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 그리고 Iwagumi Air Scape
2026년 10월 12일, 시드니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올림픽 파크 워프에서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향했다. 페리는 파라마타강을 가르며 하얀 포말을 뿜어냈다. 햇살은 물결 위에서 잘게 부서지고, 강변의 풍경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강물에는 가을도 겨울도 지나온 시드니의 봄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시드니에 살았지만, 익숙한 도시를 이처럼 여유롭게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사역 중에는 목적지에 도착한 뒤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했다. 은퇴하고 나니 이동하는 시간에도 마음을 머물게 할 수 있었다. 배가 남기는 물결을 바라보고, 강변의 집들과 나무들을 살피며, 서두르지 않는 하루를 누렸다.
항구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Iwagumi Air Scape라는 예술 작품이 더해지면서, 익숙한 시드니는 새로운 생각을 건네주었다. 세 가지 풍경 앞에서 나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조용히 그려보았다.
1. 오페라하우스 — 추억 속에서 발견하는 감사
오페라하우스의 하얀 지붕은 푸른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람을 품은 돛처럼 보이기도 하고, 바다에서 막 올라온 조개껍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곡선은 여러 번 보았어도 눈길을 붙잡았다.
내게 오페라하우스는 가족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오래전 아들이 이곳에서 근무했다. 아들 덕분에 일반 방문객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지하 공간에도 가 본 적이 있다. 화려한 외관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건물을 움직이게 하는 또 다른 일상의 공간을 만났던 기억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오페라하우스는 여행의 목적지이고,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공연을 관람한 곳이다. 내게는 아들이 일했던 곳이며, 아들의 안내를 받아 그 안을 둘러보았던 아버지의 기억이 담긴 장소이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으니 건물의 아름다움 위로 가족의 시간이 겹쳐졌다.
그때 둘러보았던 공간을 생각하며, 무대를 받쳐주는 사람들의 수고를 떠올렸다.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할까. 무대 위의 배우와 연주자뿐 아니라 조명과 음향을 담당하는 사람, 관객을 맞이하는 사람,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의 손길이 모여 공연을 완성할 것이다. 박수는 짧은 순간에 울리지만,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수고는 오래 이어진다.
목회의 시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내 뒤에는 함께 기도하고 묵묵히 섬겨 준 사람들이 있었다. 예배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고,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감당해 준 손길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도, 그 수고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은퇴하고 나니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일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헌신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감사는 지나온 시간을 다시 읽게 한다. 힘들었던 기억 속에서도 나를 붙들어 준 손길을 발견하게 하고, 평범했던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아보게 한다.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아들과 함께했던 시간에 감사하고, 오랜 사역을 함께 감당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제 그 모든 시간을 천천히 돌아볼 여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2. 하버브리지 —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오페라하우스 곁에는 하버브리지가 웅장한 아치를 이루며 서 있었다. 다리 아래로 배들이 지나가고, 그 위로 사람들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다리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지만, 누군가에게 그 다리는 오늘도 일터로 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길이다.
다리의 아름다움은 그 위로 삶이 흐른다는 데에도 있다. 서로 떨어져 있는 곳을 이어주고, 돌아가야 할 거리를 줄여주며,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한다. 하버브리지는 오랜 세월 그렇게 수많은 만남을 가능하게 해왔을 것이다.
그 다리를 보며 내 삶에도 많은 다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앞에서 당황할 때 길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고, 사역의 어려움 속에서 함께 기도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따뜻한 말과 실제적인 도움이 낯선 시간을 건너가게 해 주었다.
사람은 혼자 걷는 것 같아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건너온 길을 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나누어 다리가 되어 주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내어 곁을 지켜 준다. 때로는 “괜찮습니다”라는 짧은 한마디가 두려움의 강을 건너게 한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그런 다리를 놓아준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나는 오랜 직무의 자리에서 은퇴 이후의 삶으로 건너가고 있다. 익숙했던 일정이 줄어들고, 늘 맡아왔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시간이다. 홀가분한 마음과 낯선 마음이 함께 찾아오지만, 건너편의 모든 것을 미리 알아야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씩 걸어가려 한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작은 다리가 되어주고 싶다. 마음이 지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을 격려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화의 길을 내어주고 싶다. 오랜 경험이 필요한 곳에서는 조심스럽게 지혜를 나누고, 내가 배워야 할 자리에서는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싶다.
하버브리지는 사람들을 건너가게 하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퇴 감사 예배에서 했던 다짐을 다시 떠올렸다.
“직책에서는 은퇴하지만 사명에서는 은퇴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짐이 앞으로의 일상에서 작은 친절과 꾸준한 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3. Iwagumi Air Scape — 여백 속에서 배우는 새로운 삶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면, Iwagumi Air Scape는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질문을 더해 주었다. 호주의 예술 그룹 ENESS가 만든 이 작품은 공기를 채워 거대한 바위의 형상을 구현한 설치미술이다. 일본의 돌 배치 미학인 이와구미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균형과 조화를 도시의 공간으로 옮겨왔다.
바위의 모습과 공기의 가벼움이 한 작품 안에 담겨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보이는 형태를 통해 무게와 재질을 짐작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익숙한 짐작을 잠시 멈추게 한다. 무겁게 느껴지는 형상 안에 공기가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얼마 전 다녀온 울루루와 카타추타가 떠올랐다. 붉은 대지 위에 솟아 있던 거대한 바위들, 빛에 따라 달라지던 색깔, 바위 사이를 지나던 바람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다. 광야에서 만난 자연의 바위 앞에서는 긴 시간과 인간의 작음을 생각했다. 도시에서 만난 바위 형상의 예술 앞에서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상상의 힘을 느꼈다.
여행의 기억은 이렇게 다른 장소에서 다시 살아난다. 울룰루에서 바라보았던 풍경이 시드니의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배경이 되었고, 시드니에서 만난 작품은 광야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꺼내 주었다. 여행은 돌아온 뒤에도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작품의 안을 채운 공기를 생각하며, 내 삶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일정과 책임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하루의 빈 시간이 생기면 무엇인가로 채워야 할 것 같았고, 쉬는 동안에도 다음 일을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여유가 찾아왔을 때 그 시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생각에 잠겨도 좋고, 산책하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 오래 서 있어도 좋다. 가족과 식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를 전할 수도 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마음이 새로워지고, 미처 살피지 못했던 삶의 소중한 부분이 다시 보인다.
기도도 그 여백 안에서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아뢰던 기도와 함께, 지금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다. 서둘러 말을 이어가기보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며, 마음이 충분히 쉬도록 기다리고 싶다.
오늘, 푸른 하늘 아래 시드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오래 살아온 도시에도 천천히 바라보아야 할 풍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앞으로는 그 풍경들 앞에서 자주 걸음을 멈추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오늘을 감사히 살아가고 싶다.