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를 찾아서...
1. 이동 거리: 4,096km (이동 수단: 자가용[i30]/배[발해명주])
2. 소요 비용: 7,460¥
->유류비: 2,500¥ / 고속도로 통행료: 1,250¥ / 숙박비: 2,230¥ / 배: 980¥ / 기타: 500¥
3. 이동 경로: 위해-동영-산해관-심양-장춘-하얼빈-목단강-해림-돈화-이도백하-환인-집안-단동-대련.여순-봉래-위해
->8월 16일~8월 24일(8박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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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6일, 이른 아침 6시 위해 출발~!
아이스박스에 얼음물 빵빵하게 챙겨넣고, 비상식량은 기본, 커피는 필수, 컵라면은 당근이 넣고 출발~!
동영의 항하를 건너, 천진을 돌아, 당산을 거쳐 1차 목적지 칭황도시 산해관입성(오후 3시)
시간 관계상 천하제일문과 老龙头만 보고, 고성 근처 상해가일주점에 여정을 풀었다.
산해관, 이곳부터가 만리장성의 동단기점이고, 이곳에서 동북쪽으로는 고조선,고구려,발해의 고토이다.
8월 17일, 아침 일찍 조식을 하고, 2차 목적지인 목단강으로 출발~!
금주를 지날즈음 요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세민이도 울고갔다던 요하와 요택이 바로 여기구나~!
요동성과 안시성을 차례로 지나, 흑룡강성에 다다를즈음 멀리 검은 구름이 마치 흑룡처럼 꿈틀거리더니,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와 같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런 비는 머리털나고 처음 맞아본다... 그렇게
3시간여 비 속을 뚫고 흑룡강성에 도착하니, 구름이 걷이고 무지개가 길을 열어준다.
멀리 송화강이 유리빛 강물에 수놓은 한폭의 수목화 처럼 아른거린다. 하백 할아버지와 유화부인이 나올것만 같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밤 10시. 2차 목적지 목단강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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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8일, 조식을 하고 목단강 근처 해림 호림원으로 이동.
말이 호림원이지, 이건 뭐 호랑이 도살장 분위기다. 철창에 갖힌 호랑이가 처음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해림 산시촌에 있는 김좌진 장군 자택을 방문했다.
가는 도중 넓게 펼쳐진 구릉지가 푸른 녹초들과 더불어 장관을 이룬다. 방목 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그렇게 한시간을 달려 청산리 전투의 지휘자. 종로 김두한의 아버지. 독립운동 사령관 김좌진 장군 자택에 도착.
건물 내부에는 방앗간(정미소)과 집무실(회의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있고, 문지방에는 단군상이 걸려 있다.
전시실에는 장군의 손녀인 김을동.송일국 모녀도 다녀가고, 국회의원님들께서도 다녀가신 사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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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이젠 돈화로 발길을 옮긴다. 늦은 저녁에 당도하여 여정을 풀고
다음날 아침.
8월 20일,
발해 대조영의 제 1 도읍지 동모산으로 간다.
사진으로만 보던 동모산과 정상에서 보는 동모산은 전혀 다른 모습니다. 언듯 보기엔 동산에 불과하지만,
정상에서 보면, 넒은 구릉지에 사면이 훤하게 보이고, 멀이서 오는 적의 동태를 잘 살필수가 있으며,
주변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자가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는 안성 맞춤인것이다. 정상에는 신기하게도 우물이 있다.
동모산 아래에는 강을 끼고, 집단 주거 지역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음은 육정산의 정혜공주묘를 찾아 나섰다.
육정산 내부는 철창으로 막혀있어 일반 관광객은 출입을 할 수 가없다. 중국 정부의 꿍꿍이가 궁금하다.
돈화를 뒤로 하고, 이도백하를 지나 주몽왕자의 기억을 찾아 환인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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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졸본성(환인)에 도착
8월 21일, 고구려의 제 1도읍지 환인을 둘러 보았다.
먼저 하고성지를 찾았다.
골목을 들어서니, 어디선가 오이.마리.협보가 형님 하고 나타날것만 같았다.
하고성지 초입 돌담옆에 처박혀? 있는 하고성지 비석의 모습의 현재 우리 역사의 모습이 아닐까?
고성의 옛터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어, 형태를 알아볼수가없으며, 바로옆에 해자의 흔적으로 보이는 혼강이 흐른다.
발길을 돌려, 멀리 보이는 졸본성(오녀산성)으로 향했다.
대머리 독수리 처럼 생긴 이 산성은 정말 천예의 요세중에 요세가 아닐까?
돈화의 동모산보다 더한 철옹성이다. 주변이 훤히 보이고, 삼면은 혼강이 감싸고 있어 쉽게 공략할수없으며,
지금은 공사중으로 정상까지 2차선 도로를 증설 중으로 평소 20분이면 오를길을 1시간여를 돌아갔다.
18판으로 오르는 동안 기암절벽이 산성을 감싸고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환인 시내에 상고성지.하고성지 모습은 아늑하기만 하다.
※18판: 산성 정상에 오르는 지그재그 형식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정상 아래 가파른 부분부터 평평한 돌로 다지어서
말이 오르락 내리락 할 수있게 만들어진 길이다. 지금도 그 모습은 보존되어있다.
정상에는 소천지(우물)가 있고 궁궐터와 병장기를 보관하고 연습하던 연무장, 창고, 주거공간이 확보되어있다.
이젠 국내성(집안)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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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국내성(집안)에 도착
8월 22일, 국내성(집안)을 둘러 보았다.
시내는 몰라보게 많이 달라져 있었다. 호텔과 상가들이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고, 한국식 음식점도 곳곳에 눈에 뛴다.
먼저, 환도산성으로 향했다.
환도산성 정문은 성곽 보수 공사중이다.
성곽에 카메라를 들이데니, 관계자가 찍지 말란다. 날이 더워 계울물에 세수좀 하려고하니 물도 만지지 말란다. 지미~!
일단 환도 산성쪽으로 발걸음을 제촉한다. 아니 근게 이게 뭔가?? 주변에는 온통 풀밭이이고 옥수수.땅콩 밭이다...
※풀숲에 뱀 조심: 올라가면서 뱀 3마리 봄(살모사. 꽃뱀, 독사)
어떻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만약 진시황릉이라면 이렇게 관리 할까? 그래놓고 무슨 A등급 보물이란 말인가?
아쉬운 마음에 환도산성을 뒤로하고 귀족묘분을 보고, 국내성으로 이동...
저 멀리서 광개토태왕비가 시야에 들어온다.
감회가 새롭구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 비를 볼때마다 가슴이 뛴다.
마치 백두산을 옮겨 놓은듯한 천금같은 무게와 한민족의 모든것을 집체 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태왕릉을 돌아, 신전(장군총)으로 이동...
예전에는 신전(장군총)에 오를수있게 계단이 있었는데, 지금은 붕괴 우려로 출입을 금 하고있다.(진작에 그랬어야지!)
세월의 풍화를 못 이기는것인지? 기차길 옆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있다. 안타깝다...
저녁에는 묘향산 북한 음식점에 들러 삼계탕으로 몸 보신하고, 평양 소주 한잔(진로보다 순함)
북한 복무원들의 가락을 듣는네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참네~ 빨리 통일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아침
8월 23일, 동북 공정의 모든것을 집약 해 놓은 집안 박물관을 찾았다.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정말 열불이나서 더는 못 들어 주겠다..... 사진촬영은 당연히 안된다.
최근에 발견된, 고구려 비석도 전시되어있었다. 얼마나 심오하게 연구를 했는지? 표면이 맨들맨들 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압록강을 돌아 단동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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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의 호산산성을 돌아, 대련 여순으로 이동...
8월 24일, 마지막날.
독립열사들이 한이 맺힌 여순감옥으로 향했다.
구조는 한국의 서대문형무소를 연상 시킨다...
안중근.신채호.이회영 독립 열사께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존경하고, 경애하는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것이 아닌가?
비록, 조국이 남.북으로 분단되어있지만, 하루하루를 헛되이 살지 말아야 겠다.
여정은 이제 마무리에 이르러,
발해만의 온기를 품에 안고, 오후 4시 여순에서 배를 타고 봉래로 향한다.
밤 이라서 장산군도의 모습을 보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 이다. 밤 10시 봉래에 도착하여 차를 내리고, 위해로 이동...
11시 30분 내가 사는 산동성 위해에 도착...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됐다.
만감이 교차한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않는다.
고구려의 역사찾아서, 위해를 출발하여 육로를 따라 동북으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내려왔다.
수나라의 수양제와 당나라의 이세민이 고구려를 치러 자주 이동하던 지역들이다.
신라의 김춘추가가 당나라와 합세해서 백제를 멸하지만 않았더라도, 고구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이성계가 무엇이 두려워? 위화도에서 회군을 했는가? 500여년 동안 중원땅에 사대하고 조공하고......
누구를 탓 하여도, 이미 고토는 중국에 손에 있다.
우리의 역사는 동북 곳곳에 민가의 촌락에 부뚜막에서부터 돌담에서, 빨래판에 이르기 까지 널리 분포되어있다.
중국을 원망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를 진행하고있는가?
남들이 다 가져가니까? 그거 우리 껀데? 하고 때쓰는 어린 아이의 모습처럼 연약하기 그지없다. 반성해야 한다.
통일은 미루어서는 아니되는것이다.
10년 아니 20년후에 완벽한 통일의 준비를 하고, 완벽한 통일이 될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북 모두가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원하고 바라고 행동할때 이루어지는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 필수 교과항목에 역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찾아 동북으로 떠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야 한다. 동북으로 가야한다. 가더라도 조금은 알고 가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것을 찾으려 한다.
고구려, 역사를 찾아서.... 다음 행선지는 평양 이었으면 한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좋은여행입니다
아주 대댄하십니다그 용기 부럽네요 저도 해보고싶어요
감사히~~~~읽었습니다.
오....가보고싶어요
의미있는 행복한 가족 여행 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