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잠시 일상을 떠나 한적한 시간을 갖는 것을
교육과정에 넣으셨다
우리는 학교하면 강제적이고 따분하고 부담스러운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학교 교육이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좋은 실례라 할 수 있다. 자유가 없는 학교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점차 학교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곳이 된 우리의 학교를 새롭게 할 방안은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그러나 본래 ‘학교’라는 말의 어원은 ‘자유, 여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학교라는 ‘schoo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스콜라schola’, 그리스어의 ‘스콜레schole’에서 나왔다. 본래의 의미는 ‘일하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교는 자유민의 여가를 위한 교육을 의미했다. 교육은 자발적이며 일상적인 일에서 벗어난 상태, 즉 자유의 시간을 뜻한다.
이런 학교가 왜 지금처럼 이렇게 딱딱하고 엄격하며 질서와 규율만을 중시하는 곳으로 변화되었을까? 그것은 절대주의와 군국주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국가나 군주에 의하여 학교령이 내려졌고 학교는 철저히 힘있는 군주나 나라의 영향력 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교육적인 부분을 국가와 군주가 장악함으로 교육은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었고 권세자들이 국민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독일의 전제주의적인 영향은 일본에도 그대로 유입되었고, 이런 군사적인 스타일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학생’하면 얼마 전까지만 머리를 단정히 깎고 군인 복장 같은 검정색으로 통일한 교복을 입은 모습을 떠올렸다. 일제 이후에 우리가 가진 학생의 모습이다. 학교 선생은 일본 순사와 같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왔다. 알고 보면 지극히 왜곡된 학교의 모습이다. 자유가 없는 감옥과 같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내용 역시 통제된 일방적인 교육이었다.
지금 공교육이 붕괴되는 상황은 성찰 없는 잘못된 역사적 답습에 대한 일종이 교육의 반발이라 볼 수 있고 충분히 예견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교육은 상류층과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사용되는 용어였다. 기득권을 유지하는 좋은 도구였고 출세의 밑받침이었다.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를 가진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한참 뒤인 20새기였다. 이처럼 오랫동안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역사만 보아도 교육의 왜곡된 모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좀처럼 교육 개혁이 힘든 것은 이런 잘못된 구조에 익숙한 기득권의 주장이 힘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 속에서 짜여진 교육과정은 당연히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고, 종종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교를 벗어난 교육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학교를 결석하는 것은 군대 대열에서 빠지는 것과 같은 낙오를 의미했다.
예수님은 교육과정 속에 일상생활을 떠난 자유로운 시간을 과감하게 넣으셨다. 제자들에게 바쁜 일상생활을 잠시 멈추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 잠시 쉬라”고 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정기적(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생활에서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면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내셨다. 제자들을 보내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 보내는 시간은 예수님의 필수적인 생활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알고 보면 교육 과정이다. 교육은 꼭 무엇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다. 종종 혼자 묵상하며 자기를 조용히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시간은 물론 우리들에게 익숙지 않고 방법 또한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시간들을 과감하게 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 개인적이고 조용한 시간을 통하여 자신의 내적인 면을 충실히 하도록 학교가 권유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 창의력은 오히려 쉼의 순간에 나타난다. 뉴턴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은 낙향하여 조용히 혼자 쉬는 동안에 얻은 창의적인 지혜였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며 ‘유레카’ 하고 소리쳤던 것은 목욕을 하다가 자기 몸이 갑자기 뜨는 것을 경험하고서였다. 혼자서 목욕을 하는 휴식 시간에 일어난 위대한 발견이었다.
인생에는 피정retreat과 같은 시간이 절대 필요하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때대로 자기를 돌아보면서 지금 나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진솔하게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이것은 모두에게 필요하다.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부모에게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성당에서도, 정부기관에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일을 정해 모든 일을 접어두고 온 가족이 성당과 교회에 나가 미사와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도 이런 측면으로 이해하면 참으로 좋은 생활 습관이다.
지금부터라도 피정의 시간을 교육과정에 과감하게 넣어야 한다. 특히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학교, 학원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밀려다니는 참담한 상황에서 이런 시간은 더욱더 필요하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여름 신앙학교나 캠프를 또 다른 길들이기 훈련으로 삼고, 그것들을 흥미를 돋우는 시간으로 만들기보다는 자기를 깊이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교육 과정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바이올린 줄을 쉬지 않고 사용하면 끊어진다. 기계를 쉬지 않고 돌리면 마모가 된다. 기계에도 정기적인 쉼이 절대 필요하듯이 교육에도 쉼은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는 큰 활력소가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 곳 하나 자유로운 곳이 없다. 그 역할을 가장 앞장서서 해야 할 교육마저 우리를 꽉 막힌 담장의 코너로 거세게 몰아넣고 있다. 그래서 더욱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교육은 곧 자유이다. 자유는 쉼이요 기쁨이요 사랑이다. 교육의 현장이 점차 이런 자리로 매김을 한다면 지금의 교육에 큰 생기를 불어넣으면 동맥경화 상태가 된 교육의 혈관을 맑게 하는 아주 신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