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미오픽] ‘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 10차례 연속보도한 장필수·김완 한겨레 기자
50대~60대 아주머니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조선족, 보험 영업을 하다 40대가 넘어 다른 곳에 취직이 안 돼 입사한 남성, 코인에 1억원을 투자해 잃은 여성, 어머니가 주신 유산 7000만원으로 투자한 직원, 아들 두 명과 함께 2억원 넘게 땅을 산 한 집안의 엄마 등. ‘기획부동산업체’에 입사해 ‘기획부동산’을 자신들의 명의로 사기도 하고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팔기도 한 사람들이다.
‘기획부동산’이란 개발될만한 땅을 부동산 법인이 사들여 그 땅을 고객들에게 더 비싸게 팔아 이득을 보는 행위를 말한다. 부동산 법인이 사들인 땅을 고객들이 비싼 값에 사서 다시 되팔아 이득을 남길 수 있으면 좋지만, 보통 기획부동산이 고객들의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법인이 파는 땅 대부분이 개발 호재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획부동산업체가 과거와는 달리 점점 땅을 잘게 쪼개 소액인 1000만원~2000만원으로도 투자할 수 있다고 모객 행위를 해 어려운 사람들의 돈을 야금야금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
지난해 9월부터 ‘대장동 게이트’를 보도하며 한겨레 탐사팀은 부동산 이슈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고 근본적인 이유를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완 한겨레 탐사팀 기자는 “대장동 부동산 개발은 민관이 참여해 이뤄졌다. 개발 주체 중에 불행해진 사람은 없다. 대장동 일대에 아파트를 구매한 사람들의 집값도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 이 문제에 굉장히 분노했다”며 “부동산에 대한 이중감정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나도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싶지만, 남이 벌면 뭔가 잘못된 방법으로 벌었을 거라고 욕한다. ‘구해줘 홈즈’, ‘나 혼자 산다’ 등 집의 가격과 장소를 보여주는 행위가 엔터화될 수 있는 될 수 있는 건가? 부동산 자산가가 되길 원하면서도 비난한다. 그런 경계 어디에선가 취재를 해보고 싶었다”며 기획 취재 배경을 설명했다.
장필수 기자는 무턱대고 지난해 10월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하는 기획부동산 업체 여러 곳에 지원해 서류 심사를 통과한 후 면접을 봤다. 같은 해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두 업체에 취업해 취재했다. 장 기자는 앞서 언급한 ‘기획부동산업체’의 입사자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이들은 사회 끄트머리에서 희망을 품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 위해 입사한 사람들인데, 기획부동산을 구매한 피해자이자 타인에게 판매한 가해자인 상황에 놓여있다.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기획부동산을 차린 맨 꼭대기에 있는 1명~2명뿐”이라고 말했다.
탐사팀의 결과물은 ‘더탐사-2천만원짜리 욕망의 기획자’ 기획 연재로 세상에 나왔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한겨레 탐사팀이 어떻게 취재했고, ‘잠입취재’에 대한 고민은 없었었는지 등에 대해 직접 만나 들었다. 아래는 장필수 기자와의 일문일답.
-취업 과정을 설명해달라.
“취업하는 과정은 간단했다. 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에 부동산 영업이라고 검색하고 지역을 서울 강남구로 한정하면 수백개의 구직 사이트가 뜬다. 그중 어떤 곳이 기획부동산업체인지 알 수 없다. 천천히 읽어보다가 돈에 대한 욕심을 자극하는 문구를 많이 넣어 소개하는 회사들 위주로 이력서를 냈다. 면접 본 곳들이 하나같이 ‘서울 수도권 대학을 나왔는데 잘 할 수 있는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고 합격해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
-취업한 업체가 기획부동산업을 하는 게 느껴졌나.
“업체에 취직해 나흘째 되는 날 선배에게 전화해서 이 회사 괜찮은 회사인 것 같으니 다른 업체를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교육을 받고 일을 하는데 이상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선배가 내가 취업해 일하는 업체가 판매하는 땅에 직접 실사를 다녀왔는데, 개발 가치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의심하려고 작정하고 입사했는데도 분별하기 어려웠다.”
-하루 일과는 어땠나.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오전 10시30분 전까지 짧게 담당 부장과 조회를 한다. 오늘 한 건 올려보자고 기합을 넣는 시간을 갖는다. 오후 12시까지 임원들이 회사가 파는 땅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지 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 한국 부동산 역사도 듣는다. 사기 사례들을 풍부하게 설명하면서 우리는 사기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듣다 보면 내가 부동산 전문가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먹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영업한다. 99%는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으면서 누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로 물꼬를 트고 나도 땅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판매되는 토지 지번은 절대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 회사로 와서 설명을 들어보는 단계까지 오면 그때 토지 지번을 공개하고 1000만원~2000만원 정도 주고 수십명과 공동명의로 땅을 갖게 된다. 50대~60대 아주머니들이 포섭되기 좋은 게 아침에 아이들과 남편을 챙겨주고 남편 퇴근 전에 퇴근할 수 있는 시간대다.”
-1000만원~2000만원으로 아파트를 산 ‘10대 집주인들’ 보도는 어떻게 하게 됐나.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 게시글들을 살펴보니 미성년자들에게 아파트를 선물한다는 게시글들이 굉장히 많이 봤다. 나도 샀는데, 너도 사라는 것이다. 기획부동산과 비슷했다. 그중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A아파트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1000만원~2000만원이라 갭투자로 살 수 있다는 게시글이 보였고, 그 해당 아파트 376세대 등기부 등본을 전부 떼 보니 10대 집주인 10명이 나왔다. 10명 중 2명은 각각 2채씩 갖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의 아버지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월급이 300만원대인 중소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해왔다.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사기 어렵다는 걸 깨닫고, 노동소득으로 자기의 삶도 개선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기와 다르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갭투자를 한 것이다. 기획부동산과 아파트 갭투자 방식 두 개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까지 해서 취재하게 된 이유는.
“기획부동산과 10대 집주인들(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집을 샀음)에 대해 언론사들이 기사로 소화하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누군가 개발 가치가 없는 말도 안 되는 땅을 팔아 몇백억원의 사기를 쳤고 이런 방식을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형사사건 기사로 기획부동산 보도가 나온다. 또 10대 집주인들은 수도권 초등학생 몇 명이 아파트 몇 채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분노를 유발하는 기사로 그친다. 하지만 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사연들이 있다. 사회의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이다. 취약계층으로 분류할만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기획부동산 업체에 취직한 거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자라며 취재해 응해달라고 하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겠나. 구조적으로 접근하려면 직접 취업해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업체 근무 마지막 날에는 기자라고 밝히면서 더 깊은 취재가 가능하기도 했다.”
-부동산 열망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맞다. 10대 집주인 아버지와 직접 만나 50분정도 이야기했다. 본인이 왜 갭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 설명했고, 나한테 ‘넌 답이 있냐’고 물었다. 답을 하기 어려웠다. 전 정부를 지나 현 정부에서 자산 불평등은 더 심해졌다. 지난 4년간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 집단 간 소득 격차는 4.1배에서 3.87배로 감소하는 동안, 부동산 자산 격차는 77.6배에서 95.5배로 증가했다. 그래서 부동산에 대한 열망은 지속될 것이다. 국민이 부동산을 보는 복잡한 태도와 마음가짐이 있는데, 정책 결정자들이 이걸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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