심사숙고해 볼 때 조심스러운 어떤 감정이 나를 살포시 감싸는 것이었다
나의 첫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충심에서 우러난 연민의 감정이었으나,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이 점점 더 커지면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었고 그와 비례하여 우울함이 공포로, 연민이 혐오로 변했다. 그것은 너무나 진실하고 또한 끔찍한 일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비참함을 인식하거나 목격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친밀한 정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버리면 오히려 그렇지 않게 된다.
이것을 예외없이 인간의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이기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차라리 그것은 과도하고 근본적인 병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어떤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에게 연민은 종종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민이 효과적인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상식은 영혼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명하는 것이다.
그날은 바틀비가 선천적인 불치의 정신이상 피해자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켰다. 나는 그의 육체를 고통에서 풀어줄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며 그의 영혼에는 내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트리니티 교회에 간다는 목적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어쨌든 그날 본 일들이 교회에 갈 기분을 잡쳐버렸던 것이다. 바틀비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생각하며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결국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우선 내일 아침, 그의 과거와 주변 사항에 대해서 조용히 몇 가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만약 그가 서슴없이 그 질문에 대답할 것을 거절한다면 (아마 그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에게 줄 급료에다 20달러를 더 얹어주고 더이상 우리 사무소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밖에 다른 방법으로 그를 도와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특히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고향으로 가는 경비 또한 모두 부담할 것이다. 그리고 또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라도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길 경우, 편지만 써보내면 언제든 즉각 답장을 해주겠다고 말할 것이다.
-계속-

첫댓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고자 하는 유형의 인간형.
바틀비 뿐 아니라....
그런 인간유형을 나는 연민하고 사랑합니다, ㅎㅎㅎㅎㅎㅎ
댓글은 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