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돌아다니다가 보면 강아지들을 자주 만난
녀석들의 성격들이 여러 가지다. 사람과 똑 같다.
순한 놈, 사나운 놈, 부끄럼 타는 놈, 적극적인 놈. 등등
수캐와 암캐를 비교해 보면, 대체적으로 암캐가 더 사나운 편이다.
경계도 암캐가 더 한다. 사람과 비슷하다.
노인회관에 가다가 만나는 녀석은 양순이 암캐다. 양순이는 집 앞 검둥이 애인이다.
양순이는 처음에는 사나웠다.
내가 이름을 불렀는데 짓으면서 달겨 들었다.
서너 번 아는 척 했더니, 그제서야 조용하다.
그러나 아직 나를 못 믿는 눈치다. 검둥이가 양순이에게 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사람과 개나 경계의 시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성격상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사람들 대하고 거의 직관적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틀릴 적도 있지만 거의 들어 맞는다.
개나 사람의 상대에 대한 경계의 시간은 탐색의 순간이다.
탐색의 시간은 개체 마다 다른 것 같다.
의심이 많은 개체는 오래 걸리고, 의심이 없는 개체는 짧을 것 같다.
그런데, 경계의 시간에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욕심이다. 필요에 의해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다.
욕심이 들어서면 틀림없이 상대를 파악하는 것에서 실패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판단을 흐리게 해서 낭패를 겪는 것이다.
동물들은 경계의 시간에는 욕심이 끼여들지 않는다.
오로지 직관과 본능만으로 상대를 파악한다.
그래서 동물들은 상대를 정확히 판단한다.
아무리 좋은 말로 꼬드겨도 사람이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동물과 친해지기 어렵다.
경계의 시간이 지나면, 소통의 시간이 온다.
소통의 시간 역시 사람은 욕심이 끼여들기 쉽고 동물은 역시 본능이다.
그래서,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알아듣지 않고 들으려고도 안한다.
동물들은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면 아무리 어려운 인간의 말로 해줘도 다 알아 듣는다.
얼마전, 앞의 검둥이가 새벽에 낑낑 대길래 내려가 보니 줄을 풀어달라는 것 같았다.
몇 번 풀어 주다가, 집 주인이 풀어주지 못하게 했다.
더 이상 내 권력으로는 검둥이을 풀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검둥이는 새벽마다 낑낑 대었다. 두 세 번 듣다가, 검둥이가 불쌍해서 내려가서 말했다.
“검둥아, 니 주인이 너를 풀어주지 말란다. 그래서 내가 못 풀어주니 이해해라”
그 다음 날부터 검둥이는 단 한번도 낑낑 대지 않았다.
동물이 사람보다 더 현명한 것 같다.
20 년전 북동분교에서 동물을 키우면서 써놓았던 일기를 옮깁니다.
“관로 작업 부속품을 사러 갔다가 북평장에 들러 중 병아리 한쌍을 사왔습니다. 어제는 작업 때문에 시간이 없어 장도 둘러보지 못하고 막걸리 추렴도 못하고 재빠르게 돌아왔습니다.
병아리를 세 마리 개들의 본부에 집어 넣기가 조금 꺼림직해서 (혹시 큰개 모닝이 해칠까봐) 잠시 작은 그물망에 가두어 놓았는데, 역시 병아리들은 새로운 장소에 적응이 되지 않은 지 좁은 공간에서도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저쪽에서는 묶여 있는 모닝이 연실 짖어대고, 강아지 똥구와 빵구는 병아리 우리 앞에서 호기심에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 후, 병아리들을 우리에서 해방시켜주었는데, 역시 병아리들은 위축이 되어 한 쪽 구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들의 반응도 병아리들이 갖혀 있을 때와 달랐습니다. 서로 경계를 하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겁니다.
생전 처음 만난 이종간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벌써 스스로의 아집(?) 사로잡힌 큰 개 모닝의 경계의 소리도 역시 당연한 것이테구요.
그러다가, 서서히 다가가더군요. 큰개 모닝도 병아리들을 인정하는 분위기더군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짧았습니다.
자신들의 공간을 외부 칩입자들에게 내어주는 선심(?)을 너무나 쉽게 허용하더군요. 더구나 원수지간일 수도 있는 개와 닭들 사이에서.
아마, 동물들은 먹이의 경쟁만 사라진다면 이종간의 혈투는 없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들이 서로를 경계하고 해치는 것은 오로지 먹이 때문일 거라는. 그리고 자신들의 지역구(?)를 챙기는 것 역시 먹이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들에게 먹이를 의지하고 있는터에야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곧 친구가 될 거 같습니다. 그들의 소통의 방법은 직관과 감성일겁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를 겁니다. 더구나 홀로 외롭게 지키고 있던 모닝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될겁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이종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인 강아지들에게도 소통의 방법은 그리 할 겁니다.
인간들 사회 역시, 외부인에게 대해 처음에는 경계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소통을 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작용하는 법칙은, 이성이라는 위선과, 그들이 만든 피곤한 통제와, 게다가 자본주의 법칙인 이해관계가, 소통을 위장할 겁니다.
동물들의 법칙에 비하면 형편없는 것들인거죠.
앞으로 그들을 지켜보면서, 기록하고 사진찍고 , 그들에게 배울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