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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카페 게시글
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1)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94 18.02.03 19: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주요 목차

 

*권두 에세이/ 오명현

*신작시 21/ 김석규 차영호 주경림 김성중 유진 민문자 이윤진 김수원 조경진 조성순

              남정화 이기헌 이사랑 남대희 성숙옥 강위석 김혜천 전선용 백애송 박선희 여연

*신작 소시집/ 우정연 *테마 소시집/ 이범철

*연재시/ 홍해리 *나의 시 한 편/ 박병대 손한옥 김은옥

*시 에세이 및 감상/ 전선용 정일남

*신작 소시집 다시 읽기/ 이동훈

*산문/ 임채우 시원을 찾아서

*한시한담/ 조영임 비 오는 밤 그대 그리워

   

 

 

오맞이꾼 - 김석규

 

약수터 짙은 그늘 치마끈 다 흘러내리네

목 마른 산새가 물 마시러 찾아들다가

질펀히 물커진 복숭아빛에 화드득 놀라

혼비백산 오던 길을 황황히 돌아나오며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구시렁대는데

세상에 구슬을 입에 무는 것도 다 보겠네.

     

 

사랑이란 - 차영호

 

샌들을 신고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그리하여

무꽁댕이 같은 발가락부터

 

노닥노닥

 

세상을 죄다

바람 들게 하는 것

   

 

 

팔영산 능가사에서 - 김성중

 

능가사 응진당 앞

미로 차밭을 벗어나는데

한참이나 걸렸네.

 

차꽃을 찍으려고 하니까

차꽃은 부끄러워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네.

 

꿀을 따는 나나니벌도

애를 먹고 있었네.

 

해가 넘어가는 능가사에서

여덟 개의 봉우리를

세고 있었네.

   

 

 

- 유진

 

척이 걸어가네

턱의 각도는 약간 위로, 시선은 아래쪽 사선으로

 

등과 어깨와 목을 최대한 곧추세운

척들은 하나같이 독일병정이 되네

 

힘센 척의 투명 줄을 잡고 걷는

척과 척의 비밀은 쉬,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여덟이 되고

척의 마을을 이루네

 

척을 가르면 쏟아지는 표정들

사랑인 척, 아닌 척, 궁금한 척, 놀라운 척,

모르면서 아는 척, 알고도 모르는 척,

, , , 척들

다물지 못하는 입들은 뭉게구름이 되네

 

척의 마을에서는 척이 척을 갉아 먹네

아이가 부모를 부모가 아이를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사람이 사람을 갉아 먹네

 

빳빳하게 깁스를 한 척들 아슬아슬 벼랑을 걷고 있네

   

 

 

사과 - 민문자

 

추석 선물로 사과 한 상자가 택배로 배달되었다

꼭 커다란 케이크 상자처럼 가볍다

3kg, 고작 10개가 들어 있단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사과 상자를 열지도 않고 구석에 두었다

옛날 명절 선물은 50~60개가 들어간 15kg 나무상자였지

포장만 미려하면 되나 실속이 있어야지

구시렁구시렁

 

그런데 이튿날 열어보니

진공포장에 오존수 세척, 천년의 맛이라며

껍질째 통째로 먹는 웰빙사과란다

옛날 임금님도 구경 못 하신 귀한 것을

갑자기 내가 귀족이 된 듯싶다

생산자가 이 사과 하나를 상품화시키느라

그 얼마나 애썼을까?

생산자와 선물을 보낸 분의 마음을 다시 생각했다

   

 

 

여우비 - 남정화

 

은빛 구조물 안에 갇힌

수많은 사물들

오래된 색이 떨고 있다

떨림의 미학으로 여기다가

내 몸이 은빛이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내가 다시

은빛으로 빛난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맑은 날에도 가끔

눈물이 난다 


 

 

그림자 - 이사랑

 

그곳이, 생지옥이라도

 

그대가 함께 가니 외롭지 않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세나!

   

 

 

풀꽃이라는 이름으로 - 홍해리

    -치매행致梅行 247

 

지레짐작하지 말고

! 하고 이름 한 번 불러 보라.

 

아무 의미 찾지 말고

잠깐 멈춰 서서 풀이 되어 보라.

 

나도 한 포기 풀로

네 옆에 있고 싶다.

 

아내여, 우리도 풀이 되어

풀꽃이나 피우다 가자.

 

 

                      * 월간우리20182월호(통권제356)에서

                                        * 사진 : 2월의 장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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