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겨진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선정시기…사업속도↑·분쟁소지도↑
노컷뉴스 | 2023.05.24
7월부터 서울 재건축·재개발 조합 설립후 시공사 선정가능…"정비사업 정상화"
"조합 자금조달 쉬워지고 사업 진행 속도나서 서울 공급 숨통 트일 것"
"시공사 선정후 사업 변경 가능성 커…조합, 유불리 판단 어렵고 공사비 분쟁소지 커져"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현행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겨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
조합의 사업비 조달이 원활해지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속도가 나고 그에 따른 서울 도심 공급 확대가 기대되지만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겨지는 시공사 선정, 조합 자금난 숨통…"정비사업 속도…공급 촉진"
2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서울시의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이 시행되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현행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당겨진다. 업계에서는 시공사 선정 시기가 최소 1~2년가량 앞당겨져 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공개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가운데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곳은 116개 단지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하반기부터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진다. 다만 시공사 조기 선정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는 '내역입찰'은 유지하기로 했다. 내역입찰은 시공사 선정 때 설계와 함께 세부 공사 내역을 제출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시공사 조기선정으로 조합의 자금조달 능력이 향상되면서 사업추진에 속도가 나고 그에 따른 서울 도심 공급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자산관리연구원 고종완 원장은 "시공사 선정시기를 언제로 하느냐에 따른 장단점은 있지만 시공사 선정시기를 (종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선정 이후로 당기게 되면 조합이 초기 운영자금을 시공사로부터 대여받을 수 있고, 자금력 확보에 따라 사업이 조기 추진되고 도심 내 공급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비사업 수주경쟁이 뜨거웠을때 이런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 아니지만 지금은 고금리와 건설원가상승, 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수주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비사업을 시행하려는 조합은 자금난을 덜어주고 시공사들은 불확실성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규제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사업시행인가 후 시공사 선정해도 공사비 갈등 봇물…"갈등 더 커질 것"
규제 개선 이후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합설립인가 후에는 정비계획(도시계획)만 확정된 상황이고 건축설계와 관련 인·허가는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임대물량을 포함한 공급물량과 평형을 포함한 타입별 공급물량, 조경 등 특화설계 등이 건축설계가 구체화해야 공사비가 확정되는데 선정시 시공사가 제시했던 공사비와 건축설계가 확정됐을때 다시 제시할 공사비 간 차이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현재 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 재건축.재개발 사업자들은 건축설계가 확정되는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사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준금리 및 원자재 가격 급등 등에 따른 공사원가 급등으로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 시공사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합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의뢰한 사례는 11건으로 공사비 검증 제도 첫해인 2020년 전체 검증의뢰건수(13건)에 육박했고 지난해(32건)의 약 34%에 이른다.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결과가 나오더라도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이 오히려 조합과 시공단의 공사비 갈등을 증폭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비사업 전문가인 투미부동산컨설팅 김제경 소장은 "시공사 선정 시기가 당겨지면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사업비 대여를 통해 사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면서도 "사업시행인가 이후 시공사를 선정한 사업장들도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시공사 선정 시점이 더 당겨지면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은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서울시가 시공사 조기 선정에 따른 부작용 완화를 위해 유지하겠다고 한 '내역입찰'의 한계도 있다. 김제경 소장은 "사업시행인가 전후로 전체적인 큰 틀이 변경될 가능성이 큰데 이전 내역입찰이 어디까지 유의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반문하며 "세대 수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시되는 내역입찰은 허술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최근 '서울시 정비사업 시공자 조기 선정의 기대와 우려' 보고서를 통해 "조합설립인가 직후 시공사 선정시 불필요한 설계나 인허가 변경을 줄이고 사업비 대여가 가능해 사업 속도를 향상할 수 있겠지만 계약의 구속력을 가진 상세내역에 따른 공사비 증액 적정성 검토가 어려워지고 공사비 증액 관련 협상 시기가 늦어져 착공후나 입주가 가까운 시점까지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공사 선정시기 당겨지면 시공권 수주 경쟁 본격화? 글쎄"
시공사 선정시기가 당겨졌지만 대형 건설사들은 수주를 위한 전방위적인 경쟁보다 서울 알짜 사업장, 특히 적정한 공사비를 책정한 정비사업장을 중심으로 수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의 신규 공사비 계약 단가가 3.3㎡당 500만~600만원대에 책정되고 있는데 서울은 3.3㎡당 600만 후반 수준이다. 최근 정비구역 지정안을 고시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공사비를 3.3㎡당 700만원으로 책정했다.
국내 도급순위 10위 안에 있는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시공사 선정시기에 따른 장단점이 있는데 원자재 가격이나 시장 상황 등이 괜찮다면 일찍 시공사로 선정돼 속도감 있게 사업을 진행하는 장점이 있지만 1~2년 새 공사비가 30% 뛰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지금 일찍 시공사로 선정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며 "적정한 공사비가 책정되고 사업성이 밝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출혈 경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시공사 선정시기가 당겨지면서 강남구 압구정동과 개포동, 서초동 반포동 등이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지는데 사업성과 상징성을 모두 갖춘 일부 단지를 제외하면 오히려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강남권 단지라도 적절한 공사비가 책정되지 않을 경우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나올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