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양사 게시판에 왕자지... 라는 무시무시한 포스의 성명을 가진 분이나 100갑자의 내공을 가지신 소드마스터 척 에 관한 글들이 올라오길래 한번 올려봅니다 ㅡ.ㅡ ;;;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고려 최강의 전사, 척준경
베르세르크의 가츠나 삼국지의 주태와 감녕을 합쳐놓은 듯한 인물로 단일무력으로 치면 고려 최강으로 꼽히는 사람이 척준경입니다.
그는 황해도 출신으로 아버지는 곡산의 가난한 향리였습니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으려면 학문을 닦고 행정능력을 익혀야 했지만 그는 문보단 무술연마를 더 좋아했습니다. 무과도 따로 없던 고려시대에 가난한 집안에서 무(武)에 뜻을 두다보니 무뢰배들과 곧잘 어울리기 일쑤였고 결국 떠돌이로 전락합니다.
이리저리 흘러다니던 척준경은 경주에서 고려11대 문종의 셋째아들 계림공 왕희의 집에 종자로 들어갔습니다. 이때의 인연으로 왕희가 몸이 약했던 14대 헌종을 대신에 숙종으로 즉위하자 그는 군기를 담당하는 추밀원의 말단관리로 임명되어 시설점검, 행사준비같은 잡일을 하며 보냈습니다.
1104년, 여진족이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자 고려 조정은 문하시중평장사 임간을보내 대비하게 했는데 이때 척준경도 따라 나섰습니다. 그해 2월 여진족이 정주성으로 침해오자 임간은 훈련이 부족한 병사들로 적을 추격했다 여진족의 역공으로 참패했습니다.
고려군은 간신히 퇴각했지만 여진족과 뒤엉키는 바람에 성문도 제대로 닫지 못하고 결국 정주성을 내주고 남쪽에 있는 선덕관으로 퇴각했습니다. 그러나 선덕관앞에 도착해서도 여진족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해 성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척준경이 나와 자신이 나가 싸울테니 병기와 중갑기마 한필을 달라고 합니다. 상황이 워낙 다급했던 터라 임간은 척준경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곧장 전쟁터로 뛰어든 척준경은 단숨에 적장을 살해하고 병사 2명을 구출해냈습니다. 지휘관을 잃은 여진족이 잠깐 물러서자 간신히 군사를 수습해 돌아오는데 여진기병 100여명이 추격해오자 척준경이 다시 나서 동료와 함께 적장 2명을 사살해 고려군은 무사히 퇴각할수 있었습니다.
이 전투로 말단무장 척준경은 일약 전쟁영웅으로 부상입니다.
임간의 패전소식을 들은 조정에선 다시 윤관등을 파견했으나 역시 패전을 면치 못합니다. 돌아온 윤관은 패배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기병 신기군, 보병 신보군, 승병 항마군 총원 17만 8천의 특수부대 별무반을 창설됩니다.
여진정벌 계획은 1107년에 대원수 윤관, 부원수 오연총의 지휘아래 막이 올랐습니다. 이때 척준경은 윤관의 신임을 얻어 기병부대 지휘관으로 참전합니다.
본격적인 개전에 앞서 윤관은 당시 여진 부락을 통일하느라 정신이 없던 완안부에 화친을 제의하고 포로로 잡은 여진족들과 친고려파 여진족들을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완안부의 지도자 우야소는 크게 기뻐했고 고위 귀족을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작전이 먹히자 윤관은 인근 여진족 지도자 400여명을 초청해 반고려파 여진 지도자 석방 기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물론 이 잔치는 작전이었고 참석한 반 고려파 여진족 지도자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고 빠져나온 이들도 척준경등 매복군에 걸려 전멸.
여진족이 지도자들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가운데에 고려군은 손쉽게 정평성을 수복하고 북진하여 보음성을 점령하고 함흥부근의 석성(石城)을 공격했는데 여기서 여진족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날이 저물자 윤관은 척준경을 불러
"날이 저물면 위급해진다. 장군 이관진과 협력하여 성을 공략하라." 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대군이 달려들어 함락시키지 못한 성, 니가 함락시켜라.라는 뜻입니다. 여느 장수라면 "네가 돈키호테요! 싸우다 죽으란 말이잖아~" 주저할만도 한데 이 제노사이더는 "예" 하고는 혼자 성으로 돌격했습니다.
손에 방패하나 든 척준경이 그대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여진족 추장 2~3명을 베어버리자 적은 흐트러졌고 이틈에 윤관이 대군을 이끌고 돌격하여 적을 섬멸시켰습니다. 함흥을 손에 넣은 고려군은 계속 북진 길주와 주변 고을을 장악하고 동북 9성의 축성작업에 돌입합니다.
이때 어느정도 피해를 수습한 여진족은 대반격을 개시 1108년 1월 14일 병목이란 작은 오솔길로 여진족을 차단하기 위해 출병했던 윤관과 오연총은 여진족 수만의 기습을 받습니다. 이끌던 8천은 여진족의 치밀한 기습으로 산산조각 나버리고 윤관 주위엔 10여명의 병사들만 남는 최악의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척준경은 동생이 말리는것도 듣지않고 10명만 데리고 적진에 돌격. 윤관을 무사히 구출해내고(...) 자신은 미끼가 되어 엄호했습니다. 그리고 척준경이 분전하는사이 최홍정과 이관진이 이끄는 지원군이 도착하여 여진족은 도주하고 고려군은 추격하여 36급을 베었습니다. 윤관은 크게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를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1월 26일, 여진족 2만명이 영주성을 공격해왔습니다. 병력이 절반정도 밖에 안되는 고려군 지휘부는 농성전을 결의했으나 척준경은 혼자 반대하고 결사대(100명 이라던가?)를 조직해 2만명에 돌격 한바탕 헤집고 19급을 베었습니다. 윤관과 지휘부는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절을 했습니다.
평북 회령에서 도독부로 향하던 권지승선 왕자지 휘하 군사들이 여진족의 기습에 크게 패하고 지휘관 왕자지는 말까지 빼앗기자 척준경이 구원을 와 여진적을 패퇴시키고 끝까지 추격하여 중갑마 한필을 빼앗아 왔습니다.
2월 11일 웅주성이 여진족 수만명에게 포위당했습니다. 구원군이 오지 않자 척준경은 밤중에 밧줄타고 성벽을 내려와 100km가 넘는 적진을 주파하여 정평에서 구원부대를 이끌고 가로막는 적을 모조리 격파하면서 웅주성까지 진격, 그대로 성으로 가지않고 길주에 주둔하던 여진족 본대를 박살냈습니다. 웅주성 사람들은 척준경을 보자 울면서 환영했습니다.
이후에도 소규모 게릴라 전술로 대응하는 여진족에 맞서 혁혁한 전공를 세웁니다.
그러다 1109년 9성의 환원이 결정되어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후 척준경은 생애는 실로 불행했습니다. 싸움터에선 무적이었지만 정치가가 되기엔 식견도 떨어지고 순박했던 그는 인종이 즉위하며 최고 권력자가 된 이자겸과 친하게 지내다 이자겸과 인종사이에 끼어 아들도 동생도 잃고 여래저래 이용만 당하다 이자겸을 축출한후 토사구팽 당합니다.
그때문에 그 빛나는 전공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도 안나오고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못했습니
다.
... 대략 무시무시 하달까요.. 근접무적 척준경 사마
1월 26일, 여진족 2만명이 영주성을 공격해왔습니다. 병력이 절반정도 밖에 안되는 고려군 지휘부는 농성전을 결의했으나 척준경은 혼자 반대하고 결사대(100명 이라던가?)를 조직해 2만명에 돌격 한바탕 헤집고 19급을 베었습니다. 윤관과 지휘부는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절을 했습니다.
여기는 약간 틀린 부분이 있네요.. 제가 알기로는 척준경이 결사대 12명과 함께 성 밖으로 나아가자 여진족도 결사대를 조직하여 내보냈고 척준경사마의 결사대가 19명을 베었다고 합니다.. 물론 결사대는 사망자수0명...
참 개인의 무력에 대해서 여포나 장비 관우 뭐 이런 사람들 나올 때마다 뻥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사람 보니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ㅡ.ㅡ
조금 뱀다리를 달자면 이자겸이 난을 일으킬 당시 궁궐에 방화책임을 소드마스터 척에게 뒤집어 씌웠고, 이 일로 악감정을 품은 소드마스터 척을 살살 긁어서 척으로 이자겸 뒷통수를 때리게 만들죠. 이자겸은 이후 유배지 영광에서 죽지만 소드마스터 척또한 역적으로 몰려서 팽당해 버립니다.
첫댓글 ... 인간.. 이죠 ?? 혹은 무신(武神) 은 아닐런지. 허허;
고려에도 일기당천이 있었는가.....;;
인용된 책이나 출처가 기재되어있다면 꼭 사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쉽군요
척준경에대한 내용만 있는 건 아니지만 무지 옛날 책인 '위대한 한국이'이라는 책에 척준경에 관한 내용이 나와있기도 하더군요.. 그 안에도 상당히 잘 나와 있는 편인데 구하기는 힘들거에요... 저희 학교 도서관에서 봤었는데 찾게되면 그 부분만 잘라서 올려 드릴게요..
사실이라면 전 세계어디에 내놔도 찾아보기 힘든 괴물이로군요. 혼자서 300 찍어도 될듯
참 불행했죠. 지금처럼 정치와 군이 분리되었다면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였으니... 솔직히 척준경에 대해서는 윤관의 여진정벌에서 공을 세웠고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처형됬다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 뱀다리를 달자면 이자겸이 난을 일으킬 당시 궁궐에 방화책임을 소드마스터 척에게 뒤집어 씌웠고, 이 일로 악감정을 품은 소드마스터 척을 살살 긁어서 척으로 이자겸 뒷통수를 때리게 만들죠. 이자겸은 이후 유배지 영광에서 죽지만 소드마스터 척또한 역적으로 몰려서 팽당해 버립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어떤 계기로 알게 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알겠죠.
위 글에 틀린 내용이 있다는 뜻인가요? 틀린 내용이 있다면 좀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요. 학교에서 척준경에 대해 배울때 제가 쓴 글처럼 배운다는 말 이었습니다.
한창재밌게보다가 왕자x를보고 크게 웃은건 나혼자인가 -ㅇ-;;
차라리 항우처럼 죽었다면..
제노사이더(...말이 필요없군)
이분과 그 누구냐.. 조선시대 검풍으로 적함선을 침몰시켰다는 그분이 붙는다면..ㄷㄷㄷ
김억추야사라고 '철쇄'아를 한칼에 휘두르면서 왜선 수십척을 한방에 날리는 그분이시죠(......) 큰 용력으로 철쇄를 깔고 칼을 휘두르니 왜선 수십척이 두두둑(......)
ㅎㅎㅎㅎㅎ
이누야샤 ㄷㄷ
척사마 -철퇴 이의방- 도끼사마 이의민 계보인가요 ㅎㄷㄷㄷ
Jedi
그러니까 소드마스터 척은 그의 친우 왕자지장군의 출신+경력+이름으로 제련(?)된 특수 채음보양술의 뽀쓰로 소드마스터가 된게 분명하다니께요?(......)
소드마스터 척+왕자지장군 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고려시대 때 한반도가 다 고려 땅 안 되었는 지 의아할 뿐입니다 -_-ㅋ
그랜드소드마스터 척(...) 고려시대 인물들을 하나하나 보면 참 쩌는사람이 많아요(...)
이의민은 의종을 척추를 부러뜨려 죽였다지요.. 참 터프하신분..
사람의 척추를 부러트리는게 인간의 악력으로 가능한걸까... ㅡ.ㅡ
프로레슬러 ㅎㅎ
적장중에 왕자지라는놈이이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