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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 1명 (와일드 위즐 기체는 두 명)
길이 : 50피트 (14.95미터)
폭 : 38피트 9인치 (11.81미터)
날개 면적 : 400제곱피트 (37제곱미터)
중량 : 21,000파운드 (9,500킬로그램, 공허중량), 28,847파운드 (13,085킬로그램, 전비중량)
최대 탑재량 : 34,832파운드 (15,800킬로그램)
엔진 : 프랫 & 휘트니 J57-P21/21A 터보제트 엔진
추력 : 10,200파운드(lbf) (45kN)
애프터버너 추력 : 16,000lbf (71kN)
최고 속도 : 750kts(864mph, 1,390km/h)
항속 거리 : 1,733NM (1,995mile, 3,210km)
최대 도달 고도 : 50,000피트 (15,000미터)
상승 속도 : 22,400ft/min (114m/s)
추력/중량비 : 0.55
양력/항력비 : 13.9
무장
20 mm Pontiac M39A1 리볼버 기총 4문 (기본 장착)
AIM-9 사이드와인더 4발 장착 가능 (공대공)
혹은, AGM-12 Bullpup 2발 장착 가능 (공대지)
혹은, LAU-3/A 2.75인치 로켓 포드 2/4기 장착 가능.
미사일 장착하지 않을 시, M117 750 파운드 일반 폭탄 및, '핵폭탄' 장착 가능.
항공 전자 장치
Minneapolis-Honeywell MB-3 오토파일럿 장치
AN/AJB-1B 저공 폭격 시스템
AN/APR-26 RWR 장치
1951년부터 미 공군의 제안으로 F-86 세이버의 후속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초개같은 개발시간을 가졌던 머스탱과 달리 1951년 1월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1월 말이 되어서야 목업이 나왔는데, 이건 이전 것들과는 달리 조금 망했어요. 어쨌든 초기에는 미 공군도 별로 다른 대안이 없었던 지라 프로토타입을 270대 가량 주문했다.
프로토타입 YF-100A는 양산형보다 저급한 XJ57-P-7 엔진을 달고 마하 1.05를 이룩하는 등 나름 괜찮은 성능을 보였으며, 초도 양산형 F-100A형이 53년도 10월에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비행성능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본격적인 도입이 상당히 지연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급격히 러더를 차는 기동을 수행했을 경우 갑작스런 요우+롤 현상이 발생하여 파일럿이 기체를 추스릴 겨를도 없이 기체에 급격한 무리를 주게 되어 분해되는 것이었다[1]. 또 한 가지 문제는, 날개 후퇴각때문에 너무 느린 속도에서 기수를 들 경우 스톨이 발생하며 갑자기 기수가 더 올라가 자동적으로 더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것으로, '세이버 댄스'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았다[2]. 그리하여 동시대에 개발되던 F-84 또한 지연됨에 따라 전폭기로써 도입되게 되며, 후속작 F-107로 이어질뻔 하지만 F-105 덕분에 데꿀멍.
미 공군에서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한 건 1954년 9월부터였다. 그러나 초창기 F-100A의 경우, 위에 설명한 개념 없는 스톨 현상이 자주 발생하여 운용에 애로사항을 겪다가 1955년 7월부터 엔진을 J57-P-21로 개량한 C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한편 A형은 그래도 계속 쓰이다가 1958년부터 도태시키기 시작하여 1961년에 완전히 퇴역시켰다. 이 때만 해도 47대나 비전투 손실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때마침 베를린 장벽의 건설을 비롯한 냉전 체제가 확립되고 긴장이 강화됨에 따라 다시 1962년부터 도입하여 1970년대에 완전히 퇴역시켰다. C형의 경우 엔진을 개량했지만 아직도 세이버 댄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나, 늘어난 최고속도 덕에 핵 폭탄 투척(?) 폭격[3]용으로 개조된다. 그러나 사고기록은 연일 경신되어 1970년 6월 경에는 85기의 비전투 손실을 기록했다.
이러한 비행 특성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지상 공격에 더 알맞는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D형을 개발하는데, 여기엔 오토파일럿 기능의 도입과, AIM-9 사이드와인더의 운용능력도 추가되었다.
1959년에는 D형의 일부가 AGM-12 Bullpup[4] 운용을 위해 개조되기도 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세이버 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을 증가시켰고, 수직 미익을 27%나 크게 만들었다. D형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56년 9월이었다. 그러나 D형도 전기 장치에 문제가 좀 있어서 랜딩 기어나 에어브레이크가 잠기는 등 갖은 수모를 당했다. D형도 결국 비행특성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아 1967년에 대대적인 개수를 받기 전까지 미야모리 소학교 미군기 추락사고를 포함, 500대나 사고로 손실된다(흠좀무). 그러나, 1968년에 F-4 팬텀으로 교체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쓰이게 되는데, 이건 그나마 쓸만한 센츄리 시리즈였던 F-105도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복좌형 훈련기인 F형도 생산되어 1958년부터 도입되었는데, F형도 1970년까지 74대나 사고로 손실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다.
이토록 거지같은 비행성능 때문에 고생한 나머지, 1972년에 전부 주 방위군으로 돌려지고, 남은 자리는 F-4, A-7, A-10으로 채워졌다. 물론, 주 방위군도 기종교체를 하게 되면서 남은 기체들은 덴마크나 터키 등으로 팔려나가고, 남는 것들은 대만 운용기의 부품공급용으로 해체되거나 무인기로 개조(QF-100)되어 공대공 미사일 실험을 위한 표적기로 쓰였으며, 운 좋게 살아남은 몇몇은 민간에 팔려가기도 했다. 현재는 93기가 현존하며 그중 6기가 여전히 비행할 수 있다.물론 행사용이지만
미 공군에서 운용되는 기간 동안 사고로 유실된 기체 수는 총 889대로, 조종사 324명과 운명을 같이 했다.
베트남전에도 투입되었는데 의외로 전쟁기간중 가장 오래 운용한 기종이 되었다. 전폭기로 도입되었기 때문에 주로 지상공격만 투입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예상 외로 F-105를 위한 MiG기 사냥, FAC(Forward Air Controller), 와일드 위즐 등으로 매우 다양한 방면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근접지원용으로도 잘 써먹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교적 초반부터 참여했으므로, 베트남전 최초의 제트기 공중전에 참여하여 기총으로 MiG-17을 격추하기도 하는 등, 제법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5]. 더 재미있는 것은, 이 기총격추가 베트남 전 최초의 격추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에서 99.5%의 신뢰성으로 임무를 달성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실전에서는 꽤나 활약을 한 셈이다.
F-100은 베트남전이 확전되기 전에 있었던 '1962년 라오스 위기(라오스 내부에서의 좌-우익간 충돌사태)'때 이미 인접 태국에 미 공군 소속으로 파견나갈 정도로 참전시기가 빠른 편이고, 이후 그대로 눌러앉아 라오스 등지에서의 폭격 임무를 담당하다가 베트남전이 터지면서 베트남 현지 기지에 파병되었다. 처음엔 라오스나 북베트남까지도 활동했으나 성능부족 때문에 점차 남베트남 영내로 작전 범위가 한정되었다. 하지만 이 덕분에 작전투입은 더 많아졌다.
미 공군은 성능이 좀 떨어지는 F-100에게 남베트남 지역에서의 아군 근접항공지원 등 힘든 일을 거의 떠맡기고 F-4 팬텀 등 신형 항공기에게는 더 위험한 북베트남이나 라오스 공역의 임무를 할당했다. 그 결과 F-100의 수요는 폭주했고, 1968년 테트 공세와 푸에블로호 납치사건(한반도)가 겹치자 존슨 행정부는 주방위군의 제한적 현역소집을 결정해 주방위군의 F-100 운용대대들을 거의 대부분 차출해 베트남으로 보냈다.
F-100은 주로 남베트남의 수도 인근 '판랑'기지에 집중배치되었고, 수시로 긴급 작전소요에 대응해야 했기에 판랑에서는 정신없이 이착륙하는 F-100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항공기간 격투전이나 대공망이 강한 지역에 대한 정밀 공격은 무리지만, 소총사격 정도가 대부분인 근접항공지원에서 F-100은 매우 성공적인 기종이었다.
물론, 오래된 기종이기에 곧 F-4C와 F-105로 교체되었으나, F-4 팬텀의 경우 '어? 기총?' 문제 때문에 조종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주 방위군 작전 중 손실된 기체는 총 14대로, 미 공군의 작전중 손실 기체수를 제외한 수치이지만 사고로 손실된 것에 비하면 정말로 미미한 수준이다(...) 물론, 전쟁 중 총 손실 댓수는 242대이다.
프랑스군에 의해 알제리 전쟁에 사용되기도 했으며, 터키에 의해 1974년 키프로스 침공전에서 F-104와 함께 쓰이기도 했다.
5. 기타
F-100은 동 시대에 활약한 해군의 F-8 크루세이더와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는데, 같은 J57 엔진을 하나 장비한 초음속 전투기임에도 불구하고 성능면에서 크게 뒤떨어졌다. 속도기록만 보아도 F-100이 최대 1,390km/h이지만 같은 엔진을 단 F-8은 1,975km/h. 베트남전에서의 활약도 F-8이 좀 더 화려하다. 크루세이더가 슈퍼 세이버보다 4년 정도 늦게 나오긴 했지만...
활주로를 없애고 대신에 전투기를 로켓부스터로 쏘아 올리려고 했던 ZELL 프로젝트의 미국내 대상기종이었다. 결국 148대가 부스터 장착형으로 개조되었지만, ZELL 프로젝트 자체의 한계로 결국 실전배치되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독일에서는 이걸 F-104로 하려고 했다. 진짜 유인 미사일이 탄생할 뻔한 순간이었다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도 가지고 있는데, 최초 음속 돌파한 미군 전투기라는 것과 함께, 최초로 미군 전투기-전투기간 공중 급유에 성공, 최초로 베트남전에 투입된 미군 전투기 및 최초로 베트남군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1964-1968 기간 동안 미군 곡예 비행대, 썬더버드에서 운용하기도 했다.
글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F-100 사진과 일부 내용은 추가되었습니다.
실기체에 대한 자료는 아래에..
아카데미에서 7월 신제품으로 F-100 수퍼세이버가 출시되었습니다.
1.박스 및 외형
2. 내용 및 특징
이 제품은 이탈래리의 1299번 제품을 재포장한 제품입니다. 지금은 절판중이죠...
72 스케일 이지만 이탈래리의 상당한 명품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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