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야장천
울어대는 매미✨️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각이 고요한 새벽, 소나기 한 줄금하고 지나가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숲에서 우는 매미 소리는 생뚱맞게 들린다. 내가 매미를 깨운 건지 비가 매미를 깨운 것인지, 매미가 나를 깨운 건지 종잡을 수 없다. 어쨌든 매미 소리는 자연의 소리로 승화되어 새벽 기운을 북돋우는 기상나팔 소리처럼 들린다. 오늘 하루도 무덥고 무더운 날씨가 되겠지?
이규보의 방선부(放蟬賦)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매미가 거미그물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기에 이를 풀어 주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거미와 매미는 똑 같은 작은 벌레인데 매미는 살려주고 거미는 굶주리게 하는가하고 빈정댄 데 대한 변명으로 쓴 글이다.
‘거미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매미는 바탕이 맑다. 배부르고자 하는 욕심은 끝이 없는데 이슬만 먹는 매미가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 보이지 않는 가는 줄로 속임수를 써 남의 살을 먹는 욕심 많은 더러운 놈이 맑은 놈을 해치니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손가. 하면서 매미에게 당부하기를 높은 나무 맑은 그늘에서 고고히 살되 해만 지면 울기를 멎어 거미란 놈이 알고 흉계를 꾸밀 수 없게 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매미는 이슬만 먹고 깨끗이 살며 해가 지면 울음을 멎어 음흉한 계책에 말려들지 않기에 선비의 기상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옛날에 벼슬아치들이 양쪽에 매미날개를 단 관을 쓰고 집무했음은 바로 이 같은 청빈고고한 매미 정신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미의 긍정적 이미지는 미국에서도 유효하다. 이민 초기에 프랭클린이 ‘매미정신 없이 미국에 뿌리 내릴 수 없다’며 새벽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고 해가 지면 일찍 잠에 드는 근로정신을 매미 정신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솝이야기에서도 여우가 음흉한 마음을 품고 매미 우는 소리가 아름답다고 극찬해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해서 지조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릴 적 바람이 솔솔 부는 여름 날 원두막에서 매미 소리 들으며 낮잠 한 숨 자는 것이 방학 때 즐기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매미 소리에 실려 오는 바람은 목감기의 주범인 에어컨보다 몇 배는 시원하고 건강에도 좋았다. 여름에 땀을 식히기 위해 나무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면 매미 한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불러 주었다. 재미있는 건 전방 군 복무할 때 술집에서 미소와 애교를 파는 여성을 매미라 불렀다는 것이다. 매미처럼 간드러지게 부르는 노래 가락으로 흥을 돋아 어수룩한 군인들을 취하게 만들어 술 매상을 올리는 일등공신이었다.
매미의 이러한 이미지와 달리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매미가 이슬만 먹고 청결과 청빈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들의 욕심일 뿐이다. 매미는 가로등에 몰려드는 하루살이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세상이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물질만능주의에 취해 비틀거리는데 매미라고 미물로 이슬만 먹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주일 울자고 7년을 땅속에 묻혀 살아야 하는 운명에 대해 누가 위로하고 보상해줄 것인가? 세상이 쾌락으로 취해 있는데 매미도 자신만의 자유를 즐길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 아닌가?
우기가 끝나면 곤충은 힘을 쓴다. 장마가 끝나자 매미의 개체수가 늘고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아마도 지금이 1년 중 매미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정을 넘어서고 새벽이고 무엇이 한스러운지 고요함을 깨고 열대야의 옅은 잠을 깨우고 새벽에 늦잠 자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한다. 신망 받던 매미가 갑자기 귀찮은 존재로 미운털 박히는 현실이 씁쓸하다. 곤충의 생리마저도 바꾸어놓는 이상 기후변화와 문명의 진화는 인간이 만든 자충수로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