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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의 사상 비교
- 우주론을 중심으로 -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목 차
1. 대순사상의 성립과 독자성
2. 대순사상의 우주론
3.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의 사상 비교
4. 정리하며
1. 대순사상의 성립과 독자성
서양의 천주교와 개신교를 보자. 이들은 모두 예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교리 해석이나 의례 등에서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큰 흐름에서는 같은 선상에서 보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다른 전통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같은 논리를 대순진리회와 상제님을 신앙하는 타 교단에 적용시켜보면, 대순진리회와 타 교단도 모두 상제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교리와 의례 ㆍ 수행 방식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같은 종교로 묶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대순진리회나 타 교단은 소수종교이므로 편의상 동일한 종교로 묶어서 이야기하고, 천주교나 개신교는 세계종교이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살피는 것이라는 논리는, 개별 종교의 자율성을 말살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기에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한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종도들은 상제님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을 저마다 달리 하였으므로 각자의 생각에 따라 상제님의 진리를 해석하고 교단을 만들었다.01 물론 이들은 팔파연합회(1926년), 증산교단통정원(1949년), 증산대도회(1955년), 민족신앙총연맹(1960년), 동도교(1961년), 증산신도친목회(1971년), 증산교단통일회(1971년), 증산종단연합회(1974년) 등을 만들어 꾸준한 연합 운동을 펼쳤다.02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리에 대한 저마다의 입장이 달랐던 만큼 사상적 통일까지는 도모하지 않았다.
대순진리회는 타 교단과 달리 상제님을 옥황상제님으로 신앙하지 않고 구천상제님으로 신앙한다는 점, 상제님께서 49일간 대원사에서 행한 공부를 통해 득도하시고 비로소 권능을 가지게 되신 것이 아니라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이신 우주의 최고신이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오신 것으로 본다는 점,03 상제님의 사상이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ㆍ전 우주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는 점, 상제님의 사상이 단군 이념의 재창(再唱)이 아니라 상제님만의 유일무이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점04 등, 교리 면에서 다르다. 또한 의례나 수행방식에도 일정한 차이가 있다. 상제님을 신앙하는 타 교단의 사상과 대순진리회의 사상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순진리회에서는 대순진리회의 사상을 ‘대순사상’이라고 표현한다. ‘증산사상’이라고만 하면 상제님께서 펴신 사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타 증산교단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와의 차별성을 나타내기 어렵다.
대순사상의 성립은 도주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상제님께서는 1901년부터 삼계(三界) 개벽을 목적으로 하는 천지공사를 시행하시고 1909년에 홀연히 화천하셨다. 그때 도주님께서는 천명(天命)을 받드셨고 그 후 50년간 각고의 고초를 겪으시며 상제님의 진리를 체계화하고 진법(眞法)을 완성시키셨으니, 이것이 바로 대순사상이다. 도주님께서는 1958년에 도전님께 종통을 물려주시면서 도의 전반을 맡아나가도록 하명하셨으므로 대순사상은 도전님에 의해 계승되었다.
‘대순사상’에서 주가 되는 단어인 ‘대순(大巡)’은 ‘크게[大] 순찰한다[巡]’라는 의미로서, 상제님의 삼계대순(三界大巡) 개벽공사(開闢公事)의 뜻을 담고 있는 말05인 동시에,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고 하는 대순진리회의 우주론(宇宙論)을 설명해주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주론이란 우주의 본체ㆍ기원ㆍ구성ㆍ법칙ㆍ운동 따위에 관한 근본 원리를 따지는 이론이다. 대체로 한 종교가 주장하는 우주론은 그 종교 교리 체계의 밑바탕을 구성하면서 신관(神觀)ㆍ인성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따라서 특정 종교의 우주론 이해는 그 종교의 심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그 종교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해주는 중요한 작업이 된다. 우리 종단의 경우에도 우주론은 최고신 관념과 관련을 가지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적다 할 수는 없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 종단의 우주론을 기술하고자 함에 있다.
2. 대순사상의 우주론
① 도주님께서는 1925년 전북 구태인에서 처음으로 무극도(無極道)를 창도하실 때 다음과 같은 취지서를 밝혀주셨다.
도는 하늘이 명하여 사람이 행하는 것이고 하늘에 무극대도(无極大道)가 있어 무극(无極)의 이치로써 사람을 화생(化生)한다. … 대개 도는 이치이고 이치는 무극이요, 무극은 하늘이다. … 무극은 하늘의 무극한 이치이며 하늘은 이치를 사람에게 주고 사람은 도를 하늘로부터 받는다.… 06
무극도는 1941년 일제(日帝)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하였고, 도주님께서는 해방 후인 1948년 부산에 다시 도 본부를 설치하시고 종교 활동을 부활하셨다. 1950년에는 교단의 이름을 태극도(太極道)로 바꾸시고07 다시 다음과 같은 취지서를 내셨다.08
宇宙之爲宇宙는 元有本然法則而其神秘之妙 在乎太極이니 外此無極故로 曰 太極也이요 唯一無二故로 曰太極也라 惟是太極也는 至理之所以載也요 至氣之所由行也며 至道之所自出也라…09
(우주가 우주 된 본연의 법칙은 그 신비의 묘함이 태극에 있는 바이다. 태극은 그 바깥으로는 더 이상의 다함이 없는 유일무이한 진리이다. 따라서 이 태극이야말로 지극한 이치가 담겨있는 곳이요, 지극한 기운을 운행시킬 수 있는 곳이며, 지극한 도(道)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무극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용어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우주의 본원이다. 태극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용어로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우주의 본원이다. 무극도와 태극도의 취지서를 비교해보면 우주의 본원(本源)은 각각 무극과 태극으로 표현되고 있다. 같은 하나의 우주의 본원에 대해 무극과 태극이라는 다른 용어가 사용되고 있고, 이에 각각 대응해서 무극도와 태극도라는 종단의 이름도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1958년 도주님께서는 화천하시면서 도전님께 종통을 물려주시고 태극도를 이끌어나가도록 명하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태극도의 일부 임원들은 종통을 부정하였고 도전님께서는 1968년 태극도장을 떠나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게 된다. 그때 도전님께서 밝히신 대순진리회 창설 유래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 우주(宇宙)가 우주(宇宙)된 본연법칙(本然法則)은 그 신비(神秘)의 묘(妙)함이 태극(太極)에 재(在)한 바 태극(太極)은 외차무극(外此無極)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진리(眞理)인 것이다. 따라서 이 태극(太極)이야말로 지리(至理)의 소이재(所以載)요, 지기(至氣)의 소유행(所由行)이며 지도(至道)의 소자출(所自出)이라. …10
이 글을 보면 태극도 취지서와 내용이 동일한데, 단지 앞부분에 ‘대순(大巡)이 원(圓)이며 원(圓)이 무극(無極)이고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라’는 부분이 더 추가되어 있다. 이것은 대순사상의 우주론을 나타내는 것으로, 도전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훈시를 하신 바 있다.
상제께서는 모든 신성(神聖)ㆍ불ㆍ보살들의 하소연에 따라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인간 세상에 오셔서 9년 동안 공사를 마치고 화천하셨습니다. 대순이란 막힘없이 둥근 것입니다. 둥글다는 것은 무극이며, 근본의 자리요, 걸릴 것 없이 통하는 것입니다.11
대순은 둥근 것이다. 끝이 없고 막힘이 없으니 대순이 무극이요, 무극이 대순이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 것이 아니고,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이 무극이다. 태극은 극이 없이 크다는 뜻이며 대순을 의미한다.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 삼라만상의 진리가 대순에 실려 있다. 그 안에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12
대순이라 함은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대순이 무극이요, 무극이 대순이요, 무극이 태극이요, 태극이 무극이다. 태극이 무극에서 나왔다는 것이 아니다. 전 우주의 모든 천지일월이라든지 삼라만상의 진리가 대순, 태극의 진리다.13
우리 종단의 명칭은 ‘大巡眞理會’이다. 대순은 동그라미다. 원(圓)이고 막힘이 없다. … 원은 무극이다. 무극은 끝이 없다. 극이 없다. 태극은 무극이란 말과 동일하다. 태극의 太는 클 태이다. 대순은 아주 무궁무진하고 한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크게 도는 참된 진리이다.14
상제님께서 삼계를 모두 살펴 본 진리가 대순진리이며, 대순은 원으로 형상 지을 수 있고, 원은 그 형태가 극(極)이 없는 모양이므로 무극이라 한다면, 이때의 무극은 우주의 본원이라는 개념보다는 끝이나 한계가 없다는 의미로서 원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대순진리회 창설 유래 글귀에 나오는 ‘외차무극(外此無極)하고’는 ‘이[此] 바깥[此]으로는 더 이상의 극진함[極]이 없고[無]’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무극(無極)은 우주의 본원이 아니라 끝이나 한계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外此無極’에서 무극이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이 바깥은 무극이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려면 ‘外此無極이니’라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창설 유래 글귀에는 ‘外此無極하고’이므로 형용사적 의미가 되어 ‘無極하다’ 즉 극진함[極]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더해서 도전님께서는 대순의 진리가 무궁무진하여 한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극이 없는 무극이며 무한히 큰 태극이라고 하시면서,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 것이 아니라 무극과 태극은 동일한 말이라고 가르치셨다. 즉 도전님께서는 우주의 본원을 대순으로 설명하시면서 무극ㆍ태극과 연결시키셨다. 도주님께서 무극도 취지서에서는 우주의 본원을 무극으로, 태극도 취지서에서는 태극이라 밝히셨다는 점을 상기하면, 결국 도전님께서 훈시하신 우주론은 도주님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② 또 도주님께서 1956년에 발행토록 하신 『태극도통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道之謂道也者는 定而无極하고 動而太極하야 太極이 生兩儀하고 兩儀生四象하고 四象生八卦하나니 太極之理生生之數는 無盡無量하야 變通造化功德을 不可思議일새 惟我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 管領主宰 太極之天尊이시라.15
도라고 이르는 도는 정해지면 무극이요 움직이면 태극이니, 태극은 양의를 낳고 양의는 사상을,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태극의 이치가 낳고 살리는 법은 다함이 없고 한량이 없으며 변하고 통하며 조화하는 공덕을 가히 측량할 수 없도다. 오직 우리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께서는 태극을 관령 주재하시는 천존이시다.
우선 이 글에서는 구천상제님을 ‘태극의 천존’이라 한 부분이 우선 눈길이 간다. 이 글의 우주론은 무극 즉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양의에서 사상(四象)이, 사상에서 팔괘가 나와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이라고 한 『주역』의 우주론과 동일하게 보인다.16 양의란 태극에서 음양이 분화되어 나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 곧 음양과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되며, 도전님께서는 이 음양이 바로 도(道)라고 훈시하신 바 있다.
도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17
도는 음양이고 사상ㆍ오행이며 1년, 12월, 360일이다. 모든 조화ㆍ법칙은 음양에서 나온다. 음양의 원리에 의해 1년 12월에 사철이 다 들어가 있으며, 또 여기에 72후(侯)가 들어있어 모든 조화가 그 안에 다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변화하니 그것이 도이다.18
종합해 보면 대순사상에서의 우주론은 ‘상제님께서 대순하여 삼계를 개벽하신 진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대순’에서부터 시작하여 무극과 태극으로 나아간다. 무극과 태극은 동일하며, 무극 즉 태극은 우주 만물이 생성ㆍ전개되는 시원(始原)ㆍ근원이면서 동시에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순환하는 원리라는 뜻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설정된다. 태극으로부터 음양이 나오고 오행이 발현되어 만물은 생성ㆍ소멸하게 된다. 따라서 대순사상의 우주론은 『주역』의 우주론, 그리고 태극으로부터 음양과 오행이 나와서 만물을 생하게 한다는 주돈이(周敦頤 , 1017~1073)의 신유학 우주론과 일면 동일한 구조를 갖는 것처럼 여겨진다.19
그런데 이 우주론에서 우주의 본체가 태극이고 음양이라면, 태극과 음양이 어떻게 오행을 구성하고 만물을 생성시키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주역ㆍ신유학의 우주론과 대순사상의 우주론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우선 신유학은 이기론(理氣論)으로써, 다시 말해 태극을 리(理)로 음양을 기(氣)로 대체하여 주리(主理) 혹은 주기(主氣)의 관점에서 우주의 분화를 해명한다. 주자나 이퇴계 등은 주리설, 장횡거와 서화담 등은 주기설의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송나라 이후 유학자들은 철학적 사변의 영역에서 이기(理氣) 우주론을 탐구하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심성(心性)을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다.20
이에 비해 대순사상은 우주의 본체를 최고신으로 놓고, 즉 무극을 ‘무극신(無極神)’으로 규정하고 그 무극신의 조화(造化)로써 우주를 설명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극신 외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 ‘구천대원조화주신’ 등21 대순사상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우주의 절대자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는 가장 높은 하늘인 구천에서 절대자가 음양의 결합인 뇌성(雷聲)으로써 하늘과 땅의 기(氣)을 오르내리게 하여 만물을 생성ㆍ변화ㆍ지배ㆍ자양한다는 의미를 담은 존칭이다.22 이 존칭은 최고신의 위치와 권능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구천대원조화주신은 최고신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사용하여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조화(造化)로써 만물을 다스린다23는 의미를 담은 존칭으로 최고신과 만물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천주교나 개신교의 최고신이 조물주(造物主)라면 대순사상에서의 최고신은 조화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조물주가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사물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조화주(造化主)는 사물을 직접 하나하나 일일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을 주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무극신은 최고신의 본질이 우주의 본체와 동일하다는 의미를 담은 존칭으로, 최고신의 성격을 규정짓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대순사상은 이기론과 같은 철학적 차원을 넘어서 종교적 차원 즉 신의 권능을 통해서 우주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극ㆍ태극을 본질로 하는 최고신이 생장염장이라는 우주의 법칙을 주관하며, 음양의 결합인 뇌성으로써 오행과 만물을 생성ㆍ변화ㆍ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도주님께서는 『태극도통감』에서 상제님을 ‘태극의 천존[太極之天尊]’이라 하셨으니 태극의 주체는 상제님이시다. 태극은 무극과 같기 때문에 ‘태극의 천존’은 ‘무극의 천존’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무극의 천존은 무극신이며 무극의 주체도 역시 상제님이시다. 무극은 대순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순의 주체도 상제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세상이 진멸의 지경에 처하게 되자 신성(神聖)ㆍ불ㆍ보살이 상제님이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자 구천에 계시던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셨던 것이다.
3.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의 사상 비교
1968년 도전님께서는 태극도장을 출궁하셔서 종단의 조직을 새로 개편하시고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셨다. 대순진리회의 입장에서 보면, 1968년 이전의 태극도는 도전님께서 종통을 계승하신 분으로서 10년간 공부를 돌리시면서 도의 운영 전반을 감독하고 계셨기 때문에 대순진리회로 개명되기 이전의 같은 종단으로 인정되지만, 그 이후의 태극도는 도전님과는 별개로 움직인 종단이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도전님께서 출궁하시기 전의 태극도는 그냥 태극도라고 표기하고, 그 이후 태극도장에 남은 사람들의 모임은 ‘감천 태극도장’으로 표기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은 모두 도주님의 가르침을 바탕에 두고 있어서, 이름만 다를 뿐 같은 하나의 종단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종단은 우주론에서 차이가 있고 그것은 상제신앙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 두 종단을 하나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다.
도주님께서는 상제님의 신격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이라 설정하면서 태극지천존(太極之天尊)이자 무극신이라 하셨다. 즉 태극과 무극의 주체가 모두 상제님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대순진리회의 우주론으로서,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 왜 구천상제님 한 분인가에 대한 이유가 된다. 도전님께서는 태극도장을 떠나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고 난 뒤에 도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키셨던 것이다.
이에 반해 감천 태극도장에 남은 사람들은 도주님께서 직접 ‘상제님은 무극의 주체인 무극주(無極主), 자신은 태극의 주체인 태극주(太極主)’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는 점을 들면서, 무극과 태극의 주체는 서로 다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24 그런데 도주님께서 직접 ‘태극의 천존은 상제님’이시라는 문헌적 근거를 남기는 상황에서 동시에 당신을 ‘태극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물론 혹자는 그 속에 도의 깊은 오의(奧義)가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극도에 몸담았던 원로 임원들이 도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하신 적은 없다고 증언하고 있고, 또한 태극도 시절 도주님을 도주님, 지존(至尊)님, 정산(鼎山)님으로만 불렀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도주님의 말씀에 어떤 인위적인 가필(加筆)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1960년대 봉축주가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태극도주 조정산 대운대사 소원성취케 하옵소서’였고, 여기에 도주님께서 태극도주(太極道主)로 묘사되어 있으므로 도주님께서 태극주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태극도주’라는 말은 ‘태극의 주인’이 아니라 ‘태극의 도를 펴신 주인’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같은 논리로 해서 ‘대순’의 주체 즉 ‘대순’의 주인은 상제님이시고, ‘대순의 진리를 펴신 분’은 도주님이 되시는 것이다.
무극주와 태극주에 대한 도주님의 말씀이 조작되었다고 의심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감천 태극도장에서 도주님의 언행에 인위적인 가필을 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그들은 도주님께서 1917년에 고국으로 돌아오실 때 압록강 철교를 직접 걸어서 건너오셨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국내로 돌아오시는 길을 안동까지는 마차 편으로 하시고 압록강의 철교는 걸어서 건너시니 이때 국경인 철교에는 헌병의 경비가 삼엄하고 통행인은 누구라도 몸수색을 당하였으나 일행은 그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시니라. 철교를 건너시며 상제님께서 혼자서 한국말도 중국말도 아닌 방언으로 누구와 대화하듯 하시므로 여동생이 이상히 여겨 “오라버님 지금 하신 말씀이 어느 방언이며 또 누구와 대화하셨나이까?”하고 여쭈니 “서양신명들과 이야기 하자니 그리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신의주에서 하루를 묵으시고 철도편으로 다음 날 한양에 도착하셔서 광화문의 여관에서 몇일간을 머무시며 서울의 풍물을 감상하시니라. 철도편으로 밀양 파서리의 외가에 도착하셔서 9년 만에 만나신 외가친척들의 환대를 받으시고 몇일간 종남산 일대의 지형지세를 관찰하시면서 공부하실 장소를 물색하시니라.25
그러나 우리 종단의 『전경』은 도주님께서 1917년 계시를 받으신 후 국내에 돌아오실 때 배를 타고 오셨고 그 중간에 풍랑을 만나 안면도에 이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교운 2장 9절) 교운 2장은 도전님께서 직접 적어서 내려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 기록은 누구보다 도주님을 가까이에서 모셨고 또한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직접 계승한 분이 남기신 것이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이 문제에 대해서 교무부의 연구위원들이 배문걸(작고)에게 문의를 한 적이 있었다. 도주님의 시봉이자 사위였으므로, 도주님의 가족사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었던 배문걸은 도주님께서 고국으로 돌아오실 때 압록강 철교를 건너신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오셨다고 증언하였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도주님께서 1956년에 발행토록 하신 『태극도통감』의 기록이다.
道主趙鼎山任은 檀紀四二二八年(乙未) 十二月初四日에 元故鄕인 咸安郡會文里에서 誕生하시와 十五歲時에 排日思想으로 渡江而西하사 僑寓滿州하시다가 二十三歲丁巳春에 甑山聖師의 太極道理에 感悟하사 渡東回國 하신 後 …26
이것을 보면, 만주로 가실 때의 상황은 ‘도강이서(渡江而西)’이고, 고국으로 돌아오실 때의 상황은 ‘도동회국(渡東回國)’이다. 이 대목과 관련되는 부분이 『채지가』, 「뱃노래」에 등장한다.
강동자제(江東子弟) 팔천인(八千人)은 도강이서(渡江移西) 하올 적에
침선파부(浸船破釜) 결심하고 삼일량(三日糧)을 가지고서
백(百)의 산하(山河) 충돌할 제 팔년풍진 겪어가며
역발산기개세는 초패왕의 위풍이라
대사성공 하잤더니 천지망아(天地忘我) 할 일 없네
계명산 추야월(秋夜月)에 옥소성이 요란터니
팔천제자 흩어지니 우혜(虞兮) 우혜(虞兮) 내약하(奈若何)오
오강(烏江) 정장(亭長) 배를 대고 급도강동(急渡江東) 하렸으나
전쟁사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원통하다
초패왕 항우는 8천 제자와 함께 강동에서 일어나서 유방과 더불어 8년간 천하를 놓고 싸움을 하였으나 천운(天運)을 얻지 못해 실패한다. 마지막 해하(垓下)싸움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많은 군사를 잃고 사랑하는 우(虞)의 시신마저 뒤로 한 채 오강(烏江)까지 쫓겨 내려온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배를 대며 고향으로 돌아가 재기하도록 권유하였지만, 항우는 이미 천운이 없음을 알고는 거부한 채 오강의 강가에서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도강동(渡江東)’은 강을 건너 동쪽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즉 ‘도(渡)’는 ‘물을 건넌다’는 것으로 도주님께서 철교를 걸어서 고국에 돌아오시는 상황을 묘사하기에는 적절한 단어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주님께서 압록강 철교를 걸어서 건너셨다는 감천 태극도장의 기록은 문제가 있는 것이 된다.
또한 감천 태극도장에서는 1909년 도주님께서 봉천으로 망명하신 곳의 지명을 ‘수둔구(水屯溝)’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대련대학교 최봉룡 교수는 4차에 걸쳐 현지 답사를 하여 ‘수둔구’라는 지명이 잘못되어 있음을 실증하였다. 그에 따르면 수둔구라는 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마을 이름을 표기할 때 ‘둔(屯)’을 사용하고, 산이나 강, 호수 이름을 표기할 때는 ‘구(溝)’를 사용하는데, ‘둔’과 ‘구’를 같이 표기하는 ‘둔구’라는 지명 자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한다.27
도주님의 행적을 기록함에 있어서 신성성을 드러내고자 애를 쓰는 일은 나름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점은 기록의 진실성 문제이다.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4. 정리하며
『대순진리회 요람』에 따르면 교운(敎運)의 전개는 종통 계승자에 따르는 것이지, 건물이나 땅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 단체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상세한 내용은 『대순회보』 94호 93∼95쪽 참고) 상제님께서 펼치신 천지대도는 도주님께서 이어받으셨다. 도주님께서는 종단 무극도를 세우셨고 후에 무극도장을 떠나 새로 도의 본부를 설치하시고 종단의 이름을 태극도로 개칭하셨다. 도주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도전님께서는 태극도장을 떠나 새로 도의 본부를 설치하시고 종단의 이름을 대순진리회라 하셨다. 이와 같이 종통을 계승하신 분의 뜻에 따라 상제님의 천지대도는 무극도와 태극도 그리고 오늘날의 대순진리회로 종단의 이름이 바뀌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2010년 현재 경기도 여주에는 대순진리회의 본부가 있고, 부산 감천에는 태극도의 본부가 아직도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외부인들이 감천 태극도장과 대순진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 뿌리가 도주님으로 서로 같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순진리회는 도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고, 감천 태극도장은 도주님의 가르침을 일부 변형시켰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신앙의 대상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으로 규정하면서, 대순 그리고 무극과 태극의 주체를 상제님으로 본다. 이것은 도주님께서 무극과 태극은 동일하며, 구천상제님께서 무극 즉 태극의 천존이라고 하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감천 태극도장에서는 무극과 태극의 주체는 다르며, 무극의 주체는 무극주 구천상제님이고, 태극의 주체는 태극주 옥황상제님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들은 도주님의 위격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도주님을 상제님과 동일하게 만들기 위함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감천 태극도장에서는 구천상제님과 옥황상제님을 같은 하나의 위격으로 놓기 위해 교리를 변형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주론은 한 종교 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따라서 우주론이 서로 다르다면 교리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대순사상의 우주론은 상제신앙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에서 사용하는 주문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주문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고 차이가 나는 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주문이 수도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이 차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특히 진법주(眞法呪)에서 도주님의 신위가 ‘조성옥황상제’와 ‘태극도주 옥황조성상제’로 서로 다르다는 것은 결정적이다. 1960년대 말 태극도에서 봉축주가 ‘무극신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조성옥황상제 소원성취케 하옵소서’였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조성옥황상제’가 아닌 ‘옥황조성상제’라는 신격은 상당히 어색하게 들린다.
도전님께서는 종통을 계승한 분으로서 도주님께서 짜놓으셨던 공부를 돌리시면서, 도주님을 옥황상제님으로 봉안하시고 도수(度數)의 흐름에 따라 진법(眞法)을 세워나가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도주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나가셨다. 이에 비해 감천 태극도장은 종통을 계승하신 분을 인정하지 않고, 종통을 계승하신 분이 도수에 따라 도주님의 진법을 이어나가는 것을 부정하며, 그것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주문을 포함하여 도주님의 행적과 교리를 일부 수정하였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교리가 다르므로 서로 다른 전통으로 분류되고 있고, 대순진리회와 타 증산교단도 교리가 다르므로 서로 다르게 분류되어야 함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은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의 뿌리가 도주님으로서 서로 같으므로 같은 하나의 종단이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순진리회와 감천 태극도장은 우주론과 상제신앙이 다르고, 주문도 달라 수행 방식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하나의 종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으로 판단된다.
01 김은수, 『비교종교학개론』, 대한기독교서회, 2006, 295쪽.
02 홍범초, 「증산교단의 초교파운동」, 『한국종교사연구』 9, 한국종교사학회, 2001.
03 『대순회보』 68호, 대순진리회 교무부, 2007, 88∼107쪽.
04 『대순회보』 69호, 대순진리회 교무부, 2007, 66∼85쪽.
05 『대순진리회요람』, 대순진리회 교무부, 1969, 5∼6쪽.
06 村山智順, 『朝鮮の類似宗敎』, 朝鮮總督府, 1935, 336∼337쪽.
07 도주님께서는 전라도 태인에서 무극도를 여셨다. 경인년(庚寅年, 1950년)까지 무극도라 했는데 무극도에 대한 평이 사회에서 아주 안 좋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도명(道名)을 태극도로 바꾸셨다. 이게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게 도수이다. (도전님 훈시, 1989년 5월 1일)
08 현재 취지서가 전해지는 문헌은 도주님께서 1956년에 발행하도록 한 『태극도통감(太極道通鑑)』이다. 이 문헌의 발행인은 ‘도인 대표 박경호(朴景浩)’로 되어 있는데 ‘박경호’는 도전님의 원명(原名)이셨다.
09 『태극도통감』, 태극도 본부, 1956, 2쪽.
10 이 글은 현재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포정문(布正門) 옆 벽면에 새겨져 있다.
11 『대순회보』 11호, 대순진리회 교무부, 1989, 2쪽.
12 도전님 훈시 (1990년 11월 18일)
13 도전님 훈시 (1991년 1월 3일)
14 도전님 훈시 (1991년 9월 19일)
15 『태극도통감』, 5쪽
16 『주역』, 「繫辭 上」 /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도 같은 내용의 훈시를 내리신 바 있다. “음양은 태극이요 태극은 사상이라. 앞도 있고 뒤도 있고, 옆을 보면 오른쪽과 왼쪽이 있으며, 나아가 오행이 있고 나아가 팔괘가 이루어진다.” (1981년 4월 6일)
17 『대순지침』, 대순진리회 교무부, 1984, 18쪽.
18 도전님 훈시 (1989년 3월 7일)
19 주돈이의 신유학 우주론에서 무극과 태극이 동일하다는 견해(주자학파)와 무극에서 태극이 나온 것이라는 견해(육상산학파)는 아직 통일되지 못하고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20 윤사순, 「동양 본체론의 의의」, 『동양철학의 본체론과 인성론』, 1996, 150쪽∼166쪽.
21 無極神이라는 신격은 ‘无極神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 道門小子 所願成就케 하옵소서’라는 봉축주 주문에서, 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와 九天大元造化主神이라는 신격은 『대순진리회요람』 8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20년대에 최고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들 신격 외 九天上世君, 玉淸眞王을 사용한 적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전경』, 대순진리회 교무부, 2010, 209쪽, 211쪽)
22 『대순진리회요람』, 7쪽
23 나는 생ㆍ장ㆍ염ㆍ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 (『전경』, 255쪽)
24 『진경』, 「태극진경」, 태극도 출판부, 1989, 315쪽, 491쪽, 506쪽, 507쪽, 590쪽.
25 「태극진경」, 343∼345쪽.
26 『태극도통감』, 8∼9쪽.
27 최봉룡, 「만주의 역사적 지명 고증과 현지고사」, 『한민족연구』 3, 한민족학회, 2007.
최봉룡 교수는 만주가 고향인 중국 교포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주지역 한국독립운동사로 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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