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10-13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은 석방되자마자 밤에 즉시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고 바울과 실라는 거기에서도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지만 베뢰아 사람들은 귀족적이어서 잘 받아들이고 옳은지 따져보았지만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뒤늦게 알고 쫓아가서 무리들을 선동하고 소동하게 했다.
이전 말씀에서 바울과 실라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따른 것 때문에 시기한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 일행이 예수라는 다른 왕이 있다고 하며 반역하는 자들을 야손 일행이 받아들였다고 고소를 했고 시청 관원들과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소동을 했고 돈을 받고 그들을 석방했다. 이어지는 말씀은 데살로니가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밤에 즉시 베뢰아로 보냈고 거기서 회당에 들어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자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쫓아가 소동을 벌인 내용이다.
시청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를 떠나 보내는 조건으로 야손과 형제들을 석방시켰기에 10절에서 형제들은 석방되자 마자 즉시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고 한 것이다. 만약 바울과 실라 때문에 데살로니가의 자유시의 특권이 박탈되고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모든 데살로니가 시민들의 원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복음이 전파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형제들의 말을 듣고 즉시 떠난 것이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이러한 시청관원들의 결정에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이들은 시청 관원들이 자신들이 고소한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을 석방시켰다는 것을 다음날에야 알았을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지난 밤에 데살로니가를 탈출했다는 것도 다음 날에야 알았을 것이다. 이들은 로마 법으로 안되자 자신들의 힘으로 추격하여 잡아서 유대교의 율법에 따라 신성 모독죄로 돌로 죽이려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본래 Via Egnatia 하이웨이를 통해 로마로 갈 계획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난 샛길로 빠져 베뢰아로 간 것이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45마일 떨어진 곳이고 Via Egnatia 하이웨이에서 완전히 벗어난 곳이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유대인들의 추격을 피하여 엉뚱한 길로 빠진 것이다. 그래서 야손과 데살로니가 형제들은 밤에 급히 떠나가게 한 것이다.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 가서도 제일 먼저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다는 말은 멀리 라는 말과 존재한다는 말이 합쳐져서 된 말이다. 바울의 편지들에서는 몸은 멀리 떠나 있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가 추격을 피해 달아날 때 길 안내를 했을 것이다. 안내하던 형제들의 관점에서 볼 때 베뢰아의 회당 안으로 멀리 떠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추격하다가 행방을 알지 못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 일행은 베뢰아에서도 회당으로 들어간 것이다. 바울의 선교 원칙에 따라 유대인 먼저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좋게 보면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울 일행은 그만큼 대단한 열정으로 복음을 증거했던 것이다. 성령께서 시키신 일이 아니면 상식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11절은 그러나 라는 말로 시작한다. 데살로니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선포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베뢰아의 회당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은 데살로니가 회당에 있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뜻이다. 베뢰아 사람들이란 베뢰아의 유대인의 회당에 있던 사람들을 말한다. 대다수가 유대인들이다. 개역을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보다 신사적이라고 했다. 개역개정은 이 말을 너그럽다는 말로 바꾸어 번역했다. 새번역은 고상하다고 번역했다. 개역이나 새번역이 원어적 의미에 가깝다. 이 말의 원어적 의미는 귀족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다수는 교육을 많이 받은 귀족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인내하고 너그럽게 받아주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달리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을 듣고 분을 내며 앞 뒤 따지지 않고 즉시 죽이려고 날뛰던 사람들이었다. 그 이유는 복음의 내용 때문이라기 보다는 회당에 출석하던 많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실라의 가르침에 따랐고 돈줄이던 귀부인들도 상당수가 바울 일행을 따랐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회당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시기와 질투심이 폭발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받을 때 열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베뢰아 사람들이란 베뢰아의 유대인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보다 더 귀족적이라고 한 것은 똑 같은 시기와 질투심이 일어날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같은 상황에서 분노를 터트리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너그럽게 받아주고 자신들의 시기 질투심을 억누를 줄 알았다는 뜻이다. 이들은 분노 대신에 바울의 새로운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였다는 말은 믿었다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으로 생각하고 기억해 두었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했다. 상고했다는 말은 재판 절차를 나타내는 말이다. 누가복음 23:14절에서 빌라도가 고소한 내용을 잘 검토해 보았는데 죄를 찾지 못했다고 할 때도 쓴 말이다. 따라서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기억해 놓고는 그 내용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동원해서 재판을 해 보았다는 뜻이다. 그 말은 그들 중에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는 뜻이다.
12절 맨 앞부분에는 그러므로 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성경 말씀을 가지고 바울의 가르침을 재판을 해 보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 반응은 12은 한편으로는 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들도 있었고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11절에서 귀족적이라는 말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고 인내한다는 뜻이지만 12절에서는 실제 귀족가문 여자들과 남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뢰아에서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있었지만 핍박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베뢰아의 유대인들은 회당에 출석하던 그리스 사람 귀족 남자와 여자들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13절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라는 말로 이어간다. 베뢰아의 유대교 회당 사람들과는 반대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는 이들은 즉시 베뢰아로 와서 데살로니가와 마찬가지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천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개역에서 움직였다고 번역하고 새번역은 선동했다고 번역한 말은 주로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배가 파도에 떠밀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이고 지진으로 인해 어떤 집은 올라가고 어떤 집은 내려가는 모습이다. 이와 달리 소동케 한다는 말은 진흙탕 같은 것을 휘젓는 모습이다. 무리들을 위 아래로 마구 흔들고 휘저어서 큰 폭동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