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지역은 국토의 오지이며 한반도의 막내 땅끝이다. 한번도 역사의 전면에 나서본 적이 없는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유배의 땅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곳에는 다른 곳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지금도 기차가 다니지 않으며 야간버스도 다니지 않는, 하루에 버스도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 바로 전라남도 땅이다.
유홍준은 그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그러한 남도 땅에 주목하고는 '남도 답사 일번지'라는 이름으로 그곳을 조명했다. 그가 그렇게 손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까지도 소외된 지역으로, 저항의 땅으로, 또한 예술의 고향으로 알려진 완만한 황토땅. 그 중앙에서 멀리 떨어졌기에 지방색·토착색이 강하고 그것을 쉽게 잃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북방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시베리아, 몽골 계통에 속한 우랄 알타이족의 한 분파라고 알려져 있다. 이는 삼국유사에 나타난 우리의 건국 신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단군신화,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는 주몽 신화와 백제 온조왕 신화, 유목민적 요소가 보이는 천손 강림 신화와 농경민적 요소가 보이는 난생 신화가 결합된 모습을 보이는 신라와 가야의 건국 신화 등이 모두 그러하다.
하지만 이곳 남도 지역은 그렇게 북방에서 내려와 주도권을 쥐었던 세력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 때문에 토착적인 면모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민속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나는 이곳에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노령 산맥 아래 폭 갖히어 그 평화롭고 완만한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곳. 그 국토의 막내이자 가장 한국적인 고장을 통해, 소외받아왔던 다수 민중들의 고장을 통해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되찾아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남도를 향해
이번 우리 문학 연구회의 문학 기행 및 합숙 기행의 장소는 강진, 해남 일대의 '남도 답사 일번지'로 정해졌다. 방학 전에 몇 번의 총회를 거쳐 결정된 것으로, 구회장의 영향력이 컸다. 그는 다산 정약용과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등에 관심이 많은 듯이 보였다. 나는 그와 아울러 몇 번 가본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가장 한국적인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도를 다시 찾는다는 기쁨을 가졌다.
남도로 가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서울에서 경부 고속도로, 호남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광주를 통해 들어서는 것이다. 그 길은 곽재구 시인의 '다산초당 가는 길'이라는 장편의 시에서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밤차가 없는 이곳에 유일한 밤열차인 광주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선발대로 출발했다.
구회장은 아주 커다란 가방에 엄청난 짐을 들고 나타났다. 몇 달 어딘가에서 살다 올 사람처럼. 난 달랑 가벼운 가방 하나를 메고 있었다. 여행은 짐이 간편할수록 편한 것이라고.
기차 안에서 나는 구회장에게 이번 합숙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별 생각이 없다며 대답을 회피한다. 그의 평소 행동으로 볼 때 뭔가 생각이 많을 듯 한데 말을 안하는 듯 해서 추궁해보지만, 꼭 그렇게 뭔가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유도 심문하듯 한다 하여 그만 두었다. 확실히 뭔가를 한다는 데에 꼭 목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이없고 하찮아 보이기도 하는 우연이 대부분의 삶을 이끌어 가는 법이다. 우연 속에 내버려둠으로써 어떤 의미를 깨닫거나 목표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다른 잡다한 쪽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갔다. 조용한 밤열차 안에서 구회장과 나의 목소리가 커서 주위의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좀 조용히 해주세요." "아, 예."
이제 나는 까만 창과 밝은 내부 풍경 속에 눈을 감고 있다. 그럼 나는 이번 합숙 기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가. 내 안의 눈은 점점 과거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나의 마음 속에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0년 8월, 마라도에서 임진각까지 걸어서 국토 종단을 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곳으로 느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시원한 물을 주시던 것은 물론,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는 분도 있었으며, 몸 건강히 무사히 잘 가라고 격려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저녁 어스름 속에 월남사지 3층 석탑 뒤로 아스라이 저물어 가는 월출산의 신령스런 모습에 감탄하던 어린 눈, 그날 밤 월출산 근처 어느 민가에서 얻어 마시던 그 맑고 차가운 물맛과 쏟아지는 신비한 별빛은 뇌리 속에 하나의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 그후 가끔씩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그 따뜻하고 정겨움과 포근한 자연환경을 경험하고는, 어린 마음에도 커서 꼭 이곳의 이런 아름다움을 알려야 하겠다는,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찾아와 보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다. 그래서 내가 이곳 남도 땅을 좋아하고,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찾아드는지 모른다.
구회장은 세미나 준비가 부족하다면서 자료를 둘러보는 듯 하다. 시간은 점점 새벽으로 치닫고 피곤해진 나는 찾아갈 곳의 자료를 둘러보다가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