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생과 학생]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나는 나이 열여섯 살부터 제사드리는 날이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직접 붓으로 지방을 썼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좌포우혜’하며 아버지는 어린 내게 꼼꼼히 일러 주시고 지방을 직접 쓰도록 훈육하였다. 그때마다 죽은 조상을 왜 ‘학생(學生)’이라고 하는지에 대해 매우 궁금하였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묻지를 못했다. 괜히 물었다간 이것저것 훈계나 듣고 일만 더 시킬 것 같은 불안감에 스스로 포기하였다.
죽은 조상이 학교에 다니다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왜 하필 ‘학생’이란 표현을 하였던 것일까? 훗날 고문서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진실은 이러했다. 유교를 숭상하였던 조선 시대에 호구단자나 여타의 고문서 등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생칭유생(生稱幼生)’이요, ‘사칭학생(死稱學生)’이다. 즉 산 사람을 칭할 때는 ‘유생(幼生)’이라 하고, 죽은 사람을 칭할 때는 ‘학생(學生)’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유생이라 함은 성균관 ‘유생(儒生)’과 같이 과거에 합격하여 전문적으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나 삶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뜻으로써 ‘유생(幼生)’이라 한 것이다. 또한, 망자가 벼슬이 있었을 때는 관직명을 직접 쓰기도 하였으나 벼슬이 없는 일반인의 경우는 대개 모두 ‘학생(學生)’이라 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인생이 평생토록 세상을 배우다 간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