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박 이일 일정을 잡고 산장 예약도 없이 취사도구만 딸랑 들고 혼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서울역에서 23시 20분 야간 열차를 타고 새벽 네시 춘향이와 이도령이 반기는 남원역에 내려 터미널로 간뒤... 아침겸해서 터미널 옆 엄마손 식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백반을 시켰는데... 여전히 반찬 여덟가지에 찌게 두가지가 나오더군요. 백반이 사천원이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을 것 같지 안은 장사를 계속 하고 계시더군요. 어머니 잘먹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터미널 앞 피씨방에 들러 시간 떼울겸 넷마블 장기를 두고는 백무동 행 버스표를 끊었는데 그만... 차가 퍼졌다더군요. 일월행 표를 끊어서 버스를 탔는데 새로 뽑은 싱싱한 버스더군요. 운전 기사 아저씨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이거 혹시 새차인가요. 예 새차에요. 다시 물었습니다. 새차는 아무 기사 한테나 주지 안지 안습니까? 아저씨가 그러더군요. 자기가 서열 네번째라고... 그러면서 몇년생이냐고 묻더군요. 칠육년 생이라니까... 자기가 면허증딴게 칠오년이라더군요. 혼자서 운전하면 심심하지 안냐고 했더니... 왜 안심심하겠냐고 심심해 죽을 지경이라더군요.
일월에서 내려 백무동행 버스를 갈아 탔습니다. 맨 뒤에 안았는데 옆에는 머리를 감고 나왔는지 물기가 채 마르지 안은 청순한 여고생이 하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앞쪽 맨 앞에는 아주머니들이 안아 있더군요. 앞쪽에서 퍼저 나오던 풋풋한 시골 사투리의 향기와 웃음소리들이 지금도 아련히 들리는군요.
산골자기를 가로질러 버스가 달리는데 옆에 안았던 여학생이 일어 나더군요. 아무리 봐도 인가라곤 찾아 볼 수가 없는 곳이었는데 버스가 서더군요. 왼쪽을 봤더니 산내중학교라는 초록빛 바탕에 흰글씨 간판이 보이더라구요. 얼핏 봐서는 여고생인줄 알았는데 여중생이더군요.
백무동 매표소에서 요금을 내고 등산 출입장부에 이름을 기입하면서 윗쪽을 봤더니 저 보다 어린 사람이 둘 있더군요. 앞쪽으로 몇장더 넘겨 봤는데 거의 다 사오십대...
안개가 자욱히낀 길을 따라 올라 가다가 지리산 온지 두번째라는 왕초보 지리산맨을 만나 이런예기 저런예기 하며 올라가다 여름 지리산의 진수 랄 수 있는 계곡옆에서 잠시 쉬면서 담배 하나를 물고는 예기를 이어갔습니다. 지리산은 어디가 좋다는 둥 겨울 지린산이 좋다는 둥 가을 지리산이 좋다는 둥
조금더 같이 올라 가다가 짊을 무겁게 지고온 그님을 앞질러 올라 갔습니다. 세명이 같이 온 팀을 지나 두명이 같이 온 팀을 지나 내려오던 아저씨들을 지나 장터목 산장에 올랏을때 시간이 얼추 열시 반경... 백무동에서 장터목까지 두시간이 걸린셈이죠. 짊도 가벼웠고 걸음도 좀 빠른 편이라 그리 걸렸나 봅니다.
취사도구장에 들어 가보니까 왠 지긋하신 아저씨 한분이 계시더라구요.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하고 제일 처음 올라 오셨겠네요 하니까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담배를 입에 물었습니다. 쪼그리고 안아 한 오분인가 그렇게 고요히... 얼마나 고요했냐하면... 파리가 날아 다니는 소리만이 들리는 정도... 아저씨가 저에게 넌지시 묻더군요. 지리산은 몇번째냐고... 열 여덟살때 처음 왔다고 하니까... 몇번 와봤냐고 묻더군요. 열뎃번 와봤다고 하니까... 아직 멀었어 그거 가지고는 지리산 새발의 피도 몰라... 하시더군요. 그 아저씨가 그러시더군요. 자기는 일년에 스물 뎃번 와본적도 있다고... 자신이 지리산을 삼십년째 타고 계신다고 하시더군요.
제석봉으로 올라 가다가 오렌지를 까먹으면서 쉬고 계시던 전주에서 오신 나이 오십되는 한분을 만났습니다. 아까전 아저씨가 일년에 스물 몇번 오셨다고 하니까... 그분이 그정도는 약과라고 하시더군요.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집이 서울인데도 지리산을 육백번정도 다니고 계신다는 분을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리산은 천번을 올라도 다 알 수 없는 산이라고 하시면서 많이 오는 게 중한게 아니라 시간 날때 부지런히 와서 맛보고 가면 그게 지리산 참 맛이라고 하시더군요. 어차피 천번을 올라도 다 알 수 없는 산 이천번을 오른다고 다 알 수 있겠어 하시면서...
그분과 함께 천왕봉에 올라 예기를 했습니다. 저의 지난 일... 일년전 오대산 상원사에 출가 하려고 갔다가 삼일 있다가 뛰쳐 나왔던일... 제 예기를 말없이 들어주시던 그분이 자신의 형이 사실은 스님이라고 하시더군요.
천왕봉에 올라 안개에 가려 구름바다를 보지 못한것은 어제가 처음 이었습니다.
내려오다가 제석봉에 다다랐을때 운좋게도 안개가 걷혀서 저 멀리 아스라하게 반야봉 봉우리가 살짝 비치더군요. 그 아저씨가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오셨는데 반야봉이 보인다며 활짝 웃으시고는 연신 셔터를 눌러 대더군요. 디카를 가져 오지 안았던 제가 그분에게 이메일 주소를 주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혹시 사진 좀 보내 주실 수 있으면 보내 주실 수 있는지... 이 메일로 보내는거 자기는 모른다고 하시고는 조금 있다가 자기 딸에게 물어 봐서 보내 주겠다고 하더군요. 혹시 그분에게서 메일이 도착 하면... 그때의 그림같던 제석봉의 고목들 사진과 구름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 반야봉의 모습을 이 곳에 링크 시켜 놓겠습니다.
다시 장터목산장으로 내려왔을 시간이 얼추 열두시 반경...
취사장에 들어서니까 처음에 만났던 지리산 왕초보맨이 밥을 짓고 있더군요. 반가운 표정으로 저에게 벌써 천왕봉 갔다오셨냐구 하시더라구요. 저도 밥을 했는데 그분의 밥이 더 빨리 되서 그분 밥을 몇 숟가락 푸다가 아차... 밖에서 도시락을 들고 기다리시고 계시는 그분의 얼굴이 스쳤습니다. 왕초보맨과 같이 먹던 밥을 들고 밖에 있는 탁자로 갔습니다. 지리산 왕초보맨 답지 안게 반찬은 푸짐하게도 싸왔더군요. 저는 딸랑 카레하고 김치만 가져 갔었거든요. 셋이서 밥을 같이 먹다 보니까 뒤 쪽에서 혼자서 외롭게 먹고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오길래 이리와서 같이 먹자고 두번이난 청했는데도 끝끝내 다먹었다며 혼자 먹더군요.
혼자서 반찬 두가지를 싸와서 셋이서 먹으면 반찬이 여섯가지가 되는 데... 뒤에서 외롭게 식사하던 청년의 모습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네요. 그 청년도 끼었으면 반찬이 여덟가지가 됬을텐데. 저는 초라하게 반찬을 싸가지고 다니지만... 그러면서도 염치를 무릅쓰고 같이 먹자고 달라 들기도 합니다. 그누가 거절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같이 먹자고 반갑게 청해오는데... 혹 속좁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부디 그런 사람은 아늑한 지리산에서 사라져 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점심을 다먹고 났을 무렵 약 한시 반경... 안개가 갑자기 짙어지면서 비를 뿌리기 시작하더군요. 누가 변덕스런 여름 지리산 아니랄까봐...
천왕봉까지 같이 갔던 분과 동행하기로 하고는 발걸음을 세석으로 옮겼습니다. 가면서 그 분이 겸손을 예기하시더군요. 겸손은 물과 같아서 물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흐르다가 막히면 고이고 고여서 막힌곳을 넘어 다시 아래로 아래로 막힘 없이 흐른다고 하시더군요.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은 어딜 가서 누구를 대해도 편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수있고 상대도 편한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처음 듣는 예기라며 말씀 너무 고맙다고 하니까 웃으시더군요. 그러면서 동양사상을 잠깐 예기 하셨는데 음과양... 사괘... 팔괘... 육십사괘... 듣기만 해서 그런지 무슨 예기인지 듣는 당시에도 말이 귓속에서 맴돌기만 할뿐... 언뜻 마음에 와닿지가 안더군요. 가물 가물 기억이 날뿐...
세석에 도착했을 무렵... 오후 세시경... 그분이 세석평전에 대해 말씀하시더군요. 세석평전을 세세한 돌이 많은 평평한 밭이라고... 그러면서 장터목은 예전에 경상도 사람과 전라도 사람이 만나서 장터를 열던 곳이 유래가 되서 장터목 산장이라고 하셨고 몇몇군데 예기를 하셨는데 기억이 잘 나질 안는 군요. 네이버나 야후나 들어가서 지리산을 클릭하면 지리산에 대한 책자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클릭해 보시구요.
한신계곡을 타고 다시 백무동으로 내려오던길... 장쾌하게 굽이치던 한신 계곡의 물소리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구분이 손짓을 하면서 웃음 짓고는 하셨고 저도 그 계곡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고...
다시 백무동에 내려 왔을 무렵... 약한... 네시반이나 다섯시경... 그분 차를 타고 전주까지 가서 전주역에서 기차를 탄 시각이 여섯시 이십분경이니까 아마도 그시간이 맞을 겁니다.
일박이일 일정을 잡고 갔지만 소중한 한분을 만나 동행하며 알게 모르게 만은 것을 배우고 왔습니다. 그분이 전주까지 차를 타고 오며 하신 말씀중에 즐기는것을 추구하는게 인생이 아니라 괴로움을 줄여나가는게 오히려 참된 인생일 수 있다던 말이 인상에 남습니다.
앞으로 지리산을 가려면 토요일 야간 열차를 타고 가서 지리산을 휙 돌아 일요일 야간 열차를 타고 오려고 합니다. 월요일 출근하려면 좀... 무리가 있을 법도 하지만... 혹... 토요일날 구례나 남원가는 야간 열차를 타고 가시는 분 있으시면... 아닙니다... 혼자가 편하고 홀가분할 것 같아... 청하지 안으렵니다.
끝으로 장대비 쏟아지는 지리산이 운치가 있다고 목숨걸고 지리산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은 삼가길 당부 드리며... 장대비 쏟아지는 여름 지리산의 계곡은 사람이 다닐 수있는 등산로를 삼켜버린 다는 걸 명심하시길 바라며... 짧은 지리산 여행 스케치를 접겠습니다.
첫댓글 고2때로 기억합니다. 장터목산장에서 저녁을 같이 먹던 얼추... 오십은 넘어 보이던 아저씨가 하신말씀... 자기가 지리산오른지 삼십년째 되는 데...
그 삼십년 동안 자신은 늙어 버렸는데 이 놈의 지리산은 늙지를 안더라고 웃으시며 하던 말...
캬~ 멋진 말씀들이 너무 많네요.
감사 감사
오늘 오후에 자전거 끌고 중랑천에 나갔었는데... 바람이 참... 씨원... 쓰원 하더군요.
나도 야간 기차타고 다닐 예정인데 혹시라도 마주칠지 모르겠네여!!!
괴로움을 줄이며 사는게 인생이란 말씀....가슴에 새겨두었네요. 나이를 먹는다는게 마냥 두려움만은 아닌듯 하여 좋습니다.좋은 말씀들...
지리는~ 언제나 좋다 잼나게 읽었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