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정치인 손학규.
먹고 사는 살벌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권자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
세상은 이미 갈데까지 가버린 막장이었다.
손학규는 아까운 인물이다.
춘천에서 칩거를 하다가, 그는 여의도로 돌아왔다.
기자들 수십명과 첫 상견례를 하는 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ㅌㅌㅌ 기자님, 그때 춘천에서 정말 미안했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사과를 받고 나니 화가 풀렸다.
2년 뒤, 그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화두를 들고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2007년에 이어 두번째 고배를 마셨다. 올해 수원 팔달 보궐선거에선 새누리당의 정치 신인에게 패했다.
7·30 재보선이 야당의 참패로 끝난 1일 아침,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곧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 대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김한길 대표만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마저도 본론만 간단히 밝힌 뒤 쏜살같이 회견장을 떠났다.
두 사람이 물러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학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측근들은 눈물바람이었으나 그는 의연했다.
다만,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할 때는 정말 안타까운 기색이었다. 회견문을 읽고 몇가지 질문을 받은 뒤 기자실을 돌며 작별인사를 했다. 악수를 나누는데, 갑자기 5년 전 일을 xxx 기자에게 꺼냈다.
“그때 춘천에서 헛걸음하게 만든 거 정말 미안합니다.”
손학규의 시대는 가고 있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손학규의 시대가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 거 같았다. 그러나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손학규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평생 선거운동을 이번처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빛나던 자신의 시절이 저물어간다는 걸 감지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삶을 계속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날 때에도 ‘나만은 정치를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손학규는 ‘손학규의 시대’에 ‘저녁이 있는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그 꿈을 꼭 이어받으면 좋겠다.
“여전히 별은 빛나고 태양은 뜨겁다”
는 건축가 서현의 말처럼,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절망은 여전하고, 삶의 질에 대한 갈망과 연대의 희망은 여전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