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LH단지, 154개 주차기둥 모두 보강철근 누락
[주차장 철근 누락 ‘LH아파트’ 공개]
정부, 철근누락 15개 LH아파트 공개
5곳 입주 마쳐… 3곳은 현재 입주중
尹 “주차장 부실공사 전수조사하라”… 민간 아파트 293곳도 조사하기로
지하주차장 보강 공사 중인 LH 양주 31일 경기 양주시에 들어서는 양주회천A15블록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하중을 분산하기 위한 잭서포트가 설치돼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조사 결과 이 단지는 보강철근이 설치돼야 하는 지하 주차장 기둥 154곳에서 모두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조사됐다. 양주=이한결 기자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이었던 철근 누락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경기 파주운정, 서울 수서역세권, 충남 아산탕정 등 전국 15개 아파트 단지에서 광범위하게 확인됐다.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보강철근이 들어가야 하는 기둥 6개 중 1개꼴로 보강철근이 빠져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기 양주회천의 LH 단지는 보강철근이 있어야 할 154개 기둥 전체에 해당 철근이 없었다. 아파트 설계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발생한 것으로 건설 현장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31일 LH 공공주택 안전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보강철근이 누락된 사례가 있는 아파트 단지를 전면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즉시 안전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15개 단지에서 보강철근이 들어가야 하는 기둥 4129개 중 약 16%가 철근이 빠져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입주를 마친 곳은 △파주운정(A34) △남양주별내(A25) △아산탕정(2-A14) △음성금석(A2) △공주월송(A4) 등 5곳이었다. 공사가 끝나 현재 입주 중인 △수서역세권 A3 △수원당수 A3 △충남도청이전 신도시(RH11) 등 3곳도 공개됐다.
국토부는 민간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부실 공사 여부도 전수 조사해 8월 중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무량판 구조로 시공 중인 105개 단지와 준공된 188개 단지가 대상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책임이 있는 모든 관계자에게 고발과 인사 조치 등을 하고 건설 분야 이권 카르텔도 뿌리 뽑겠다”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철근 누락이 발표된 A단지 주민들은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만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같이 전면 재시공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한준 LH 사장은 “전면 재시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멘트 강도인데 15개 단지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층 도면 쓴 ‘남양주별내’, 주차기둥 302곳중 126곳 철근 빠져
임대 10곳-분양 5곳 1만1168채 누락
양산사송, 구조계산 잘못해 빼먹고
음성금석 등 5곳은 시공때 철근 누락
31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 퍼스트포레 지하주차장. 천장이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잭서포트(하중을 분산하는 가설재)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지난해 4월 입주한 이 단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한 주민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아파트라 믿고 있었는데 부실 공사를 했다니 너무 화가 난다”며 “자다가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살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난다”고 성토했다.
정부가 이처럼 부실 공사가 이뤄진 LH 아파트 단지 15곳을 이날 전격 공개한 것은 건설 현장 부실 공사 규모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축 공정 전 단계에서 총체적으로 후진적인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필요한 조치는 더 해서 추가 불안을 막겠다는 취지다.
● 지하 주차장 기둥 전체 보강 철근 누락된 단지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난 15개 LH 단지는 임대 단지 10곳, 분양 단지 5곳으로 총 1만1168채다. 준공이 완료된 단지가 9곳, 공사 중인 단지는 6곳이었다.
LH 조사 결과 설계와 시공 단계가 모두 부실했다. 올해 4월 붕괴가 일어난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과 닮은꼴인 셈이다. 이번 조사는 검단신도시 주차장처럼 무량판 구조로 설계된 LH 단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지붕)를 지지하는 방식이라 지붕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둥 내부에 보강 철근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보강 철근이 누락된 15개 단지 중 10곳은 설계 단계서 누락이 발생했다. 경기 양주회천 A15 단지는 구조 계산 자체를 누락해 보강 철근이 설치돼야 하는 기둥 154곳에서 모두 보강 철근이 시공되지 않았다. 무량판 구조는 설계 특성상 안전을 담보하려면 보강 철근이 필요한 기둥과 각 기둥에 철근이 몇 개 필요한지 ‘구조계산’을 정교하게 해야 하는데 이를 빼먹었다. 경기 파주운정 A34, 수원당수 A3, 양주회천 A15 등 3곳도 구조 계산을 하지 않았다.
경남 양산사송 A8, 인천가정2 A1, 광주선운2 A2 등 3곳은 구조 계산 오류로 철근이 누락됐다. 특히 양산사송 A8은 기둥 241곳 중 3분의 1이 넘는 72곳에서 보강 철근이 빠졌다.
시공 과정에서 문제점도 나타났다. 경기 남양주별내 A25는 다른 층 도면으로 철근을 배치해 지하 주차장 기둥 302곳 중 126곳에서 보강 철근이 빠졌다. 충북 음성금석 A2, 충남 공주월송 A4, 아산탕정 2-A14, 경남 양산사송 A2 등 4곳도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 무량판 구조… “설계-시공 능력 문제”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이를 제대로 설계하고 시공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올해 4월 붕괴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지난해 붕괴 사고가 난 광주 화정아이파크도 무량판 구조로 설계됐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사고조사위원장을 맡은 홍건호 호서대 교수는 “양주회천 A15처럼 모든 기둥에서 보강 철근이 빠진 건 심각한 문제”라며 “인천 검단신도시 공사 현장처럼 붕괴가 일어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기둥 주변에 보강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건설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량판 구조를 무리하게 도입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엔 LH가 무량판 구조를 2017년부터 본격 도입하는 등 현장에서 익숙한 벽식 구조 아파트와는 다른 구조라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한준 LH 사장은 “무량판 구조는 인건비가 적게 들고, 층고가 낮은 데다 기둥이 적어 주차장 배치가 원활해 비용 절감 차원에서 무량판을 본격 도입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설계와 시공, 감리 단계에서 안정성을 키울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광량 CNP동양 대표는 “현장에 실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 실수를 걸러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무량판 구조도 구조기술사 등에 협력을 요청해 문제를 짚어내야 하는데 시공사나 감리 등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정순구 기자, 이상헌 기자, 최동수 기자, 이축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