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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적 명령
출 6:28-7:7
28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30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출 6:28-30 /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이 되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 29) 이렇게 이르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애굽의 바로에게 그대로 전하여라.' 30)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님, 주께서는 제가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바로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출 7:1-7 /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보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하나님 같은 존재로 보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네 형 아론은 네 ㄱ) 대변인이 될 것이다. (ㄱ. 히브리어는 주로 `예언자'로 번역되는 나비이다) 2) 그러니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은 그 말을 바로에게 전하여 바로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 땅에서 내보내게 하여라. 3) 내가 애굽 땅에 놀라운 일과 이적들을 많이 베풀겠으나 또한 바로의 마음을 굳게 만들어서 4)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애굽에 여러 가지 크나큰 재앙을 내려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리라. 5) 내가 애굽을 호되게 내리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 땅에서 이끌어 내어야 애굽 사람들이 비로소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6)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하였다. 7) 그들이 바로와 협상을 벌일 때 모세의 나이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다.
하나님께서는 낙심하고 있는 모세에게 다시금 출애굽 지도자로서의 소명을 주심으로, 모세는 자신의 소명에 순종하며 다시 애굽 왕 바로를 대면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요구합니다.
바로에게 다 말하라(6:28-7:5) ‘나는 여호와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신실하심을 알리시며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4장 10-16절의 말씀처럼 또다시 자신의 입이 둔하여 바로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바로는 만물을 다스리는 태양신 ‘라’(Ra)의 아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파라오(Pharaoh)로 불리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세에게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이라는 말씀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신의 아들로 추앙받는 애굽 왕 바로라도 모세 앞에서는 자신의 권세를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 아론을 대언자로 세워주시며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크게 체험하고 강한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모세와 아론이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여러 가지 큰 재앙을 애굽에 내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종하지 않는 바로와 애굽을 심판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6-7)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그 방법대로 조금도 어긋남 없이 다 행하였습니다. 나약한 모습으로 주저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모세와 아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80세, 아론은 83세였습니다. 성경은 레위 자손의 족보(출 6:20, 26) 외에는 아론을 먼저 호명한 적이 없습니다. 아론은 제 2인자로 모세의 명에 따라 움직이지만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동생인 모세를 지도자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순종하며,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갔던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예비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전에 자신의 부족함을 고민하고 망설일 때가 있습니까?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심을 경험하신 적이 있습니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바는 이 땅의 무수한 것들을 추구하며 누리는 것, 욕망의 채움, 집착, 분노, 번뇌 등이 부질없는 것이라고 하는 깨달음입니다. 대부분의 삶의 모습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공허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 순종할 때 그 안에서 다시 한 번 새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며,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짧은 생을 살아가지만 주님과 함께라면 땅의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삶, 새로운 세계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설 교 >
신실하신 하나님
출 7:1-13 / 임덕순 목사
지난 주일에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는가를 말씀드렸고, 그 약속을 이 못난 사람에게 어떻게 실천해 주셨는가 하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저는 천박한 죄인이고 하나님은 흠이 하나도 없는 높고 귀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하셨고, 반세기가 넘도록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으시고 약속해 주신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여 나를 이끌고 사랑해 주셨다는 그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이루어진 그 일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오늘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있느냐? 100%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출애굽기 6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하나님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와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한다면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상대하는 사람이 진실하지 못하고 못나서 하나님이 약속대로 해주실 수 없을 정도인 상대에게도 당신이 한번 해주신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 주시는데, 자신의 명예 때문에 책임지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의 의미를 잘 알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셔서 못하실 것이 없는 대단하신 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6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특별히 강조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당신의 큰 능력을 사용하여 착하게 순종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는 보상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지 못하고 죄만 가득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으면, 그 약속을 기필코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즉 성실하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한번 약속한 것은 기필코 이루어주고야 마는 믿을 만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별 볼일 없고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 즉 은혜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제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살아온 환경이 가장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지못하고 상황 따라 변하고 하나님을 의심도 하고, 참으로 부족하기 한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그 이름대로, 저에게 변치 않고 친절하셨고 완전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여러분의 인생길을 맡기고 따라나설 용의가 있습니까?
이제부터 그분을 믿고 따라나서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능력이 한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해 주신 약속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켜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해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4) 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과, 그분이 나의 지난날에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고, 나의 장래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려면 먼저 지난날에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자신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다 의지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그것이 뭐가 어렵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이제부터는 그분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능력이 많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 앞장서시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길을 그분을 따라서 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어렵기는커녕 든든하고 신나는 길이 아닙니까?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고 당신이 책임지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걱정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 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믿음하나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철저하게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 41:10에『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람은 잘 나갈 때 누구를 도와주기로 약속하고는 나중에 잊어버리기도 다반사로 하고, 자기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도와줄 수가 없게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지위와 능력이 변할 수 없는 분이시고, 한번 약속해 주신 것은 잊지도 변하지도 않는 분이셔서, 그분의 약속 한 줄이면 이미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고 꿈이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만 만날지라도 약속해주신 말씀을 믿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책임지고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요, 제가 경험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본장에서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당신의 약속을 이행하시는가 하는 실제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어떻게 인도해 주실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이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근 400년 째 애굽에서 종노릇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더러 애굽 왕 앞에 가서 내 백성을 내놓으라. 당장에 석방시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한번 찾아가서 그렇게 했는데도 애굽 왕은 끄떡도 안했습니다. 오히려 모세가 그 말을 한 뒤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노동을 더 혹독하게 시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등을 돌렸고, 애굽 왕은 더욱 기고만장합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모세더러 다시 가서 또 다시 그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내가 너를 바로 앞에 신처럼 되게 해줄테니, 너는 내가 명한 바를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아론은 바로에게 말하기를, 내 백성을 어서 내 보내라고 해라.”
우리의 판단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바로라는 사람은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인 애굽의 왕이고, 모세는 그들이 부려먹는 노예 중에 하나인 이스라엘 사람일 뿐입니다. 애굽 왕이 무엇 때문에 모세의 말을 듣겠습니까?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합니다. 그러니 모세가 선듯 나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바로에게 가서 그렇게 말하면 바로가 들을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네가 말해도 바로는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3-4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 마는, 그럴지라도 바로는 너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되지도 않을 일을 시키시는 무모한 분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 봐도 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면입니다. 가서 말해도 되지 않을 거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바로가 듣지도 않을 일을 왜 시키고 계실까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처음부터 모세의 말을 척척 들어준다면, 바로가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인 것이 드러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신 것이나,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기어코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에게 알리려고 하십니다. 그러려면, 바로라는 인물은 말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사람이고, 웬만한 능력으로도 끄떡도 안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먼저 확인돼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도 안 되고 기적으로도 안 되는 실제 상황을 모세에게 경험시켜야만 했고, 오늘의 명령은 그것을 경험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가서 말해도 안 될 것이고, 네가 능력을 보여주어도 바로가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가 듣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결국 네 앞에 굴복하게 되리라고 장래에 나타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4절 중반에 보면, “내가 내 손을 애굽 땅에 더하여 여러 가지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내가 내손을 애굽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당장은 듣지 않겠지만 결국은 바로가 항복하고 너희 백성을 해방시키리라. 내가 내 손을 그들 위에 펴서 재앙을 내릴 것이니, 애굽 왕이 항복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난관을 먼저 만나게 하신 다음에,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네가 가서 바로라는 사람을 한번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바로가 얼마나 교만하고 완고하고 이기심이 가득한 사람인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윗덩어리 같던 그가 내 능력 앞에 굴복하게 되고 너희를 해방시켜 줄 텐데, 그때 얻은 해방은 바로의 자비심이 아니라 내 능력인 것을 네가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젊어서 만났던 가난과 질병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물러갈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그 병의 심각성을 체험하게 하셨고, 그리고 제가 아무리 해도 고칠 수 없게 되었을 때, 당신의 능력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건강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 단계부터 술술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는 많은 문제가 언제나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러갔고 도리어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 것이 분명해졌고, 우연히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하신 일을 하실 때, 사람의 힘을 빌려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세우기는 하지만 그의 능력을 빌리고 싶어서 그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의 전달자와 목격자를 삼으시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는 강한 자와 능한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약한자를 쓰십니다. 고전1:27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자들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자들을 폐하려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모세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그는 과거에는 젊었습니다. 지금은 80노인입니다. 과거에는 애굽의 왕궁에 있었지만 지금은 지명수배를 받다 해제된 광야의 피난민입니다. 그는 과거에는 인맥이 애굽 도처에 뻗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거에 젊고 인맥이 많고 권력을 가지고 있던 왕궁에서 사는 모세를 부르시지 않고, 실패자가 되고 광야에서 40년을 썩고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었을 때 불러서 쓰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모세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약속 때문에, 당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문제를 심각히 여기고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고, 지금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천하고 약한 자도 쓰시는데, 쓰시면 귀한 사람이 됩니다. 저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자도 쓰시는데, 하나님이 쓰시면 귀중한 성공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불구자와 지진아도 쓰시는데, 쓰시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인간의 종점은 하나님의 출발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보다 더 약한 가운데서 시작했습니다. 나이 100세에 아들을 낳아 후손을 이어가리라고 누가 믿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100살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이 지금 저 유명한 유대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과, 당신은 여호와이셔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신 뒤에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점은 곧 하나님의 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에게만, 그 뜻을 깨닫고 따르는 자에게만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어떤 형편에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분께 순종하며 평생을 살기로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믿는 그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 왕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세 가지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에게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무모한 짓이며 실패하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약한자라도 이기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체험하게 하시려는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고 그는 기필코 실패하고야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 있을지라도, 그가 겪는 문제가 어떤 문제더라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은혜의 성실성에 의지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배후에 누가 계신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든든하고 완전한 배경이 되어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놓으라고 명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을 자기의 영원한 종으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내어놓지 않으려고 버팁니다.
애굽 왕은 자기백성도 아닌 남의 백성을, 오랫동안 종살이 시키며 노동력을 착취했으면서, 보내야 할 때가 되어 그들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내라 하시는데도 보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무지한 그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하시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는 내 백성을 내어 놓으라는 명령을 하셨는데 바로는 거절하다가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외롭고 힘들게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서 내게로 오라고 명령을 하시는데, 하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고 자기 습관과 고집과 불신앙 그대로 살려고 하면 그 역시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어떤 상황에 있던지 즉시 순종하면 상상 못한 축복을 받습니다. 거절하고, 거역하지 말고 순종하여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너의 신이 너와 함께한다면 그 능력을 내게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지팡이를 아론에게 주었고, 아론은 모세의 지팡이를 받아서 바로 앞에 던졌더니 그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평소에는 양치는 도구였고 말라빠진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지금 바로의 발 앞에서 바로를 위협하는 독사가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마른 지팡이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셔서 그것을 가지고 갔을 뿐인데, 그것이 뱀이 된 것입니다. 그 지팡이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하였더니 그 마른 지팡이가 일을 내고 있습니다. 그 마른 지팡이가 기적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고집쟁이인 애굽 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은 마른 지팡이 한 개로도 당신이 하려고 하시는 일을 간단히 하시는 분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람 한명을 들어서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쓰려고 하신다면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자기의 손을 떠난 지팡이가 뱀이 되는 놀라운 광경을 보면서, 아하, 내 손에 있던 지팡이도 살아 움직여 바로를 두렵게 하는데, 저 지팡이의 주인인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못할 것이 무엇이랴 하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사건 이후에는 모세와 아론이 다시 주저하지 않았고 계속 담대하게 일했습니다.
마른 지팡이를 가지고도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 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성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분을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맡기고 새롭게 시작하기 바랍니다.
잠시 당황하던 바로는 애굽의 술객들을 불렀고, 그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만든 뱀이 술객들이 만든 뱀을 잡아 삼켜버렸습니다. 능력이라고 다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능력과 사람을 속이려는 능력, 하나님의 원천적인 능력과 하나님을 대항하려는 인간의 능력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끝없이 강하고 사단의 능력은 잠시만 강하게 보일 뿐입니다.
능력을 행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순종하느라고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자기의 유익을 얻으려고 신비한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은 사단의 종일뿐입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사람이 승리하고, 진리가 승리하며, 하나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약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어서 그분이 함께만 해주시면, 모세나 그의 지팡이처럼 놀랍게 변화되고 위대해진다는 것을 믿고 이제는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부름을 순종하여 나온 사람들에게 구원과 은혜를 주시며, 위대하게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로, 그분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의 일군으로 사십시다. 그래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강퍅한 마음을 향한 경고
출 7:1-6 / 피영민 목사
서론
출애굽기 1장부터 6장까지는 출애굽의 지도자인 모세가 어떻게 탄생을 했고 어떻게 성장을 했고 어떻게 소명을 받았는가 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부터 12장까지는 모세가 애굽왕 바로와 대결을 하는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모세는 바로왕과는 대결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막대기 하나 가지고 양을 치는 목자에 불과합니다. 40년 동안 양을 쳤습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누구입니까? 세계 최강대국의 최고 권력자요, 천군만마를 소유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모세와 바로왕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정도의 싸움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세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어떻게 바로왕을 이기겠습니까? 목자가 왕을 이깁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7장부터 12장까지의 스토리를 읽어보면 모세는 대 승리를 거두었고 바로왕은 처절한 패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두 사람의 마음이 달랐다 하는데 있었습니다. 바로왕의 마음은 강퍅한 마음이었고 모세의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음이 달랐기 때문에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는 승리하였고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은 패배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통해 우리 인간을 상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할 때 머리로 믿는 것도 아니고 감정으로 믿는 것도 아닙니다. 눈물 좀 흘렸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로 성경을 몇 번 읽었다고 해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로 믿음의 자리(seat of faith)는 지성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고, 감성도 아니고, 의지도 아닙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통해서 우리를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 중에 어떤 분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실 것입니다. ‘내가 인생에 처절하게 실패하고 여러가지 어려움과 난관을 겪고 내 마음이 상해있다’ 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상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한 마음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이 상하셨으면 성령으로 위로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강퍅한 마음에 대해서는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강퍅한 마음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마음입니까? 영어로는 ‘hardened heart’ 굳어진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말라서 수분도 하나도 없는, 완악하고 완고한 마음, 고집 센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장기 가운데서도 굳어지면 쓸 수 없는 장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간입니다. 술 많이 먹고 담배를 많이 피고 과로하면 간에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집니다. 간에 심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간이 약해지게 되고 사람이 너무 먹고 운동 안하면 배가 나오게 되고 기름이 배에 끼에 되면 기름이 간으로 가게 되고 그래서 지방간도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운동 안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간경화가 되고 그래서 간 경화상태가 오래가면 간암이 되고 간이 수행해야 될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경화입니다.
강퍅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마음의 경화, 심경화(心硬化)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져 버려서 하나님과 교통이 안 되고 단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내 마음이 지금 강퍅한 마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진단한다고 할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강퍅한 마음의 증세는 어떤 것입니까? 어떤 증세를 가지고 있을 때에 마음이 강퍅하다 고 진단할 수 있는 것입니까?
1. 강퍅한 마음의 증세
3-4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마음이 강퍅하게 되면 말씀을 듣지 않는 증세가 나타납니다. 기적도 보여 주시고, 표징도 보여주시고, 살아계신 증거도 많이 보여주셔도 하나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강퍅한 마음인 것입니다. 믿음을 갖고 싶다면 하나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려면 자꾸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퍅한 마음은 말씀을 들으려고도 안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에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까 순종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바로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서 존경심을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출애굽기 5장 2절을 보면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바로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닫힌 마음,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출애굽기 5장과 10장 사이에 일곱 번씩이나 말했습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말씀이라” “Let my people go!”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왕은 일곱 번씩이나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순종하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강퍅한 마음입니다.
누가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주제가 아닙니다. 성경에 바로왕이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는 것이 열여덟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홉 번은 여호와께서 강퍅하게 하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아홉 번은 바로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비유를 한번 들어봅시다. 따뜻한 햇볕이 비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햇볕은 따뜻한 것이고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햇볕을 받으면 얼음은 어떻게 됩니까? 딱딱하게 얼어 있다가도 녹아서 그것이 생수가 되고 물이 됩니다. 그런데 진흙은 어떻게 됩니까? 똑같은 햇빛을 받아도 수분이 증발해 버려서 더 딱딱해지고 나중에는 돌처럼 되는 것입니다. 햇볕이 잘못한 것 없습니다. 따뜻하게 비춰줬을 뿐입니다. 그런데 얼음은 녹아서 생수가되고 진흙은 굳어서 바위, 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햇볕 같으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이 녹아 생수가 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흙처럼 오히려 더 굳어지는 마음이 된다면 그 마음이 바로 강퍅한 마음인 것입니다.
2.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러면 이 강퍅한 마음은 도대체 누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 본문에 보니까 바로왕이 강퍅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왕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가장 위대한 왕이였던 느브갓네살 왕도 강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서 5장 20절에 느브갓네살왕도 뜻이 강퍅하고 교만하여 그 왕위가 폐한바 되었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을 왕위에서 폐하시자 그는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게 되었습니다. 들짐승들과 함께 거하고 소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살기를 7년간 하다가 제 정신이 돌아오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라” 하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왕도 강퍅했고 느브갓네살왕도 강퍅했습니다.
그러나 왕들만 강퍅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시때때로 마음을 강퍅하게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95편8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진행할 때 물이 없으면 강퍅해지고, 먹을 것이 조금 없으면 강퍅해지고, 조금만 괴로움이 오면 강퍅해지고, 조금만 슬픔이 오면 강퍅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끌어내서 물도 안주느냐 밥도 안주느냐 옷도 안주느냐 하며 강퍅한 마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을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16장 12절에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마음을 따라서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왜 이스라엘 백성이 망했습니까? 강퍅한 마음 때문에 망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강퍅한 마음을 따라서 하나님을 청종치 아니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8절에도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들도 강퍅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도 마음이 강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열두제자들 영적인 지도자들조차도 때로는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52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기록을 하셨습니다. “이는 저희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다고 했습니다. “Their hearts were hardened”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졌다는 것을 성경은 “둔하여졌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던 큰 기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도시락 하나 가지고 축사했을 때에 떼어 주면 계속 밥이 남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들 다 모였을 때 도시락 하나, 김밥 하나를 축사했더니 3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아서 옆 교회를 나누어 줬더라.” 그런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열두제자들은 그 기적을 보았지만 금방 마음이 둔하여졌습니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서 호수를 건너가는데 풍랑이 일어나고 날은 저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풍랑이 일 때 괴로이 노를 저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보고 외칩니다 “유령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I am that I am” 헬라 말로 ‘에고 에이미’라고 하는 것이 ‘나는 하나님이라’하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내가 곧 그니라” 하는 말씀은 곧 “내가 하나님이라”,
“내가 여호와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 예수님이 “안심하라 내가 여호와니 두려워말라” 하고 바다를 꾸짖으니 바다도 잔잔해지고 제자들이 더욱 더 놀라게 되었습니다. ‘저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가?’ 그 때에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진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은 직접 보고 체험하고 그리고도 믿지 아니하는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방 사람들도 강퍅하고 하나님의 교회도 때로는 강퍅해질 수 있고 때로는 지도자들도 강퍅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고 있는 우리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하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내 고집 내 판단, 내 경험, 내 뜻 그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말씀이 뭐가 중요하냐 하나님 말씀은 나는 듣지도 아니하겠고 믿지도 아니하겠고 순종치도 아니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은 마음이 강퍅하신 것입니다.
3. 강퍅한 마음의 결과
강퍅한 마음은 첫째로 우리 인간의 삶에 재앙을 가져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네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렸습니다. 고로 강퍅한 마음은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신처럼 여기던 열 가지를 다 하나님께서 치시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과 진노를 애굽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3장 17절에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거짓 선지자들은 자기 마음에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23장 19절로 20절을 보십시오. “보라 나 여호와가 노를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으로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노는 네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 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하나님께서 강퍅한 마음을 가진 자의 머리를 친다는 것을 말일이 되면 다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의 원인도 바로왕의 강퍅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잠언 28장 14절에도 이 진리를 재차 선언하고 있습니다.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재앙에 빠지게 됩니다. 강퍅한 마음에는 첫 번째 재앙이 옵니다.
두 번째로 강퍅한 마음은 형통할 수가 없습니다. 실패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서 9장 4절에서 욥은 자기 신앙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나니 스스로 강퍅케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여기서 형통하다고 하는 것은 상처를 입지 않고 성공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성공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온갖 상처를 다 입고 높이 올라간다면 그것은 상처뿐인 영광인 것입니다. 사람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 가정도, 건강도 파괴했다면 그것이 무슨 성공입니까? 그러므로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실패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강퍅한 마음으로는 저주가 오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여호수아를 대적했습니다. 여호수아서 11장 20절에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를 대적하면 은혜도 없고 저주도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65절에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 시대에 바벨론에 멸망해 버린 것은, 그래서 예레미야가 눈물을 흘리며 애가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저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고 순종하려고 하지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는 강퍅한 마음에는 오는 바로 것이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재앙이요 둘째는 실패요 셋째는 저주가 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퍅한 마음은 대단히 위험한 마음입니다. 강퍅한 마음은 대단히 위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마음인 것입니다. 고로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다면 고치게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강퍅한 마음의 치료
강퍅한 마음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하다고 해도 종류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hardened heart” 완전히 강퍅해진 마음, 즉 돌처럼 굳어져서 전혀 바꿀 수 없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김일성의 마음, 김정일의 마음, 이것은 강퍅한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마음을 고치라는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신자들은 “hardening heart” 마음이 강퍅해지는 과정에 있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강퍅해지는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돌이켜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을 치료하려면 우리가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히브리서 3장 12-13절이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 개인의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혼자 할 일도 있고 함께 할 일도 있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혼자 할 일은 삼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강퍅해지지 아니했는가?’ 이것을 삼가야 되는 것입니다. 죄에는 유혹성(deceitfulness)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을 속입니다. 아닌 것도 그런 척 하고 그런 것도 아닌 척 합니다. 이것이 속임수요 죄입니다.
이런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강퍅함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속이는 것입니다. 죄는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속임수에 넘어가버리면 그 다음부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됩니까? “간음하지 말라 이혼하지 말라” 하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합니다. 마음에 강퍅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와는 관계없어 그것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강퍅한 마음을 보이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의 결국에는 재앙과 실패와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삼가야 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 서로가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혹은 악심을 품고 있다. 아니면 지금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피차 권면하여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삼가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권면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 우리의 강퍅한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것은 결국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 굳은 마음이 제거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간구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이 곳, 예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 모인 곳에 성령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 성령님께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내 마음이 강퍅해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날 도우셔서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고 믿어지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살게 하옵소서 내가 어찌재앙과 저주와 실패의 길을 가겠습니까? 하나님, 내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결 론
마음을 바꾸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가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에 위대한 승리를 했습니다. 강퍅한 마음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이 강합니까? 아니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모세가 강합니까? 1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셨은즉” 부드러움을 가진 모세가 강퍅한 마음을 가진 바로왕 앞에 신처럼 되었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로 애굽에 가서 바로왕에게 명령도 하고, 바로왕이 순종치 아니하면 심판도 내리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강퍅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믿고 계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평생토록 섬기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의 날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날도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믿지 않는 여러분들이 계시다면 강퍅한 마음을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또 이미 예수 믿으신 여러분들은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대로 매일 자신의 마음에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마음에 주의하셔서 말씀에 강퍅하게 됨을 면하시고 혹시 옆에 계신 분이 강퍅해 질 때에는 권면을 해서 마음의 강퍅함에 서로 빠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퍅한 마음은 위험한 것이지만 부드러운 마음은 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