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요시간 ; 2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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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개요
- 감악산은 예로부터 개성 송악산, 과천 관악산, 가평 화악산,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려왔다.
-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흘러나온다고 해서 ‘감색 바위산’이라는 뜻의 감악(紺岳)으로 이름 붙여졌으며
- 법륜사가 있는 파주쪽 산세와 달리 임꺽정봉을 중심으로 한 정상부는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 감악산 등산로는 파주시와 양주시 두 군데에서 접근할 수 있다.
- 파주시 쪽이 먼저 개방되어, ‘자연발생유원지’ 명목으로 어른 1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 양주시 쪽은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분단이 아니었다면, 이 낮은 산정에서 이렇듯 마음이 시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북정맥의 끄트머리, 이렇다 할 비경도 유구한 역사의 기억도 이제는 별로 남아있지 않은 작은 봉우리에서
우리네 몸은 왜 이렇게 떨려야 하는가.
분단이 아니라면, 열차는 신의주를 지나 시베리아 벌판을 내달리고 있을 것이다.
허나 광장 한 귀퉁이에 재현된 낡은 증기기관차는 여전히 얼어붙은 임진강 같다.
심장이 터지게 내쳐 달려야 할 바퀴달린 것들이 맥박조차 없이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풍경은 그래서 답답하고 처량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50년’ 자유의 다리에 새긴 동판이 선명한 가운데 임진강으로 부는 봄바람은 얼음장을 만나
다시 시린 김을 뿜어내고 있다.
신이 사는 풍요로운 산
예부터 ‘경기 5악’으로 알려진 감악산이 그 이름과는 다르게 일반에 개방된 것은 1980년대 말에 들어서다.
그 전까지 이곳은 군 참호와 시설물들이 늘어선 통제구역이었다.
<삼국사기>에 ‘검고 푸른 빛이 배어난다’는 뜻의 감악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그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는 별기은(別祈恩)이라는 제사를 감악산에서 지내왔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나, 감악산은 이후로 무속신앙에서 중요시되는 신산(神山)이 되어왔고,
민간에서도 봄·가을로 산에 올라 굿을 하며 신이 사는 산으로 믿어왔다.
이렇듯 감악산이 지역의 신산으로 자리 잡은 데는 파주와 양주 일대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적당한 땅으로
지금의 경기 북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온 영향이 크다.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는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주변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고인돌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데,
적어도 농경사회의 시작 이전에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던 인간이 모여 살았다는 것은 자연 환경이 그만큼 풍요로웠다는 반증이다.
온 가족과 함께 하기 좋은 산
큰산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으레 진땀깨나 흘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감악산은 의외로 별로 힘든 구간이 없어 가족산행지로 적격이다.
또한 서울에서 가깝고 북녘 땅 조망이 잘 된다는 이유로 여름이나 가을 단풍철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법륜사를 지나 걷는 등산로는 널찍한 돌이 깔려있고 경사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걷기 편하다.
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십 분 정도 오르면 탁자와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이정표에 묵밭이라고 적힌 너른 공터를 마주한다.
‘묵은 밭’을 지나 왼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오르막은 십여분이면 능선에 닿을 정도로 멀지 않다.
‘큰 고개’로 불리는 안부는 감악산휴게소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은 아니지만 참나무 숲 사이로 간간히 산 아래 풍경이 바라보인다.
지난 과거의 아픈 흔적들
산길 곳곳에는 주인 없는 봉분처럼 듬성듬성 잡풀이 자란 군 참호와 낡은 통신선이 얽혀있어 산의 지난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감악산 개방 이후에도 여전히 북쪽 사면으로는 군사 시설이 있어 철책으로 출입을 막고 있다.
까치봉까지는 채 30여 분이 걸리지 않는다.
까치봉 정상에는 정자가 있어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해놓았다.
어느새 확 트인시야에는 발아래 굽이치는 임진강과 그 너머 민통선 구석구석까지 들어온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북녘 땅도 한눈에 들어올 만한 풍경이다.
천 년 넘은 두 개의 역사가 공존하는 산
헬기장이 있는 너른 봉우리까지는 금세다.
감악산 정상은 지도마다 달리 나와 있는데, 군부대와 비석이 있는 너른 이곳을 정상이라 하는 지도도 있고,
건너편 임꺽정봉을 정상으로 표기한 지도도 있다.
사진촬영금지 팻말이 걸려있는 철조망 앞에 서 있는 비석은 설인귀사적비, 비뜰대왕비, 빗돌대왕비, 몰자비(沒字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학계에 알려진 정식 명칭은 ‘감악산신라고비’다.
이름이 여러 개인 이유는 이 비석의 유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인데,
신라 때 것으로만 추측할 뿐 비석에 적힌 글자가 모두 지워져 판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름만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쨌든 신라 때부터 주변 무속인들 뿐 아니라 나라에서도 감악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예사로운 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비석 오른편 길로 철조망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하얀 성모마리아상이 서 있다.
마리아상의 시선은 북쪽이다. 한국의 산에서는 다소 낮선 풍경이다.
1998년 근처 부대의 성당에서 세운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있는데,
천 년도 넘는 역사의 차이를 간직한 두 개의 석물이 간직한 사연이 곧 감악산의 현주소가 아닐까.
# 집결 일시 :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아침 7시....
# 집결 장소 : 평촌 성당 앞
# 산행 시간 : 점심시간 휴식시간 포함 3~4시간
# 참가 회비 : 30,000원
# 준비 사항 : 산행 기본장비, 도시락, 충분한 식수와 간식꺼리 등...
첫댓글 감
이등
울 초등학교 교가에 나오던 감악산이네요~
갑니다~~^^
오랫만에 수도권 탈출한번 해 봅시다.(수선화 동참)
거기도 알고보면 수도권이네..ㅋㅋ
아리영언니와 함께 참가합니다~
올만에 고향냄새맡으러갑니다....^^
감악산 들머리로 갈거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