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가 일제히 새 학년 수업을 시작한다. 1년 중 가장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있고 새로운 계획에 몰두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공동체벗에서 펴낸 책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지아·조해수·정의진 외 지음)는 그 같은 낭만을 산산조각낸다. 고의도 아니고 심술도 아니다. 오랜 세월 교단에 근무한 현장 교사들이 토로하는 내밀한 고통은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한다. 자기계발과 자기희생을 한없이 강요받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교사들은 '우리는 정말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고 외친다. 교사들이 가르칠 수 없게끔 밀어붙이는 상황의 정체는 무엇인가?
1990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황규덕 감독)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그로부터 무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3년 지금, 우리는 그들처럼 '찾고' 있는가? 이번 '3인 1책 수다'의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도서평론가 이권우(한양대 특임교수), 서평가 이현우(필명 '로쟈'), <프레시안> 기자 김용언 세 명이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선정하여 같이 읽고 토론하는 자리, '3인 1책 수다'는 인터넷 매체 <Banni>(☞바로 가기)에 동시 게재된다. <편집자>
▲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용언, 이권우,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교사의 고백, 학교 가는 게 무섭다
▲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지아·조해수·정의진 외 지음, 교육공동체벗 펴냄). ⓒ교육공동체벗
이권우 :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초반에 나오는 조해수 교사의 글 '파이브고에 피박, 광박, 멍텅구리 그리고 흔들기까지'를 읽으면서 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이분이 수능 성적이 잘 나오는 바람에 원하던 지리교육과가 아니라 지리학과를 선택했고 그 다음 교육대학원을 갔다고 썼죠. 저도 그랬어요.
원래 국어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를 지망했어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학력고사 점수가 잘 나온 겁니다. 물론 서울에 있는 사범대는 아니고 지방에 있는 곳을 지망했던 거지만, 갈등이 됐어요. 그때 친구 한명이 저를 꼬드겼어요. 2년제 교대를 나와서 RNTC(학생군사교육단)을 받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 군대가 면제였거든요. 그 다음에 방송통신대학교에 가서 4년제 졸업장을 따고 경영대학원을 가자는 거예요. 그럼 서른 살쯤에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대요.(웃음) 하지만 다른 동기가 국문과를 같이 가자고 권하는 바람에 결국 거기 넘어갔죠.
당시에는 문리대에 가도 교원자격증을 딸 수가 있으니까 국어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983년부터 문리대생은 상위 30퍼센트만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게 제도가 바뀌었어요. 그게 82학번부터 소급 적용됐던 겁니다!(웃음)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교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지요. 조해수 교사의 인생의 어떤 부분이 제 일부와 너무 겹쳐서 재미있더라고요.
이현우 : 제가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를 고른 이유는 이번 주가 개학이고 개강이고 해서인데요. 교육이 한국에서 워낙 중요한 이슈다 보니까 현장 교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의미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학교의 배반'인 만큼, 현재 교육 현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고 비관적으로 보고 있죠. 만일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발언하지 않는 대부분 교사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동조하는 현실이라면,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 아이가 중학교 입학한다며 신나게 등교했는데, 뭔가 매치가 안 되는 겁니다. 매번 학년이 올라가고 새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며 아이들이 기대를 품는 바에 달리, 이 책에서는 정작 선생님들이 교육 현실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지극히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토로됩니다. 이쯤 되면 대체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이권우 : 이 책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겪는 잔혹사에 대한 증언록이죠. '우리는 이렇게 당하고 있다, 교사로서의 자율성이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학교 사회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교사들이 제도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왜 교사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을 하지 못하는 건지, 또 근본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그 교육이 진정한 교육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김용언 : 한국 사회에서 교육과 관련을 맺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잖아요. 학생이거나 교사거나 학부모거나 학생이었거나. 이 책에서는 교사들이 주로 승진과 얽혀있는 학교 내부 시스템과 몇 년마다 바뀌는 교육 정책 때문에 가르치는 일 자체에 혼동을 겪게 되는 내외적 조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책 전반적으로 학교 내적 문제에 더 치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침묵의 암묵적인 카르텔이 형성된 상황에서 거기 대해 발화한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일 순 있겠지만요. 그래도 교사 입장이 아닌 사람이 봤을 때에는 외적 시스템 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더 궁금하긴 했거든요. 정의진 교사의 글 '끊임없이 '달리다' : 집중이수제가 휩쓸고 간 지난 학기 수업 풍경'이 그런 의미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교육과정이 얼마나 자주 개정되었는지 이제는 교사들도 헷갈린다. 교육과정 개정 횟수만 보면 가히 '교육혁명'의 시대다. 작년은 그 절정을 보여 주는 한 해였다. 중3(현 고1)은 2007 교육과정, 중2(현 중3)는 2007 개정 교육과정, 중1(현 중2)은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각각 따로 적용받았던 것이다(이 부분은 읽다가 숨 한번 쉬어 줘야 한다).
이권우 : 우스갯소리로, 전 이 책을 보면서 댓글 단 국정원 직원이 생각났습니다.(웃음) 뛰어난 실력으로 국정원에 취직했는데, 위에서 요구한 건 인터넷상의 여론을 현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만들기 위해 특정 댓글을 달라는 거였죠. 교사들이 겪는 고충도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사가 되는 건 굉장히 치열하고 어렵지요. 아예 교사 T.O가 나지 않아 시험 준비를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채용됐는데, 소속 기관이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특정 역할에서 갈등이 빚어집니다. 이런 뒷얘기도 있어요. 국정원 직원은 퇴근하면 댓글을 안 달았다면서요.(웃음) 분명 공무 수행이 맞았던 겁니다. 하지만 교사들은 6시 이후에도 퇴근하지 못하고 또 다른 할 일들을 맞닥뜨립니다. 교사는 조직 구성원으로서 지시 사항을 따라야 하지만 동시에 그걸 넘어서야 하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이현우 : 김용언 기자는 학교 내부 사정을 토로하는 부분이 좀 아쉬웠다고 했는데, 전 그게 오히려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은 학교 내 행정 업무와 승진 시스템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죠. 사실 교사는 한국에서 직업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게 초등학교 교장입니다.(웃음) 승진을 지향하는 교사들로서는 지금 잘 버티면 나중에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의 저자들이 토로하는 바,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의 갭이 굉장히 크다는 거지요.
승진을 위해, 나는 교장의 개였다
이권우 : 얼마 전에도 장학사 선발시험 문제가 유출된 사건이 터졌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이 책에 담긴 교사들의 잔혹사가 객관적 사실이라는 거죠. 전 이 책을 통해 진정한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승진 체제, 교사의 정치적 자율성,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교사 문제입니다.
장학사, 교감 혹은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교사 업무보다 잡무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지요. 일제의 유산이라고 해야 할 텐데, 한국에선 짧은 기간 내에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사범대를 만들었고, 그 사범대가 아무래도 국립대학 중심이기 때문에 각 지역 거점 대학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라인'이 형성되었고 부조리한 문제가 비합리적으로 해결되는 구조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먼저 승진을 위해 교사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수행하는 잡무가 지나치게 많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지요. 사실 학교 행정 업무는 행정 직원이 맡아줘야 하는데 그런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교사에게 전적으로 떠맡긴다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지요.
김용언 : 강아지똥 교사의 글 '내가 겪은 몹쓸 일, 방과후학교'를 읽으면 정말 실감나더라고요.
▲ 서평가 이현우 ⓒ프레시안(최형락)
이현우 :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네이스)가 2011년 도입되면서 업무량이 폭증했다고 하죠.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의 글 '슬픈 사람, 안혜영'에 보면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신임 교사 안혜영 씨가 출근 첫날부터 맡은 업무가 바로 학적이었지요.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던 그 네이스 시스템 앞에서 신임 교사 안혜영 씨도 엄청난 좌절을 느꼈을 테고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한 달 만에 자살하고 맙니다.
업무 때문에 수업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다. 수업 준비도 제대로 못 한 채 아이들 얼굴을 만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이 정도의 고통으로 자살까지 감행했다면 다른 교사들이나 교육 행정 담당자도 모두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 있을 텐데, 왜 해결이 안 되고 있는지 수수께끼입니다.
이권우 : 일종의 세대 착취 문제 아닐까요. 지금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집단은 여태껏 자기들이 해왔으니까 마땅히 너희들도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거기서 비민주적 권위의식이 발동하고요. 또 새로운 행정 직원을 채용하지 않은 채 교사에게 맡겨버리면 돈이 적게 든다는 편의성도 있을 테고, 이런 방식으로 젊은 교사 길들이기 목적도 있어 보입니다.
이현우 : 저도 그 점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승진 관련해서 교사 평점을 매기는 부분에 있어 교장이 전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책 속에서 어떤 교감 선생님은 '난 교장의 개였다'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쓰지요. 과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권우 : 승진 점수를 받기 위해 일정 기간 벽지 초등학교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을 보노라면 그쪽 초등학교 교장이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사립학교는 승진 문제에 있어 과연 어떨지 능히 짐작이 가는 상황이죠. 교육을 잘하는 선생님들이 승진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 승진하기 위해 교육 업무를 폐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승진과 교육이 서로 갈등을 일으켜요.
이현우 : 승진을 위해 교육청에서 불러주기만을 기다린다는 얘기도 나오잖아요. 이민아 교사의 글 '다시 쓰는 행복 인생, 3막 1장'을 보면 "학교를 퇴근함과 동시에 다시 교육청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면서 "교육청 행사 추진에서부터 장학 자료 만들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교육청 일을 참 많이도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권우 : 아주 솔직한 대목을 하나 볼까요. 가르치지 않기 위해 승진하려는 교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수업에 얼마나 집중하지 않고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지, 좋은 학교 진학만을 따지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얼마나 거친지 잘 압니다. 그 상황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차라리 편하게 업무를 관장하는 자리로 승진하려는 욕구를 갖는다는 건 실질적으로 이해 가능합니다.
문제는 승진 체제에 있어요. 교육을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는 선생님이 승진하는 게 아니라 승진 자체를 위해 잡무를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아까 언급하신 이민아 교사의 경우 승진 체제에 정신없이 편승하다가 결국 그 안에 휩쓸리기를 거부한 분인데요. 이 대목을 한번 보지요.
출근하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떤 날은 수업 시간에 모니터 옆에 교과서를 펴 놓고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겐 대충 설명으로 시간을 때워 버리기도 했다. 차라리 교사가 아니라 회사원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적어도 교실에서 아이들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현우 : 대학에선 총장을 퇴직하고도 평교수로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잖아요? 하지만 초·중·고등학교에선 교장이 마지막 보직이고, 거기서 정년퇴직합니다. 교사는 평교사로 퇴직하느냐 교장으로 퇴직하느냐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승진을 위해 굉장히 많은 '관리'를 해야 하죠. 아이들에게 충실하기보다 상급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러 과도한 업무를 견뎌내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이런 전근대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가슴 아픈 딜레마도 있죠. 아이들이 나이든 교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보직보다는 교사로서의 업무에 더 큰 만족감과 사명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텐데, 평생 성실하게 교직을 수행해온 이분들이 교단에서 실패한 자, 낙오한 자 대접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평교사-실패한 자, 교장-성공한 자로 나뉘는 교단 문화 자체가 달라지지 않으면 교사들의 절망이 상당 부분 해소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학교, 무한경쟁의 핵심
이권우 : 윤양수 교사의 글 '바틀비의 거절을 넘어 자기배려로'를 보면 승진 제도 이외에도 다양한 경쟁 체제, "성과급, 다면평가, 교원평가, 학교평가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승진을 포기하더라도 교사라면 누구나 이 같은 그물망에 포위되어 있다고 하죠.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교단에 경쟁력이 생긴 걸까요?
이현우 : 교원평가제가 전교조를 비롯한 교원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2010년부터 전면 시행됐는데요. 내부적으로 그 평점을 매기는 정확한 기준은 모르겠지만, 교사의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애초의 목적과 달리 '예스맨'들이 좋은 평점을 받는 등 당연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령 학교를 평가하기 위한 일제 고사만 해도 초기에 비리가 많이 터졌지요. 학력부진 학생들이라든가 수업 진도를 따라오지 않은 운동부 학생 등을 아예 시험에서 배제한 겁니다. 어떤 면에선 점수가 '조작'된 거죠. 일제고사를 보면 학력낙오자가 한명도 없다는 결과가 나오니까요. 좋은 의도에서 도입된 제도라도 현장에서 많이 오남용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권우 :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가 일반 독자에게 주는 장점은, 학교도 직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웃음)
이현우 : 교사는 특수직이죠. 월급쟁이라는 면에서 다른 직업과 똑같은데, 다만 아이들의 장래를 책임진다는 점에서 남다른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게 되는 특수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그런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상해요. 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엄청난 과밀 학급이었거든요. 한 학급에 6, 70명씩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훨씬 쾌적한 교실 안에서 학생과 교사의 인간적 유대는 그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니까….
이권우 : 우리는 지방 출신이라 좀 다를 지도 몰라요.(웃음) 서울 상황은 어땠는지 김용언 기자가 얘기해주시죠.
김용언 : 전 학생 수가 적은 사립 초등학교를 나온 다음 갑자기 한 반에 50명 넘게 들어찬 중학교로, 그 다음엔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한 케이스입니다. 아마 이 책에서 말하는 교육의 문제가 첨예하게 드러났던 건 중학교 시절에 국한해서 말해야 할 듯합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중학생일 때에도 교사와 아이들 간의 유대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복잡한 얘긴데, 그 중학교가 족벌체제로 운영됐어요.(웃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가 한 재단 아래 모여 있었어요. 그때 여고 교장의 큰아들이 여상 교장이었고, 딸은 중학교 가사 선생이었고 아들은 체육 선생이었고, 심지어 교장 부인은 학교 바로 앞에서 교복 가게를 독점으로 운영했어요.(일동 폭소)
아이들은 정말 눈치가 빠르거든요. 중학교 2학년쯤 되면 대충 학교 돌아가는 상황과 교사들의 심리를 파악하게 돼요. 아 돈을 가진 사람이 갑이구나라고 실감합니다. 그리고 그 족벌체제에 속하지 않은 교사들이 정말 가르치기 싫다는 표정으로 지루하게 수업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학생들 역시 선생님에 대한 기대가 다 사라졌어요.
범위를 좀 넓혀 보자면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 공교육의 모든 역량이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거죠. 그에 더해 예전 같으면 대학이 사회적 출세의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 있던 가능성을 상징했는데 지금은 부모의 계급을 재생산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게 됐죠. 그러면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끊임없는 '주입'을 받으며 자기 미래를 체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공교육의 문제가 대학 입시에서 비롯된다면, 차라리 한국의 모든 대학 수를 확 줄인 다음 전부 국립화해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그런 강제적인 방식으로라도 지금 같은 서열화를 없앨 수 있다면 그나마 한국사회가 다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현우 : <교육 불가능의 시대>(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 엮음, 교육공동체벗 펴냄)에서도 이계삼 편집위원이 '한국 교육의 불행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외에는 다른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고 썼습니다. 전 더 불행한 사회는 그 출구마저 없는 사회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 현재가 그렇죠. 1970, 80년대까진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소위 인생 역전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그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마 서울과 이외 지역 간의 차이도 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고등학교 은사 선생님이 교장으로 계신 강원도의 작은 고등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한 학년에 두 학급밖에 없는 작은 학교인데요. 그 학교 개원 이래 처음으로 작년에 서울대 입학생이 나왔어요. 마을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지요. 그 지역에 교장 선생님 송덕비를 세운다고….(웃음) 올해 목표는 두 명을 보내는 거라고 합니다. 아직까진 그런 정서가 남아있는 지역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서울 내에서의 상황은 훨씬 부정적이고 절망적이죠.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선 1998년 IMF 이후 학교 문화가 확 바뀌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어진 취업 대란 때문에 예전 같은 출구가 사라지게 된 거지요. 지역 명문고라는 이름의 기준이 아무래도 서울대 진학률이었는데, 예전엔 4, 50명씩 배출했던 학교가 이젠 2명 정도 보낼까 말까 하게 된 거지요. 교사와 학생들도 자연히 열의가 떨어집니다.
일각에선 학교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전교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요. 신자유주의 체제로 진행하면서 대졸자 취업난이 가중되는 건 학교 교육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는데, 그런 사회구조적 변화를 외면한 채 여론몰이용으로 전교조를 끌어오는 겁니다.
교사의 종교의 자유 vs 정치적 자유
▲ 도서평론가이자 한양대 특임교수 이권우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방금 말씀하신 대로 이제 교사의 정치적 자율성 문제를 얘기해 볼까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재판장에 섰던 박지희 교사의 최후 진술문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게 유죄라고요?'에서 그 상황이 자세하게 드러나는데요.
한국의 교육 행정기관은 모든 교육 정책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서, 교사를 단지 정책 수행만 하는 집단으로 만들고 있어요. 정치적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렵고 전교조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대처하죠. 그러나 교사의 정치적 자율성이라는 말은 교육적 자율성이라는 말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요. 교사한테는 왜 이렇게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는 건지도 고민해볼 대목입니다.
이현우 : 박지희 교사의 글 한 대목을 보지요.
2011년 봄쯤 전교조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소 대상자란다. 민노당에 가입하고 당비 등을 납부한 혐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 때문이란다. 나와 같은 이유로 현재 교사·공무원 1920명이 법원의 재판을 받았고 또 받고 있다고 한다. 단일 사안으로 기소된 규모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부끄러운 사례라고 한다.
이런 기소 규모가 유례없다고 하는 건 이런 식으로 규제하는 나라도 별로 없다는 뜻이겠죠. 전 박지희 교사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요. 사적 영역에선 종교의 자유가 있잖아요. 교사는 종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종교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치적 입장 역시, 학생들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할 순 없지만 본인이 개인적으로 어떤 정당을 지지하거나 후원금을 내는 것까지 금지하는 건 과도한 규제이자 후진적인 법 적용이라고 봅니다.
김용언 : 윤지형 교사의 글 '교사들의 '침묵', 이것은 무엇인가?'에선 온갖 뉴스를 주고받는 점심 식사 시간을 묘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때론 연평도 사태 같은 걸 놓고서는 '조·중·동'과 '한겨레·경향'이 교사의 입을 통해 대리전을 치르기도 한다(아주 드문 일이긴 한데 왜냐하면 이런 사안의 경우 '조·중·동'은 대체로 대놓고 떠들어 대기 십상인 데 반해 '한겨레·경향'은 진작 입을 닫아 버릴 때가 많으니까.)
저도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이 보수적인 입장에서의 논평은 스스럼없이 교단에서 발화했습니다. 거기 대해선 아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고요. 한국에선 진보적인 혹은 급진적인 관점 자체가 뿌리 깊게 죄악시되기 때문에 공적으로는 아예 꺼내들기를 주저하지요. 하지만 보수적 입장 표명은 모두가 '용인'합니다. 이게 너무나도 사회에 만연한, 주된 이데올로기라서 그럴까요? 하지만 그것 역시 정치적 입장인데, 거기 대해서는 이의 제기를 하질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편향된 '정치적 입장'입니다.
이권우 : 우리 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사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분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학생들 앞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의 발언을 하면 꼭 교장실에서 전화가 걸려와 불려가곤 했다는군요.
김용언 : 학생 중 누군가가 부모한테 얘기하고, 그 부모가 교장한테 전화한 거겠군요.
이현우 : 감시 사회가 아주 철저하네요.(웃음)
이권우 : 지인에게 전해들은 이런 예도 있습니다. 논술 시험이 한창 위력을 떨칠 때 어떤 스타 강사가 수업 시간에 진보적인 내용의 지문들을 제시했대요. 보수 신문 논설위원의 자식도 그 강사에게 배웠는데,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을 전해들은 논설위원이 항의 방문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강사가 보여준 기출 문제들이….(웃음) 이런 걸 풀어야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간다고 보여주니까 그 자리에서 '앞으로도 계속 잘 가르쳐달라'고 했답니다.
말하자면 대학이 상대적으로 누리고 있는 자율성 때문에 시험 지문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고, 따라서 논술 강사들에게도 그만한 자율성이 주어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에게 정치적 자율성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교육적 자율성이 없다는 뜻이겠지요.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의 교사들의 갈등은 국가나 체제가 원하는 유형의 인간을 만드는 게 진정한 교육이냐, 교육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북돋는 게 진정한 교육이냐의 문제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왜 대학만큼의 자율성을 일선 공교육 현장에 안 주는 걸까요.
이현우 : 요즘은 의무교육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국민교육 수준에서 이해하는 게 아닐까요. 국가 자체도 진정한 '공적' 국가인지는 좀 의심스러운데, 어쨌든 국가가 공교육을 지원하니 국가의 구미에 맞는 학생들을 배출해야 하고, 교사들도 거기에 동조하기를 자꾸 강요하는 건 아닐까 우려됩니다.
이권우 : 그렇다면 이 나라는 어떤 유형의 인간을 배출하길 바라는 거죠?
이현우 :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업 일꾼이죠. 노동자도 아니고요.(웃음) 기업에 순종하는 의무만 있는 존재.
김용언 : 머슴이네요.(웃음)
이권우 : 순종하고 복종하는 존재라는 말이 나오니 곧바로 종교 집단이 떠오르네요.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 동력을 얻으려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들을 키워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머슴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게 나오나요? 한 체제나 계급의 이익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어떤 유형의 인물을 배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되는데, 교사들에게 그 고민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계급을 재생산하는데 교육 체제를 활용하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이현우 : 그건 교육에 대한 유구한 좌파적 규정이기도 한데요.(웃음) 사회 체제가 변화해온 만큼 교육의 상도 좀 달라져야 하는데 거기에 부응하고 못한 채 너무 지체되고 있습니다. 제도야 모양새로나마 자꾸 바뀌는데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의 관념, 상, 조직 사회에 대한 인식 자체는 요지부동입니다.
김용언 : 혁신 학교라든가 대안 학교 등이 공교육 파행에 대한 대안책일 텐데요, 이 책에서 그쪽 선생님들의 목소리도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이권우 : 혁신학교는 공교육 내부의 혁신, 대안학교는 공교육 바깥의 혁신을 추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교육 현장과는 방향이 많이 달라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강고한 입시 제도가 완화되고 서열화된 대학 구조가 바뀌지 않고서는 이런 학교들도 별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유명한 대안학교도 알고 보면 학생들을 어떤 대학에 많이 진학시켰다고 해서 유명해진 거거든요.
전 개인적으로 교사 연수 강의를 통해서 교사들을 많이 뵙습니다. 아이들과 열심히 소통하고 공교육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기희생적인 분들이 계세요. 평생 평교사를 하겠다는 분들이죠. 제도가 못하는 일들을 해내려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면서 현행 교육 제도 안에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인데, 정말 안타까운 건 이분들이 많이 지쳐있고 육체적으로 아프다는 사실입니다. 이분들이 더 지치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제도를 개편하여 어떻게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함께 갈지, 좋은 선생님들이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함께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현우 :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 수가 급감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처음으로 30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80년대에 비하면 절반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10년 뒤 대학도 문제가 되지요. 절반 정도 구조 조정을 하거나, 등록금을 또 두 배로 올리거나.(웃음) 병원 중에서도 산부인과와 소아과들이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한다더군요.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지진 않을 텐데 10년 안으로 이 변화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뭐랄까, 변화를 강제하는 굉장히 큰 요인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시스템 자체에 비해 시스템 바깥의 변화는 너무 빠르고 그에 대한 요구는 너무 많습니다. 거기에만도 적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전히 학교 내 구시대적 관행은 남아 있고, 현재 교사들은 2중, 3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게 맞습니다. 이 문제의 해법을 당장 모색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가를 빨리 털어놓기부터 해야 합니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많은 부분 진정되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누군가도 그랬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희망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섣부른 희망을 얘기하기보다, 우리가 현재 어떤 절망적 상태에 놓여있는가를 제대로 직시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인지보다 더 중요한 건 문제의 확산이라는 말에도 공감하고요.
기간제 교사가 받는 차별에 응답하라
▲ <프레시안> 기자 김용언 ⓒ프레시안(최형락)
이권우 : 한국 사회 곳곳에 비정규직근로자 문제가 심각한데요, 이 책을 보면 교단 내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들의 고통도 확인하게 됩니다. 이형환 교사의 글 '올챙이 교사의 학교 표류기'에 보면 재계약 조건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닥스 와이셔츠와 넥타이에 상품권을 30만 원 정도 넣어 드리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하죠. 그런데 10만 원 짜리를 넣는 바람에….
이현우 : 아니 줌만 못한 거죠.(일동 웃음) 아예 안 주면 '처음부터 몰랐다'지만, 10만 원을 넣은 건 무시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겠죠.
이권우 : 공정가가 있는 걸 알아야 하는데!(웃음) 정규직이 받는 혜택과 비정규직이 받는 차별의 격차가 너무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지요.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정년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대요. "교수님, 연구실이 어디세요?"하고 물어본다는 거죠. 연구실이 없다고 하면 비정규직 교수인거고, 그걸 아는 순간부터 그 교수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진답니다. 가슴 아프지요.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기간제 교사들이 겪는 서러움과 차별은 점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 오랫동안 비정규직으로 살아와서 이젠 둔감해지다시피 했는데, 정말 동일노동 동일임금만 되더라도 비정규직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현우 :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구분 자체가 무력해진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어요? 동일임금을 받고,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고 교내 시스템에 너무 구속받지 않아도 된다면 오히려 비정규직의 대우가 훨씬 좋아지는 거니까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의 문제가 심각한 건, 교직의 특수성상 당장 아이들에게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 해결의 주체가 누가 있을까, 물론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등의 교육 당사자들이 전부 노력해야 하지만 우선은 교장 선생님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만족도도 높고 파워도 센 분들이요.(웃음)
이권우 : 이건 마치 강남 쪽 땅값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듯한데요?(웃음)
이현우 :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에도 분명 훌륭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소개됩니다. 정은희 교사의 글 '우리는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에선 학생부 학교폭력 기재를 거부한 교장 이하 모든 교사들의 싸움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학부모들도 상급학교 진학률만큼이나 그 학교를 책임지는 분의 교육 철학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되지 않을까요.
이권우 : 승진 시스템이 아닌 공개 모집을 통한 투명한 절차를 확립시키려던 교장 공모제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었을 텐데, 현재 도입 6년째인데도 시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 아쉽습니다.
교실 파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현우 : 어떤 면에서는 이런 불만도 듭니다. 오늘날 많은 교사들이 교실 안에서만큼은 자신들이 주인이라는 권리를 방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졸거나 딴 짓을 할 때 그냥 교사 혼자 시간 채워서 진도 나가는 경우들도 분명 많습니다. 전 교실을 확실하게 장악하는 건 일종의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은 여러 가지 사회 외적 요인 때문에 학생들을 장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사들 스스로 자기 교권을 확실하게 주장하고 보장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노력할 지점도 있다고 봅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읽었는데, 학부모의 경험상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1/3 정도는 계시다고 합니다.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의 차이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에요. 아이들의 어떤 작은 차이점에 대해 인지하고 말이라도 한 마디 해주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자기가 관심 받고 사랑 받는다고 느끼면 아이들은 즉각 반응하거든요. 그게 장악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주장했지만 일단 교장 선생님이 바뀌어야 하고(웃음), 그런 빠른 변화가 어렵다면 적어도 교실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자신의 교권을 발휘할 수 있는 선생님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권우 : 가르친다는 게 참 어렵지요. 우리는 전근대 사회의 권위가 완전히 무너진 탈근대 사회에 살고 있고, 아이들은 거기에 민감하게 적응합니다. 그런 면에서 점점 학교가 파괴되는 상황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게 아니라 더 큰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교사들 개개인만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물론 교사들의 책임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분들이 교실 파괴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성공 혹은 실패를 겪었는지 공론화하면서, 사회 전체가 배움의 장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모순이 강고해졌지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학생들도 달라져요. 사회의 근본적 힘이 되는 사유의 능력을 키워갈 수 있게 될 텐데 그게 우리 교육에서 과연 가능한가, 어떻게 해야 가능한가, 우리 때 겪었던 고통을 자식 세대가 여전히 겪고 있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어떻게 중단시킬까 고민스럽습니다.
김용언 : 학창 시절에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18세기 교실에서 19세기 선생들이 20세기 아이를 가르친다.' 정말 맞는 말이죠.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깨달을 때마다 과연 한국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비관적인 생각만 듭니다.
이를테면 일본이나 미국의 대중문화를 보면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작품들이 대단히 많지요. 선생님이 주도하여 주변 학생들을 감화시키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작품들이 실제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요. 영화에서 얼른 떠오르는 영화의 예를 들자면, 전교조 투쟁을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라든가, 상업영화 계열에선 <울학교 이티><선생 김봉두> 혹은 <완득이>까지 아우를 수 있겠는데요. 선생님이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역할로 등장하는 영화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나머지 영화들, 1980년대 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필두로 한 10대 영화 전통에서도 전부 분노하고 고통받는 학생들이 주인공입니다. 여기서 교사의 존재가 희미하게 그려진다는 건 뭔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책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공론화되지 않았던 문제점을 끄집어내면서 본인들끼리 네트워킹 노력을 하시는 선생님들 주변으로 작게라도 변화가 시작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현우 : 좀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한다면 개별적인 경험담 위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전체적인 그림이나 대안에 대해서는 힘이 떨어지지요.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 맞닥뜨린 교사들의 구체적인 고민이 여기 나왔으니, 이제는 학생 버전의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와 학부모 버전의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가 연속적으로 출간될 차례가 아닌가 합니다.(웃음) 교육 관련 다른 당사자들의 의견도 수렴하면서 전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어디서부터 개선해야 할지 상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2008년 '일제고사 징계' 당시, 김윤주 교사가 아이들과 인사를 하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던 김 교사에게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이 '성적표'를 냈다.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김 교사의 얼굴을 그린 성적표를 받아든 김 교사는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울었다. ⓒ프레시안(손문상)
김용언 : 마지막으로 제가 관심이 갔던 부분을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요. 교단 개혁과 병행하여 한국 사회 전반의 모든 연령층에 만연한 자기계발 의지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자기계발이 모두에게 체화되어 버렸잖아요. 하다못해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유의 책 제목도 나오고.(웃음)
얼마 전 SNS상에서 화제가 됐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영화감독 팀 버튼의 전시회장에서 목격한 풍경입니다. 어린 아이와 함께 온 엄마가 '팀 버튼은 창의적인 사고를 한 예술가'라고 강조하면서 "이 그림이 뭘 뜻하는 것 같아?"하고 묻더래요. 아이가 뭐라뭐라 대답을 했더니 "그거 아니야!"라고 아이를 막 쥐어흔들면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말하기를 강요하더라는 거죠.(일동 웃음)
무척 상징적인 풍경입니다. 그 아이가 성장하면서 비단 공교육 뿐 아니라 부모든 또래 집단이든 혹은 사교육에서든 자기계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창의적으로 생각해서 성공하라고 주문하면서, 하지만 그 창의적 사고에는 정답이 있다고 아이들을 다그치는 겁니다. 이 아이들이 커서 40대, 50대가 되면 역시 아래 세대들에게 마찬가지 태도를 보이지 않을까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이 책에서도 서동진 선생님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돌베개 펴냄)가 언급되던데, 교육 문제를 이 자기계발 문제와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기 힘든 시대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내가 겪은 몹쓸 일, 방과후학교'를 읽으며 든 생각입니다. "여성의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목적으로 노무현 정부 때 확대된 방과후학교 정책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끝없는 경쟁체제로 돌입합니다.
방과후학교 수강률이 학교별 성과급의 중요 지표가 되면서, 교사들이 수업을 얼마나 잘하고 학교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운영되느냐보다 방과 후에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학교에 남아 있는가가 성과 좋은 학교의 모델이 돼 버렸다.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돌봄을 학교에 오롯이 던져 놓고는 학교 본연의 가르침과 배움보다 방과후학교를 잘해야 몇십만 원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3개월 단위로 1년 동안 네 번 진행되는 방과후학교의 과중한 업무가 교사들, 특히 여성 교사들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가 이 글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관공서도 교육청도 다 쉬는데 학생과 교사는 토요 휴업일에도" 학교에 나와 방과후학교를 계속해야 하고, 평일에는 그 돌봄 시간이 밤 9시까지 연장된다고 합니다. 방과후학교를 맡은 교사는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또 다른 방과후학교거나 저임금 비정규직 돌봄 노동에 떠안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건 거의 폭탄돌리기라는 기분이 드는데요. 교사와 학부모가 감내해야 하는 무제한의 '돌봄 노동'이 학교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인 선생님,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부모로서의 엄마에게 가해지는 압력이 교육과 연결되어서 어떤 식으로 자기희생을 강요하게 되는지, <기획된 가족>(조주은 지음, 서해문집 펴냄)과 함께 연결되어 얘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권우 :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도 참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고요, 4월에 또 다른 책으로 뵙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