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길찾기
모처럼 인사동 나들이를 했다. 공평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2010 한국미술 존재와 전망전‘ 오프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내빈으로 축사를 했지만 내 사진작품이 걸린 전시회이기도 해서 본의 아니게 ‘양다리’ 상태가 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오래 동안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위용을 뽐내며 작가들의 만만치 않은 내공을 말해주고 있었다. 덕분에 아직은 경쟁공간에 데뷔할 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내 작품조차 그럴 듯 하게 보였다. 다른 작품들의 후광에 힘 입은 효과겠지만 그래도 뿌듯해지는 마음이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전시 공간 등 정돈된 기획력 역시 작품의 품격을 높이는 데 간과할 수 없는 변수가 되는 것 같다.
이날 전시작품 중에는 개인적으로 안면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제법 많았다. 그런데 전시된 작품만으로 해당 작가의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매 번 느끼는 바지만 작가와 그들의 작품이 반드시 동일한 이미지로 일치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기대하는 일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화풍만으로 작가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지만 의외로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상반된 이미지로 표출시킨 작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흰 캔버스 앞에 서 있는 듯 조용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작가로부터 질풍노도의 격정이 담긴 화폭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원색의 강렬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한 삶의 회한을 잔뜩 풀어낸 그림을 들고 나올 때도 있다. 어느 경우엔 끝내 제 속풀이를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타협하고 말기도 하지만.
어쩌면 작품이 작가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무모할 수 있다. 기존의 상식선만 믿고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이 얼마나 성마른 일인가 하는 삶의 진리 하나를 건져 올린 셈이다.
살아가면서 주위를 잘 살피고자 하는 노력과 노동은 불가피하다. 특히 집단의 규모와 관계없이 남 앞에 나서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주변인의 삶을 살피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 될 수 있다.
저마다의 목적으로 향하되, 후대에 좀 더 책임감 있고 멋진 ‘선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 그것이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단위의 미래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은 후대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제대로 기여한 조상으로 기록되고 싶은 소망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여유로움이 필요할 것 같다. 느린 행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행간의 감추어진 속뜻을 알아듣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 말이다. 빠른 상황 판단과 이에 대처하는 기민성은 여유로움에 당연히 수반되는 필수 항목임을 염두에 두는 건 물론이다.
예를 들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지만 실상은 자유롭게 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자유롭고 싶은 상황의 절박함을 강조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강경한 단어를 소품으로 동원한 것 뿐이다. 임금 인상 피켓을 들고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돈보다는 직장 내 자유스런 분위기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가능하다.
근래 들어 북한에서 대포를 쏘아 대면서 대화 창구를 모색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전쟁을 원하는 건지 평화를 원하는 건지 북한의 진정한 의도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대북 정책 결정 과정에 즉각적으로 반영해야 할 중요한 안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전제로 기본적으로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가를 파악하는 일은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국정 과제에 해당된다.
세종신도시만 해도 효율과 신뢰로 대립하는 분위기지만 진짜 바닥 본심의 아젠다가 무엇인지부터 알고자 하는 게 우선 아닐까 생각 한다. 지금 정가에서 권력투쟁의 중요한 모멘텀이라는 말이 돌고 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일단일 뿐이다.
따라서 현상을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지도자가 되고자 나선 사람들이 염두에 둬야 할 최우선적인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책임정치의 장치가 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일단 현상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면 그 다음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할 일이 남았다.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쓰고 있던 자기 안경을 벗고 각 계층의 안경을 써보는 거다. 지금까지 자기 기준의 안경으로 상황을 파악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안경을 쓰고 역지사지가 되어 같은 상황을 되짚어 보라는 뜻이다.
내 철학과 사상에만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재검증하는 일은 중요하다.
모르긴 몰라도 남의 안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놀라움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분명 오른 쪽에 있던 것이 왼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옳다고 생각했던 측면이 실상은 크나큰 오류의 여지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될 수도 있다. 파란 것이 붉게 보일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관점에서 여자는 남자의 관점에서, 사용자는 노동자의 관점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그런 식으로 학생과 선생, 부모와 자식의 입장에서 저마다의 관점을 뒤집어놓고 생각하다 보면 의외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 안경을 통해 본 세상과 남의 안경으로 본 세상이 완전히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주관과 객관의 조화로운(여기서 지혜 추가는 필수 코스) 조합은 이상적인 연결고리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 둘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공동의 선이나 공동의 진리를 추출해 낼 수 있는 균형 감각은 물론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사회의 기존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감수성과 희귀성까지도 최대한 존중해 줄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 지도자의 여유로운 덕목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이런 저런 통과 과정을 들여다보니 지도자는 역시 타고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2010. 2.6)
....홍문종 생각
첫댓글 글 감사하고,,특히 오프닝때 좋은 말씀 해셔서 감사했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을달라는 외침은 죽을생각이 전혀없는
자유를 향한 강한 요구다는 새로운 진실에
감동하며
전시장에서의 자기성찰과 작품에대한
높으신 식견에 우러난 귀한글 잘보고 갑니다.
훙문종 선생님 늘 강건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저곳의 배를 타고 유유하게 흘러가 보고 싶어집니다....만나 뵈서 감사했습니다.....*^^*
홍문종 총장님 좋은글 항상 감사!드리며..사진 함께 하여주심을 감사 드림다
우리 동네는 추천 기능이 없네요....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멋진 글 대박추천 ~~~~!!!!!!!!!!!!!!!!!!!!!
총장님~~ 저 곳이 두물머리죠? 멋진사진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