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꽃시장
김 단희
일요일 아침이다. 눈을 뜨자 괜스래 흐뭇흐뭇, 튀어 오르듯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에서 날씨부터 검색해본다. 오늘처럼 기온이 높고 햇살이 좋은 봄날에는 간단한 몸 풀기와 짧은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일요일은 내게만이 아니라 동네 주부들에게 아주 중요한 날이다. 재래시장 앞에는 꽃시장이 열리고 동네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꽃을 구경하며 즐기다가 가장 맘에 드는 화분 하나나 두 개쯤도 사서 반찬거리 살 때보다 흡족한 얼굴로 집을 향한다.
일주일동안 꽃을 키우며 꽃 사장님을 기다렸던 동네 사람들이 각종 질문을 해대면 신이난 키 큰 사장님은 척척박사, 이런 봄날에는 알바생 동네 아줌마 두 분도 연신 꽃을 골라주고 이름을 알려주기에 분주하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 낯선 곳에 적응하며 약간의 무료함으로 매일 동네 산책을 하기도 하고 자잘한 쇼핑을 하다가 눈에 띈 동네 꽃시장은 가격도 착해서 쉽게 친해졌다.
남향으로 된 좀 오래된 아파트여야 베란다가 넓어서 꽃 키우기에도 장 담기에도 적합하다. 하루 종일 아들과 발품 팔아서 지금의 30년 가까이 된 구식 아파트를 골라냈다. 마당이 자그마한 주택을 찾고 싶었으나 아파트만큼 쉽게 구할 수 없어서 그런대로 베란다 넓은 이집이 인연되어 살고 있다
꽃 친구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련화는 정원을 가꾸는 지인이 건네준 씨앗 열 개로 파종해서 노랑색 주황색 빨간색으로 그 꽃잎 가운데 무늬와 꽃술의 배색이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일 년 내내 마음을 환하게 한다. 잎이 흡사 연꽃잎 닮아서 한련화라나...? 꽃송이는 발랄하게 위를 향하고 동동 떠오르는 잎새들과 아침 인사를 나눌 때 표정이 어찌 그리 해맑은지.
제라늄은 계절과 추위와도 상관없어 키우기도 쉽지만 품종도 다양하고 누구나 쉽게 친해지는 투박한 매력이 있다. 번식도 개화도 순조로운 건강한 아이들, 그 순둥순둥한 기질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이때쯤 나는 라벤다의 보라색을 기다릴 때가 되어서 많이 자란 가지와 잎을 매일아침 점검하고 작년의 멋진 봉우리를 상상하면서 물주기에 공을 들인다. 라벤다는 오랫동안 힘 있는 긴꽃대를 계속 피우고 그 모습은 아주 귀족적이다.
또 하나 내 사랑 풀잎으로 길가에 흔히 보던 달개비 잎인데 꽃 버금가는 아름다운 카멜레온 달개비가 있다. 여름내 초록이던 흔한 잎들이 겨울이 시작되면 핑크색을 띠면서 녹색의 기존잎과 어울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단양의 강가 까페에서 그 신기한 두 가지 색에 놀라서 몇 줄기 사서 물꽃이로 공들이고 겨우내 얘기 나누며 기도하듯 했더니 제법 자라서 두 화분이 되었다.
아무런 대가없이 기쁨을 주는 이 꽃들이 내게 천사가 아닌가. 우리들에겐 수호천사가 늘 함께 한다고 했다. 불교적으로는 보살들이 지켜준다고 하고.
돌아보면 고통스런 시절에 모든 것을 부정하며 진리를 찾는답시고 더욱 방황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마음으로 울고 있을 때 그 의무와 책임으로 짓눌린 삶, 관습과 제도의 한계 안에서 자유를 꿈꾸며 망상에 들떠있고 몸은 알 수 없이 아파와 병원을 거의 매일 드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다행히 갱년기의 우울증이 찾아 올 때쯤에는 요가를 만나서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길을 찾던 나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고 진정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 시기의 수호천사는 아마도 요가인가 싶다. 차츰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고 조금씩 통증에서 해방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꽃 친구들은 그저 환하게 피어 있다. 일어나는 마음도 없이 그저 피고 질 뿐이다. 나도 서투나마 세상살이를 거의 마쳤으니 구하고 원함이 없는 노년의 고요함이 좋다.
아침마다 만나는 베란다 친구들이 수호천사임을 다시 잊으며 살아 가겠지만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꽃처럼 환한 빛으로 남은 생을 살아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은 서둘러 꽃시장에 나가서 토분을 사고 마사토에 상토를 섞어서 봄 분갈이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