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온종일 주의 전에 거할 때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롭게 권면 받은 지체들의 마음을 성령께서 만져 주시길 원합니다.
저희가 함께 성장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실 때
진리를 보게 하시고
아버지 품속의 절대 안정감을 느끼게 하옵소서.
새로운 모임에 나가는 날입니다.
성실하게, 책임감 있게 일을 감당할 지혜를 주옵시고
복음 전파의 목적의식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나의 묵상)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우상숭배만큼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또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늘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물질의 위력을 의지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상황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는 이 시대의 우리들의 모습......
역시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와 오해.
이것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지적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답변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하나님은 ‘내가 누군지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뭘 잘못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한 적이 없습니다.’ 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떠받들었으므로 얼마든지 그런 대답이 가능했으리.
이 대답은 신약시대까지 이어져 결국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이 대답은 지금도 이어져 ‘이렇게 교회를 잘 다니고 있는 내 믿음에 뭐가 문제가 있느냐’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삼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우리가 말씀의 통치를 받으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의 사람살이-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의 질을 높이고, 문제와 상황 해결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그의 백성으로 불러 주신 거룩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을 하나님 자신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계속 ‘내가’를 반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바알과 어떻게 다른지를 '내가' 알게 하겠다,
'나'를 알게 하겠다고 하신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문제를 푸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과 하나님을 혼돈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네 남편이 되어 네 남편은 어떻게 다른가를 내가 보이겠다, 내가 그것을 이루어 너를 향하여 가지는 사랑과 정성을 증명하여 너를 항복시키겠다'고 하신다.
그렇게 음란하고 패역한 자를 광야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셔서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의 선물을 가지시고 장가드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그 은혜와 긍휼의 정점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분이시다.
이것은 이미 창세 전에 계획하신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당신을 나타내시며 당신을 설명하신다.
비자 문제로 곤란을 당하고 있는 아들의 문자를 새벽에 받았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자고 아들과 대화했다.
우리가 평생을 다 바쳐 하나님을 아는 일에 노력한다 해도 그 크신 분을 얼마나 더 알까?
그렇지만 내 평생에 모든 상황을 주신 것은 그저 의미 없이 그냥저냥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라고 주신 것이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너무도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더 확실히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것은 바로 말씀을 통한 성령의 계시이다.
영생을 사는 내가 말씀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없는 이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묵상기도)
주님,
‘하나님은 참 자존심도 없으신 분이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엉뚱한 우상이나 사랑하고 쫓아가는
제가 뭐 그리 사랑할 존재라고 이렇게까지 굽히시는지.....
굽히다 굽히다 아들까지 죽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뻔뻔하게 굴었던 것이 이제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주님 알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 폭포수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상황을 통해 하나님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