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걱정과 희망·열정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태복음 6장 27절). 우리 중에 그 누가 근심하고 걱정함으로 자신의 삶을 한 시간이라도 더 늘릴 수가 있는가?
“근심 걱정은 하나님의 약속과 증거를 믿지 않고 망가뜨리는 죄이다. 그런데 이는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죄들보다 더 자주 범하는 죄일 것이다”<존 맥아더(John MacArthur)>. 우리는 근심 걱정을 살인이나 간음 같은 죄들과 잘 연결시키지 못하지만 근본적으로 이것들은 모두 같은 것이다. 이 죄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과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심을 의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의 시선은 보다 쉬운 것들, 잘 보이는 것들에 유혹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이면의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땀과 피를 흘려야 볼 수 있는 세상을 보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만이 값진 인생을 살수가 있다.
우리는 모순투성이인 세상사들 앞에서 걱정 근심하지 말고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아가도록 노력해야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장 11-13절).
“희망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지요. 수확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으며 이익을 거둘 희망이 없다면 상인은 장사를 하지 않습니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마틴 루터 킹(Martin L King)>.
우리 역사에 “지통재심 일모도원(至痛在心 日暮途遠)”이란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병자호란 후 청나라의 압력으로 영의정에서 물러난 백강 이경여 선생이 부여 백마강변 대재각(大哉閣) 터에서 효종대왕에게 다시 민생의 안정, 나라의 발전과 북벌계획의 추진에 관한 상소를 올리니, 효종대왕이 백강상공에게 답한 말씀으로<1957년 효종8년 5월5일 백강선생 상차문(上箚文)과 답신 에서> 이후 북벌계획을 상징하는 경구로 쓰여 왔는데, 그 뜻은 “지극한 아픔이 가슴에 남았는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아직도 멀다”라는 것으로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할 굳은 결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간절한 소망이 있는 데 길이 있었으니 두 분이 비록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후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영조·정조의 부흥시대를 열어갈 수가 있었다.
사람의 몸은 심장이 멈출 때 죽지만 사람의 영혼은 꿈과 희망을 잃을 때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며 근심 걱정할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가지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세월은 세상을 주름지게 하지만 꿈과 희망과 열정을 포기하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 있을지라도 걱정 근심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지고 계신 목적이 있음을 믿고 이를 소망하며 기도하면서 이를 위해 끝까지 힘차게 달려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은 반드시 인간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찾아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2023. 4. 2. 素淡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