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는 삼양라면 CF에서 보글보글송과 함께 보글보글 댄스를 선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 탄생한 비화
우리나라 라면의 시초는 삼양라면입니다. 삼양식품의 창립자는 전중윤으로 제일생명 사장으로 있을 때 였습니다. 전중윤이 남대문시장을 걸어가다 꿀꿀이죽 한그릇을 사먹으려고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그 장면을 보고 배고픈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없애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당시에 편한 일자리인 금융인 사장 자리를 내놓고 라면 개발에 나섰습니다.
당시 유엔의 원조로 밀가루가 남아도는 것을 착안해 가격도 저렴하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해 판매한 것입니다. 이미 일본은 1958년에 라면을 개발한 상태였고 그 당시에 라면 기술은 군사비밀문서 가져오는 것보다 더 여러운 일이었습니다. 전중윤은 그 당시 1961년, 정부를 어렵게 설득해 5만 달러를 자기 자신의 사비를 털어 신용장을 개설하고 일본에서 라면기계 2대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3년 9월에 우리가 지금까지 즐겨먹는 삼양라면이 첫 선을 보이게 됐습니다.
삼양라면은 가난하고 어려운 빈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지금도 창업주의 인사정책은 아직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게다가, 삼양식품은 단 돈 10원으로 판매됏습니다. 초기에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설립된 회사라는 점에서 저렴한 10원 판매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다른 대기업들이 나중에 라면 사업에 뛰어들어 삼양은 다소 주춤했습니다. 나중에 무죄로 판결되었지만 정권의 희생양이 된 우지파동으로 삼양은 급락했습니다. 돈벌에 급급한 대기업 라면회사들은 사람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는 조미료인 MSG 첨가물을 포함해 라면 맛을 강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삼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관령 목장에서 나오는 쇠고기와 재료를 사용해 삼양라면 원조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민족기업 삼양식품, 그리고 삼양라면의 철학인 셈입니다.
라면의 원조와 전통을 고수하는 삼양식품 대관령 목장의 모습
원조 삼양라면이 소녀시대를 모델로 하여 다양한 세대와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이유입니다. 친숙하고 발랄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소녀시대는 곧 삼양라면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삼양라면도 순수하고 친숙하고 밝은 이미지의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빠표 라면을 끓여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야 겠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빠표 맛있는 라면을 조리해 봅니다.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쇠고기면입니다.
적당한 물에 라면 4봉지를 넣었습니다.
라면이 끓으면 계란 2개를 넣어 줍니다.
대파를 적당히 잘라서 넣어 줍니다.
아빠표 라면 완성.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