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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2월 9일
한국 뇌사 공식 인정
정부는 2000년 2월9일 국무회의를 열어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을 의결, 장기 매매를 임의로 알선하거나
교사하면 2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고 발표
했다.
시행령은 장기 기증자 및 이식 대기자에
대한 모든정보를 국립장기이식관리 기관
에서 통합,관리함으로써 장기를 이식받을
사람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선정토록 했다.
미국은 장기공유정보체계를 민간단체가
관리하고 일본은 장기알선업체가 대신
한다.
정부가 장기이식을 주도하는 것은 우리
나라가 처음이다.또,그동안 무법상태에서
행해졌던 뇌사자 장기기증이 합법화되면
서 뇌사자 장기의 배분에서 효율성과형평
성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으로 뇌사가 처음 인정된 것은 19
71년 핀란드의 국민보건국이 ‘시체 조직
의 적출에 관한 훈령’을 공포하면서부터
였다. 이때까지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한
나라는 미국, 프랑스, 영국, 핀란드, 일본,
대만 등 16개국이었다.
뇌사를 공식 인정하는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나온 첫 뇌사판정자
는 2000년 2월15일 인천 가천의대 부속
길병원에서 나왔다.
MBC TV ‘다큐스페셜 - 희생’에서 뇌사자 장기이식의 사례를 인터뷰하고 있다
▶2009년화왕산, 대보름 억새 태우다 산불
경남 창녕군 화왕산 정상에서 '억새 태우기' 행사를 하다 불길이
관광객을 덮쳐 4명이 숨지고 50 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정월 대보름 행사의 일환으로 3년마다 열리고 있는 화왕산
'억새 태우기 행사' 는 이번 화재로 폐지
▶2007년박찬호, 연봉 300만불에 뉴욕 메츠 선발투수로
▶2003년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황선홍’ 공식은퇴 발표.
▶2002년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
2002년 2월 9일 열린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막식 모습.
지구촌 눈과 얼음의 축제’ 동계올림픽이 9일(한국시각)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라이스 애클스 스타디움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5만6000여명의 관중과 160개국 지구촌 사람들이 지켜본 개막공연의 주제는 ‘마음의 불을 밝혀라(Light the Fire within)’. 희망을 상징하는 주인공 ‘빛의 소년(Child of Light)’ 이 개막행사의 처음을 비롯, 행사 곳곳에 출연하면서 전 세계가 상처받은 인류애를 함께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유타주의 5개 인디언 부족이 5대륙를 대표하는 선수와 우정을 나누는 내용을 담은 공연도 이어졌다.
선수단 입장은 ‘빛의 소년’ 이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 선수단을 이끌면서 시작됐다. 허승욱을 기수로 한 한국선수단은 하얀색 파커 위에 예쁜 색동 조끼를 걸쳐입고 42번째로 경기장에 들어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개막식 대미를 장식한 것은 성화점화. 딕 버튼, 도로시 해밀, 페기 플레밍, 스콧 해밀턴 등 미국이 낳은 동계스포츠 스타들에 의해 스타디움 내에서 전해진 성화는 최종적으로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대회에서 미국이 아이스하키 금메달을 따낸 당시 대표선수들에 의해 738개의 유리로 만들어진 약 36m 높이의 성화대를 타고 점화돼 솔트레이크시티를 환하게 비췄다.
개막식은 부시 미 대통령 등 요인들이 대거 참석해 삼엄한 경비 속에 열렸다. 개막식 동안에는 스타디움을 중심으로 반경 72㎞ 이내가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됐고, 강화된 검색에 입장객들은 2~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2001년미국 핵잠수함과 일본의 수산고교 실습선,
하와이 앞바다에서 충돌
▶2001년우리 나라 전국 144개 모든 통화권
지역을 고속 대용량(155Mbps∼5Gbps)의
광케이블로 연결한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구축
▶2000년주한미군,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용산기지 하수도로 방류(주한미군 사령부 7월14일 공식 인정)
▶1999년빈민 운동가 제정구 의원 별세
▶1997년아르테아가 부통령, 에콰도르 대통령에 선출
▶1996년한-중 해저광케이블 개통
우리나라 충남 태안과 중국 산동성 청도를 잇는 총길이 5백49㎞의 해저 광케이블이 1996년 2월 9일 개통됐다. 이번에 개통된 한·중 해저 광케이블은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1993년 6월부터 약4백억원을 투입, 건설한 것으로 초당 신문 8천8백 쪽 분량의 정보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5백60Mbps급 시스템 2개로 구성돼 있다. 또 각 시스템은 1만5천1백20개의 전화회선 용량을 갖고 있어 1만5천명 이상이 동시에 전화통화를 할 수 있다.
한-중 해저 광케이블 개통 기념식에서 영상으로 축하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는 한-중 양국 총리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간의 국제통신회선은 인텔샛(국제통신위성기구)이나 일본을 우회한 케이블망을 포함해 1천84회선에 불과, 양국이 심각한 통신회선 부족사태를 겪어왔다. 그러나 이번 한·중 해저 광케이블의 개통으로 모두 8천3백74회선을 확보함으로써 최근 급증하는 양국간 통신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됐다.
한-중 양국은 이날 두 나라간 해저 초고속 광케이블 개통식을 기념하기 위해 이 광케이블을 이용한 이수성 국무총리와 중국의 이붕 총리간 영상 대담을 10여 분간 가졌다.
▶1996년윤치영 前공화당 당의장 별세
▶1995년김종필 총재, 민자당 탈당
▶1995년삼성전자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조한
TFT-LCD 양산 1라인 준공식
▶1993년정주영 국민당 대표, 정계은퇴
▶1992년제16회 동계올림픽 개막(프랑스 알베르빌)
제16회 동계올림픽대회가 1992년 2월 9일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개막돼 16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65개국 2천6백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통일후 첫 출전한 독일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44년동안 계속 출전해온 한국은 김윤만 선수가 남자 1천m 스케이팅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 동계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한데 이어 남자1천m 쇼트트랙에서 김기훈선수와 이준호선수가 나란히 금메달, 동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2, 은1, 동메달 1개로 세계 10위를 차지해 아시아 정상으로 군림하던 일본(11위)을 처음으로 제치는데 성공했다.
▶1990년3당합당의 결과, 민주자유당 창당
민정,민주,공화 3당이 3당합당수임기구
활동회의를 열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1989년‘우주소년 아톰’ 의 제작자,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사망
▶1988년삼성반도체-금성반도체-현대전자-전자통신연구소 공동으로 4MD램 개발
▶1986년핼리혜성, 76년 만에 지구에 접근
핼리혜성
영국의 천문학자 E.핼리가 발견한 태양의 주위를 궤도 이심률 0.9673의 타원궤도를 도는 해왕성속의 주기혜성으로 주기는 76.03년이다.
근일점(近日點) 통과는 1910년 4월 20일 5시이었는데, 그때 태양과의 거리는 0.5872 AU, 궤도면이 이루는 황도면(黃道面)과의 경사각은 162.21°이었다. 영국의 천문학자 E.핼리는 1705년에 당시 I.뉴턴이 발표한 만유인력의 이론에 따라서 기록에 있는 24개의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서, 1531년, 1607년, 1682년에 출현한 바 있는 세 개의 혜성이 같은 궤도를 돌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의 같은 간격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이것들은 동일한 혜성이 태양의 주위를 76년의 주기로 돌고 있다고 결론짓고, 이 혜성은 다음에는 1758년에 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그 재출현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으나, 그의 이 예언은 정확히 적중하여, 1758년의 크리스마스날 밤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며 접근해 왔다. 이 핼리의 공적에 의해서 혜성 중에 주기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대의 기록을 알아보면, 지금까지 29회의 출현기록이 남아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BC 467년 중국 주대(周代)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1910년에 이어 1986년 지구에 출현한 핼리는 소련의 베가 1호, 유럽 우주기구의 지오트 탐사기, 일본의 플래니트 탐사기 등의 카메라에 의하여 얼음에 덮인 핵(核)과 꼬리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1984년유리 안드로포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사망
▶1983년4대문안 재개발지구 고도규제 완전철폐
▶1982년JAL 여객기 가와사키 앞바다 추락
▶1981년폴란드 수상에 야루젤스키 취임
▶1979년알제리 새대통령에 샤들리대령 취임
▶1973년영국-프랑스, 동독 공식승인
▶1971년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1967년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발효
▶1962년정부, 충주에 제4비료공장 설치계획 발표
▶1960년`자장가 변주곡`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도흐나니 사망
▶1957년미국 5천kw 원자로 발전 개시
▶1950년미국 `매카시 선풍` 개시
1950년 2월 9일,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열린 공화당 여성당원 대회 초청 연사 매카시 상원의원은 보수파 중에서도 특히 우편향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부처인 국무성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 나는 그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 후에 `매카시즘`이라 불리게 된, 사상 희유의 빨갱이 사냥 집단 히스테리가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온 매스컴이 대서특필했다. 여론의 동태가 심상치 않자 트루먼 대통령은 즉각 조사위원회를 소집했다.
`매카시 선풍`으로 미국을 공산주의자 색출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렸던 매카시 상원의원
애초에 매카시가 말한 `명부`란 없었다. 석달 후에 그의 발언이 `근거 없음`으로 결론나긴 했지만 적색 사냥 선풍은 이미 손댈 수 없는 기세로 확산된 뒤였다. 매카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저명한 중국학자 라티모어를 필두로 애치슨, 마샬 등 민주당 정부요인들까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다. 비단 매카시 뿐은 아니었다. 초선의 공화당 의원이었던 리처드 닉슨도 이에 가세했다. 정부와 의회, 학계, 문화계, 노동계, 헐리우드 배우들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 소동이 벌어졌다.
매카시선풍의 마수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군부에까지 미치자 1954년 마침내 상원 공청회가 열렸고, 전국민은 36일 동안 TV를 통해 이 공청회를 주시했다. 무책임하고 야만적이며 정략적인 매카시의 언동에 사람들은 속았음을 깨달았고, 마녀사냥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곧이어 1954년 12월 상원은 67대 22로 매카시가 `상원의 전통에 위배되는` 행동을 했다고 견책을 결의, 4년에 걸친 집단 광기에 끝을 냈다. 매카시는 그후 비서와 결혼했으나 술에 빠진 생활을 계속, 3년 후인 1957년 실의 속에 알코올 중독증과 우울증으로 48세 나이에 죽었다. 한 정치신인의 야욕과 사회의 불건강한 정신구조가 함께 빚어낸 한 시대 우화였다.
▶1950년미국-영국-캐나다, 원자력회의 개최
▶1946년소련 제4차 5개년계획 발표
▶1945년대한민국 임시정부 독일에 선전포고
▶1943년미국, 주48시간 근무제 실시
▶1943년일본 군인 카탈가나루섬에서 철퇴
▶1909년독일-프랑스, 모로코협정 조인
▶1904년제물포 전쟁
1904년 2월 9일, 제물포 앞바다에서 일보과 러시아의 함대가 맞붙었다. 당시 제물포는 하루 전에 중국 뤄순항에서 벌어진 러일 전쟁 탓에 전쟁을 피해 밀려든 각국의 함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물포항 밖에서 침몰하고 있는
러시아 군함 바락호와 카례예츠호
일본 군함은 물론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의 군함들까지 같이 정박해 있던 제물포항에서 일본은 각국 함선에 정오까지 제물포항을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당시 러시아의 전함 바락(노르만인)호와 카레예츠(고려인)호는 자국의 상선 숭가리(송화강)호와 함께 정박해 있었는데 러시아는 전쟁 당사국이었기 때문에 순순히 일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곧이어 러시아 함정과 일본 함대 간의 해상 포격전이 전개됐다. 전함수 14 대 2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응에 나섰던 러시아 함대는 1시간 만에 만신창이가 돼 소월미도로 돌아갔다. 수병 33명이 사망하고 97명이 부상당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러시아 함대는 항복하지 않은채 침몰하며 자폭했다.
러일전쟁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인의 기개를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날'로 기념하고 있는 전쟁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바락호 함장의 동상을 세우고, '바락'이라는 영화와 제물포해전을 기리는 노래를 만들 정도였다.
▶1890년네덜란드 건축가 오우트 출생
▶1881년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사망
도스토예프스키 초상화.
도스토예프스키 [Dostoevskii, Fyodor Mikhailovich, 1821.11.11~1881.2.9]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1881년 2월 9일 사망했다. 신과 세속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그의 소설들은 `넋의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20세기 문학만이 아니라 사상계 전반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그의 문학세계에는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신질서가 들어서려는 과도기의 러시아에서 시대의 모순에 고민하면서, 그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작품세계에 투영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은 다양한 상황속의 다채로운 인물들이 내는 다색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으로는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공병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싫증을 느끼고 때마침 출간된 발자크의 소설에 영향받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젊은 시절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푸리에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한 서클에 가입했으나 이 서클이 관련된 이른바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에 연좌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황제의 특사로 감형돼 시베리아로 유배된 그는 4년간의 유형생활을 통해 공상적 사회주의자에서 슬라브적인 신비주의자로 사상적 변신을 하게 된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말년 작품들은 주로 사회적-사상적-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킴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특색을 찾을 수 있다.
▶1874년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 사망
▶1865년독일 지리학자 드리갈스키 출생
▶1859년미국 오르간 제작자 호프 존스 출생
▶1788년오스트리아, 터키에 선전포고
▶1773년윌리엄 헨리 해리슨 미국 제9대 대통령 출생
▶1614년영창대군 사망
영창대군
1606(선조 39)∼1614(광해군 6). 조선 중기의 왕자로 선조의 적자(嫡子).
이름은 의(㼁). 선조의 열네째 아들로 어머니는 인목왕후(仁穆王后)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딸이다. 선조의 아들 중 유일한 정비 소생으로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정례(權停例: 절차를 다 밟지 아니하고 거행하는 의식)로 공빈 김씨(恭嬪金氏)의 소생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그 뒤 정비의 소생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선조는 세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실권을 잡고 있던 유영경(柳永慶)을 위시한 소북파(小北派)가 이 뜻에 영합했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은 죽으면서 대신들에게 영창대군을 돌봐달라는 유교(遺敎)를 내려 뒷일을 부탁하였다. 이 사실로 광해군을 지지하던 이이첨(李爾瞻) 등 대북파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1613년(광해군 5) 소양강을 무대로 시주(詩酒)를 즐기던 서양갑(徐羊甲)·박응서(朴應犀)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이른바 ‘7서의 옥’이 일어났다.
이이첨 등은 이 역모 사건에 그들이 영창대군을 옹립하고 영창의 외조부 김제남도 관계한 것으로 진술을 유도하였다. 이 결과로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그 뒤 조야에서는 끊임없이 구원의 상소 등이 이어졌고, 형제의 의를 따지는 전은설(全恩說)과 여덟 살밖에 안된 ‘유자(幼子: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그를 비호하였다. 그러나 대북파의 계속된 요구로 이듬해 봄에 이이첨 등의 명을 받은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살해되었다.『광해군일기』에 의하면 정항이 영창대군을 굶겨서 죽게 하였다거나 정항이 온돌을 뜨겁게 달구어 영창대군을 증살(蒸殺)했다고 되어 있으나,『인조실록』에 의하면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別將) 이정표(李廷彪)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죽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양자 사이에 논란이 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관작이 복구되었다.
▶1404년비잔틴 제국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출생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53432_19418.html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