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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서울의 둥근 달/ 권순진
은하수 추천 0 조회 17 18.09.29 10: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의 둥근 달/ 권순진


독에 쌀 떨어지면 라면 끓이면 되고, 속이 더부룩하면 동네 한 바퀴 돌면 되고, 발길에 차이는 깡통은 그냥 걷어차면 되고, 허리 삐끗하지 않으려면 살살 차면되고, 병원비 비싸면 안 아프면 되고, 가끔 전기 나가면 부둥켜안으면 되고, 첫날밤처럼 하든대로 하면 되고, 코피 터지면 틀어막으면 되고, 사랑이 지치면 배게 던지며 싸움 한판 하면 되고, 위로가 필요하면 함께 기도하면 되고,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서울 사는 온달 같은 큰 아이가 평강공주 같은 영희를 만났는데, 그래서 장가가고 싶어 죽겠다는데, '아나 여깄다' 서울의 비탈길 작은 연립 전세자금이라도 한 1억 턱 내놓지 못하는 아비는 은박지 씹는 기분이다. 하나님 공부한다는 녀석에게 무슨 폼 나는 일이 있겠냐만, 그래도 시비할 생각은 없다만, 대신 한때 유행했던 '되고 송'을 좀 빈정대는 투로 변주하여, 그 송을 너 마빡에다 탁 붙여주고 싶다.


하지만 세상 뜻대로 되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음을 아비는 잘 안다. 알다 뿐이랴. 뒤죽박죽 살다가 언제 이렇게 며느리 볼 나이로 늙었는지 생각하면 쭉정이 삶에 한숨만 나온다. 너도 나쁜 피를 물려받았다. 억지로 좋은 피로 바꾸려고 용쓰진 마라. 그리고 너의 사랑을 롤러코스트에 태우지는 마라. 안전빵으로 가라. 아비 불쌍하다는 핑계로 낙향 하진마라. 서울에서 뼈를 묻어라. 넓고 깊은 세계로 그윽하게 너를 인도하는 저 서울의 달, 야무지게 봐 두어라.

 

- 시집 낙타는 뛰지 않는다(학이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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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5년 전 결혼했고, 되도 않은 시를 장난처럼 쓴 것은 8년 전이다. 여기 등장하는 ‘영희’는 가명이며 지금의 며느리와는 다른 여자다. 서울에서 신학공부를 하다가 만난 그들은 졸업하자마자 자리도 잡기 전에 결혼을 도모했다. 온달 같은 아들과 같이 살아주겠다는 것만도 가상하여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아서 하라며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을 은근히 기대하는 그들에게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적었다. 외곽에 작은 아파트 하나 마련이 안 되면 변두리 전세자금이라도 1~2억 융통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담보대출까지는 안 되겠다고 못을 박았다.


내 현찰 여력은 딱 5천이었다. 지금은 어림없지만 당시 변두리 방 두 칸짜리 아주 허름한 아파트나 작은 빌라 전세가 1억 남짓이었다. 5천만 원은 상속 증여의 면세지점이기도 하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을 던져놓고 집에 와서 이런 낙서를 끼적였던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서울 생활이 아무리 궁하고 버겁더라도 서울에서 내려오면 일단은 루저라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살림집을 마련하는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인지 다른 사정이 겹쳐져서인지는 몰라도 결국 파탄을 내고 말았다. 아들은 서울 서대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잠시 일하더니만 기어이 낙향하고 말았다.


한 선배 목사가 같이 사역을 해보자는 권유가 이유라고 둘러댔으나 아무래도 다른 사정이 있어보였다. 한참동안 집을 찾지 않았고 나도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할머니만 계실 때 살짝 다녀갔고 나는 작은 아이를 통해 근황을 전해 듣는 게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만난 지금의 지혜엄마를 데려와 결혼하겠노라 알려왔고 나는 또 알아서 하라는 말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지난 번 여자와도 그랬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들의 사랑이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정갈한 영혼으로 빚어진 사랑인지는 의심스러웠다. 서로의 허물을 감싸고 꿰매면서 구현되는 사랑인지 미덥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진실로 잘 살아주기를 바랬다.


큰아이는 한동안 직장생활에도 충실했고 며느리는 대학원 공부도 마저 마쳤다. 지혜는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으며 어찌어찌 수성구에다 이주 작은 아파트 하나도 장만했다. 비록 서울의 달 아래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큰 걱정 없이 잘 살아가겠거니 했다. 하지만 3년 전 느닷없이 북아메리카로 떠나겠다는 것이다. 좋은 건수가 생긴 것인지 공부를 더 하겠다는 뜻인지는 몰라도 다시 또 미궁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온달과 마흔을 훌쩍 넘긴 평강공주는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꿍꿍이로 사는지, 지금도 후회 없이 꿈을 꾸었노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다.


살림을 파토내고 90년대 초 목동1단지의 작은 아파트를 1억 얼마에 급히 처분하고 낙향한 한심한 루저의 원조가 자식의 사랑을 헐뜯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못났다. 그 아파트가 지금 10억쯤 한다고 들었다. 그것만 지금까지 붙들고 있어도 여기 지방의 형편으로는 중산층을 넘어 부자다. 내가 아이에게 ‘서울에서 뼈를 묻어라’고 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망라되었지만 그 점도 참작되었다.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게 16년 전이다. 좀 넓다 싶지만 강이 훤히 조망되는 탓에 63평형 미분양아파트를 2억2천에 구매했다. 3년 전 처분할 때 딱 4억을 받았다.그 사이즈에 요즘의 서울 어디 같으면 40억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만족한다. 큰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면 그리 오래 살 것 같지도 않고, 지혜와 같이 쓰지 않으면 이 돈을 다 쓰고 가기도 벅찰 터이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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