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세계유산이 된 남한산성에는 여러 사찰이 있다.
남한산성의 사찰은 조선 중기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가
임진왜란 같은 병란을 당할 경우 지방군들이
한양으로 올 때까지 머물 수 있는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한양 도성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산성을 쌓은 것이다.
그런데 남한산성에 사찰이 여럿 있는 이유는
유교를 국시로 하던 조선조 조정에서 불교를 용인해서가 아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관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승려가 된다는 것 자체가
범법자가 되던 시대이기에 산성을 축조하고
그 안에 절을 지을 수 있게 했다는 것도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지지만,
이는 조선조정이 이탈한 백성들이 승려가 되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잡아다가 옥살이를 시키는 대신 이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절과 사찰의 승려를 이용하여
조정에서는 별도의 돈과 인력을 들이지 않고
산성을 축조하고 보수하고 지킬수 있는 자원으로 사찰의 승려들을 활용하였고,
승려들은 조정의 정식승인은 받지 않았지만 묵인하에 스님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조 정식으로 승려가 되려면 국가에서 발행한 도첩이라는 증서 받아야 되었지만,
이마저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도첩제가 폐지되어
도첩을 받은 스님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대장을 맏았던 사명당대사 이후로는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조선 중기 이후로는 승려라면 당연히 모두가 국법을 어긴 범법자였고,
그들은 한양도성으로 출입조차 금지사항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끊임없이 승려들이 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후기로 갈수록 승려들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들 승려들은 대부분 상민이나 노비출신들로
관리들과 주인들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자신들이 살던 고향을 도망친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들은 도망쳤으나 거지나 산적이 되지 않고 불교에 귀의하였고
국가는 이들을 이용하여 국방의 대비하였다.
그런 이유로 조선 후기에 이르면 절과 스님들은 많았으나,
이들은 자신들이 늘 염송하는 경전, 염불 다라니등을 외우기는 하였으나
내용도 모른채 불전에 공을 드리고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으로 살아왔다.
만약 도망나온 이들이 승려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아마도 걸인이나 산적이 되어 살아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었기에
조정에서는 이들이 도망친 무리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채 눈을 감아주었던 것이다.
실제 조선 후기에 여러차례 민란이 있었고,
임걱정이나 홍경래 등이 세력을 규합하여 휩쓸던 때는
당쟁과 세도정치로 자신들의 당파와 가문들의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민생살이가 너무도 고통 그 자체였던 시대였다.
남한산성내 국청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이 생기게 된 연유는
국가가 승려들을 이용하여 산성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그리된 것이며,
당시 임금은 인조였다.
인조는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가고,
더 나아가서는 국경까지 넘을 처지였던 것을 피하기 위하여
한양도성 가까운 한강만 넘으면 닿을 수 있는 이곳에
남한산성을 축조하여 대비코자 하였던 것이나,
막상 대국으로 성장하던 청나라를 오랑캐라 배척하며,
쓰러져가던 명나라만 떠받들던 외교적 실패를 자초하였고
그러면서도 국방에 대하여는 허술한 대처로
청나라의 침략을 받고는 싸움한 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결국 이곳 남한산성에 피난했다가 겨울철 추위를 넘기지 못하고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삼전도의 욕"을 당하였다.
이후 또 다시 성을 보수하고
이곳 남한산성에 9개 사찰을 건립하여
이곳에 거하는 스님들에게는 산성의 보수와
후일 발생할 지 모르는 시대를 대비하여 군사훈련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하여 사찰이
의병들의 소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남한산성내 모든 절들이 폐사되는 불운을 겪게되었다.
그런 아픈 상처를 겪고난 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1968년 다시 옛 터를 찾아서 사찰들이 중건을 시작하였고,
국청사는 1986년에는 최계순(원만행)이 큰 시주를 하여 부지 1000여 평을 마련하고,
대웅전과 요사채를 다시 짓게 되었다.
이런 과정속에 대웅전의 삼존불 중에는
강원도 철원 심원사에 봉안되었던 부처님이 한 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새로 건립한 천불전에도 심원사에 봉안되었던 부처님이
심원사 화재를 피하여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남한산성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국청사의 내력을 알고보니,
태평성대가 되기 위하여 국가나 정부가 백성을 위하여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