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주(和州)의 개성(開聖) 각(覺)노스님은 처음 장로사(長蘆寺) 부철각(夫鐵脚:운문종) 선사에게 공부하였으나 오래도록 깨친 바가 없었다. 그래서 동산 오 (五祖法演)선사의 법을 듣고 그 회하로 바삐 달려갔는데 하루는 방장실에서 그에게 물었다.
"석가 미륵도 오히려 그 사람의 노예라 하는데, 말해 보아라. 그가 누구냐?"
"호장삼 흑이사(胡張三黑李四:아무개, 모든 사람)입니다."
오조스님은 그 말을 수긍하였다. 당시 원오(圜悟)선사가 그곳 수좌로 있었는데 오조스님이 이 말을 일러주자 이렇게 말하였다.
"좋기는 좋지만 실상을 잃어버릴까 두렵습니다. 그냥 놓쳐버려서는 안되니 다시 그 말에서 찾아보도록 하시오."
이튿날 각스님이 입실하자 어제와 같은 질문을 하니 "어제 스님께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하였다.
"무엇이라 하였소?"
"호장삼 흑이사라고 하였습니다."
"아니지, 아니야."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어제는 옳다 하였습니까?"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틀렸네."
각스님은 이 말끝에 크게 깨쳤다. 후일 각스님은 세상에 나아가 개성사의 주지가 되었는데 장로사(長蘆寺) 부(夫)선사의 법석이 크게 성황인 것을 보고서 마침내 부선사의 법을 잇고 깨달은 경위는 돌아보지 않았다. 부선사에게 향을 올릴 때 갑자기 가슴이 방망이질 하더니 드디어 아픈 부분에 종기가 생겨 구멍이 뚫렸다. 유향(乳香)으로 떡을 만들어 구멍을 막았으나 오랫동안 낫지 않아 결국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