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적 생활에 감명을 받은 그는
수도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클라라 수도회를 세웠다.
수도 생활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심하였으나,
오히려 동생 아녜스마저 언니 클라라를 따라 수도자가 되었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철저하게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았다.
그는 1253년에 선종하였으며, 알렉산데르 4세 교황께서 1255년에 시성하셨다.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납세를 하시는지 묻는다.
성전의 주인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하느님의 자녀들인 제자들은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시려고
베드로를 통해 성전 세를 내셨다(마태 17,22-27).
예수님 시대에 성전 세는 스무 살 이상 된 남자에 한하여
해마다 ‘두 드라크마’(스타테르 반 닢), 곧 이틀 치의 품삯을 내어야 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로마의 과세에 대해서는 분개하였지만,
성전에 바치는 세금에 대해서는 민족적인 자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전 세 납부의 여부는
유다인들의 관심거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성전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전 세를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이 없다고 하시며 성전 세를 내십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권리가 있기는 하셨지만,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하느님의 계획이 어긋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그분께 중요한 것은 ‘성전 세 납부의 여부’보다도,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하여 덜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지혜는 우리에게도 일러 주는 바가 큽니다.
많은 부부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이기려고 인격을 무시하는 말투를 보이기도 하고,
고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소한 부부 싸움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복한다고 해서 서로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의 승리가 그 가정에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듯이,
우리도 이러한 분란을 겪을 때마다 자신의 정당함을 굳이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하면서 더 큰 가치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 가운데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큰일을 하려는 사람이 가끔 사소한 일에 걸려 넘어져서
본질적인 일을 그르치는 때가 있습니다.
당시 성전 세로 바쳐야 할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예수님께서 유다인들과 부딪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문제에 부딪힐 때는
무엇이 본질이고 중심인지를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소한 것에 매달리다 보면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놓치고 맙니다.
우리 삶에서 양보할 수 없는 참되고 중요한 가치는 지켜야 하지만,
세속적인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이내 우리 삶을 지치게 하여
결국 헛된 것에 인생을 낭비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우리는 주님의 자녀답지 않게 사소한 다툼을 합니다.
사소한 다툼 때문에 그분의 큰 뜻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성전 세를 내고 안 내고는 사소한 것입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큰 뜻입니다.
사소한 다툼으로 사랑의 실천을 훼손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사소한 것은 무엇이고, 큰 뜻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