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친구 유민, 남편 유하. 둘은 형제~
'꼬맹아, 수업 끝나고 앞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알았지?'
..
[스윽]
유민이의 생각에 살짝 창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여태껏 어디에서 있었던것일까..?
[웅성웅성]
아까전에 사라진 구급차.
그 구급차 뒤에 쏟아지는 말들이 많았다.
"뭐야? 홍혜은 지 혼자 깝친거야?"
"야, 뭔 말을 그렇게 해.. 걔 너무 불쌍해보이더라."
혜은이를 태우고 사라져버린 구급차 소리가 아직도 귀를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럼 유하 선생님은 다시 오는거야?"
..
한 여자아이의 말에 웅성이던 우리반의 소리는 끊겨버렸다.
옥상위에서 날 바라봤던 유하오빠의 맑은 까만 눈동자..
그리고 혜은이를 포근하게 안아주던 유하오빠의 모습..
아까전의 상황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 듯 했다.
사랑한다는 내 고백에 잠시 흔들리는 유하오빠의 눈동자..
싫었던걸까? 아님, 놀라서 그렇게 눈이 흔들렸던걸까?
그 둘중에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제 확실하게 알았으니까.
누구를 안던, 누구를 향해 웃고 있어도 이제는 더이상 상관없어!
하루동안이였어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더 이상 놓쳐버리기 싫으니까!
나 정말..
유하오빠를 사랑하나봐.
이제는 정말 어쩔 수가 없나봐..
..
혜은이 얘기를 하는 아이들도 슬금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하오빠에게 소리쳤던 내 고백탓인걸까?
아님, 나만의 바보같은 착각일까..?
[드르륵 쾅!]
..
우리반의 소식통인 인지가 뛰어들어왔다.
빠르게 달려왔는지 숨을 헐떡이며 웃고 있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유하 선생님이 다시 선생님 하신대!!"
"우우!!!!!!!!!!!!!!!!!!!!!"
..
돌아온거에요?
다시 돌아오기로 한거에요?
"내일부터 정상으로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내가 안고 돌아왔어!!"
..
고마워요.
오빠, 꼭 기다릴게요..!
잠시 슬펐던 아이들의 표정이 기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
.
.
[시끌벅적!]
..
수업을 마치고 조용히 나 혼자 걷는 길.
으아. 내일은 진아랑 꼭 같이 학교와야지.
정말 심심한 하루였으니까..
그런데 저쪽 교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를 가득 메운다..
거기서 들리는 또 다른 소리가 날 웃게 했다.
"아, 씨발! 저리 안꺼져? 뒤지고 싶냐?!"
"전화번호 가르쳐주세요! 네? 네?"
"닥쳐! 아, 짜증나게 들러붙고 난리야. 안떨어져? 진짜 팬다!!"
..
풉.
덥다는 듯이 옷을 손으로 잡아당겼다가 놨다가를 반복하며
부채질을 하고 있는 유민이가 보였다.
그 사이에서 여자아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고 있었고.
..
유민이 네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있네~
헤헤.
그런데..
왜 저 모습이 유하오빠랑 겹쳐보일까?
..
'아휴, 떨어져!! 우리 여보야 보면 큰일 난단 말이야!! 내 몸은 여보야꺼야!'
..
'어어, 야야! 감히 내 가슴을!!'
..
내가 웃음이 난 이유, 유하오빠랑 겹쳐보여서..
유민이 네가 유하오빠랑 이상하리만큼 겹쳐보여서..
유하오빠를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던게..
그게 유민이, 너와 많이 닮아서 그랬던 것 같아.
그렇게 조금씩 걸어가며 웃던 나는.
커다란 손에 의해 멈추게 되었고, 그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꼬맹아!! 여기야!!"
..
[스윽]..
멀리서 날 부르는 듯이 손까지 흔들어
여자아이들의 시선을 운동장쪽으로 향하게 하고
그렇게 날 어깨를 감싸고 같이 뛰는 유민이..
긴 다리의 소유자인 유민이 덕에
난 힘차게 따라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꼬맹아, 여기다. 어?!!"
..
속삭이듯 하면서도 협박하는 투의 유민이의 말에
난 바보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변한게 없는 유민이의 모습처럼 나도 변한게 없어야하니까.
"오빠, 어디가요? 네!! 아악!!!"
..
아이들의 포효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커질 수록 유민이의 웃음 또한 밝아지고 있었다..
.
.
.
"잘지..냈어?"
"병신."
"헤헤헤."
"지랄맞게 뭔 잘 지냈어야. 잘 안지내길 바란거냐? 뒤질라고."
"그럴리가!!"
..
놀란 내 모습을 보며 픽 웃어보이는 유민이.
난 내 앞에 놓여진 우유 앞에서 조금 입술을 삐죽 내놓았지만.
못됐어. 한유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민이 앞에서는 항상 흰우유 먹어야하니까.
건강에 나쁘다고 커피도 입에 못대게 하니까.
"병신. 넌 변한게 없냐?"
"..넌 왜 이렇게 변했어?"
"뭐, 뭐가!"
..
생각해보니까 머리랑 눈이랑!
갈색으로 다 바뀌어버렸잖아!!
난 빠르게 일어나서 유민이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고,
유민이의 하얀 얼굴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타악!]
"아아, 아파! 우어엉."
"병신아! 왜, 왜 머리를 자, 잡아당기고 지, 지랄이냐!!"
"그렇다고 세게 때리면 어떡해. 으아앙!!"
..
난 유민이가 때린 머리를 부여잡고
나도 모르게 아파서 울기 시작했다..
옛날보다 힘이 더 세지고 변했어!!
"옛날에는 이것보다 살살 때리더니 변했어!! 머리도, 눈도!!"
"..야야, 왜 쳐울고 그래."
"으아아앙!!!!!!!!!!!"
..
그냥 목놓아 울어버렸다.
으아아. 여기 카페인데, 울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너무 아파서 울 수 밖에 없었다.
혹, 혹까지 났단말이야!!
..
[타악]..
그때였다.
누군가가 갑자기 빠르게 날 돌려 감싸안았다.
포근한 향기.
너무나 익숙한 그 향기..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향기.
감싸안은 그 향기에 난 품에 파묻혀 징징 울고 있었다.
"..울지마. 우리 여보가 왜 여기서 울고 있는거야? 뚝!"
..
그 소리 하나에 난 더욱더 그 품으로 파고 들어 울어버렸다.
"우리 여보가 남편님의 키스를 받아야 울음을 그치려나~?"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말에 울음을 그쳐버리고 오빠를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 소리쳐버렸다.
"됐어요!! 난 그런 거 안받아도 울음 그칠 수 있다구요!!"
"형한테 까불긴, 뒤질래?!! 이게 진짜."
..
주먹을 치켜세우는 유민이의 행동에
빠르게 일어나 유하오빠의 뒤로 숨어버리고
메롱 하면서 혀를 쭈욱 내밀었다가,
[빠직]
유민이의 올라가는 눈썹에
빠르게 혀를 다시 집어넣었다.
후우, 유민이가 혀를 뽑아갈지도 몰라..
난 다시 착한 웃음으로 유민이의 화를 누그려뜨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걸로 누그려뜨릴 유민이의 화도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형이라는 유민이의 말이 생각난 난 다시 발끈해 소리쳤다.
"흥. 니 형이 아니라, 내꺼야!! 찜이라구!!"
..
"피식."
..
그때 등뒤라 보이지 않는 유하오빠의 얼굴에서
웃음이 맴돌았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와서..
너무 너무 지금은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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