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로 조형물 의미 - 2만년의 역사가 잠든 곳 -
선사시대로 조형물사진 1달서구의 월배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유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유적으로 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이 있습니다.
2006년 대구 역사를 5천년에서 2만년까지 끌어올린 월성동 구석기유적이 발견되어, 대구 역사의 깊이를 더해줌과 동시에 달서구 지역이 오래 전부터 인류가 거주하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을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선사시대로 조형물은 총길이 20m, 높이 6m에 달하며 깊은 잠에 든 원시인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월배 선상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선사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우리지역을 선사시대 테마거리로, 대구 삶터의 뿌리인 이곳을 선사시대 랜드마크로 조성하고자 하는 달서구의 관광 콘텐츠 사업입니다.
작품명은 ‘2만년의 역사가 잠든 곳’으로, 유구한 역사성과 그 상징성을 가진 ‘돌’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표현했으며, 복원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작품을 통해 우리지역의 선사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고고학적 가치를 재정립함과 동시에 지역의 유구한 역사의 전통성을 이어받아 우리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자산을 미래세대에게 계승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재는 2만년의 역사적 가치와 존경의 의미를 담은 이만옹(二萬翁)이라는 이름으로 달서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출처 : 달서구청)
선사유적 현황/지역특성 - 지리적 입지와 고고학적 환경 -
○ 대구의 서남부에 위치, 남부산지(앞산, 대덕산, 청룡산)와 충적평야
○ 1980년대 이후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통해 상인·월성·진천동 지석묘군, 월암·상인·진천동 입석 등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집중 분포
○ 2003년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된 후 약 120만㎡에 대한 개발로 고고학적 조사가 급증하여 구석기~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 조사(발굴)
※ 월배선상지(扇狀地-부채꼴 모양) 전경(북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남동, 달비골)
○ 월배선상지
진천천에 의해 형성된 부채꼴 모양의 퇴적지형(신생대 제4기)
상인동 채정마을 → 선정(골짜기 어귀의 중심부)
상인·진천동 → 선앙(중간부)
유천·대천·월성·월암동 → 선단(말단부)
○ 선사유적 현황 및 특성
◇ 대구 최초 구석기 유물 출토로 5천년의 대구 역사가 2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감
◇ 2006년 월성동 월드메르디앙아파트 개발지에서 흑요석, 좀 돌날 등 13,184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구석기문화의 기초자료가 되고 있음.
◇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 : 1997년 발견 당시 제단, 동심원, 석관묘 등이 한자리에 있어 청동기 원시신앙 흔적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음.
◇ 대구의 서남부에 위치, 남부산지(앞산, 대덕산, 청룡산)와 충적평야
주거지와 같은 생활유구(遺構), 지석묘와 석관묘 같은 무덤유구, 진천동 입석 같은 의례유구 등 그 종류와 숫자, 밀집도에서 우리나라 최고임.(출처 : 달서구청)
진천동 입석(선사유적공원)
진천동 입석(선사유적공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470-38번지(선사유적공원) -
진천동 입석은 달서구에서 문화유산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1997. 10. 25. ~ 1998. 1. 26.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진천동 입석은 평면이 장방형(長方形)으로 만들어진 나지막한 석축단(石築壇) 중심에 세워져 있다. 입석은 높이가 210㎝ 폭 110㎝ 되는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표면에는 성혈(性穴)이라고 불리는 움푹한 구멍과 동심원(同心圓) 무늬가 새겨져 있다. 석축단은 동서 길이가 약 10m, 남북 길이가 약 25m, 높이가 약 50㎝에 이르는 큰 규모이다. 석축단 주변에 무늬없는토기(無文土器) 조각과 석기(石器) 등이 출토되었다.
입석 주위에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무덤인 돌널무덤(石棺墓) 5기가 있는데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입석의 기능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입석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제사의식(祭祀儀式)을 지내온 것으로 추정된다.
1998. 12. 23.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로 지정되었으며, 유적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1997년부터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하여 2000. 11. 14. 일반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선사유적공원은 6,178㎡의 면적에 입석 1기, 석관묘 5기, 모형 석관묘 2개소, 모형 입석 1개가 있다.(출처 : 달서구청)
진천동 지석묘군
진천동 지석묘군 -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713-14 (진천태왕아너스2단지 건너편 소공원) -
‘진천동 고인돌(지석묘) 소공원’에 있는 고인돌로 1983년까지 4기의 지석묘가 있었으나 2기는 주택단지가 생기면서 없어지고 2기만 남아 있었다. 그 후 달서구청에서 주변의 상석 1개를 포함해 3개를 한 장소에 모으게 되었다. 1998년 6월 고인돌이 있는 부지를 매입하여 주민 휴식공간이자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인돌(지석묘) 1호의 형식은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으로 상석의 형태는 원래 정육면체로 당초 크기는 길이 245㎝, 폭 200㎝, 높이 200㎝ 이었으나, 그동안 조금씩 마모되어 현재는 220㎝, 폭 140㎝, 높이130~170㎝의 부정육면체로 남아 있다. 재질은 현무암이고 상면에는 지름 5㎝ 내외의 성혈이 2개 확인된다.
고인돌(지석묘) 2호의 재질은 화강암으로 상석의 크기는 길이 140㎝, 폭 85㎝이며, 고인돌(지석묘) 3호는 길이 180㎝, 폭 60㎝ 정도이다.
고고학적 관점에서는 돌은 철보다 강하다. 부식과 산화(酸化)에서 자유로워 인류의 문명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진천동 유적이 발견된 곳은 야트막한 하천변 충적지이며, 대덕산에서 발원한 진천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비옥한 농경지와 하천이 인접해 고기잡이와 사냥까지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하천변 충적지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주거형태와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고인돌(지석묘)은 죽은 사람을 매장하던 무덤, 입석(선돌)은 묘역이나 지역 수호신, 제단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 이들은 모두 청동기시대의 제의(祭儀) 유적으로 원시 신앙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출처 : 달서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