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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수나라나 당나라도 흉노+선비로 이루어진 우리와 비슷한 종족 북방민족인 건 당연히 알고 계시겠죠?
진시황도 여진족 출신이고요.
제 생각컨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과는 달리 수나라,당나라와 같은 부족에서 나왔다고 생각됩니당.
한족에 의한 통일 왕조로는 한(漢)과 명(明), 송(宋)이 있지만 송은 중원을 유목민과 남북으로 분할한 채 유지되니 한과 명이 유일하다.그러면 중국 한족의 역사는 역사단절 아닌가?*,,*a
흉노(shunu)도 하늘의 자손,태양의 자손의 뜻인데 역사왜곡에 일가견이 있는 짱께는 처음엔 가차로 활용하다 흉으로 바꾸어버린다.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선우- 선우용녀,선우재덕 뭐 연예인이 있지만 선우- 성씨도 흉노에서 나온걸로 알고 있다.선우임금,선 單 일반적으로 홑,단 이라 쓰지만 흉노임금,선 이라 되어 있군.
몽골어의 훈 (사람)도 어원이 하늘의 자손이란 뜻.
흉악할 흉 자를 쓴 것만 봐도 얼마나 흉노에게 호되게 당했으면 이런 글자를 쓸까.한나라 유방이 굴욕을 맛보긴 하였지만..^^
(연합르페르 몽골 징기즈칸의 전투재현 中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보통 우리의 족속이 알타이 즉 북방에서 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흉노인가 할때에는 한참
망설이게 된다. 북쪽에서 온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유추할 수 있으나, 흉노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자면,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볼것은 "우리는 한군데서 오지 않았으며, 한꺼번에 오지도 않았다" 라는 것이다.
우선 우리족속의 근원을 찾고자 하자면, 지금의 몽골 러시아등의 북방초원지대와 북중국 그리고,
남중국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몽골계라 일컫는 북방쪽 DNA가 90%에 남중국계라
할 수 있는 인도쪽 DNA가 10% 섞여 있다고 한다.
이는 남중국과 북중국 그리고, 북방초원의 민족이 한반도로 유입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우리민족은 상고적으로 돌아가 신라계와 고구려계로 나눌 수 있다.
더 깊이 들어가서 말하자면 고조선과 부여 즉 동이족과 예맥족이 그 구성원이다.
지역이 겹치는 경우가 많고 유목이 성행했던 시기라 치자면 국경은 따로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중심적 거주지가 있고, 부족이 어디를 섬겼는가가 당시의 국경이라 하겠다.
그런데, 역사자료를 토대로 상고하자면, 고조선은 흉노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치면서 흉노의 왼팔을 잘랐다고 기록했다.
이는 다만, 국가로서 서로 동맹한 경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고조선에도 흉노일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거나, 주류를 이루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동호와 거란이 흉노일파라고 하듯이, 고조선의 지배를 받고 있던 흉노족도 꽤 많았을 것이다. 이 흉노를 포함한 북방유목부족이 섬기는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 것은 금(金), 말(馬), 새(鳥)이다.
금은 밝은 것과 통하며, 해 즉, 태양과도 통한다. 즉 하늘과도 통하여, 천신이 다스리는 민족으로
일축된다. 흉노는 또한, 중국고사전설에 의하면, 소호김천씨가, 산동지역에서 서쪽으로 이주하여,
돈황에 제사를 지내며, 곤륜사막을 비롯해 12,000여리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는
기사가 있다. 즉, 흉노는 소호김천씨의 후예들이란 것이다. 따라서, 이 전설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풍속을 근거로 말하자면, 흉노가 섬기는 금이나 새는 소호금천씨가 될 수 도 있다.
때문에 흉노는 자신들의 조상을 천신인 소호금천씨로 설정하어, 금(金)을 섬기는 종족이 된 것이라
비정할 수 있다. 금과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중 소호김천씨의 아버지 계명성은 금성을 나타내며, 계는 "닭, 새" 명성은 "금성" 이고 모두
새벽을 나타내며, 새벽은 새로운시대 아침등을 나타낸다. 그리고 아침은 궁극적으로 태양이며,
태양은 하늘(天)이다. (조선이라는 말과 수도 아사달이라는 말은 모두 아침에서 오며, 아사달이 조선이고, 조선이 아사달인 것 같다.)
그런 것 만으로 , 흉노족들이 소호김천씨의 후예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연관성과 사실성
을 흉노와는 상관없을 만한 먼 나라인 우리 한반도의 신라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와 흉노의 연관에서 소호김천씨와 흉노의 연관성을 찾아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문무왕비]와 중국에서 발견된 [대당고김씨부인묘]등을 살펴보자면, 신라인들이
흉노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최치원이나, 김부식은 신라의 김씨를 소호김천씨의 김씨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서기나, 김정호는 신라는 흉노족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많은 사서에 신라는 진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박씨도 김씨라고 한다. 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김씨가 소호김천이며, 신라가 흉노며, 흉노가 진이다 하는가... 또 우리는 왜 그 수많은 사실적 기록과
유물 풍습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흉노임을 사실역사로 인식하지 않고 있을 까...
그 비밀을 하나 하나 풀어 나가보도록 하자.
우선 특기할 만한 것은 [문부왕비]에 나오는 내용인데,
화관지후, 진백, 파경진씨, 투후, 가주몽, 성한왕, 투후제천지륜전칠엽 등의 비문에 비밀의 열쇠가 있다. 이것을 하나 하나 따로 설명한 뒤 연결해 보면, 결론에 어느정도 도달 할 수 있다.
* 화관지후 - 화관지후란 좌구명이 지은 국어(國語)에 나오는데, "火官祝融之后,八姓之一有彭姓"
(화관축융지후, 팔성씨 지일 유팽성)이라는 내용이다.
그 8성씨는 :“祝融之后,八姓,己、董、彭、秃、女、斟、曹、芊,周灭之" 인데,
그중 已(이)씨가 소호김천씨의 성이며, 영이라고도 했다. 후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나에서도
영이란 성을 사용했는데, 진시황제의 성과 이름이 영정이다. 즉, 화관지후는 순임금의 직책을
일컫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축융을 말하며, 이는 소호김천씨의 조상을 또한 설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무왕비문은 화관지후가 자신들의 뿌리임을 밝힌 듯 하다.
* 진백 - 진백이란 춘추전국시대의 진목공을 가리키는 말로 즉 영을 성씨로 삼은 소호김천씨의
후예를 거론 하는 것 같다. 옛고서에 소호김천씨가 서방으로 가서 돈황에 제사지내고,
큰 영토를 지배했다고 하는데, 이는 소호 김천씨의 후예가 서방지역을 장악해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그 후손이 진목공이며, 진목공은 서융지역을 장악하고 주(周) 왕실로부터
영지로 인정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진나라는 춘추전국시대 당시에도 주(周)왕실 중앙으로부터
오랑캐로 표현되었으며, 초기엔 중원회맹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다른 많은 나라들이 주왕실로 부터
열후에 봉해지고, 창시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진나라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 또 진의 땅은
흉노의 옛이름인 융족의 땅으로 서융이라 불렸으며, 진백 즉, 진목공은 서융의패자로 불렸던 것이다.
진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실상 유목부족국가로 알려져 있어, 흉노족이 세운 나라 일 수 있으며,
적어도 그 구성원들이 흉노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산동의 주나라(추나라; 춘추시대에는 주(邾)나라였으나, 전국시대에 추(鄒)나라로 불림,
맹자의 출생지로 산동에 있다.) 역시 담국과 함께 소호김천씨의 후손임을 천명 했으니,
소호김천씨의 후손들이 여기저기서 나라를 세우고 후손을 퍼뜨린 것이다.
[문무왕비문]은 진백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밝힌 듯 하다.
* 파경진씨 - 이것은 진나라가 망할제 경진씨를 파견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경진씨가
누구인가 무엇인가 함은 잘 알수가 없다. 다만, 진이 망할제 진의 세력중 소호김천씨의 후예인
휴도왕이 소호김천씨후예들의 세력거점인 돈황부근의 서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경진씨가 그
휴도왕일 수 도 있겠다. 휴도왕은 김일제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휴도왕은 왕명이거나 지역이름
또는 관직명이지 이름은 아닌듯 하다. 즉 그때의 휴도왕과 김일제의 아버지 휴도왕은 다른사람
인 것이다. 이때 진을 멸망시킨 한고조 유방은 흉노를 대대적으로 정벌하려하나, 오히려, 포위되어,
묵특선우(흉노왕)에게 공주를 출가시켜 겨우 목숨을 구한다. 이후 한에 의해 멸망한 다른 흉노 진나라
즉, 소호김천씨의 진나라 사람들은 동서남북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는데, 흉노의 발원지인 북방초원으로 또는 서방 사막(지금은 사막이지만 초원이 사막화 된 것이란 증거가 많다)으로, 동쪽 고조선과 한반도 남부의 삼한등지로, 흩어졌다. 문무왕비문의 파경진씨와 관련해서는 이 때의 기사 일것으로
생각되나, 그 뜻은 정확히 알 수 가 없다.
(2014.9.26일 수정 내용: 파경진씨라 함은 좀더 조사 해 본 결과 백제 공주지역의 귀족이 진씨 였는데 후일 이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귀족 또는 왕이 되며, (신라인 진[秦:하타]씨족과는 다른)일본에서 백제로와 왕이된다. 즉 공주의 귀족(담로, 다무로, 탐라, 다마나)이었던 진씨들이 백제왕족인 여씨(부여씨)와 일통하여, 같은 일족 또는 왕족 취급을 받게되어 백제왕통을 잇게 된다는 것이다.
뭐, 따지고 보자면 백제왕자 한명이 명문귀족의 양자로 들어 그 명문혈통을 잇은 일은 다반사였으니
유력한 왕의 왕자가 진씨가 되어서 일족 대우를 받았고 백제왕통을 잇기도 했다.
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후일 백제왕씨가 진씨로 기록됨은 이와 같은 이유 일 거라 생각하는데, 파는 격파, 무찌르다를 의미한다고 봤을때, 경은 고래라는 의미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매우큰, 커다란 이란 의미도 있다.
즉 신라측에서 볼때 백제를 멸망 시킨 일을 [매우 큰 세력의 진씨 일족을 무찔렀다.] 라고 기록했을 수 있다. 또는 더 나아가서 일본의 왕씨가 백제계의 진씨라고 했을 때 (후일 일본과의 고대사를 논할때 설명함) 일본왕의 군사를 백강(지금의 백마강 : 일본명 백촌강)에서 무찔러 백제를 멸망시킨 일을 거론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느쪽이든 백제의 진씨를 일컬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역사란 알면 알수록 깊이팔수록 이런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증거나 기록면에서 나중에 알게된 후자의 해석이 옳다고 본다. 과거의 해석을 보자니 참으로 부끄럽고 무지하기 그지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참고로 이글을 보고 다른데에 그대로 옮기거나 따로이 해석하여 올린 분들의 글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과거의 틀린 내용을 그대로 사용함은 옳지 못하다고 여기며, 필자의 주장은, 현재로서는 후자의 해석을 정확하다고 주장하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제글에는 항상 무수정본이라 한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관심사와 의지로 역사적 글과 책을 조사로 토대하여, 제방식대로의 역사사고에 의하여 쓴 글이므로, 다른 분들의 부분적 인용도 있으며 또한 지극히 개인적 해석이 대부분 입니다. 어디까지나 정론은 아니며, 제 주장에 불과하므로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논문용도로, 역사주장으로 제 글을 인용하심은 제 입장에선 커다란 영광이며, 얼마든지 좋으나,
다만 제글을 자신의 글이라고는 주장하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박철학 올림 )
* 투후 - 투후는 중국의 [투] 지방을 다스린 제후로 김일제가 그다. 김일제와 관련해서는 한무제가
곽거병을 시켜 서북방의 흉노족을 정벌하게 될때, 휴도왕이 죽고, 휴도왕의 일가가 한에 항복한다.
이에 휴도왕일가는 한나라의 궁중노예가 되는데, 휴도왕의 왕자 김일제가 한무제의 눈에 띠어,
관직을 얻고, 이후, 무제에 버릇없이 구는 아들을 죽이고, 무제가 일제의딸을 왕비로 삼고자할때,
욕심을 삼가하여, 출가시키지 않아 신뢰를 얻고, 같은 흉노족 모하라가 무제를 살해하려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기도 하여, 충성심을 인정받게되어 투 지방의 제후로 임명된다.
투지방은 지금의 산동성에 있으며, 이곳은 예전에 소호김천씨의 발원지이다.
이때 무제에게 김씨성을 하사 받는데, 이유가 휴도왕이 금인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지낸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휴도왕의 임무중 하나가 금인을 만들어 (소호김천씨에게) 천제를 올렸던 점과,
소호김천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하사 받은 성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시 중국에서는 김씨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나라에 왕비를 배출할 정도로 세력도 되었는데, 아마도 소호김천씨의
후예이거나 김일제 일파와 다른 흉노귀족이었을 것이다. 김일제에 딸을 왕비로 출가시키고자 했던
것 처럼 한나라는 유력족장이나 귀족의 왕비를 받아 들여 동화정책의 일환으로 삼았던 듯 하다.)
이에 한무제가 김씨성을 하사하고, 옛 소호김천씨가 다스리던 투 지방을 돌려 준 것 같다.
이 김일제의 후손들중에는 김일제의 동생 윤도 있었는데, 두사람이 모두 열후에 봉해졌다.
이후, 그 자손이 왕망의 난때에 외척관계로 깊이 연루되었는데, 왕망이 신(新)이 후한의 광무제에게 무너졌을때 김씨일족은 피난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산동에서 피난지로 선택한 곳은 일부는 부여, 일부는 삼한지역이다. 삼한지역에는 예전에 진나라 멸망시기에 피난온 흉노족(진이 곧 흉노라고 할때)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김일제 후손들이 피신하기에는 말이 통하고, 또 동족이 다스리니 좋은
나라였던 것이다. 한반도의 국가들이 일찌기 해로로 중국과 통교가 가능했고, 그 통교의 중심에
투가 있었으므로, 김일제 후손들도 계림소식을 접했을 것이고, 또 계림사신들과도 통교했을터이므로, 뿌리가 같음을 알고 피신하기 좋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일제의 후손이 계림으로 들어와서
김알지라 하고, 그보다 앞서 일제의 동생 윤의 후손이 가야로가서 김수로라 했을 가망성이 높다.
김일제의 후손들이 가야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윤일족이 다스리고 있던터라 받아들여지지 않고
(석탈해설화), 계림으로 가게되어 정착하고, 또 후에 김일제의 다른 후손들 즉 김알지일족이 계림에
도래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선 후에 다시 더 설명하기로 하자.
참고로 흉노영웅 묵특은 묵돌이라고도 하는데, 묵돌은 검은돌은 말하며, 일제의 "제"자는 비단물들이는 검은돌을 뜻한다. 비단은 또 금(錦)이고, 금(金)과 금(錦)은 동일시 되기도 했으므로, 놀라운 일이기는 하나, 이는 지나친 해석의 오류일 수도 있다.
여하튼 문무왕비문은 투후 김일제가 자신들의 직계 조상임을 밝힌 듯 하다.
* 가주몽 - 이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단순히 고주몽을 가주몽이라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제일 믿을 만하다. (高 와 駕는 모두 "높다, 뛰어나다, 능가하다" 란 상통의 의미가 있으며, 한자를 가차하여 사용한 당시 유사발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들의 관계가 백제보다 더 가까운 놀라운
비밀이 무수히 많다.
부여의 혈연관계를 살펴보자면, 해모수가 해부루와 주몽을 낳고, 해부루가 금와를 양자로삼고,
금와가 대소를 낳았다고 한다. 다시 금와가 주몽을 양자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럼, 금와와 주몽의 관계는 숙질관계이자 부자지간이 되고, 대소에게 주몽은 할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고금에도 대소와 주몽이 형제로 나오는데다가, 대소가 주몽보다 형으로 나오니 심히
의심스럽다. 부여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름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첫째. 부여는 애초 해부루가 다스렸는데, 흉노족이 와 살았다. 흉노족장중 하나인 모수와
금와에게 해씨성을 내리고 살게했는데, 모수가 반란을 일으켜 해부루를 쫓아내고 나라이름을
북부여라했다. 그렇게 모수에게 쫓긴 해부루는 가섭원에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웠다.
무슨 이유에서든(반란이든 선위이든) 동부여는 해부루의 뒤를 흉노족 금와가 이었는데,
북부여를 공격하여 패배를 설욕하고, 모수의 아내 유화를 수취하였다.
유화에게는 모수와의 사이에 주몽이 있었는데, 금와가 부인을 수취하고자 양자로 삼고,
(당시는 형사수취나 아내를 멀리서 빼앗아오는 전통이 있었으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도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런 전통이 남아있어 여자를 강제로 납치하여 결혼한다.)
금와는 유화와의 사이에서 대소 등 여러자식을 나았다.
금와는 자신의 아들 대소에게 왕위를 잇게하였고, 주몽은 설자리가 없자,
자신을 따르는 부족을 이끌고, 졸본부여에 의탁하고,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또는 좀더 과격하게 가정하자면, 부여에 흉노족 모수가 쳐들어와 해부루를 치고,
왕위를 빼앗아 부여를 지배했다. 이에 해부루는 동부여로 쫏겨 가섭원에서
동부여를 세웠는데, 또 다른 흉노족 금와가 쳐들어와 동부여를 빼앗았다.
금와는 이후 북부여와 싸워 이겼는데, 모수의 부인인 유화부인을 빼앗아왔다.
그리고 유화부인을 왕비로 삼고, 둘의 사이에서 대소와 여러아들을 나았는데,
그 이전에 유화부인과 모수사이에 주몽이 있어 양자로 삼았다.
금와는 자신의 아들 대소에게 왕위를 주었고, 주몽은 상황이 어렵자 일족을 끌고 남하하여,
졸본부여의 왕이 되었는데, 비류국을 치고, 세력을 길러 동부여에서 독립하여 고구려라 하였다.
고구려 초기성장은 금와의 양아들에 대한 고민과 암묵적인 지지도 한층 거들었을 것이다.
이같은 일을 가정할 때 부여 지배왕족의 씨는 이전부터 흉노족이기도 했던 것이다.
(주류는 퉁구스계일 수 있지만, 알타이 흉노계가 지배층을 형성한 경우이다. 퉁구스계통은 보다
동남쪽인 동부여쪽, 시베리아, 알라스카, 한반도 등지로 쫓겼을 가능성이 많으며, 숙신과, 말갈, 그리고, 예맥족 등이 퉁구스계로 생각된다. 때문에, 한반도 중부와 동부에 퉁구스계 부족들이 주류를 이루게되고, 신라를 형성한 남동부만이 알타이 흉노계여서 신라는 주변국과 언어가 달랐다는 사실도 입증된다. ) 주몽은 모수의 아들이므로, 모주몽이기도 하고, 모수가 해씨를 칭했으므로,
해주몽이기도 하며, 금와가 양자로 삼았으니, 김주몽이기도 하다.
다만, 금와와 대소의 성씨는 정확치 않지만, 대소는 왕명이지 이름같지 않다.
반대로 주몽은 계속하여 해를 성씨로 삼는데, 고구려왕족초기의 성씨가 고씨가 아닌 해씨이다.
또, 고구려를 세우고 고씨라 하였다 하는데, 이는 한참후 후대가 지은 일로,
주몽은 고씨를 사용치 않은듯 하다. 그 증거는 주몽의 아들 유리가 부여로부터 도망쳐왔는데
해씨였다 했으며, 이후의 왕들도 해씨이다. 이는 부여의 정통을 이었다 하여,
해씨라 하고, 뒤에 부여가 망한 후 후손들이 고씨로 고친듯 하다.
헌데, 부여왕족성씨로 해씨가 아니고, 분명하게 여씨가 거론되고, 부여를 잇는다는
백제왕들 역시 여씨성을 사용했으니,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여하튼 두가지 가설을 설정해 생각해 볼 때, 가주몽 역시 신라와 동족인 흉노족이다
라고 신라인들은 생각한 것이 아닐까?
주몽이 동부여가 아닌 북부여에서 왔다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논리도
성립되고, 해부루가 갑자기 가섭원으로 이주하여 동부여를 세운 이유 등이 가설로 성립된다.
객관적으로 그러한 의구심이 드는것은 대무신왕때 망한 대소는 주몽보다 한참 어렸다고 생각되므로,
주몽보다 매우 어린 아우였을 것이다. 또, 부여, 고구려 설화를 부자관계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다른 세력이 왕위를 잇는데서 생겨난 논리가 아닌가 싶다.
즉, 분명한 것은 이런 사건이 설화처럼 단순하게 일어난 일은 아닌듯 하다.
주몽설화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있는데, 다른설화에서 볼수 없는 내용이 있는데, 주몽의 "자라"와
수로의 "거북" 이다. 자라와 거북이 등장하는 바는 왜인지 모르겠다.
굳이 연관시켜보면 자라나 거북이의 등이 둥글고 자라나 거북이가 알을 낳는 존재란 것과,
"모"씨성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씨 묵특(흉노의 선우)의 "冒"에는 거북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혹시 흉노족이 알(태양)을 낳는 새를 신성시 하듯 알 즉, 태양을 낳는 존재들은 모두 신성시 한
것은 아닐까...
한편, 신라왕들은 김씨성을 사용했지만 다른 성으로 흉노족의 모씨(慕氏)를 성으로 삼기도 했다.
또, 고구려의 주몽은 일반적으로 고씨로 부르지만, 해주몽이었으며, 해라는 왕의 존칭을 성씨로
삼기전에 모주몽이었지 않았을까. 고구려를 개국하면서, 고양씨 또는 고신씨의 고를 성씨로
삼는다고 했다는데, 이 대목이 재미난 것은 전욱고양씨는 소호김천씨의 형의 아들이며,
제곡고신씨는 소호김천씨의 아들로 모두 소호김천씨의 대를 이어 왕이 된 인물들이다.
즉, 그렇게 따지면, 고구려와 신라는 모두 한집안 인 것이다.
고양씨나 고신씨... 3황5제의 전설이 중국것이 되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색하게 되지만
3황5제의 전설이 동이족의 것이라 할때, 주류가 동이족이던, 당시의 고구려가 채택하기엔 전혀
어색함이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황5제의 전설은 동이족과 화하족 모두가 공유했던
전설이라 생각된다. 그것이 동이족이 힘을 잃고 화하족에 흡수 동화 되면서 화하족만의 전설처럼
인식된 듯 하다. 한 예로, 후에 이야기할 진이 한족국가라거나 당이 한족국가라는 식으로 한족화 된
중국 한족의 역사날조는 많다. 위의 여러가지 가설중 어느것이 맞는지 알 수 없으나, 주몽이
고구려를 대표하면서, 그 고구려를 신라가 능가했다거나, 일제나 알지가 고주몽을 능가했다는
글을 썼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난데없이 그런 내용을 써서 무엇하는가?
문무왕이 자신의 조상이나 일족을 피력하다 말고, 가주몽을 언급하고, 다시 자기 조상들 얘기로
돌아가면, 앞뒤가 잘 맞지 않다. 김일제 일족의 전공을 말하는게 아니라면...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여하튼 주몽의 난생설화와 성장설화를 가정할때, 확실히 흉노족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신라가 고구려에 친했던 이유와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가 고구려와 화친하지 못했던 이유를 언젠가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 여기서 [문무왕비]는 가주몽 또한 자신들의 일족인 흉노이며,
소호김천씨의 후손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되고, 또 그렇게 생각하면, 매우 놀랍다.
또, 주몽이 흉노족이라 억측해볼 수 있는 강력한 증거 하나가 주몽의 왕명이다. 주몽의 왕명은
동명성왕이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명성왕 즉 금성을 나타낸 말이다. 부여의 시조가 또한 동명왕인데,
이 모두가 소호김천씨의 조상인 계명성의 명성에서 딴 것이라고 보이며, 동이족 수장에 대한 극존칭중 하나라 하겠다. 따지고 보면 소호김천씨의 아랫뿌리가 흉노이기도 하고, 동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호김천씨 일족은 산동[동이]에서 지배하고 후에 감숙섬서[흉노]지방으로 가서도 그 땅을 지배했다고 한다.)
보다 확실한 역사적 사실을 따지고 볼때 주몽은 추모라고도 하는데, 그 추모의 한자는
소호김천씨의 후예국인 "추(鄒)나라의 추"이며, 흉노성씨인 "모(牟)씨의 모"이다.
그렇다고 보면 주몽(몽은 모 또는 무로 발음된다.)은 추나라 모씨의 후손으로 흉노족의 일족인 것이다.
(또한 주모라고도 하는데, 주역시 추나라는 한때 주나라로도 불리어졌으므로, 관련이 깊다.
한자를 가차함으로써 또, 한자를 한글음으로 부르자니 지금은 모두 다르게 발음된다지만,
추, 주, 흉, 융, 슝, 신 은 모두 같은 한발음이 다른한자로 가차되어 표기된게 아니었을까... )
이런 여러가지 사실을 따지고 볼때, 신라인들은 고양 또는 고신의 고씨성을 쓴 고구려를
소호김천씨의 후예인 자신들과 형제국으로 생각 한 듯 하다. 아니, 형제국 이었음을 당시에는
모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무왕비]문은 "가주몽"을 언급한 듯 하다.
이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이렇게 되고 보니... 백제가 매우 위태롭고, 외롭다.
백제는 왜 한반도에서 이단아로 취급 받았는가...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
* 성한왕 - 성한왕은 중국에서의 김일제 5대손 성(星)을 지칭한다고도 하고, 김알지의 아들 세한을
지칭한다고도 하며, 김알지가 곧 세한이라고도 한다. 또는 김알지가 김일제이며, 성한왕은 한나라에서
제후직을 받은 김일제를 말한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김일제의 무덤을 미티(MITI)라고 하는데,
이는 흉노어중 하나인 선우를 나타내는 메테(METE; 묵특의 투르크어)와 상통할 수 있다.
즉 일제는 휴도왕의 왕자여서 선우라 불렸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헌데 신라에는 또 미추왕이 있는데, 김씨로서 최초로 등극한 왕이다.
이 연관성은 심히 의심스러우나, 어찌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미추란 뜻을 해석해볼때
추나라(춘추시대의 소호김천씨의 후예국인 주나라가 전국시대에 추나라로 바뀜)를 느끼다,
그리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미추는 선우 즉, 왕을 일컬음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 또한, 그저 생각해볼 따름이지 사실 관계는 알 수 없다.
또 김씨를 사용한 것은 진흥왕때부터이다라고도 하니, 알수가 없으며, 그동안의 성으로는
모씨가 사용되었고, 이후로도 한동안 모를 성씨로 삼았다 한다.
신라왕들이 모씨를 사용한 기록은 중국사서에 보이며, 삼국사기에도 보인다.
백제왕의 성씨가 해씨인가, 고씨인가, 여씨인가, 부여씨인가 처럼... 성씨는 언제라도
어떠한 계기로 바뀌었으므로, 미추왕이 김씨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또 미추왕은 반정인물 또는 가공인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그 진실의 규명이 매우 복잡한 일이다...
혹 미추왕은 알지의 7대손이라 하는데... 김일제일족이나, 김씨일족은 초기에 김씨보다는
흉노족 자신들의 본래성인 모씨성을 더 많이 사용한 것은 분명 한 듯 하다.
생각해 보건데, 한무제에게 하사받은 김씨보다 모씨를 성씨로 쓴 것은 김일제의 직계후손이라기
보다는 방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가야의 김수로왕이 김일제 또는 김윤 일가의 직계후손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때문에 그 방계인 자신들을 높이거나, 김일제 또는 흉노나 소호김천씨와
연결시키고자, 김알지 설화가 생겼을 수 있다. 즉, 김알지설화는 흉노족 자신들이 천손임을
내세우기 위해 조상을 높이는 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믿음의 방식으로 조작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김수로 구지봉 설화보다 한층 더 격을 높이기 위해 소호김천씨의 금계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여,
가야 정벌후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투후제천지륜전칠엽 - 이말은 상당한 혼란을 가져오는데, [투후로서 하늘에 제사지내어
내려온것이 7세다] 라고 해석해야할지 [투후의 천제를 지낸 후손이 7대에 이른다]라고 해야할지
그 해석부터가 분분하다. 그런데, 미추왕이 김알지의 7대손인 것은 우연일까...
여하튼 7대에 이른다고 함은 분명 계승의식이 확실하다. 이는 또, 미추왕을 일컬었을 수 도 있다.
김알지손이 김일제손의 직계라고 한다면, 투후직의 계승의식이 있었을 테고, 한반도로 와서
제사를 계속해 이은지 7대에 이르러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여하튼 문무왕비는 문무왕 자신의 조상이 그것을 계승했고, 그것이 자기대까지 이른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새긴 내용 같다.
위의 [문무왕비]문을 조사해보면, 대체로 신라인은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알고있고, 또,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대당고김씨부인묘]를 봐도 신라인들이 자신들은 김일제의 후손이요,
소호김천씨의 후손이다라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다시 바꿔 말하자면, 자신들은
흉노족이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일본서기에는 직접적으로 신라는 흉노족이라 기록되어 있으니,
이 사실관계는 보다 확실해진다... 참고로, 신라는 박혁거세초기부터, 이미 기마전술을 펼치고 있고,
기마부대의 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볼때, 신라가 흉노가 세운 나라임은 이제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왜 이렇게 확실한 역사적 사실기록과 사실적 문헌과 금석이 있는데도, 그런것 조차 없는 역사도
중국이나, 일본사서에 조금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교과서에 실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대한민국의 사학자들이 이 사실을 인정치 않고, 주저하는가는 뒤에 더 설명하겠다.
[ 신라도 당나라도 흉노였다! 1편 (1차수정본) 박철학]
- 부제- 흉노는 진, 당, 후연, 고구려, 부여, 신라, 오환, 선비, 거란, 가야, 몽골, 돌궐, 투르크, 일본,
헝가리 등 세계도처에 강대국을 세운 인류최대의 거대 민족이었다.
[출처] ① 신라도 당나라도 흉노다!|작성자 시찌푸스
첫댓글 그럴 듯하게 이리저리 꿰어다 맞춘 소설이군요.
소호 김천씨와 신라.흉노가 3000 여년 격절된 것은 아시는가?
왜종들이 왕검조선의 역사와 땅을 축소시키려고 신화와 동호 땅으로 만들고 흉노.선비 등을 아주 오래된 소호와 연결시킨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가?
신라가 고구려.백제와는 달리 수.당과 같은 흉노.선비계통이라고!
또 해모수.금와가 흉노족이라고?
이것도 역사라고?
사마천의 <사기>라도 읽으시게나.
왜종은 청.러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직후인 1905 년부터 지금의 적봉 등 왕검조선의 첫 도읍지 태백산 지역에서 신석기 유물들을 대대적으로 수거했었다. 이후 1937 년 직전이란 왜놈도 그랬고.
흉노는 적봉에 이르지도 못했다.
몇 몇 학자들이 그러고
옛날 kbs역사 프로에서도
그렇게 주장을하니
검증할 능력이 않되는
우리들은 그냥믿을수 밖에없네요
흉노는 서양학자들 사이에는 기원전 10세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흉노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지 참 훌륭한 문화와 전통이 많아요.제가 흉노라면 자랑스러워 할 일입니다.케이블 방송인지 흉노에 대해서 한번 동영상 다룬거 있는데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한나라를 벌벌 떨게 만든 카리스마^^
역사는 중국것만 보면 편견에 빠집니다.주관적으로 글을 쓸수밖에 없거든요.중국말고 다른나라에서 기록한것도 참고해야합니다.
사마천의 사기도 너무 주관적으로 글 써서 의심을 갖고 뭐든 통찰해야됩니다.중국역사서에만 의존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짓이죠.그것도 식민사관!! 읽어는 보되 그냥 참고로만
shunu 는 한글자인데 짱개들이 두글자로 해석한 것이네요.shun+u-->선우 성씨 선우 이렇게 하기도 하고 러시아에서나 카자흐어의 ~늬나 -니 정도의 접미사 정도의 의미인데 굳이 그걸 해석한답시고 지랄터는 것이라 볼수가 있죠.shun+nu 이렇게 중복하여 억지로 끌어들이는 논리는 참으로 기가 차다고 할수가 있슴돠.어근은 shun입니다.몽골어의 훈(사람)처럼..^^
그리고 흉노라는 의미의 유래는 스스로가 이렇게 칭하였는데 자기를 비하하여 부를 멍청이가 세상엔 없죠.이걸 가차하여 처음엔 썼는데 후대에 조작된 것입니다.결론은 흉노에 대한 탐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큐인가 그거 보니까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제가 흉노라도 자랑스러워할만할 그런 것을 가지고 있죠.
흉노는 원래 "위대한 머리의 고리 사람들"이었고, 영어로 '스키타이(SCYITAI)'가 된 것이며 초기 고조선의 변한구역이었지요 , 이 흉노는 초기 고조선시대엔 우크라이나남방인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시작되었고,"욕살 삭정"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는데 서양학계의 이론으로는 기원전 9-10세기로 봅니다
아마도 장깨들이 훈(HUN)을 흉으로 가차하였고, 노를 붙인 것으로 봅니다.언어학적으로 HUNI(후니), HUNO(후노), HUNA(후나), HUNE(후네), HUNIA(후니아)등으로 변하는데, 본 인 생각으로는 HUNO(후노)를 중국식으로 표기하다 보니 '흉노'(흉측한 노비)로 된 것으로 봅니다. 자음 ㄱ이 붙으면 '훙노'가 되므로 비슷한 한문인 흉을 인용,,,,그래서 후노, 훙노는 "태양의 사람들"이 된 것이다.
이상 언어학자이자 고고학자님의 의견을 뒷받침했습니다.이 분야에 전문가이시니까..
언어학자이자 고고학자님의 의견??
"shunu 는 한글자인데 짱개들이 두글자로 해석한 것이네요......."
대체 그 말을 그렇게 당당히 하는 사람이 누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