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서울/한강 비엔날레 최우수작가 초청 기념 개인전에 이정수 장군이 초서(艸書)로 쓴 만해 한용운 스님 오도송 글씨가 걸려있었다. 그 오도송은 내가 20여 년 전 이장군 부부와 강원도 여행 가서, 구룡령, 운두령 두 고개 넘고, 설악해수욕장과 대포항 들렀다가, 백담사 곁을 지나올 때, 차속에서 그가 읊어주던 詩다. 이장군도 옛날 그 강원도 여행을 기억했던지 모르겠다. 자필 서명 落款한 오도송 全紙 글씨 한 점을 나에게 선물했다.
男兒到處是故鄕(사나이 가는 곳마다 그곳이 고향인데)
畿人長在客愁中(어느 누가 긴 시름에 잠겼던가)
一聲喝破三千界 (큰 소리 한 번에 삼천세계를 갈파하니)
雪裡桃花片片紅(눈 속의 도화꽃이 편편이 붉도다)
이 오도송은 첫 구절 <사나이 가는 곳마다 모두 고향>이라는 표현에 남아다운 기개 엿보이고, 마지막 구절 <눈 속의 도화꽃이 편편이 붉도다>란 구절은 삶의 의미를 토로한 고승의 경계도 있지만 詩的인 운치도 깊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만해 스님의 시를 익히 배웠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의 침묵> 이라던지,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알 수 없어요>,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룻배와 행인 > 같은 시는 일찍이 우리가 애송한 스님 시다.
만해 스님은 지조가 높기로 유명한 스님이다. 일제 강점기 채만식, 최남선, 김동환 등 친일로 변절한 문학인이 많았다. 이를 분하게 여긴 벽초 홍명희가 만해를 찾아가 울분을 토로했다. "여보게, 만해! 이런 개 같은 놈들을 봤는가?" 그러자 한용운은, "이보게, 벽초! 그놈들은 개 같은 놈들이 아닐세" 했다. 그래 홍명희가 무슨 소리냐고 하자, "개는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으니 저놈들은 개만도 못한 놈 아닌가? 개가 자네 말 들었으면 무척 섭섭해했을 걸세"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과의 일화도 있다. 변절한 최남선이 한용운과 가까운 사이임을 자처하자, 한용운은 최남선의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최남선이 찾아와 "선생님, 접니다. 육당이 왔습니다." 하자 스님은 "육당이 누구요?"라고 묻고, "아니? 선생님, 이 육당을 벌써 잊어버리셨습니까?" 하니, "내가 알던 육당은 벌써 죽어서 장례를 치렀소"하는 바람에 최남선이 말도 못 하고 돌아갔다 한다.
지조와 절개가 칼날인 그 만해스님의 제자가 진주 해인대학 최범술 스님이다. 만해 스님은 효당(曉堂) 스님에게 <마저절위>란 글을 보냈다. 방망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책 편을 묶은 끈이 닳아 없어지도록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다.
최범술 스님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1916년 봉명산 다솔사(多率寺)로 출가하였다. 1922년 일본에 유학하여 1933년 동경의 다이쇼대학(大正大學) 불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23년 박열(朴烈) 의사의 일본천황 암살계획을 돕고자 상해로 잠입하여 폭탄을 운반하여, 8개월 옥고를 치렀다. 1932년 김법린(金法麟) 등과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을 조직하였고, 1933년 조선불교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그 해에 명성여자학교(明星女子學校)를 설립하고, 해인사 부동산을 담보로 해인대학을 설립했다. 일본 시절 인도승으로부터 전해받은 불사리(佛舍利) 3 과를 범어사에 기증하여 탑을 세우고 봉안하였다.
나와 스님의 관계는 그분은 일과 후 해인대학을 지키시던 학장이고, 나는 매일 해인대학에 평행봉 하러 찾아간 동네 머스마 였다. 효당 스님을 모시다가 나중에 인사동에서 전통 茶道를 교육하던 '반야로 차도문화원' 채원화 보살은 진주여고 출신이다. 날더러 인사동에서 반야로 차도를 같이 가르치자고 한 적 있다. 만해스님이 주석하셨던 백담사도 인연 없는 곳은 아니다. 백담사 주인격인 회주 오현스님은 불교신문 기자 시절부터 알던 스님이고, 백담사 뜰에 서있는 詩碑는 고려대 선배 李聖善 시인 시비인데, 나는 그 분을 돕기 위해 백화점 건물 일부를 시모임 장소로 제공한 적 있다. 이런 자잘한 인연의 고리들이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