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공감하는 가운데 약간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이유는 판타지를 너무 고귀하게 생각하시는것같아서 입니다.
여기는 자신이 소설가로써 입지를 굳히는곳이 아니라, 습작의 장입니다. 만약 전자쪽이었다면 제가 끄적거린 낙서는 이미 제 소심함에 묻혔어야죠.
판타지야말로 상상의 산물이다라는것을 부정하고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누군가가 창조하고 닦아놓은 대지위에 건축물을 세웠다고 해서 그건물 자체의 평가가 나빠진다면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지요.
누구나 엘프를 등장시키고 드워프를 등장시킨다해도, 작가 자신의 펜대에 얼마든지 다른모습으로 그가치를 발휘할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판타지소설을 보는 이유는 종족과 세계관에 있을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을 바탕으로하는 사건에 굶주려 있는것뿐이랍니다.
물론 지금은 이도저도 아니것들이 많이있죠. 그러나, 그것들을 습작의 장에서 호소할일은 아니라고봅니다. 우리는 무수한 실험을 하고 있고 하면 할수록 정교해지고 깊이가 더해지는것이 이곳의 목적일테니깐요.
공감이 가는 말가운데 독자를 두려워하라는 말은 저도 몸서리칠만큼 동의합니다. 매너리즘도 아니면서 지금의 몇몇 작가들이 구성의 복사본을 편찬하는것을 보고있노라면 가끔은 그들이 자신이 쓴 소설을 보고 재미라는것을 느낄수있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자신이 독자인가운데서도 그럴진데 하물며 제3자의 독자가 보는 평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이것을 모니터가 아니라고 생각해 주셔도 좋다. 하지만 나는 이번 감평을 맡으면서 많은 글을 읽게 되었고, 그 모든 글을 읽게 되면서 느꼈던 점을 하나의 글로서 담은 것이다. 허심탄회하게 논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까페에서 글을 쓰고 계신 작가들에게 지적하는 바이다.
70년 대에 게리 가이객스와 데이브 이네슨 두 외국인의 상상에 의해 개발해 내었던 던전 앤 드래곤즈 (Dungeon & Dragons) 시스템을 기억하는가. 가상 중세 세계를 가상적으로 표현함으로서 많은 미국인들에게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게임으로도 등장하여 많은 게이머들의 밤을 새게 하였던 바로 그 TRPG 의 원조는 두 외국인에 의해서 개발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개발한 두 외국인 또한 자신의 창작의 댓가에 큰 이익을 보았겠지만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이끌어 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창작은 많은 이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발더스 게이트나 디아블로 등의 여러 컴퓨터 게임으로 다시금 회고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환타지라는 상상력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D&D는 현대의 판타지에 대한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어 버림으로서 결국 많은 이들의 상상력에 발목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즉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판타지라는 것이 결과적으로 엘프와 드워프 따위가 등장하는 그런 정형화된 장르로서 굳어져 버렸다. 아무도 톨킨 (J.R.R Tolkin) 처럼 새로운 종족에 대해 창조하는 수고를 거치려고 하지 않으며, 이미 통신소설 등을 통해 일상화되어 버린 외국 번역체 문제가 그대로 쓰여지는 등의 많은 문제가 이미 드러나 버렸다. 심지어는 자신의 소설의 특징을 가늠하는 문체 조차 아예 일기를 쓰듯 가볍게 써버리는 소설도 심심찮게 보아왔다.
물론 현재의 국내 판타지 소설 또한 그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해 왔고, 이미 프로 판타지 작가로서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정형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리고 벗어난 시도를 많이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외향적인 영광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밑에서 무수하게 자리를 잡는 판타지 소설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울 만큼이다. 결코 문체에 대한 질책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판타지라는 공식을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상상이라는 것이 아마추어 작가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비록 아직까지도 환타지라는 정의에 대해 명확하게 그 잣대를 댈 수 있는 기준이란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환타지라는 관점을 영어사전에서만 찾아보더라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fantasy [Gk 환상의 뜻에서] n.
1 U,C (터무니 없는) 상상, 공상, 환상, 환각(->fancy); 변덕(whim)
2 공상 문학 작품; 心 백일몽; 樂 환상곡(fantasia)
과연 엘프와 드워프가 등장하는 것이 더이상 터무니 없는 상상이 될 수 있을 까. 그것은 이미 누군가가 저질렀던 일이고, 또한 많은 이들에게서 회고되어 소설로 옮겨진 것만 무수하다. 하다못해 우리는 엘프와 드워프에 대한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미 '드래곤 라자' 로 잘 알려진 이영도처럼, D&D 의 설정을 참고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인간과 다른 종족에 대해 정의한 소설을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어느 판타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아주 재미있는 말을 발견했다. 판타지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서는 한 15년 간 어느 외딴 섬에서 소설만 쓰게 하고 푹 썩힌 다음에 판타지 소설을 쓰게 하면 아마 잘 쓸 것이라고.
판타지를 만만하게 보는가. 그냥 재미로 쓰는가. 그런 소설은 자신의 컴퓨터 파일로 썩혀도 충분하다. 재미로 쓰는 소설 따위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 속의 거름이 되어 그들의 망각 속으로 뿌려진지 오래이다. 평소에 자주 쓰곤 하는 모니터에서 자꾸 작가들을 질책하는 이유도 그에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글은 그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그저 재미로 쓰고 남이 읽어주기를 바란 것이라면 절대로 독자들은 그 글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을 두려워 하라. 독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생각을 초월한 절대적인 존재이다. 자신이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다른 이가 생각한 것이고 이미 그것이 다른 이가 쓴 이상 자신의 글은 아무런 독창성 없는 글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판타지를 쓰는 많은 작가들의 귀감이 될 만할 것이다.
하다못해 자신의 집에서 한 번이라도 무심코 습작을 써본 뒤에라도 소설을 쓰길 바란다. 물론 그 습작들은 싹 잊어버릴 각오를 하길 바란다.
이젠 더이상 시덥잖은 글 읽어주기도 지쳤다. 물론 이런 말을 작가들에 대한 모욕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 글을 아직 채 반도 읽지 않은 채 곧바로 결말을 보고자 한 사람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하라. 하다 못해 나중에 써 놓고 시간만 버렸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많은 생각을 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식으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작가 님들에 대한 충고이다. 쓴 약을 먹는다고 과연 배탈이 날 것인가. 아니다, 병을 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쓴 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