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계 근처
모레면 방학을 끝내고 개학하는 팔월 초순 둘째 화요일이다. 북면에서 농사를 짓는 지인 농장을 방문하러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농장에 찾아가기 전 감계 어디 한 군데 먼저 들릴 곳이 있어 일찍 서둘렀다. 대개 지인 농장을 방문하면 근처 산행을 하고 하산 길에 들린다. 하다못해 온천장에 몸을 담그고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라 온천욕까지는 생각해 볼 겨를은 없었다.
동정동에서 감계 신도시를 둘러 온천장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굴현고개를 넘어 신도시 들머리 감계중학교에서 내렸다. 작대산 기슭에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입주가 시작되었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분양이 덜 되었다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 근처엔 함안으로 옮겨간 향토 사단의 사격장이 있었다. 그 사격장 부지도 택지로 개발하려고 부지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산기슭으로 올랐다.
천주산에서 상봉을 거쳐 양미재다. 양미재에서 산등선을 오르내리면서 작대산이 우뚝 솟구친다. 감계 신도시는 작대산 가는 산등선 아래다.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엔 감계지구는 전형적이 산간 농촌이었다. 산비탈은 단감과수원이고 마을 주변엔 계단식 논이었다. 계곡에서 봄이면 절로 자란 돌미나리를 캐기도 했다. 가을이면 선홍색 물봉선 꽃이 가득 피어났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봄날이면 취나물을 뜯으러 가끔 들렸는데 이제는 다른 곳을 개척해 놓아야 될 형편이다. 내가 한여름에 그곳으로 찾아감은 산기슭 참나무 등걸에 영지버섯이 돋아났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이른 아침 햇볕이 드러나기 전에 택지조성 부지를 지나 숲으로 갔다. 숲 들머리는 칡넝쿨이 무성해 헤쳐 지나기가 어려웠다. 정글처럼 무성한 칡넝쿨을 헤집고 활엽수림이 우거진 숲으로 들었다.
영지버섯을 만나려면 그늘진 활엽수림을 찾아가야 한다. 낮은 야산보다 해발고도를 어느 정도 올라가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고도 올해처럼 강수량이 부족하면 버섯 생육이 부진했다. 나는 올해 여기저기 산기슭에서 영지버섯을 채집해 베란다에서 말리고 있은 중이다. 양이 좀 된다 싶어도 인연 따라 조금씩 나누다보면 나는 부스러기만 차로 달여 먹는다. 짚신 장수 헌신 신는 꼴이다.
작대산 가는 산기슭 예전 군부대 사격장 자리는 택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기사들이 출근하지 않아 굴삭기와 덤프트럭은 움직임이 없었다. 꽤 넓은 부지를 지나 숲으로 드니 칡넝쿨이 엉켜 정글이었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은신해 있기 좋을 자리였다. 무척 어렵게 칡넝쿨 군락지를 통과해 낙엽활엽수림으로 들었다. 숲속에는 칡넝쿨이 없어 걷기가 수월했다.
얼마간 숲 바닥을 살피다가 영지버섯이 핀 무더기를 발견했다. 대여섯 장이 한꺼번에 붙어 있었다. 그것이 숲에서 채집한 영지버섯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근 자른 지역을 살펴도 영지버섯은 더 보이질 않아 숲에서 나왔다. 아까 칡넝쿨 군락지가 너무 힘들어 다른 곳으로 둘러 내려왔다. 워낙 일찍 숲으로 들었든지 택지 정리 지구에는 그즈음 중장비 기사들이 출근하는 중이었다.
나는 감계 아파트단지를 지나 화천리로 향했다. 농협 마트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아 가게에서 곡차를 두 병 사서 들길을 더 걸었다. 벼가 자라는 논에는 가뭄으로 물이 말라 바닥에 금이 가 있었다.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어 지인 농장에 닿았다. 지인은 고구마 밭에 제초 작업을 끝내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내가 가져간 곡차를 들면서 안부를 나누었다. 한낮이 아니라 무덥지는 않았다.
지인과 자리를 끝내고 농막에서 내려와 고구마 이랑에서 잎줄기를 땄다. 초기엔 멧돼지가 뒤졌으나 울타리를 두른 이후 더 이상 피해가 없다. 벌써 고구마 잎줄기는 나한테 세 번째 보시를 하고 있다. 가을에 캘 덩이뿌리보다 더 가치 있는 잎줄기였다. 풋고추를 몇 줌과 노각오이도 두 개 땄다. 지인은 양배추도 가져가라면서 한 개 잘라 왔다. 배낭이 비좁아 보조가방까지 채워 나왔다. 17.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