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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641) - 2018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 참가기(完)
1. 얀코프스키 반도를 종단한 트레킹
7월 11일(수), 새벽 4시에 잠이 깨 혹시 별을 볼 수 있을까 하며 바닷가로 나갔다. 짙은 안개로 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파도는 고요, 정적이 감도는 해안에 갑자기 불빛이 다가온다. 휴양소를 지키는 경비원의 순찰, 손인사로 서로를 확인한다.
오전 9시, 2일째 걷기는 200미터 안팎 높이의 언덕이 종횡으로 연결된 얀코프스키 반도의 능선을 종주하는 트레킹이다. 참가자는 60여명, 9시경에 모여 준비체조를 한 후 이내 출발이다. 마을을 벗어나 곧바로 비탈길, 가파른 언덕을 힘들게 오르면 또 다른 언덕이 연거푸 이어지는 난코스에 초장부터 숨이 찬다. 한 시간여 만에 오른 봉우리가 최고봉인가 했더니 잠시 내리막이다가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두 시간쯤 걸은 후 휴식, 후미가 도착하기 까지 꽤 오래 기다린다. 물과 간식을 들며 숨고르기, 11시 반경 240미터의 최고봉을 지난 갈림길에서 10km와 20km 걷기 팀이 나뉜다. 대부분이 20km 걷기를 택한다.
힘들게 첫봉우리에 올라 한숨 돌리다
최고봉과 같은 높이의 언덕을 하나 더 오르니 내리막길, 눈 아래 호수를 낀 평지가 나타나자 오르막이 끝났나 싶어 긴장이 풀린다. 가파른 내리막길의 잡초가 무성하여 풀 섶을 조심스럽게 헤쳐가다 엉덩방아를 찧기도. 너무 일찍 좋아하였나, 잘 내려가던 현지 안내원이 갑자기 주춤하며 길을 잃었다. 능선 따라 가지런하던 소로가 어느 틈엔가 길인지 풀밭인지 구별이 안 되더니 길을 놓쳤나보다. 풀숲을 헤치고 가까스로 평지 가까운 곳에 이르니 철조망이 빙 둘러 쳐 있다. 2km 가까이 철조망 옆을 헤쳐 나갔으나 출구는 묘연, 스마트폰의 위치정보를 확인하며 다시 언덕을 오른다.
가까운 언덕에 오르니 그동안 안개에 가려 좁았던 시야가 터지며 방향감각이 잡힌다. 길을 잃어 헤매던 산등성이는 잡초와 나무숲으로 시계가 좁았으나 반대편 산등성이는 골프코스처럼 가지런한 풀숲, 안내원이 올바른 행로를 찾느라 애쓰는 동안 풀밭에 앉아 호수와 초원이 어우러진 풍광을 감상하며 간식으로 기운을 돋운다. 길 찾으러 헤매느라 한 시간여 허비한 셈, 도착지점 까지는 8km 남짓 남았는데 어느새 오후 1시 반이다. 내리막에 잡초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언덕아래쪽에 이르니 주변이 온통 웃자란 고사리 밭, 풀숲을 헤치는 동안 약쑥과 민들레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눈 밝은 이들은 더덕을 발견하여 한두 뿌리 캐기도 하였다.
길 잃어 해맨 후 능선에 올라 바라본 풍광
내리막에서 낮은 언덕을 넘어 한참 걸으니 차량이 지날만한 흙길이 나타난다. 그길 따라 한 시간 여 걸으니 휴양소가 관할하는 경비초소에 이른다. 두 병의 물이 바닥나 목마르던 차, 초소에서 탄산수 한 모금 얻어 마시며 목을 축였다. 잠시 후 전날 지났던 마을이 보이고 내쳐 걸어 도착지에 이르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이성남 회원이 카톡방에 올린 공식기록, 총소요시간 7시간 20분에 20.38km. 스마트폰의 만보기는 38,000보가 찍혔다. 아마추어들에겐 버거운 힘든 난코스를 무사히 종주하여 다행이다.
이내 식당으로 향하여 늦은 점심을 들고나니 오후 5시가 가깝다. 집행부가 알리는 이후 일정은 6시에 콘서트, 7시에 박물관 행, 8시에 저녁식사로 쉴 새가 없다.
6시부터의 콘서트는 식당 앞마당에서 전속 악사의 관악 연주, 이어서 10여분 거리의 마을 언덕바지에 있는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중후한 인품의 촌장을 겸한 레오니드 박물관장이 일행을 맞아 마을의 역사와 생활상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먼저 안내한 곳은 박물관 아래쪽에 있는 돌무덤형태의 저장고, 경주 석빙고를 닮은 냉장시설인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유물이다. 겨울철에 얼어붙은 바다의 얼음을 채취하여 여름철에도 사용하였다는 내력이 우리의 전래풍습과 비슷하다. 이어서 마을의 역사 소개, 초창기에 이 마을을 세운 3인의 역사적 인물이 있다.
첫 번째는 핀란드 태생의 항해사였던 겤(1836~1904), 그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긴 항로를 따라 19세기 중엽에 이곳에 정착하였고 지금도 그 후손이 10여명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박물관은 겤이 살았던 집을 복원하였고 레오니드 씨는 그 후손.
두 번째는 폴란드 태생의 얀코프스키(1848~1912), 당시 러시아의 영토였던 폴란드의 반란세력으로 찍혀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올랐다가 겤과 연결되어 이곳에 와 사업가로 성공하였고 그 이름이 반도의 명칭이 되었다. 이곳에 사슴목장을 개발.
세 번째는 율 부린너의 조부인 스위스 태생 베린네르(1849~1920), 이 마을이 관광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공적이 크다. 율 부린너가 이곳을 찾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한다. 마을의 주민은 1200명, 예전에는 사슴 기르는 일이 주업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휴양소를 찾는 관광객을 상대하는 일에 종사한다는 촌장의 설명이다.
박물관에 우리에게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고려인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신문기사, 갓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의 단체사진, 러시아혁명당시 공격대원으로 활약한 것을 증명하는 한글증서 등.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농사지을 땅이 별로 없는 이곳에 고려인들이 어떻게 정착하였을까. 박물관에 진열된 얀코프스키 반도의 지형도를 통하여 우리가 종주했던 언덕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음도 유익한 소득이었다. 단순한 걷기 이상의 내실을 안긴 박물관 방문을 마련한 주최 측에 감사한다.
낯선 땅에 뿌리 내린 고려인의 발자취
저녁식사 메뉴는 빵은 기본이고 밥과 김치를 곁들인 게맛살과 연어요리, 아침식사는 밥과 김치에 성경채와 두부조림 등 매 끼니 한국인과 일본인의 식성에 맞게 조리해주는 주방서비스가 고맙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분주하게 보낸 하루가 알차다. 오늘로 걷기 일정 마무리, 힘들게 걸었으니 푹 쉬고 돌아갈 채비 잘 하자.
2. 뜻밖의 우환, 에따 러시아
7월 12일(목), 새벽 4시에 바닷가에 나갈 때는 흐리더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가방을 챙기고 8시에 아침식사, 일본인들 식탁에 몇 좌석이 비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밤새 우환이 생겼다. 전날 20km 트레킹을 완주한 오가미 지혜코 씨가 갑작스럽게 닥친 복통으로 진통, 마을의 의사가 왕진한 결과 구급차를 불러 큰 병원에 가보라는 판단이다. 큰 병원의 진단은 장 폐색, 수술을 요하며 일주일 입원치료 하라는 통보다. 간병을 위하여 한 사람이 남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출발이다. 뜻밖의 우환을 당한 오가미 씨의 쾌차와 일행 모두의 강건하기를 빈다.
9시 반에 공항 행 전용버스에 오르니 휴양소장이 환송인사를 한다. ‘그간 즐거운 일정 보내셨으리라 여깁니다. 또 오십시오.’ 일주일간 행사를 주관하고 안내한 엘리나 씨도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 그간의 노고가 고맙다. 한 여성은 캄차카로 오라는 팸플릿으로 인사를 가름한다.
9시 40분에 출발한 버스는 울퉁불퉁한 시골 길을 50여분 달려 포장도로에 접어든다. 비가 계속 내려 창밖의 경관이 흐릿한 게 흠, 버스는 한 시간여 달려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마트에 들러 초콜릿을 몇 개 사는 것으로 러시아 화폐를 사용, 화장실 이용과 물 사는 것 외에는 돈 쓸 일이 별로 없다.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는 공항까지 논스톱인데도 도착시간이 예정시간보다 늦어질 듯, 일행들이 약간 걱정하는 표정이다. 기사에게 언제쯤 도착하느냐 물으니 20여분 걸린다는 대답, 20분이 지나도 한참 더 가야 할 상황이다. 이에 대한 기사의 반응은 ‘에따 러시아’(‘이것이 러시아다’라는 뜻으로 다급한 형편에도 느긋한 기질을 빗댄 표현)다. 서두름이 능사는 아닐 터, 로마에 가면 로마의 풍습을 따라야 함을 일깨는 사례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20분, 곧바로 탑승수속을 밟는다. 일행이 타는 비행기는 오후 3시 10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 나는 두 시간 늦게 출발하는 제주항공이다. 일행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탑승수속까지의 대기시간에 노트북을 펼치니 한 시간여가 금방 지난다. 오후 3시에 탑승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서니 탁자 있는 소파가 글 정리에 안성맞춤이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기내잡지(월간 JOIN ENJOY 7월호)를 펼치니 때에 맞게 ‘즐거움이 넘치는 블라디보스토크 산책’이라는 특집이 실려 있다. 걸으며 만나는 랜드마크, 근사한 건축물과 전망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꿈, 현지인 추천 맛집 등 미진한 부분을 채워주는 소중한 보충자료다. 그중 몇 가지를 덧붙인다.
기내잡지의 블라디보스토크 특집
‘러시아어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 도시를 정복하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시내와 섬, 철길, 바닷길을 두루 섭렵하라.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유럽의 고고한 정취를 마주할 때마다 감탄이 새어나온다. ‘러시아의 샌프란시스코‘라 불리는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도보 여행자에게 최적화된 도시다. 지도 한 장 들고 걸어 다녀도 될 만큼 시내 중심가에 볼거리가 모여 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낳은 할리우드 배우로 율 브리너(Yul Brynner, 1920년 7월 11일 생)를 빼놓을 수 없다. 연해주 국립 미술관 앞 언덕엔 민머리에 이국적인 외모의 율 브리너 동상이 카리스마 넘치는 포즈로 우뚝 서 있다. 동상 뒤편엔 율 브리너의 생가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조망하려면 독수리 전망대(214미터)가 필수 코스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환상적이다. 전망대까지는 빨간색 케이블카 푸니큘료르(Funikuler)를 타면 된다. 전망대 뒤편으로는 러시아어의 모체가 된 키릴문자를 만든 수도사 키릴로스(Kyrillos)와 그의 형 메토디우스(Methodios)의 동상이 서 있다.(손명곤 부회장이 이를 가리키며 문자를 만든 기록은 러시아 문자와 한글에만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포크롭스키 정교회 사원도 건축적으로 볼만하다. 지붕엔 양파같이 생긴 5개의 쿠폴(Kupol)이 햇살에 반짝이는데 , 타오르는 촛불을 형상화했다. 촛불은 나 지신을 불태워 죄 사함을 받는다는 뜻.(선상규 회장이 이곳이 명소라고 알려주었는데 휴양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 건물을 살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바다 향 가득한 해산물은 물론 동서양의 음식문화를 두루 경험할 수 있다. 킹크랩 맛집으로 소문난 아시안 레스토랑, 육즙 가득한 한칼리를 선보이는 조지아 음식점 등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오후 5시 반에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저녁 7시(한국시간)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인천공항에서 켠 스마트폰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의 감사메시지가 여럿 뜬다. 그중 몇 개를 소개한다. ‘선상규 회장, 함께 동행 하여 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KAPA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심 가져 주시고 성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박철기 님, 이번 트레킹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 뵙겠습니다. 이정자 님,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카가 보낸 메시지, ‘걷기 축제 또 가셨군요~^^ 블라디보스토크는 날씨가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한국은 계속되는 장마로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몸 건강히 잘 마치고 오세요~~’
공항에서 광주행 버스에 올라 집에 돌아오니 밤 12시가 지났다. 온종일 시달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에 함께한 일행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글과 사진으로 함께 한 응원자 여러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더운 여름 건강하십시오.
블라디보스토크 걷기 축제 출발에 앞서
첫댓글 앞서가면서 후미를 좇아가는 일행을 기다려 준다는게 쉽지 않은 일...참 좋은 멤버들을 두셨네요. 길을잃고 풀섶을 헤메셨다는 내용을 읽으며 ㅋㅋ오, 웬지 웃음보가 터져버림요.ㅋㅋ대박^^
산넘어 산을 보면 하산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인데ㅋㅋ승리하고 돌아오신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 열정은 어디로부터 오는 건지욥???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