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프랑스 아를의 주교였던 체사리오 성인께서 하신 강론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말해 보십시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여러분이 제대로 답하고 싶다면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몸과 같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실 때 행여 바닥에 떨어뜨릴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 분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 말씀을 무심하게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가 되는 일입니다.”
체사리오 성인 말고도 역사상 많은 교부들과 공의회가 성경을 그리스도의 몸처럼 공경하였고, 성찬 전례를 장엄하게 거행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그 품위에 맞게 거행하는 데에도 온갖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네 복음서를 중요하게 여겨 복음 선포를 언제나 말씀 전례의 절정으로 삼았습니다. 복음의 이러한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교회는 성경의 다른 본문을 담고 있는 전례서(「미사 독서」)와 구별하여 네 복음서만 따로 담은 전례서(「복음집」)를 만들고 아름답게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집」을 다른 「미사 독서」보다 더욱더 공경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주교좌성당 또는 규모가 크고 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본당이나 성당에서는 다른 「미사 독서」와 구분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복음집」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지난 2017년 전례서들을 새로 편찬하면서 「복음집」을 따로 펴냈습니다. 그리고 그 서문에 「복음집」을 사용하여 거행할 수 있는 다양한 예식에 대한 안내를 수록하였습니다.
먼저, 미사 전례에서 「복음집」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살펴봅시다. 입당 행렬에서 부제나 다른 전례 봉사자는 「복음집」을 조금 높이 받쳐 들고 사제 앞에 서서 제대로 나아갑니다. 제단에 이르러 경의를 표시하지 않고 곧바로 제대에 다가가서 제대 중앙에 「복음집」을 내려놓습니다. 그다음 부제는 사제와 함께 제대에 깊은 절을 하며 경의를 표시합니다. 다른 전례 봉사자가 「복음집」을 들고 왔다면, 제대에 「복음집」을 내려놓고 깊은 절을 한 다음 정해진 자리로 갑니다.
복음 환호송을 노래하는 동안 회중은 모두 서서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찬양합니다. 주례 사제가 향을 축복한 후에 봉사자들은 향을 피운 향로를 들고 또 촛불을 켜 들고 「복음집」이 놓여 있는 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복음을 선포할 직무자(부제 또는 사제)는 제대에서 「복음집」을 들고, 향로와 촛불을 든 봉사자들을 앞세우고, 독서대로 가서 예식 규정에 따라 복음을 선포합니다. 향을 쓸 때 직무자는 「복음집」에 향로를 두 번씩 세 번 흔들어 분향합니다. 복음 선포가 끝나면 「복음집」은 주수상이나 알맞고 품위 있는 다른 곳에 모셔 둘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만 아주 많은 감각적 표지들이 하느님의 말씀, 특히 복음을 둘러싸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장식한 「복음집」과 그 중심에 「복음집」이 우뚝 솟은 행렬이 우리 눈을 사로잡고, 우리 몸이 그 앞에서 굽혀집니다. 타오르는 향 연기와 냄새가 말씀을 찬양하는 소리와 어우러져 ‘기쁨의 축포’가 됩니다.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는 이러한 거행방식은 우리를 하느님 말씀의 깊은 핵심으로 인도합니다.
이 외에도 「복음집」은 「어른 입교 예식」의 ‘받아들이는 예식’을 거행할 때 행렬과 복음서 수여 예식에 사용할 수 있고, 장례 예식 때 시신을 모신 관 위에 믿음의 표지로 놓아둘 수도 있습니다. 새 본당 신부님이 부임해서 처음 드리는 미사의 말씀 전례 때 주임 신부는 주교나 그 대리인으로부터 「복음집」을 건네받아 복음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온 「복음집」은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하느님 말씀의 살아있는 신비를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